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렘 깎는 노인 -->
‘더럽게 아프군.’
교주의 공격에 쓰러진 카르안. 그가 이를 악물었다. 수류탄을 온 몸으로 맞으면 이런 기분일까. 귀가 멍멍하고, 몸 구석구석이 30분쯤 몽둥이찜질을 당한 것처럼 욱신거린다.
카르안의 흐릿해진 시야 사이로, 천천히 다가오는 폴룩스가 보인다.
그의 앞을 뮬리펜이 막아서고 뭐라고 소리친다. 그런 성녀를 밀치고 카르안에게 다가오는 폴룩스. 대화 내용은 잘 모르겠지만, 대충 짐작은 할 수 있었다.
‘이렇게 뒤질 수는 없지.’
그는 서둘러 골렘을 소환했다. 4미터 크기의 대형 골렘. 이런 상황을 위해 남겨둔 비장의 한수다. 몸이 찢어질 듯 아파왔지만, 눈을 감고 연금술에 집중했다.
폴룩스의 손끝이 빛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동시에, 카르안도 마법진을 완성하는데 성공했다.
거대한 골렘의 주먹이 모습을 드러냈다. 교주의 등 뒤에서. 거대한 주먹이 그의 몸을 향해 달려든다.
유리가 깨지는 듯한 소리,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폴룩스는 갑자기 나타난 골렘의 주먹에 놀란 듯 했다.
“얄팍한 수작을!”
첫 번째 주먹이 그의 얼굴 앞에서 멈춰 섰다. 방어막은 산산조각 났지만, 골렘의 팔이 몸에 닿지는 않았다.
‘위험했어.’
폴룩스는 소름이 돋았다. 상상 이상의 힘이었다. 골렘의 주먹이 조금만 더 무거웠다면, 혹은 조금 더 빨랐다면. 교주의 온 몸을 박살냈을 것이다.
물론 교주가 방심한 것도 있었다. 카르안이 완전히 전투 불능이라고 착각했기 때문. 그의 빈 몸통을 향해, 공격 마법이 제대로 들어갔다. 그 정도면 인간에게는 치명타.
그가 알기에 카르안은 몸을 쓰는 전사가 아닌 연금술사다. 사이프카르처럼 악마와 인간의 혼혈 같은 것도 아니었고. 그런 나약한 몸에 폭발이 직격했으니 누구나 폴룩스처럼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골렘을 소환하다니, 예상 외로 카르안의 맷집이 좋았다. 하지만.
‘그뿐이지.’
명줄이 조금 늘어났을 뿐이다. 교주는 두번째로 날아드는 주먹을 향해 공격의 방향을 틀었다.
쾅!
이어지는 폭발. 골렘의 주먹이 폴룩스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뒤로 밀려났다. 계속되는 폴룩스의 공격.
주문을 외울 필요도 없었다. 알샤인 교단의 교주, 그 자리는 카드게임으로 오른 게 아니었으니까. 그는 신성력을 마음껏 쏟아내며 골렘의 박살내었다.
‘어차피 저놈의 몸은 맛이 갔다. 골렘만 무력화 시킨다면.’
차라리 카르안을 공격할까 싶기도 했지만, 뒤로 소환된 대형 골렘이 틈을 주지 않는다. 완전히 소환되지는 못했지만, 거대한 두 개의 팔이 발악하듯 달려드는데 도저히 무시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저 골렘은 제법 단단했다. 단숨에 부서지지도 않았으니까. 하지만 골렘의 공격도 교주에게 닿지 않는다.
‘슬슬 마무리 지어 볼까.’
“알샤인의 거룩한 빛은, 어디에도 존재하니.”
폴룩스가 짧은 구절을 외웠다. 알샤인 교단의 진리가 적힌 설법서에 있는 말이다. 단순한 언어였지만, 폴룩스가 외우자 그 자체로 거대한 에너지가 되었다.
빛 덩어리가 양 손에 모였다. 그 빛은 카르안의 보물 1호, 4미터 대형 골렘을 박살날 기세로 번쩍이기 시작했다. 폴룩스가 자신있게 외쳤다.
“사라져라!”
“네놈이나 사라져라.”
폴룩스의 등 뒤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카르안의 것이었다. 그는 피투성이가 된 채로, 폴룩스 뒤에 서 있었다.
‘저놈이 언제!’
방금 전까지만 해도 쓰러져 있지 않았는가. 대체 무슨 수로 일어난 걸까. 몸이 완전히 피떡이 되어 있었다. 설령 움직인다고 해도, 한참 시간이 걸릴 터.
폴룩스가 당황하는 것은 당연했다. 카르안은 정말로 몸을 움직일 힘이 없었으니까. 충격 때문에 전신이 벌벌 떨리는데, 일어서기도 힘들 정도였다.
‘전투회로를 박아놓길 잘했지.’
움직임의 비결은 미리 준비해둔 전투회로였다. 폴룩스가 골렘과 싸우느라 정신이 없는 사이, 카르안은 반쯤 도박을 하는 심정으로 전투회로에 마나를 흘려 넣었다. 그러자 마나를 머금은 전투회로는, 기세좋게 회전을 시작했다.
마치 제 3자가 몸을 조종하는 것처럼, 부서진 몸이 강제적으로 움직인다. 시야에는 단 한명, 골렘을 부수는데 열중하는 폴룩스가 들어왔다.
저놈의 숨통을 끊는다.
카르안의 전투회로는, 최대한 기척을 죽이고 효율적인 걸음으로 폴룩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당황하는 교주에게 주먹을 뻗는다.
퍼억!
방어막은 골렘의 공격에 파괴되었다. 남은 것은 연약한 노인의 육체뿐. 카르안의 무서운 힘은 그런 늙은이의 몸을 박살내기에 충분하다.
“우욱!”
폴룩스 마법이 파괴되고, 몸은 공중으로 떠오른다. 카르안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폴룩스가 날아오른 만큼 점프한 뒤, 그대로 따라붙어 교주의 머리를 잡았다.
추가타는 니킥. 첫 번째 주먹에 얼이 빠졌는지 폴룩스는 반격도 하지 못했다. 그저 멍하니 안면에 정타를 허용했다.
카르안의 무릎이 폴룩스의 입술과 키스했다. 교주는 그 강렬한 충격에 목이 꺾이고, 이가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박살난 이가 밖으로 튀어나왔다.
‘뭐 이렇게 힘이 좋아?’
실컷 두들겨 맞으면서, 폴룩스의 머리를 스친 한마디였다. 도저히 평범한 사람의 근력이 아니었다. 이정도면 거의 기사, 어쩌면 그 이상이라고 봐도 될 정도였다.
거기다가 주먹질도 보통이 아니었다. 숙련된 듯한 솜씨. 카르안은 최고의 효율로 폴룩스를 박살내 버렸다. 물 흐르듯 부드럽게 교주의 머리통을 부숴버렸다.
그 뒤, 카르안은 중심을 잡고 안정적으로 착지했다. 반면 폴룩스는 낙법이고 뭐고 그냥 푹 떨어져 버렸다.
“아파 죽겠네.”
카르안이 중얼거렸다. 부상이 심각한데, 과격하게 몸을 움직이는 바람에 상처가 벌어지고 근육이 찢어졌다.
그래도 몸은 움직인다. 최소한 눈앞에서 꿈틀거리는 폴룩스를 죽일 힘은 있다. 카르안은 쓰러진 노인을 향해 걸어갔다. 그때.
“여기다!”
문이 벌컥 열리며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술집에서 일어난 소란을 보고, 폴룩스가 풀어둔 기사들이 도착한 것이다. 카르안은 그들을 비웃었다.
“늦었다.”
카르안이 수도를 펴서 폴룩스의 목을 찍으려했다. 카르안이 살인을 즐겨하는 정신병자는 아니지만, 자신을 죽이려 한 놈을 살려줄 만큼 자비롭지도 않았다.
파악!
“윽!”
손이 찢어지는 통증. 카르안은 황급히 손을 땠다. 그의 손등에는 화살 하나가 박혀 있었다. 성기사 한명이 활을 쏜 것이다. 화살은 카르안의 손등에 명중했다.
“교주님을 구해라!”
다른 성기사들도 달려든다. 카르안은 이를 악물고 물러났다. 도망쳐야 했다. 저 교주 놈 하나를 죽이자고, 칼과 화살에 푹푹 찔리기는 싫었으니까.
아직 2미터 크기의 중형 골렘 2기가 무사하고, 대형 골렘도 조금 손상된 것밖에 없다. 하지만 싸움은 무리. 기사들이 개미떼처럼 몰려들고 있고, 무엇보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품 안에서 텔레포트 스크롤 한 장이 나왔다. 카르안이 러슬라이같은 경호원과 함께 다닌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보험은 들어 놨다. 그 보험이 탈출용 텔레포트 스크롤. 카르안은 망설임 없이 스크롤을 찢었다.
카르안의 몸이 밝게 빛났다. 마력에 휩싸여서 이동하기 직전. 그와 뮬리펜의 눈이 마주쳤다.
“뮬리펜 성녀님.”
카르안은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뮬리펜이 이 손을 잡으면, 둘은 함께 이동한다.
“죄송해요.”
뮬리펜은 손을 잡는 대신 고개를 저었다. 그녀에게는 할 일이 있었다. 교단을 위한 희생. 카르안을 따라갈 수 없었다.
'아.'
뮬리펜의 심장 한가운데가 욱신거렸다. 카르안이 손을 뻗는 순간, 그녀는 그 손을 잡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그와 함께라면, 오늘처럼 즐거운 일만 가득할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즐거운 일만을 하고 살 수는 없다. 그것이 성녀가 가진 의무, 책임이었다. 벗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것들.
가난한 평민의 딸로 태어났지만, 성녀가 되어 과분할 정도로 많은 것을 받아왔다.
‘그냥, 받은 것을 돌려주는 것뿐이야.’
희생의 이유라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세상살이에 능숙한 자들이라면 살 길을 찾을 것이다. 처음부터 희생을 하려 나서지도 않을 것이고, 설령 운 없게 걸렸다 하더라도 살길을 찾아내겠지.
하지만 뮬리펜은 그럴 수 없었다. 도저히, 그렇게 살 수는 없었다.
“그런가.”
카르안은 뮬리펜의 표정을 본 순간, 그녀가 따라오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리고 뭔가 상당히 슬픈 결심을 했다는 것도.
그의 몸이 빛과 함께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카르안은 미리 준비된 곳으로 텔레포트 되었다.
“교주님! 괜찮으십니까!”
카르안이 사라지자, 성기사들이 쓰러진 폴룩스를 둘러쌌다. 교주가 복날의 개마냥 두들겨 맞았다. 전대 미문의 사건. 성기사들이 무릎을 꿇고 교주를 살폈다.
한눈에 봐도 교주의 상태는 심각했다. 노인의 몸으로, 카르안의 주먹은 견딜수 있는게 아니었다.
안면이 완전히 함몰되었고, 처음 주먹이 파고든 몸통도 심각했다. 온 몸의 뼈가 조각나 버렸다.
그들은 뮬리펜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서 치료하라는 뜻이다. 성기사들도 신성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지만, 성녀나 사제에 비하면 그 깊이가 얇았다. 거기에 그나마 쓸 수 있는 마법들도 대부분 공격적인 것들.
여기서 치유 마법에 능한 사람은 뮬리펜밖에 없었다. 그녀는 힘없는 걸음으로 교주에게 걸어갔다.
“크훅! 괜찮아.......”
폴룩스가 힘겹게 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그러더니 그의 몸이 불타기 시작했다.
“으윽?”
성기사들이 한걸음 물러났다. 뜬금없이 교주의 몸에 불이 붙었다. 난생 처음 보는 광경에 성기사들이 우왕좌왕했다.
적에게 공격받은 것도 아니고, 갑자기 자연발화를 하니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으아아.......”
교주의 상처입은 몸이 불에 타들어간다. 마치 화장을 하는 것 같다. 성기사 한명이 급한 마음에 주변에 있던 물병을 깨고 내용물을 부었다.
하지만 불은 더욱 거세게 타오를 뿐이었다. 그 기사가 물병이라고 착각한 것은 물병이 아닌 보드카였으니까. 얼빠진 기사의 도움으로, 교주는 더욱 빠르게 타올랐다.
얼마 안가 폴룩스는 재만 남긴 체 사라졌다. 교주의 최후치고는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뮬리펜 성녀!”
기사들이 뮬리펜에게 눈을 부라렸다. 교주가 죽었다. 그리고 그 책임은 늦게 도착한 성기사들에게도 있었다.
잘못하면 전부 교단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 그게 아니라도, 최소한 출셋길은 막혔다고 보면 된다. 눈앞에서 교주를 지키지 못한 것은, 그 자체로도 불경죄였으니까.
그러니까 그 책임을 떠넘길 사람이 필요했다. 사실 교주가 멋대로 타 죽은 거고, 성기사나 뮬리펜이나 책임질 필요는 없지만. 현실은 다른 법이다. 교주가 죽었는데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했다.
“대체 위험인물과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거요!”
“성녀. 당신 때문에 교주님이 이렇게 된 것 아닌가!”
“빠르게 치료를 했으면 교주님이 돌아가실 일도 없었지.”
성기사들이 고래고래 소리쳤다. 직급만 보면 성녀가 성기사들 한참 위에 있다. 상식적으로 성기사들이 성녀에게 함부로 소리칠 수는 없었다.
다만 뮬리펜은 조금 특수한 경우다.
어차피 얼마 안가 사라질 사람이니까. 후환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아도 좋았다. 게다가 뮬리펜은 사람 자체가 순하다 보니, 교단 내에서 좀 만만하게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좋게 대해준다고, 만만하다고 생각하며 그사람을 무시한다. 보기 좋은 꼴은 아니었다. 뮬리펜의 가슴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뮬리펜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발걸음을 옮겼다. 재가 되버린 교주가 아니라, 쓰러진 기사들을 향해서.
“지, 지금 우리를 무시하는 건가!”
처음에 카르안의 골렘 때문에 부상을 당한 기사들이다. 뮬리펜은 교주는 버려두고 다친 성기사들을 치료한다. 물론 그들도 치료는 받아야 하지만, 지금은 교주가 죽은 상황 아닌가. 뮬리펜이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걱정 마세요. 교주님은 살아 계시니까요.”
“뭐?”
기사들이 어이없다는 눈으로 뮬리펜을 쳐다봤다. 방금 불타서 재가 되지 않았는가. 하지만 뮬리펜은 그들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으며, 치유 마법으로 기사들을 회복시켰다.
그런 혼란 한 가운데, 폴룩스가 타고 남은 재에서 빛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죽은 불씨가 되살아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