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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션으로 무한성장 (65)화 (65/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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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정도의 크기. 소형 골렘이었다. 카르안의 골렘도 큰 편은 아니었지만, 그 질에서 압도적인 차이가 난다. 비슷한 크기라고 돌과 강철이 같은 것은 아니었으니까.

    “아이언 골렘이 이기겠군.”

    “그걸 말이라고 하나.”

    주변 연금술사들이 수군거렸다. 왜소한 스톤골렘은 골렘 특유의 두터운 몸도 없었다. 마치 인간과 같은 모양.

    카르안의 승리는 굳이 연금술사가 아니더라도 예상할 수 있었다. 꼭 요리사가 아니라도 똥과 된장은 구분할 수 있는 것처럼. 그만큼 명백한 승부였다.

    “저 골렘을 파괴해라.”

    카르안의 골렘도 눈을 빛내며 달려든다.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살살 해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아이언골렘이 주먹을 뻗었다.

    “어?”

    노인의 스톤골렘이 강철 주먹을 피했다. 마치 복싱 선수의 회피 자세처럼, 상체를 유연하게 움직인다. 아이언 골렘은 연달아 주먹을 난타했지만, 스톤 골렘은 모두 회피했다.

    “노인도 제법이구만!”

    연금술사들이 감탄을 내뱉었다. 초라하지만, 움직임이 다르다. 난생 처음 보는 유연한 골렘. 시시할 줄 알았던 싸움이 길어지자 사람들이 환호성을 터뜨렸다.

    ‘뭐 저렇게 빨라.’

    카르안도 예상외의 상황에 당황했다. 이런 움직임은 처음 본다. 이것은 마치.

    ‘잘 훈련된 격투가 같다.’

    이리저리 회피하던 아이언골렘이 반격에 나섰다. 주먹을 회피한 뒤, 빈 카르안의 골렘을 향해 스트레이트! 시원한 펀치였다. 하지만.......

    “기본 스펙 차이는 이길 수 없지.”

    부서진 것은 아이언 골렘이 아닌, 스톤 골렘의 주먹이었다. 재질의 차이. 사람과 사람의 싸움이라면 치명타가 되었겠지만, 상대는 피 대신 마나가 흐르는 강철 덩어리다. 약점 따위는 없다.

    “다 수가 있지.”

    노인은 즐겁게 웃으며 골렘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스톤 골렘은 갑자기 밑으로 숙이고 돌격했다. 아이언 골렘의 안쪽으로 파고든 다음, 왼쪽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기. 카르안의 골렘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쓰러졌다.

    이어지는 관절기. 타격이 안 된다면 힘을 이용해 접합부를 파괴한다. 아이언 골렘의 힘이 월등하다고 해도, 한쪽 팔이 낼 수 있는 힘과 전신으로 쏟아내는 힘은 차이가 난다.

    마치 격투기의 그라운드 기술처럼, 스톤 골렘이 아이언 골렘의 팔을 꺾었다. 또다시 터지는 환호성. 어쩌면 저 스톤 골렘이 이길 수도 있다!

    과연 아이언 골렘의 팔이 조금씩 휘기 시작했다. 노인이 활짝 웃었다.

    “어때, 생각보다 세지?”

    “확실히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카르안은 깊게 감탄했다. 스톤 골렘이 아이언 골렘을 상대로 우위를 잡는다. 마치 계란으로 바위를 두들겨서 부수는 꼴이다. 신기했다. 신기하긴 했지만.

    “하지만 상대가 안 좋았습니다.”

    위잉!

    카르안의 골렘. 잡혔던 팔이 그대로 돌아갔다. 그리고 온 몸이 회전하며 단단한 잡기를 풀어버린다.

    “어?”

    노인이 맥 빠진 소리를 내었다. 기껏 잡아놨는데, 카르안의 골렘이 기괴하게 온 몸을 꺾어 위기를 벗어났다. 스톤 골렘은 이제 매미처럼 팔에 달라붙어있을 뿐이다.

    파앙!

    돌조각이 튀었다. 아이언 골렘이 땅으로 스톤 골렘을 내리친 것. 스톤 골렘은 날쌔게 움직였으나, 몸이 반쯤 박살났다. 카르안은 비틀거리는 골렘을 향해 결정타를 날렸다. 금이 간 바위들을 향해 강철 주먹이 파고든다.

    “끝입니다.”

    몸에 큰 구멍이 난 스톤골렘. 그는 몇 번 휘청이다가 바닥에 푹 쓰러져 버렸다.

    “역시로군.”

    “고양이가 호랑이를 어떻게 이기나.”

    스톤 골렘의 역전극을 기대하던 사람들이 맥 빠지는 소리를 냈다. 짜릿한 역전은 없었다.

    “크으, 역시 무리였나.”

    노인은 무릎을 탁 쳤다. 뭔가 져서 슬퍼하기 보다는, 그저 잘 싸웠으면 됐지, 하는 표정. 그는 싸움 자체를 즐긴 것 같다. 그가 카르안에게 악수를 청했다.

    “멋진 전투였네. 자네가 이겼군.”

    “아닙니다. 제가 졌어요.”

    카르안이 쓰게 웃었다. 이기긴 이겼는데, 단순히 신체 스펙으로 짓누른 꼴이다. 전투 기술에서는 완벽하게 패했다.

    “대체 골렘에 무슨 짓을 한 겁니까? 이런 골렘은 처음 봅니다.”

    “다 나만의 노하우가 있지.”

    “그 노하우를 좀 배울 수 있을까요.”

    카르안이 작게 말했다. 그러자 노인은 주변을 살짝 둘러봤다. 싸움은 끝났고, 사람들도 슬슬 물러나고 있다. 오직 호기심 많은 연금술사 몇 명만이 그들을 힐끗거리며 보고 있다.

    노인이 입을 열었다.

    “자네 정도라면 정보를 교환할 가치가 있겠군.”

    “그러면.”

    “집에 가서 이야기하지. 긴 이야기가 될 것 같으니.”

    노인은 반색하며 카르안을 집으로 안내했다. 그는 상당히 수다스러웠는데, 집으로 걷는 사이에도 끝없이 뭔가를 이야기했다. 그의 골렘에 대한 열정은 남다른 것 같았다.

    “내가 연구하는 것은 단순히 골렘이 아니야. 그것보다 조금 깊은 것이지. 그야 말로 혁신, 그 자체라고 해도 될 만한.”

    “어느 정도 감이 잡히는군요.”

    카르안도 노인의 말을 알아들었다. 그러니까 골렘 안의 전투 시스템을 공부한 것이겠지.

    보통 골렘의 움직임은 단순하다. 주먹을 휘두른다. 발로 짓밟는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골렘 생산의 목적이 전장에서의 대량 학살이고, 거기에 복잡한 기술이나 움직임은 필요 없었으니까.

    골렘끼리의 싸움에서도 대부분 소재차이로 승패가 나뉜다. 방금 전 전투만 봐도 알 수 있다. 노인의 스톤골렘은 기막힌 움직임을 보여줬지만, 결국 승리한 것은 카르안의 아이언 골렘이다.

    전투 시스템 따위를 연구할 시간에, 조금이라도 크고 강한 골렘 다루는 법을 공부하는 게 효율적이었다.

    “자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군.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야.”

    “다른 것도 연구하시는 게 있으십니까?”

    “후후.”

    노인이 뭔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그의 눈이 깊게 빛나고 있다. 마치 뭔가 깊은 것을 아는, 현자의 눈빛이었다.

    “집에 도착하면 바로 알 수 있을 것일세.”

    둘은 노인의 집에 도착했다. 나무로 된 작은 오두막집이다. 카라나리가 예전에 살던 집 정도는 아니었지만, 듬성듬성 낡은 흔적이 보인다.

    비록 카르안에게는 패했지만, 노인도 나름대로 골렘에 대해 전분가로 보였다. 그런데 사는 집은 영 궁핍해 보이지 않는가. 포션 만큼은 아니지만, 골렘술사도 군에서 대접받는 직업이었다. 이렇게 가난하게 살 필요는 없을 텐데.

    노인이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냈다.

    “자, 내 평생에 걸친 연구를 보여주겠네!”

    자신만만한 웃음. 그는 거칠게 문을 열었다. 그리고 집 안을 본 순간, 카르안이 눈을 번쩍 떴다. 뭔가가 노인을 덮쳤다!

    “오빠~ 어디 갔다가 이제와~”

    반나체의 여인이 노인에게 달라붙었다. 족히 50은 되어 보이는 얼굴. 푸짐한 몸. 싸구려 화장품을 덕지덕지 바른 탓에 마치 분장한 피에로 같기도 했다. 그러니까 진하게 화장한 동네 아줌마. 그녀는 노인을 꼭 끌어안았다.

    “어젯밤에 엄청 즐거웠어~”

    “커, 커억.”

    노인의 얼굴이 붉어졌다. 문제는 그게 뭐 부끄러움이나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숨이 막혀서 그런 것 같다. 그녀의 조르기에 팔만 파닥거리던 노인. 한참이 지나서야 힘겹게 여인을 때어놓았다.

    “이게 평생을 걸친 연구?”

    “허억! 허억......... 연구라. 뭐 그런 셈이지,”

    노인은 손사래를 치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여인은 노인에서 카르안으로 시선을 옮겼다.

    “어머, 이 멋쟁이 오빠는 또 누구야?”

    “........”

    카르안은 어색하게 웃어주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정신없이 복잡한 방. 노인은 뭔가를 뒤지고 있다.

    ‘잠깐.’

    단순한 해프닝으로 생각했지만, 노인은 평생에 걸친 연구라고 했다. 그게 꼭 골렘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설마 인조 생명체?’

    카르안은 이제 노년을 향해 달려가는 중년 여성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카르안의 시선에, 느끼하게 웃으며 몸을 꼬았다. 카르안이 눈을 찌푸렸다.

    (조금 취향이 특이하기는 했지만) 정말 인간 같지 않은가, 저 정도로 인간 같은 인조 생명체는 보지 못했다.

    “영감님. 혹시 저 여자가 연금술로 완성한 인조 생명체입니까.”

    그렇다면 정말 대단한 것이다. 이 정도 발견이라면 당장 왕궁에서 모셔가도 이상할 게 없다.

    카르안의 날카로운 질문에, 노인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게 무슨 개똥같은 소린가. 저 여자는 어젯밤 술집에서 꼬신 여자야.”

    “........그러면 평생에 걸친 연구는?”

    “하루 만에 여자랑 끝까지 가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평생을 갈고닦은 테크닉이지.”

    카르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어느새 카르안 뒤로 다가온 여자는 그의 엉덩이를 슬쩍 쓰다듬었고, 카르안은 이제 다 집어 치우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그는 그녀의 손을 슬쩍 치웠다.

    책상 서랍에서 종이덩이를 꺼낸 노인. 그는 중년 여자를 향해 말했다.

    “사랑하는 줄리앙느. 미안하지만 오늘은 연금술사끼리 할 이야기가 있소.”“어머나, 저보다 이야기가 중요한가요?”

    중년 여성 줄리앙느가 삐진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노인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렇지 않소.”

    “그러면 오늘도 저랑 있어줘요!”

    “하지만 이 사람과 이야기를 나눠야 해서........”

    “말 돌리지 말고, 확실하게 알려줘요. 저와 함께 있을 것인지, 아니면.......”

    줄리앙느는 말을 잊지 못했다. 노인이 격렬하게 입을 맞춘 것. 잠시 후, 노인이 입을 때었지만 줄리앙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대보다 중요한 게 세상 어디에 있겠소. 다만 이것은 남자의 야망에 관한 일이오. 그대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오늘은 그대를 보내는 나를 이해해 줄 거라 믿소.”

    "아아"

    줄리앙느는 눈이 하트로 변했다. 그리고 최면에 걸린 것처럼, 군말 없이 옷을 입고 나갈 준비를 했다. 잠시 후, 현관 앞에서 두 번째 키스를 마친 줄리앙느는 손을 붕붕 휘두르며 길가로 사라졌다.

    “후우. 역시 여자를 달래는 것은 힘든 일이야. 그나저나 자네. 체하기라도 했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는데.”

    “아니요. 그냥 좀.”

    못 볼 꼴을 봤다는 표정의 카르안. 그는 어질한 머리를 붙잡으며 의자에 앉았다. 대낮부터 나잇값 못하는 두 커플의 뜨거운 애정행각을 본 덕분이다. 이 꼴을 다시 봐야한다면 골렘이고 나발이고 집에 갈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그 혁신적인 연구라는 게 뭡니까. 이제 좀 듣고 싶군요.”

    노인은 서류 한 뭉텅이를 끄집어냈다. 그리고 카르안 앞에 올려놨다. 카르안이 힐끗 보자, 여러 가지 수식. 그리고 몇 가지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그림은, 골렘이 아닌 인간의 몸이었다.

    “골렘의 전투시스템. 연금술사들은 그것을 연구해서, 골렘 몸속에 집어넣었지.”

    노인이 다른 페이지를 펼쳤다. 인간의 해부도가 들어났다. 글자를 전부 읽지는 않았지만, 한눈에 봐도 골렘에 관한 연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했네. 발상의 전환이야.”

    “발상의 전환이라면.........”

    “돌덩이에도 전투 알고리즘을 새겨 넣을 수 있지. 그런데, 왜 지성을 가진 사람의 몸에는 넣지 못하겠나?”

    카르안의 등에 전율이 흘렸다. 지금까지 이런 연구는 들어본 적도 없고,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노인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내가 그 연구를 끝냈네.”

    2.

    알샤인교의 신전 안. 그 신전을 경호하는 기사들은 단단히 긴장하고 있었다. 알펜 왕국안에 파견된, 고위 성직자들이 전부 모였다. 철통같은 경호는 기본.

    하지만 오늘은 고위 성직자만 있는 게 아니다. 그들의 손이 조금 떨렸다. 오늘 경호에 조그마한 차질이라도 생긴다면, 그들의 목이 달아날 수도 있다.

    “다들 와 주셨구려!”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노인이 소리쳤다. 얼굴에는 검버섯이 피었고, 몸은 세월에 무게에 깎여나가 가늘기 그지없었다. 족히 90세는 넘긴 나이다. 원래라면 걷기도 힘든 나이지만, 노인의 발걸음에는 힘이 넘쳤다.

    “오늘도 알샤인님의 영광을 위해, 고생하는 형제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오! 하지만 우리의 희생으로 많은 어린양을 구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그 고행은 그 어떤 보석보다 가치 있게 빛나지 않겠소!”

    긴 인사말을 내뱉는 노인. 그는 고개를 숙인 성직자들을 내려 보았다. 그 중에는 성녀 뮬리펜도 있었다.

    “오늘 내가 온 것은 알샤인님의 결단을 여러분께 전하기 위함이오. 본인도 몇 번이나 고심했지만, 그분의 깊은 뜻은 곧 진리와 다름없으니. 알샤인의 빛을 위하여.”

    “알샤인의 빛을 위하여.”

    모든 신도들이 대답했다. 그 모습을 노인은 만족스럽게 바라보았다.

    모든 고위 성직자들이 고개를 숙이는 존재. 그런 사람은 교단에서 한 사람 뿐이었다.

    알샤인 교단의 교주. 그가 알펜 왕국을 직접 방문했다.

    ========== 작품 후기 ==========

    오늘 자정 연참으로 가겠습니다. 자꾸 복잡한 일이 생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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