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렘 깎는 노인 -->
병사들은 뮬리펜을 찾기 위해 술집을 샅샅이 뒤져댈........필요도 없었다. 이미 그녀가 너무 눈에 띄었기 때문. 병사들은 곧장 뮬리펜을 향해 걸어갔다.
“뮬리펜 성녀. 레이츠 성녀님의 명령입니다. 당장 교단으로 복귀하십시오.”
“제가 그분의 명령을 들어야 할 이유가 있나요?”
뮬리펜이 병사들을 쏘아보며 말했다. 하지만 병사들은 그녀의 말을 듣지도 않았다.
‘일개 병사가 성녀를 무시하다니.’
카르안이 속으로 혀를 찼다. 저 병사가 뭐하는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철저하게 뮬리펜을 무시하고 있었다.
뮬리펜을 성녀라고 부른다. 존칭을 붙이지 않은채로. 반면 레이츠라는 성녀에게는 성녀님이라는 존칭을 붙여서 부른다. 심지어 그 레이츠라는 성녀는 이곳에 있지도 않은데 말이다.
압존법도 아니다. 성녀라면 모두 같은 계급. 귀족처럼 백작, 후작 등으로 나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카르안은 나서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쓸데없는 오지랖은 그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었으니까. 지금 그가 알샤인 교단 내부 사정을 아는 것도 아니었다.
“물러가 주세요.”
“뮬리펜 성녀. 협조적으로 나오는 게 좋지 않겠소?”
“당신 같은 사람이 이런 천한 술집에 오면, 교단의 품위가 떨어진다는 말이오.”
병사들의 고압적인 말투에, 술집 안에 있던 사람들이 발끈했다. 졸지에 천한 술집의 손님이 되어버렸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잠시, 병사들이 주변을 매섭게 노려보자 전부 수그러들었다. 창과 칼 앞에서는 분노가 자동으로 조절되는 법이었다.
“그냥 끌고 갑시다.”
병사 한명이 아무렇게나 말했다. 이제는 아예 기본적인 예의조차 지키지 않는다. 그 말을 한 병사가 뮬리펜의 가느다란 어깨에 손을 뻗었다.
술집 사람들은 주먹만 움켜쥘 뿐. 섣불리 다가가지 못했다. 무장한 병사들에게 대들 정도로 대담한 사람은 없었으니까. 그녀에게 다가가려던 남자들도 전부 꼬리를 말고 물러섰다.
단 한사람을 제외하고.
누군가 병사의 손목을 꽉 쥐었다. 무장한 병사들은 감히 그들을 가로막는 사람을 노려보았다. 한 노인이 병사를 가로막고 있다.
노년의 로맨티스트, 연금술사 치프. 그가 병사를 확 밀쳐내었다.
“어허. 아름다운 레이디에게 함부로 손을 대는 게 아니야.”
“넌 또 뭐야?”
“이 영감탱이가. 제명에 죽고 싶은 생각이 없나보지?”
병사들이 위협적으로 몸을 들이대었다. 하지만 치프는 겁먹기는커녕 오히려 성녀 앞으로 나섰다.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까불면 다치는 수가 있단다.”
치프의 여유로운 태도에 병사들은 조금 당황했다. 무장한 병사들을 보고도 전혀 놀라지 않는다. 그도 골렘을 사용하는 연금술사. 일반 병사들이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약하지는 않았으니까.
범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병사들은 한발자국 물러났다. 치프가 대담하게 웃었다.
“마침 연구하고 싶은 게 있었는데. 너희들이 그 실험을 도와줘야겠어.”
치프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가 연구한 골렘의 전투시스템. 그 전투 정보는 이미 치프의 척수에 새겨져 있었다. 스스로 삽입한 것. 이론상으로는 실전에서도 사용이 가능하다.
그가 즐거운 듯 웃고 있자, 병사 한명이 소리쳤다.
“설마 연금술사인가.”
“그러고 보니 지금 정기모임 기간이지.”
치프의 정체를 눈치 챈 병사들. 오러도 사용할 수 없는 병사들에게 연금술사는 공포, 그 자체였다.
신기한 힘을 자유자제로 부리는 괴물들. 그들의 눈에 연금술사들은 그렇게 비치리라. 뮬리펜이 갑자기 등장한 노인에게 말했다.
“누, 누구세요?”
“내 정체는 묻지 마시오. 그저 불의를 참지 못하는.........”
“에라이!”
그때였다. 병사 한명이 치프를 냅다 걷어찼다. 치프는 한눈팔다가 억 소리를 내며 고꾸라졌고, 그 사이 병사들은 몰려들어 노인을 발로 밟았다.
“이 비겁한 놈들아! 적어도 말은 하고 들어와야........”
“지랄하네!”
온갖 포스란 포스는 다 뿜어대던 치프가 맥없이 쓰러졌다. 그는 쥐며느리마냥 몸을 돌돌 말았다. 병사들은 그를 가차 없이 두들겨 팼다.
그런 병사들을 향해. 한 남자가 걸어왔다. 카르안. 그가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
“이제 그만들 좀 하지.”
“자꾸 시원찮은 놈들이 몰려드는군!”
병사들은 넝마 짝이 된 노인을 두고, 카르안을 노려보았다. 카르안은 그런 그들이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늙은 사람 한명을 우르르 몰려가서 패는 꼴이라니. 부끄럽지도 않나.”
“흐흐, 너도 이 꼴이 되고 싶나 본데.”
그때 병사 한명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카르안이 입은 옷을 유심히 살펴봤다. 그가 잘 아는 조직의 상징이 그려져 있었다.
“잠깐. 저 남자는!”
흑룡회를 알아본 병사, 그가 말릴 세도 없이 병사 두 명이 달려들었다. 먼저 카르안에게 주먹을 뻗은 병사. 그는 카르안에게 턱을 맞고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두 번째 병사가 카르안의 빈틈을 향해 날아 차기를 했다. 하지만 카르안은 그의 발목을 공중에서 잡아버렸다.
“세상에.”
한손으로 무장한 병사를 들고 있다. 그의 악력 덕분에, 잡힌 병사는 비명을 질렀다. 카르안은 그 병사를 다른 병사들 쪽으로 집어던져 버렸다.
“크윽!”
그러자 병사들이 우르르 무너졌다. 예상 이상의 힘. 뭔가 잘못된 것을 눈치 챘는지, 나머지 병사들이 검을 뽑았다. 카르안이 경고했다.
“무기를 뽑아봐야 좋을 게 없을 텐데.”
“놈은 맨손이다! 전부 덤비면 별수 없겠지.”
병사들은 분기탱천해서 전부 달려들었다. 비록 카르안이 보여준 괴력이 무시무시하기는 했지만, 그래봐야 맨손이다. 파괴력이라는 점에서, 맨손과 검은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찔리면 바로 치명상이고, 스쳐도 큰 출혈을 만든다. 맨손으로 강하다고 해봐야, 서로 한방씩만 교환해도 검을 든 쪽이 이득. 하물며 그들은 수도 더 많다. 그들은 승리를 확신했다.
“나도 무기가 있는데 말이야.”
카르안의 앞에 마법진이 펼쳐졌다. 그리고 거대한 골렘이 몸을 드러내었다. 병사들은 그 괴물을 보자마자 기겁하며 물러났다.
“허억!”
“저놈도 연금술사였나!”
카르안과 병사들 사이에 나타난 골렘. 술집에 있던 사람들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겁 많은 몇 명의 사람들은 술집 밖으로 도망쳤고, 호기심과 패기가 넘치는 사람들은 술집 안에 남아 골렘을 구경했다.
처음 카르안의 문양을 확인한 병사, 그가 소리쳤다.
“저놈은 흑룡회 간부라고!”
병사들은 골렘이 다가올 때마다 뒷걸음질 칠 뿐이었다. 거대한 갑옷이 쿵쿵 거리며 다가오는데, 도망치지 않는 것만 해도 대단한 것이다. 병사가 소리쳤다.
“잠깐. 이건 오해요. 오해.”
“오해는 얼어 죽을.”
그렇게 말하면서도 카르안은 골렘을 멈췄다. 그는 쓰러진 치프를 일으켜 세워 주었다. 노인은 카르안을 보고 기침을 했다.
“왜 도와주러 온 거냐.”
“죽기 전에 연구한 것은 알려주고 죽어야죠.”
“매정한 놈.”
서류 뭉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치프에게 기본적인 설명은 들어야 하니까. 카르안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카르안씨!”
뮬리펜이 잠깐 그를 반갑게 불렀다. 그러고 아차 싶었는지 입을 다물어 버렸다.
“성녀님은 화내는 법부터 배워야할 것 같습니다.”
너무 착하고 만만하니까, 저렇게 병사들까지 기어오르지 않는가. 착한 것도 좋지만, 병사들을 통제할 최소한의 카리스마는 있어야 했다. 병사 한명이 말했다.
“당신이 흑룡회의 간부인지는 모르겠는데, 끼어봐야 좋을 게 없을 거요.”
“그렇다고 잃을것도 없지.”
카르안이 중얼거렸다. 여기서 난동 피워봐야 알샤인 교단에게 안 좋은 이미지만 생긴다.
하지만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카르안은 알샤인 교단에서 위험인물 1순위니까.
지금 여기 나온 병사들처럼, 말단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무르짐이 강신한 연금술사.
그에게 강신한 무르짐에게, 알샤인 교단의 정예가 전멸한 것은 기밀중의 기밀이다. 하지만 그를 주의하라는 명령은 기사나 사제급 이상에게 모두 떨어졌다.
결국 여기서 난리 쳐도, 그는 잃을게 없다. 카르안이 알샤인 교단이라는 이름에도 겁먹지 않자, 병사는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저 골렘의 거대한 쇠주먹에 맞아 죽을 수도 있다. 덜컥 겁이 났다.
“카르안씨. 그만해 주세요.”
뮬리펜이 그의 팔을 붙잡았다. 그녀가 절박한 얼굴로 말했다.
“제가 가면 되니까요. 카르안씨가 이런 일을 할 필요는 없어요.”
카르안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뭔가 짜증이 난 듯한 표정. 뮬리펜의 저런 태도가, 카르안의 신경을 건드렸다.
지나치게 남에게 헌신적이다. 남에게 빚을 지는 것을 참지 못한다. 설령 그것이 자신과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고 해도 말이다.
“성녀님 사정은 제가 알바 아니고. 저는 그냥 저놈들이 마음에 안 드는 거니까.”
카르안이 손짓하자, 마법진 2개가 더 생겨났다. 그리고 그 안에서 아이언 골렘 2기가 더 튀어나왔다. 병사들의 눈알도 튀어나올 것 같았다.
한기만으로도 죽겠는데 갑자기 2기가 더 나오다니. 카르안이 신사적으로 말했다.
“빨리 꺼지는 게 좋을 거다.”
“하지만 명령을 거스를 수는.......”
“그러면 명령에 따르고 맞아 죽던가.”
카르안의 으름장에 모두 기겁했다. 악명 높은 흑룡회의 간부가, 여기서 농담을 할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그들은 다친 동료를 챙겨 엉성한 걸음걸이로 도망쳤다.
“이제야 좀 조용해졌군.”
카르안이 뮬리펜을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카르안을 멍한 눈으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나저나 성녀님께서는 여기에 웬일로 오셨습니까.”
“그냥.........”
뮬리펜이 작게 중얼거렸다.
“뭐, 가끔 일탈도 나쁘지는 않죠.”
카르안이 한숨을 쉬었다. 그냥 철이 덜든 성녀님의 가출인가. 하지만 조금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그녀는 고위 성직자다. 그러니까 이런 술집좀 들린다고 누가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분명 그녀와 어울리지는 않는 곳이지만, 병사들까지 보내서 교단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조금 ‘오버’였다.
“아무튼 저희는 가보겠습니다.”
“쿨럭!”
쓰러져있던 치프. 그가 기침을 하며 일어났다.
“이대로 가면 또 그놈들이 덮쳐올 거야.”
“괜찮아요. 이제 교단으로 돌아갈 테니까.”
뮬리펜이 쓸쓸하게 말했다. 잠깐의 방황은 끝났다. 이제 교단으로 돌아갈 때다. 그녀가 밖에 있어봐야, 관계없는 사람들만 피해가 간다.
“도와주셔서 고마웠어요.”
“자, 잠깐.”
치프가 당황해서 그녀를 붙잡았다.
“괜찮다면 우리 집에 숨어도 되네.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어.”
“네에?”
뮬리펜이 고개를 저었다. 확실히, 교단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진심으로. 단순한 기분 탓 같은 게 아니다, 그것보다 조금 더 절박한 이유였다.
하지만 처음보는 노인의 집에 숨을만큼은 아니었다. 그녀는 순진했지만, 적어도 바보는 아니었으니까.
“어르신. 지금 그게 무슨 주책이에요.”
카르안도 한마디 했다. 하지만 치프는 계속해서 말했다.
“아가씨가 기억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과거에 아가씨에게 큰 빚을 진 적이 있어. 그러니까 뭐든 도와주고 싶네.”
“빚?”
“........큰 빚이지.”
치프가 조금 씁쓸한 듯이 말했다. 평소와 다른 분위기. 카르안이 성녀를 향해 말했다.
“대체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다만. 교단 밖에 나와야 할 이유가 있어요? 가야할 곳이 있다던가.”
“아니요. 그냥 교단 밖이면 어디든....... 상관없어요. 생각을 정리하고 싶으니까.”
생각이야 교단 안에서 정리해도 되지 않나. 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녀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겠지. 카르안은 더 토 달지 않았다.
“그러면 뭐, 세명이서 영감님 집으로 갑시다.”
“엥? 너는 또 왜 오냐.”
“변태 할아범이 뮬리펜성녀님께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사람을 뭘로 보고!”
뮬리펜도 잠시 망설였지만, 곧 수락했다. 저 노인은 잘 모르겠지만, 나쁜 마음을 품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카르안이 있으니까.
카르안. 그를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자신에게 저질스러운 짓을 할 사람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믿음직스럽기까지 했다. 지금까지 카르안을 관찰한 결과였다.
카르안이 말했다.
“결정했으면 빨리 움직이죠. 오래 있어봐야 좋을 게 없으니까.”
“잠깐, 저녁은?”
“그냥 싸달라고 하세요.”
“그러면 고기 맛 버리는데.”
“영감님이 그렇게 미식가인줄은 미처 몰랐군요.”
카르안과 뮬리펜, 치프는 저녁거리를 챙긴 체 집으로 향했다. 뮬리펜은 앞서 설어가는 카르안을 보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가슴을 투명한 바위가 짓누르는 듯 답답했다. 아무리 숨을 내뱉어도, 도저히 그 무게는 사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