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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션으로 무한성장 (75)화 (75/124)
  • <-- 골렘 깎는 노인 -->

    처음에는 단순한 불이었다. 하지만 그 불씨는 점점 커지더니, 붉은색 실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음?”

    성기사들이 한걸음 물러섰다. 갑자기 재에서 실들이 뽑혀 나온다. 그들이 당황하건 말건, 실들은 작물을 짜는 것처럼 복잡하고 빠르게 움직였다. 뮬리펜은 그 모습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폴룩스님은 절대 죽지 않아.’

    고위 성직자들만 알고 있는 사실. 비록 몸은 일반적인 노인과 별 다를 게 없지만. 폴룩스는 그 존재 자체가 불사에 가까웠다.

    몇 번을 죽어도 다시 태어난다. 처음부터 방어를 설렁설렁 한 것도 그 특수한 능력을 믿고 있었기 때문. 마법으로 몸을 박살내도, 검으로 산산조각 내도 얼마든지 부활이 가능했다.

    그것을 알 리가 없는 성기사들은 기겁했다. 대체 저게 뭐란 말인가. 몇 명의 기사들은 알샤인의 기적이라면서 눈물까지 줄줄 흘렸다.

    그 실들은 발끝부터 머리까지, 인간의 신체를 완성했다. 폴룩스. 그의 신체가 완전히 복구되었다.

    “늙은이를 이렇게 두들겨 패다니. 어른 공경은 밥 말아 먹은 놈으로군.”

    폴룩스가 얼굴을 있는 대로 찡그리며 말했다. 카르안 정도는 적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크게 방심했다. 그리고 카르안은 그 틈을 너무나 잘 파고들었다.

    마법사나 사제, 연금술사는 태생적으로 근접전에 취약했다. 폴룩스는 카르안도 자신과 비슷할 거라 생각했다. 골렘만 무력화 시킨다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골렘보다 무서운 것은 카르안 그 자체일지도 몰랐다.

    “교주님!”

    그를 멀뚱멀뚱 쳐다보던 기사들. 그들이 죽을죄라도 지은 것처럼 고개를 숙였다. 폴룩스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놈은 도망친 것같군.”

    “저희가 부족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됐어. 머리 아프니까 조용히 하게.”

    무능한 놈들의 공통점은 쓸데없이 목소리가 크다는 것이다. 폴룩스는 그들에게 명령했다.

    “마법사 길드 쪽에 감시를 강화해. 어차피 놈이 도망칠 곳은 거기밖에 없으니까.”

    장거리 텔레포트는 마법사 길드에서나 가능하다. 장비 없이 혼자서 장거리 텔레포트를 할 수 있는 자들은, 2급 이상의 마법사. 최고위 마법사들이나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그 특별한 사람들은 당연히 얼마 없었다. 우연이라도 카르안와 만날 확률은 희박하다.

    “혹시 여기, 아르페리움에 있는 흑룡회에 몸을 맡기지 않을까요?”

    기사 한명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카르안은 흑룡회의 간부. 아무리 교단에서 애를 쓴다 해도, 이쪽에 있는 흑룡회에 몸을 맡기기만 하면 그만이다.

    그런 상태에서 알샤인 교단이 흑룡회를 건드리면, 이건 말 그대로 전쟁이 되어버린다. 안 그래도 교단의 세력이 약해졌는데, 흑룡회에게 물어 뜯긴다면 치명적일 것이다.

    “그럴 일은 없어.”

    하지만 폴룩스는 고개를 저었다. 사회생활에 약한 교단 사람들과 다르게, 그는 흑룡회 같은 조직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범죄조직은, 서로 연계가 되지 않지.’

    카르안이 특별히 이쪽 사람들과 친한 게 아니라면, 맘편히 몸을 맡길 수가 없다. 원래 폭력 조직이라는 게 그런 것이다. 서로 협력해서 올라가기보다는, 상대 지부의 실력자를 끌어내리려 한다. 비효율적이었지만, 그 비효율이 그들의 방식.

    “아무튼 마법사 길드만 차단해 놔. 육로까지는 막을 수 없겠지만.”

    그러자 활을 들고 있던 기사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어차피 부상이 심해서 멀리 가지는 못할 겁니다.”

    “음. 자네는 내 기대를 항상 충족시켜 주는구나. 정말 기대 이상으로 멍청해.”

    “예? 하지만........”

    성기사의 얼굴이 벌게졌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개망신을 당한 것이다. 교주는 냉정하게 말했다.

    “그놈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나. 카르안은 연금술사야. 그것도 포션 전문가. 그런 놈이 상처 좀 입었다고 죽을 것 같나?”

    화살이 심장에 박힌 것도 아니고. 어디서 풀이라도 뜯어먹어 치료했겠지. 교주는 한숨을 푹푹 쉬며 얼굴을 구겼다.

    “너희는 그냥 생각하지 마.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해.”

    “알겠습니다.......”

    기죽은 성기사들이 고개를 숙였다. 교주는 뮬리펜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이제 막 성기사들의 치료를 마친 참이었다.

    “뮬리펜.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

    “오늘 바로 대신전으로 이동하고, 삼일 후 의식이 시작된다. 아참, 내가 말한 연금술사는 구해 놨겠지?”

    “예. 교주님. 오늘 기사단이 그의 집을 찾아가서, 교단에서 기술을 사고 싶다고 전했습니다. 본인도 흔쾌히 승낙하더군요.”

    옆에 서 있던 기사가 대답했다. 교주는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 뮬리펜의 손목을 낚아채었다.

    “시간 끌지 말고 출발하지. 마법사 길드에 연락해놔, 대신전으로 이동한다고.”

    2.

    “늙은이가 힘도 좋군.”

    그 시각. 카르안은 땅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온 몸에 녹이 슨 것처럼 삐걱거린다. 그리고

    “쿠윽.”

    입가에서 피가 줄줄 새어나왔다. 불치병의 영향이다. 거기에 화살까지 한방 맞으니, 정말 끝내주는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죽고 싶을 만큼 말이다.

    ‘더럽게 강해.’

    카르안이 속으로 두덜댔다. 역시 교단의 교주. 거대한 조직의 수장다웠다. 다시는 싸우고 싶지 않은 상대다.

    그렇게 강력한 내구도를 자랑하던 골렘이 단 한순간 만에 고물덩어리로 변해버렸다. 어정쩡한 마법사 따위와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했다.

    괴수로 변한 타브의 공격도 무리 없이 막아낸 골렘이다. 그런 골렘이 한순간에 박살나 버리다니.

    그나마 근접전이라는 약점을 잘 파고들어서 이길 수 있었다. 결국 죽이지는 못했지만.

    텔레포트는 무사히 성공했다. 텔레포트 스크롤의 한계로 먼 거리를 이동할 수는 없었지만, 연금술사 정기모임이 있는 광장 한구석으로 이동했다. 텔레포트는 추적도 불가능하다. 당장 교단에 걸릴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일단 상처부터 치료해야 되겠지.”

    카르안은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는 비틀거리며 품속을 뒤졌다.

    “남아나는 게 없군.”

    비상용으로 준비해둔 마나와 체력 회복 포션들. 전부 산산조각 나 있었다. 처음 폴룩스의 공격에 직격했을 때, 그때 전부 박살난 것 같다. 그는 박살난 포션들은 전부 버렸다.

    혹시라도 남은 포션이 없나 품을 뒤적였다. 그런데 뭔가 손에 잡힌다. 담배주머니. 정작 필요한 포션은 전부 박살났지만, 쓸데없이 담배 주머니는 무사했다. 아무래도 가죽으로 만든 물건이니 충격에도 무사했겠지. 그는 안쪽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아차.’

    그런데 불이 없지 않은가. 피가 빠지다 보니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 카르안은 쓰게 웃으며 담배를 치우려했다.

    치익-

    그때였다. 누군가 불붙은 성냥을 카르안의 담배 끝에 붙여주었다. 땅에 버려질 뻔 한 담배는, 생명을 찾고 매캐한 숨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카르안이 반사적으로 말했다.

    “고마워요.”

    “아니, 나도 마침 한 대 피려했거든.”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카르안은 눈썹을 찌푸리며 시선을 돌렸다. 옆에 서 있던 것은 연금술사 리젝트. 그가 시가를 물고 있었다.

    카르안이 눈썹을 찌푸렸다.

    “내가 가는 곳마다 귀신같이 나타나는군.”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거든.”

    리젝트도 열심히 시가에 불을 붙였다. 곧 두터운 시가에도 불씨가 타올랐다. 둘은 하늘을 바라보며 서로 담배를 태웠다.

    “또 어디서 그렇게 얻어맞고 왔나?”

    “말해도 못 믿을걸.”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교단의 성녀와 산책을 즐겼고, 그게 영 못마땅했던 교주와 성기사 수십 명이 달려들었고, 그 교주를 반쯤 죽여놓고 무사히 탈출했다. 이렇게 화끈한 밤을 보낼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건 됐고, 회복 포션이나 좀 줘봐.”

    “하, 그게 부탁하는 태도냐.”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리젝트는 포션 한 개를 품 속에서 꺼냈다. 한눈에 봐도 A급 회복포션이다. 카르안은 병을 따고 내용물을 삼켰다.

    여전히 맛은 없었지만, 상처 하나는 순식간에 아물어간다. A급 포션답게 훌륭한 성능이었다. 리젝트가 말했다.

    “차라리 길드를 찾아가지 그래. 포션으로 하는 회복은 한계가 있다.”

    “지금은 좀. 잠시 몸을 숨겨야 돼서.”

    지금은 저녁이다. 이 시간에도 영업을 하는 의원이 있을 리도 없고, 꼭 구하자면 마법사 길드 뿐이다. 하지만 지금 거기에 가는 것은 자살행위.

    알샤인 교단이 바보가 아닌 이상, 카르안이 마법사 길드에 가는 것부터 막아설 것이다. 거기에는 치료뿐 아니라 장거리 텔레포트가 가능하다. 카르안의 가장 확실한 도주로. 길드 문을 여는 순간 잠복해있던 기사들이 덮쳐와도 이상하지 않다.

    애초부터 죽을 만큼 큰 상처도 아니었다. 카르안은 담배를 힘껏 물고, 박힌 화살을 부러트린 다음 뽑아내었다.

    “크윽!”

    온 몸이 하도 아파서, 화살을 뽑는 고통도 어쩐지 둔탁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비명이 새어나오는 것을 참지는 못했지만. 카르안의 꼴을 본 리젝트가 말했다.

    “무식한 놈. 대체 누구한테 쫓기는 거야.”

    “알샤인 교단.”

    카르안은 거기까지만 말했다. 깊게 말해봐야 뭐가 좋겠는가. 리젝트는 질린 표정을 했다.

    “거참. 건드려도 왜 하필 그런 큰 놈들을 건드렸나.”

    “난들 그러고 싶었겠냐.”

    타오르던 담배가 이제 완전히 재로 변해버렸다. 카르안은 마지막 한 모금을 삼킨 뒤, 남은 꽁초를 발로 밟았다.

    “아무튼 불 고마웠다.”

    카르안은 금화 하나를 꺼내 리젝트에게 던져주었다. 그는 별 말없이 금화를 낚아챘다.

    A급 회복포션의 값이다. 금화 하나쯤이면 충분하리라.

    서로 길게 인사할 필요는 없었다. 카르안은 말없이 등을 돌리고 걸어갔다. 리젝트도 별 말없이 그를 보내줬다.

    ‘여관을 잡아야 하는데.’

    뭔가 몸을 회복시킬 곳이 필요하다. 사실 리젝트의 집이라도 가고 싶었지만, 그를 완전하게 신뢰할 수는 없었으니까.

    다행히 그가 자신에게 악감정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꼭 악감정이 있어야만 악행을 저지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최악의 경우 알샤인 교단에게 돈을 받고 그를 팔아넘길 가능성도 있다.

    결국 그의 저택에서는 마음 놓고 눈을 감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여관을 잡자니 남는 방이 없다. 밖에서 노숙을 하자니 그것도 위험하고.

    너무 큰 조직을 건드린 덕분에 일이 상당히 꼬였다.

    “망할 놈의 축제.”

    이제는 치프의 집도 안심할 수 없었다. 대체 저 교단이 자신에 대해 얼마나 조사했는지, 감도 잡히지 않았으니까. 물론 카르안의 걱정이 과한 것이었고, 알샤인 교단에서는 카르안이 치프의 집에 있었다는 것을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 방심하다가 한 번에 골로 갈 수도 있다. 실제로 그와 싸운 알샤인 교단의 교주가 그렇게 당하지 않았던가.

    안 좋은 상황이지만, 그나마 괜찮은 부분도 있었다. 축제 덕분에 수도의 인구가 확 늘어났다. 그만큼 카르안을 찾기가 힘들어진다. 교단의 병력은 제한되었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카르안을 찾는단 말인가.

    “잘 곳이라.”

    결국 카르안이 선택한 곳은, 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있는 낡은 여관이었다. 거기도 방은 가득 찼기에, 말들이 자는 마구간을 빌렸다.

    “짚은 새로 깔아드렸습니다.”

    눈치를 보는 여관주인. 카르안은 이곳에 올 때부터 흑룡회의 코트를 숨겼지만, 막 싸움을 끝내고 온 자의 분위기, 그 날카로운 인상은 지울 수 없었다.

    “감사합니다.”

    카르안은 별 말 없이 은화를 지불했다. 그래도 지붕도 있고, 푹신한 짚도 있다. 날씨도 포근했기에 추위에 떨거나 더위에 고생하지는 않아도 괜찮았다. 무엇보다 노숙보다는 낫지 않은가. 마구간에는 마침 말도 없었기에, 시끄러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주인이 떠나가고, 카르안은 눈을 붙이려했다. 빨리 자고 일찍부터 움직여야 한다. 그가 짚에 몸을 던진 순간 마구간의 문이 다시 열렸다. 카르안은 그가 방금 전 주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뭐 까먹은거라도 있어요?”

    “이, 이게 필요하실 것 같아서요.”

    들려온 것은 주인장인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가느다란 소녀의 목소리.

    이곳 여관 주인의 딸이다. 그녀는 물이 담긴 대야와 흰색 수건을 들고 왔다.

    “핏자국은 닦고 주무시는 게 좋아요.”

    “고마워.”

    따로 배려해준 것인가. 카르안이 살짝 웃어주자, 소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수도라지만, 이런 구석에 있는 여관에서 일하다 보니 괜찮은 남자를 보지 못했다. 카르안 정도, 미형의 얼굴은 소녀의 호의를 사기에 충분했다.

    카르안은 말없이 세수부터 했다. 약간의 어색한 시간. 소녀는 입을 열었다.

    “저, 혹시 연금술사. 맞으시죠?”

    “어떻게 알았지?”

    “저번에 봤으니까요. 치프씨와 싸우는 거.”

    “아.”

    엄밀히 말하면 싸운 것은 아니었지만. 카르안은 대충 넘기기로 했다. 그런데 잠깐.

    “혹시 치프. 그 영감을 알고 있니?”

    “네. 사실 어디 사는지도 잘 모르지만......... 워낙 괴짜여서요.”

    “흠.”

    그러고 보니 자신은 치프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그의 연구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았지만. 지금까지 뭘 하고 살았는지, 이런 것은 전혀 알 수 없다.

    카르안은 물수건을 잠시 치웠다. 그가 소녀의 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혹시 치프란 사람. 그 노인에 대해 좀 알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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