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션으로 무한성장 (68)화 (68/124)

<-- 골렘 깎는 노인 -->

“자. 여기로 오시게.”

“과연 여기가 안전할까요.”

뮬리펜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일단 눈에 띄는 행동을 줄이기는 했지만, 그래봐야 여기는 평범한 민가. 비밀기지 같은게 아니었다. 알샤인 교단에서 마음먹고 추적한다면 들키는 것은 시간문제.

치프는 당당하게 말했다.

“걱정 마. 내 집을 아는 사람은 얼마 없으니까. 나는 친구가 없거든!”

좁디좁은 인간관계가 도움이 되는 순간이었다. 카르안은 그 사실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나, 불행으로 생각해야 하나 고민하며 문을 열었다.

세 사람이 집 안으로 들어갔다. 전처럼 화장한 여자가 튀어나온다던가 하는 일은 없었다. 오직 어질러진 방이 그들을 반길 뿐.

“누추한 곳이지만, 편히 앉게.”

노인이 식탁 앞에 앉더니, 음식들을 풀어놓았다. 금방 도착했기에 아직 음식은 따끈하다. 뮬리펜도 치프가 권하는 자리에 엉덩이를 붙였다. 카르안이 눈썹을 좁혔다.

“저는 어디에 앉아요?”

“그냥 바닥에 앉아.”

의자는 2개. 망설일 것도 없이 치프는 뮬리펜에게 자리를 권했다. 카르안이 한숨을 쉬었다.

“제가 강아지도 아니고. 맨땅에서 밥을 먹습니까.”

“그럼 굶던가.”

치프가 낄낄거렸다. 카르안은 투덜거리며 적당한 바위 하나를 들고 왔다. 노인이 스톤 골렘을 만들 때 쓰던 것이다. 그는 그 바위를 의자처럼 식탁 앞에 두고 자리를 잡았다.

“술집에서도 그렇고, 정말 힘이 좋군. 비결이 뭔가?”

“어렸을 때 한약을 잘못 먹어서.”

“한약?”

어리둥절하는 노인을 뒤로하고, 카르안은 뮬리펜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연금술사의 방이 처음인지, 신기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러면 뮬리펜 성녀.”

“예, 예?”

그녀가 화들짝 놀랐다. 갑자기 부르자 당황한 것일까. 카르안은 식탁의 요리를 그릇으로 옮기며 말했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2.

“뮬리펜 성녀가 도망쳤다고?”

“예. 교주님.”

흰색의 법의를 입은 성녀. 그녀는 교주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뮬리펜이 도망갔다. 그 말을 들은 교주가 성녀를 내려 봤다.

“도망칠 아이는 아닐 텐데. 잠깐 바람이나 쐬러 간 거겠지.”

“하지만 교주님. 뮬리펜 성녀는 괴한들과 저희 교단 병사들을 위협하고........”

“그래? 나는 병사들을 보낸 기억이 없는데.”

교주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작은 체구지만, 그 위압감이 상당했다. 성녀가 말을 더듬었다.

"그, 제, 제 판단이었습니다. 그 아이가 없으면 일에 차질이 생기니까....... 저는 알샤인님을 위해!“

“아니, 성녀 레이츠를 위해서겠지.”

그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아무리 신이란 놈이 멍청하기 짝이 없지만, 그래도 자네는 성녀 아닌가. 신의 이름을 함부로 팔지는 말게.”

터무니없이 불경스러운 말. 하지만 그 앞에 있는 성녀, 레이츠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감히 교주에게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성녀가 무슨 생각을 하든, 그는 여유롭게 뒷짐을 지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창백한 달이 하늘 한가운데 박혀있었다.

교주에게 보고하러온 레이츠는 속이 탔다. 당장이라도 뮬리펜, 그녀를 잡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교주는 천하태평. 당장 기사단을 풀어서 주변을 수색해도 모자를 판에, 왜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가. 그가 느긋하게 말했다.

“앞으로 가혹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야. 잠깐의 휴가정도는 내 줄수 있지.”

“........”

성녀 레이츠는 이를 악물었다. 자신이 너무 성급했다. 뮬리펜은 잠깐 산책을 나간다고 했고, 교주는 별 말 없이 허락했다.

레이츠는 그녀를 믿을 수 없었다. 혹시라도 도망칠 수 있지 않은가. 레이츠는 사병들을 이용했다. 뮬리펜을 교단 안으로 끌고 오도록.

‘그게 독이 된 것일까.’

대체 무슨 수를 썼는지, 뮬리펜은 흑룡회의 간부를 꾀어냈다. 그것도 교단에서 특급 위험인물로 지정된 카르안을 말이다.

그런 거물을 상대로 일반 병사 따위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차라리 가만히 기다리는 편이 좋았다. 뮬리펜은 정말로 하룻밤쯤 일탈을 즐기러 간 것일 수도 있고, 오히려 그런 뮬리펜을 자극해서 도망치게 만든 건 자신의 행동일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불안한 상상이 자꾸 떠올랐다.

‘그러면 안 돼. 적어도 이번만큼은.’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레이츠의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손끝도 살짝 떨리고 있다. 절대로, 절대로 뮬리펜을 놓쳐서는 안 된다. 만약에 그녀가 도망치고, 교단에 돌아오지 않는다면.

죽는 것은 레이츠가 되니까.

“긴장하고 있군.”

“아?”

어느새 교주가 성녀 앞에 섰다. 그녀는 교주를 올려다보았다. 교주는 철들지 못한 딸을 보는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 보고 있었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뻔히 보이는구나.”

“읏.”

교주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그는 다시 창문 쪽으로 걸어갔다.

“설령, 뮬리펜 성녀가 도망친다 하더라도 문제가 될 건 없지. ‘순교’는 무엇보다 영광스러운 일 아닌가.”

“마, 맞습니다.”

고개를 깊게 숙인 레이츠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순교. 그게 문제였다. 지금 하는 일에는 막대한 신성력을 가진, ‘순교자’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순교자로 처음 지목된 것은 레이츠.

당황하는 그녀에게 손을 뻗은 것은 뮬리펜이었다. 뮬리펜은 레이츠 대신 희생을 자처했다.

‘믿을 수가 없어.’

신성력과 신앙심이 비례하는 것은 아니었다. 신성력은 말 그래도 신의 힘을 세상에 구현시키는 능력. 일종의 그릇 비슷한 것이다. 타고나는 게 굉장히 중요했고, 굳이 섬기는 신을 믿지 않더라도 별 지장은 없었다.

결과적으로 레이츠에게 신앙심 따위는 쥐뿔만큼도 없다. 그저 안락한 삶. 귀족 같은 삶을 살 수 있기에 알샤인 교단에 들어왔다. 그래서 관심도 없는 알샤인을 섬기는 척 하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런데 갑자기 희생양으로 뽑힌 것이다. 교주가 말한, 알샤인의 뜻이었기에 거절할 수도 없었다. 레이츠는 그때까지만 해도 거의 기절한 뻔했다. 길가다가 갑자기 국왕에게 사형선고를 받은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수는 없는 것이다. 순교 따위는 관심도 없다. 그런 그녀에게 손을 뻗은 것은 뮬리펜.

그녀는 순진하게 웃으며 희생을 자처했다. 처음에는 잘못 들은 것인가, 충격 때문에 환각이 보이는 것인가 싶었다. 하지만 뮬리펜은 현실에 있었고, 그녀를 구해준 수호천사였다.

그때는 눈물이 흐르도록 고마웠고, 또한 기뻤다. 살 수 있다. 살 수 있다! 기적과도 같이 , 살 수 있었다!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춤을 추는 것처럼 행복했다. 그때 잠깐은 말이다.

‘아직도 나는 위험해.’

비록 뮬리펜이 희생된다고 했지만, 그녀는 아직 후보 1순위. 혹시나 뮬리펜이 잘못되거나, 도망치기라도 한다면 그 영광스러운 순교자의 관은 그녀의 것이 된다.

그래서 조금 성급하게 움직였다.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굳이 뮬리펜이 희생을 자처하고 도망갈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이성보다는 다른 것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동물이다. 특히나 목숨의 위기가 다가왔을 때는. 사람과 짐승의 경계는 옅어지기 마련.

그녀는 섣부르게 뮬리펜을 붙잡으려 했고, 지금 그 값을 톡톡히 치르는 중이다. 교주가 저렇게 여유로울 수 있는 것도, 어차피 그 일을 대신할 성직자들은 제법 있었으니까.

교주가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레이츠 성녀. 네가 희생될 일은 없으니까 걱정을 접어두게. 그것보다.”

교주는 말을 돌렸다. 순교 만큼이나 중요한 일이 있다.

“특이한 연구를 한다는 골렘술사가 말이야. 그 자는 찾았나?”

“이, 이곳에 있다는 것은 확인했지만, 정확한 위치는 찾지 못했습니다. 세상과 인연을 끊고 사는 것 같아서 그런지, 마을 사람들도 그자의 집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다만.”

레이츠가 정신을 차리고 빠르게 말했다.

“오늘 낮쯤에, 연금술사 정기모임에서 독특한 골렘을 봤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골렘이 인간처럼 움직였다고. 그것을 봤을 때, 아마 저희가 찾는 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 작은 단서도 무시하지 말게. 그 연금술사를 꼭 찾아야 하니까. 우리 일에 큰 도움을 줄 사람이야.”

골렘의 전투 시스템 연구. 그리고 그 능력을 몸에 새겨 넣는 기술. 다른 곳에는 쓸모가 없지만, 알샤인 교단에는 굉장히 절실한 기술이다.

그는 자신의 기술을 살 사람을 찾고 있었지만, 군대도 마법사 길드도 거절했다. 쓸모없는 기술이라면서. 그 기술을 우연히 듣게 된 교주는 얼른 그 연금술사를 찾았다. 아직까지 얼굴도 보지 못했지만. 교주는 여유가 있었다.

“아직 찾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는 않았으니까. 금방 발견할 수 있겠지.”

어차피 시간은 많다. 지금 교단이 타격을 받은 이상, 몸을 움츠릴 때. 서둘러 봐야 얻을게 없다. 몸을 사리면서, 다시 기회를 노린다. 한동안은 시간에 쫒길 필요가 없다. 그가 레이츠에게 말했다.

“알겠네. 이만 물러가 보게나.”

“저, 교주님!”

레이츠가 교주를 불렀다. 조금은 무례한 일이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다. 교주는 그녀에게 눈동자를 향했다.

레이츠는 웃음을 지으려 했다. 하지만 긴장 탓일까, 입이 기묘하게 뒤틀릴 뿐이었다. 그녀가 절박한 목소리로 말했다.

“기사단에 명령을 내려, 뮬리펜 성녀를 찾는 일을 허락해 주십시오! 부디........”

“추하군.”

교주가 싸늘하게 말했다. 푸근한 표정이 사라졌다. 지금까지의 느긋한 분위기와 함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너무 추하구나. 레이츠. 뮬리펜은 너를 위해 목숨을 희생했다. 그런데 너는? 지금 너는 뭘 하고 있지?”

차가운 목소리. 레이츠는 견디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무서웠다. 몸이 떨린다. 불안은 투명한 액체가 되어, 눈가에서 뚝뚝 떨어졌다.

죽고 싶지 않았다.

“교주님.......”

“같잖은 불안감에 휩싸여서, 그녀의 남은 시간마저 빼앗으려 하고 있지 않은가. 너는 부끄러움이라는 게 뭔지는 아느냐?”

“흐, 흐흑!”

눈물을 흘리는 레이츠. 교주는 주변을 둘러봤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직 문 밖에서 경호하는 기사들 뿐. 교주는 레이츠를 안쓰러운 눈으로 내려 봤다.

성녀답지도 않은 모습. 하지만 그렇기에 인간다운 모습이었다. 교주는 분위기를 살짝 풀며 그녀에게 말했다.

“하아, 되었다.”

그는 깊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만 일어나게. 만약 ‘의식의 날’이 되어도 뮬리펜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기사단을 전부 동원해서라도 찾아낼 것이니. 네가 순교할 일은 없을 거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레이츠는 말을 흐렸다. 정말 꼴사납고 민망한 모습. 그래도 좋았다. 목숨을 건지는 데는 성공 했으니까.

그녀는 세계를 위해,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는 영웅들에 그다지 공감할 수가 없었다. 세계를 구하고, 아무리 많은 사람들을 구하면 뭐하겠는가. 정작 자기가 죽는다면, 그 세계와 생명들은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인데.

물론 동경하기도 했다. 그 희생이라는 단어를. 전장에서의 용감한 돌격.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죽음도 불사하는 뜨거운 용기.

모두 멋지고 아름다운 것이었다. 그러니까 작은 극장 안에서, 연극 안에서는 말이다.

‘현실은.......달라.’

현실은 그것보다, 조금 더 무겁고, 조금 더 우울했다.

연극은 사랑에 몸을 불태운 용사도, 그를 위해 희생한 공주도 마지막에 웃으며 관객에게 손을 흔든다. 그리고 화려한 박수를 받으며 퇴장한다.

반면 현실은, 칼에 한번 찔리기만 해도, 눈이 뒤집어지는 고통이 밀려온다. 그런 희생 따위는 전부 증발시킬 정도로 강한 격통이. 마치 도수 높은 술처럼, 고귀한 이상 따위는 순식간에 하늘로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그녀는 다시 한 번 교주에게 고개를 숙였다. 오늘도 살 수 있었다. 내일도 살아남을 것이다. 그렇게 끝까지 그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 것이다........

교주의 명령에 레이츠는 문 밖으로 나왔다. 붉게 달아오른 눈가를 숨기며, 그녀는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뮬리펜.”

그녀가 중얼거렸다. 자신과 정 반대편에 서 있는 소녀. 대체 현실 감각이라는 게 있기는 한 것일까. 레이츠는 자신을 위해 살아가지만, 뮬리펜은 타인을 위해 살아가는것처럼 보였다.

너무나도 쉽게 자신을 희생했다. 떨고 있는 레이츠의 어깨를 살짝 잡아주면서. 죽음이라는 것을 한없이 가볍게 받아드린다.

세상의 모든 욕망을 버린 현자 같기도 하고, 그저 꿈속에 빠진 어린아이 같기도 했다.

대체 뮬리펜이 서 있는 방향은 둘중 어느 쪽일까. 레이츠는 복잡한 생각을 하며, 숙소로 발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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