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션으로 무한성장 (66)화 (66/124)

<-- 골렘 깎는 노인 -->

“굉장한 발견이군요.”

카르안은 노인이 건네준 종이를 읽었다. 골렘의 전투 시스템을 몸속에 각인시킨다. 평범한 사람은 생각하지 못할 아이디어다.

“그래서 사람만한 골렘을 사용했던 것입니까.”

“눈썰미가 제법이군.”

카르안을 처음 상대할 때, 노인은 사람만한 골렘을 사용했다. 카르안은 그 골렘의 특이한 움직임을 떠올렸다. 결국 카르안의 골렘과 싸운 것도 연구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만약 이 연구가 활성화 된다면........”

카르안이 말을 흐렸다. 길게 말할 것도 없다. 만약 골렘의 전투 시스템이 발전하고, 그 뛰어난 시스템을 일반 병사들에게 새겨 넣는다면, 병사들의 전투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아무런 훈련도 없이.

“군부에서는 환영하겠군요.”

“아니, 그렇지만도 않아.”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카르안의 말대로, 일반 병사들을 강화시킨다면 군사력이 월등해질 수 있다.

이게 비인도적이라거나, 부작용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시술 한번으로 전보다 뛰어난 무술실력을 얻게 된다. 거절할 병사가 있기는 할까.

그럼에도 노인은 회의적이었다. 시술만 한다면 분명 강해질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붙는다.

“골렘을 활성화하는 데에는 마나가 들지. 이 시스템도 마찬가지야. 전투 정보가 기록된 마법진을 활성화 하는 데에도 마나가 필요해.”

“그러면 일반 병사가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겠군요.”

마나 수련을 하지 않은 일반인은, 그 마나량이 턱없이 부족하다. 카르안도 처음 이세계에 떨어졌을 때 가지고 있던 마나량은 1에 불과했다.

노인에게 시술을 받는다고 해도, 고작 몇 초 정도밖에 전투 시스템을 유지하지 못하리라.

“마나 사용자도 거절할 것 같고요.”

검사 중 마나를 다룰 수 있는 자들도 있다. 기사, 혹은 그에 준하는 베테랑 병사들. 하지만 그들도 전투 시스템 따위는 필요 없을 것이다. 노인이 맞장구쳤다.

“그렇지. 그놈들 정도면 이 시스템이 필요하지도 않을 거야.”

검술을 단련해서 마나를 사용할 정도. 그 경지라면 이미 부족함 없는 검술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들의 자부심이 엄청나다. 그 뿐 아니다. 괜히 이상한 전투 시스템을 새겼다가, 지금까지 익힌 검술이 꼬여버릴 수도 있다.

“마나가 충분한데, 무술에 자신이 없다. 이런 사람들에게만 유용한 것일세.”

노인이 한숨을 푹푹 쉬었다. 분명 상상력도 뛰어났고, 좋은 아이디어이기는 했다. 하지만 쓸모가 있냐고 하면 그다지........ 계륵같이 애매한 발견이다.

“그러면 마법사나 연금술사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놈들은 주먹질에 관심이 없어. 칼질 같은 것은 천한 것이라고 생각하거든.”

연금술사나 마법사들도 시술을 환영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노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카르안 같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근접 전투를 선호하는 마법사는 없었다.

“게다가 힘들게 마법진을 새겨봐야, 그놈들은 힘도 없잖아.”

이게 가장 큰 문제였다. 유명한 무술가도 ‘힘없는 완벽한 기술보다 힘 있는 어설픈 기술이 더 쓸모 있다.’ 라고 한 적이 있다.

비실비실한 마법사들에게 고급 전투기술을 넣는다고 해서, 곧바로 특급 병사가 되는 일은 없다. 오히려 주먹질 하다가 손가락이나 안 부러지면 다행일 것이다.

“그러니까 요약하면, 이 기술이 필요한 사람은.........”

“전투에는 문외한이면서 마나가 충분하고, 또한 체력과 근력이 좋아야 하네.”

노인은 자조했다. 혼자 생각만 할 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막상 말하고 나니까 정말 쓸모가 없었다.

“세상 어디에 이런 사람이 있겠는가?”

‘있어. 지금 당신 눈앞에.’

카르안이 속으로 생각했다. 그는 헛기침을 한번 하고, 말을 이었다.

“확실히 돈 벌긴 그른 기술이지만, 연금술사가 돈만 보고 연구하는 것은 아니죠.”

카르안이 말했다. 노인의 연구를 흥미롭다는 듯이 살펴보며.

“당신의 연금술을 한번 배워보고 싶습니다.”

카르안이 품에서 책 한권을 꺼냈다. 벨트리의 연금술 서적. 카르안은 망설이지 않고 그 책을 노인에게 건넸다.

“음.”

노인은 바로 상황을 이해했다. 그가 카르안이 건넨 책을 한번 훑어보더니, 그에게 서류 뭉치를 건넸다. 서로의 지식이 담긴 결정체들. 노인이 중얼거렸다.

“자네가 지은 책은 아니군.”

“그건 중요하지 않지요.”

"하긴, 내용이 중요하지."

두 연금술사는 서로의 지식을 확인했다. 어차피 이 많은 분량을 완전히 암기할 수는 없으니, 서로가 건네준 지식이 가짜가 아니라는 것만 확인하고, 사본을 만들어 교환해야한다.

“온통 전투에 관련된 지식뿐이군. 하긴, 우리 같은 골렘술사가 이런 것밖에 더 알겠나.”

카르안은 말을 흘렸다. 노인이 건네준 지식을 검토하기도 바빴다. 카르안의 눈동자가 바쁘게 돌아갔다.

벨트리의 연금술은 말 그대로 기본과 심화가 균형을 이룬 서적이다. 이미 노인이 알고 있던 지식들도 많이 있었지만, 틈틈이 비어있는 지식의 틈을 메꿀 수 있다.

반연 노인의 연구 성과는 난생 처음 보는 것들이다. 분량이 많지는 않지만, 하나하나가 전부 새롭다.

카르안은 집중했다. 이거라면 그의 근접전이라는 약점을 해결할 수도 있다. 아직은 많이 부족했지만, 그 가능성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둘은 간간히 필요한 대화만 나누며, 저녁까지 서로의 서류를 검토했다. 어느새 해는 지평선 아래로 떨어지고, 슬슬 달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끄응~”

노인이 허리를 쭉 폈다. 하루 종일 앉아있었더니 몸이 찌뿌둥하다.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몸을 이리저리 돌리던 노인은 벨트리의 책을 내려놨다.

“자. 배도 고픈데 저녁이나 먹으러 가볼까. 기분도 좋은데 내가 한턱 내지.”

“괜찮습니다. 저녁은 제가 살게요.”

카르안이 대답했다. 이런 궁핍해 보이는 노인에게 얻어먹을 정도로 가난하지는 않았으니까. 물론 다른 목적도 있었다.

“혹시 오늘 하룻밤만 묵을 수 있겠습니까.”

“나도 하룻밤 재워주는 것은 문제가 안 되지만 말이야.”

노인이 엄숙하게 말했다.

“오늘 밤은 사랑하는 줄리앙느와 보내야 하거든.”

“..........”

“아무래도 남들에게 보여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별로 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속 편하게 밖에서 돗자리 깔고 자지. 마침 봄이라 별로 춥거나 덥지도 않았으니까. 카르안은 깔끔하게 포기했다.

“그나저나 그 아주머니, 아니. 여자 분이랑 약속이라도 하셨나요.”

“약속은 딱히 안 했지. 우리는 그런 게 필요 없으니까.”

이게 무슨 소리인가. 노인은 즐겁게 웃으며 말했다.

“정신적 교감이랄까. 그녀를 처음 만난 술집이 있네. 오늘 밤 거기에 가면 그녀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안 봐도 알 수 있지.”

그는 서둘러 외출 준비를 했다. 카르안도 뒤따라 짐을 챙겼다.

“자네도 따라오게. 거기는 술보다 음식이 맛있거든. 게다가 밤새 영업하는 곳이니, 잘만 말하면 밤을 지낼 수도 있을 거야.”

“괜찮은 곳이군요.”

“불타는 밤을 보내야지. 하하하하!”

노인은 껄껄 웃으며 문 밖으로 나섰다. 연금술의 논할 때 진지하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나저나 아직까지 통성명도 못했군요. 저는 카르안입니다. 성함을 알 수 있을까요.”

“나는 치프.”

“그러면 치프씨.”

그가 현관문을 열며 말했다.

“그냥 편하게 치프라고 불러. 딱딱하게 부르지 말고.”

2.

연금술사 치프가 안내한 곳은 거대한 술집. 커다란 크기와 대조적으로, 조금 허름해 보이기도 했다.

관광객들이 많기 때문일까, 아니면 정말 소문난 맛집이라도 되는 것일까. 안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저녁을 먹고 있었다. 어느 쪽이든 사람은 많다. 아주 꽝은 아닌 모양.

“다른 곳에서 온 촌놈들은 모르지. 아르페리움의 토박이들은 이 술집을 자주 다니거든.”

“음.”

둘은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왁자지껄한 웃음 소리, 떠드는 소리가 술집을 채우고 있었다. 카르안이 주변을 둘러봤다.

고급 술집은 아니다. 그래도 대중적이고 위생 상태는 괜찮아 보였다. 낡은 흔적은 보였지만, 곰팡이도 없고 잘 닦여 있다 보니 삼류 술집의 더러움은 느껴지지 않는다.

둘은 적당한 자리를 하나 잡았다.

“자, 오늘은 실컷 먹자고. 그나저나 내 사랑하는 줄리앙느는 어디에 있지?”

그가 코를 벌름거렸다.

“분명 그녀의 향기가 나는데. 이상하군.”

“하하. 사람이 강아지도 아니고 어떻게 냄새로.........”

카르안이 말을 멈췄다. 치프의 말대로, 중년 여성이 웃으며 지나갔기 때문이다.

분장한 듯한 과한 화장, 대체 무슨 자신감인지 복부와 다리를 훤히 노출한 옷. 분명 줄리앙느였다.

사람이 제법 있었지만, 눈에 확 들어오는 비주얼 덕에 단숨에 구분할 수 있었다. 그녀를 본 사람들도 그 충격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치프가 흥분해서 외쳤다.

“봤지. 내 코는 그녀의 향기를 잊지 않았거든!”

그는 징그러운 소리를 하며 벌떡 일어났다. 당장 그녀에게 달려갈 것처럼.

“응?”

줄리앙느 옆에 다른 남자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녀와 비슷한 나이대의 중년 남자 한명. 줄리앙느 옆에서 그녀를 에스코트 하고 있었다. 치프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저저저! 저! 저 성범죄자 놈! 감히 누구 여자에게 손을 대?”

“진정 좀 하세요.”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 지금 줄리앙느가 웬 말뼉다구같은 놈한테 성추행을 당하고 있잖아!”

“성추행 아닌 것 같은데요. 아무리 봐도.”

카르안의 말대로, 줄리앙느의 얼굴을 밝기 그지없었다. 몸을 비틀며 현실 부정을 하던 치프는 이건 아니라며 골렘을 소환하려 했고, 카르안은 서둘러 그의 목을 졸라 대형 사고를 방지했다.

뜻하지 않게 여인을 빼앗긴 치프.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테이블에 머리를 박았다. 카르안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그래도 한마디 하는 게 좋지 않아요? 골렘은 좀 아니지만.”

“됐어. 줄리앙느가 행복하면 됐지.”

흥분했을 때와 다르게 한번 진정하자, 치프는 의외로 쿨하게 넘어가는 것 같았다. 그래도 슬프기는 한지 술을 잔득 주문하긴 했지만.

그는 맥주가 나오자마자 벌컥벌컥 마셨다. 아니, 마신다기보다는 목구멍에 쑤셔 넣는 것 같았다.

“불꽃같았던 사람이........ 여름날 소나기처럼 허무하게 사라져 버렸구나.........”

카르안은 치프의 어깨를 두들겨 주면서도, 일단 오늘밤은 그의 집에서 잘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실연은 슬픈 일이지만, 일단 카르안이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이용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나저나 요리가 왜 이렇게 안 나오지.”

“여기는 손님이 많으니까. 조금 시간이 걸리는 편이지. 여유롭게 기다리게.”

치프는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그의 말대로, 급할 것은 딱히 없다. 카르안은 여유롭게 물 한잔을 삼키려했다.

“캬, 저기 저 여자 좀 봐봐.”

“귀족인가?”

“성직자 같은데. 여긴 왜 온 거지?”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 속에서도, 미녀라는 단어는 묘하게 귀에 박히는 법이다. 카르안은 얼른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한 여자가 눈에 쏙 들어왔다. 카르안이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뮬리펜. 저 여자가 여기에는 또 왜있어........”

이상하게 가는 곳마다 보이는 것 같았다. 카르안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살폈다. 뮬리펜은 주변을 어색하게 둘러보며 빈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종업원에게 뭔가를 주문했다.

“뭐?”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치프도 얼굴을 번쩍 들었다. 그리고 주변을 살폈다. 곧 그는 뮬리펜에게서 시선이 딱 멈췄다.

원래 이런 술집에 여자가 혼자 오는 경우는 드물다. 거기다가 백색의 성녀복을 차려입은 여자는 더더욱 드물다. 지금 그녀의 존재는, 장례식장에 웨딩드레스를 입고 온 사람처럼 눈에 띈다. 치프가 중얼거렸다.

“저 아이가 뮬리펜인가.”

“뮬리펜 성녀를 아십니까?”

그러자 치프가 화들짝 놀랐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선행으로 유명하다보니. 그냥 이름만 알게 되었네.”

‘뮬리펜이 그렇게 유명했었나.’

카르안이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의심하기도 우스운 게, 자신은 그녀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일단 착하기는 확실히 착하니까. 수도에서 유명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그보다, 상황이 좋지 않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미녀에 의해, 주변 남자들이 점점 야수로 변하고 있었으니까.

마치 들 토끼를 늑대우리 한가운데 던져둔 상황. 문제는 저 순진한 토끼는 자기가 먹잇감인지도 모르고 있다는 것.

하지만 그녀에게 처음으로 손을 뻗은 것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남자들이 폼을 재며 그녀에게 접근할 각을 보고 있을 때, 술집의 문이 벌컥 열렸다.

“뮬리펜 성녀가 이쪽에 왔다고 한다. 당장 찾아내.”

“네!”

흰 로브와 태양모양의 심벌. 알샤인 교단의 병사들이었다. 그들은 눈을 부릅뜬 채 술집 안으로 들어왔다.

카르안은 얼른 뮬리펜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녀도 술집 입구로 들어오는 병사들을 확인한듯 했다.

카르안이 얼굴을 찌푸렸다. 병사들을 본 뮬리펜의 얼굴에는, 슬픔도 분노도 아닌 허무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 작품 후기 ==========

버프 18에 당선되었습니다. 사실 모르고 있었는데(....) 독자님들의 댓글을 보고 알았습니다. 축하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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