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렘 깎는 노인 -->
“뭐? 내가 너희 집에 왜가?”
카르안이 당황해서 소리쳤다. 뜬금없는 제안이다. 하지만 리젝트는 당당했다.
“뭐 어때. 유치하게 이제 와서 싸울것도 아니고.”
잠깐의 침묵. 카르안은 일단 음식이 놓인 있는 테이블로 갔다. 뮬리펜의 간절한 눈빛을 거절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자리에 앉자마자, 리젝트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멋대로 닭다리 하나를 들어올렸다.
“많이도 시켰군. 하나쯤 먹어도 상관없겠지.”
뮬리펜이 뭔가 불만스러운 눈으로 리젝트를 노려봤다. 하지만 그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카르안도 고기조각을 자르며 말했다.
“솔직히 말하지. 우리가 친구 사이도 아니고 말이야. 원하는 게 뭐냐.”
“네 연금술 지식.”
리젝트는 거침없이 말했다. 카르안은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고작 하룻밤 재워주는 것으로 연금술 지식을 전수해줄 수는 없다. 수지가 안 맞는 장사.
“내가 뭐라고 할지는 알겠지.”
“전부 알려달라는 것은 아니야. 그저 너와 연금술에 대해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다.”
“흠.”
실력자를 초대해서 함께 학문을 논한다. 이것만큼은 그다지 특별한 일은 아니다. 군의 고위 장교가 검술의 고수를 초대해 식객으로 삼고, 함께 검술에 대해 토론하는 것과 비슷했다.
“그나저나 수도에도 집이 있었나. 알페라츠 백작령에 사는 줄 알았는데.”
“작은 저택 하나쯤은 있다.”
리젝트는 4급 연금술사답게 제법 부유했다. 수도에 따로 집이 있을 정도로. 카르안은 고민에 빠졌다. 설마 수도 한복판에서 해코지를 할 것 같지는 않은데. 영 찜찜한 기분.
“마음만 고맙게 받지.”
거절. 딱히 가야 될 것 같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리젝트도 예상한 대답이었는지 별로 내색하지 않았다.
“그러면 즐거운 여행되시게. 더 볼일은 없을 것 같군.”
리젝트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런 그를 잡은 것은 카르안.
“잠깐.”
“왜?”
“기왕 온 김에 연금술사 정기모임에 대해 좀 알려 주고가지.”
“부탁을 거절해놓고 뻔뻔하기도 해라.”
“닭다리 값은 해야 할 거 아니야.”
카르안은 리젝트가 먹고 남긴 닭 뼈를 가리켰다. 움직이려던 리젝트는 자리에 털썩 앉아버렸다.
“정말 쪼잔한 놈이군. 네 앞에서는 물 한잔도 조심해서 마셔야겠어.”
리젝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뭔가 생각을 정리하는 듯한 모습. 뮬리펜은 리젝트를 보지도 않는 채 면을 힘껏 흡입 중이었다. 리젝트가 입을 열었다.
“연금술사 정기모임이라. 알기 쉽게 말하자면 저거지.”
그는 식당 밖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카르안이 손가락 끝으로 시선을 돌리자, 사람들이 잔뜩 있는 시장이 보였다. 거기에는 농민들이 각자 채소와 곡식 등을 팔고 있었다.
“시장?”
“그래. 그냥 조금 큰 장사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카르안은 쉽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정기 모임에 시장이라니. 리젝트는 친절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고상한 학회 같은 분위기를 생각했다면 완전히 잘못된 상상이야. 연금술 지식을 공유하는 곳은 왕립 학교밖에 없으니까 말이지.”
연금술사는 연구를 숨긴다. 그들이 자신이 평생 연구한 성과를 전부 까발리거나 하는 일은 절대 없다. 그것도 각지에서 몰려든 연금술사들 앞에서 말이다.
차라리 알몸을 보일지언정, 연금술 기술만은 숨기려는 게 그들의 심리. 하지만 그렇게 꽁꽁 싸매기만 해서는 발전이 없다.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토론을 해야 지식을 발전시킬 수 있다.
“물물 교환을 하는 거야. 야채나 고기 대신, 바로 지식을 말이지. 기간은 일주일. 연금술 길드가 대여한 광장에서 연금술사들이 모인다.”
“음.”
다른 사람의 연금술을 보고 싶다. 하지만 자신의 것을 알려주기는 싫다. 그 아이러니를 해결할 적당한 타협점. 바로 정보 교환이다.
“아마 너 정도의 실력이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야.”
카르안의 포션 제작 실력은 일류라고 할 수 있다. 누구나 보기만 해도 그의 제작 스킬을 알고 싶어 할 것이다.
“사기꾼 놈들을 조심해야겠군.”
카르안이 고기 한 점을 씹었다. 지식의 교환. 그렇다면 약방의 감초마냥 사기꾼들이 등장할 것이다. 주의해야 했다.
“너 정도 안목이 있다면 속지는 않을 거다.”
리젝트가 진심을 담아 말했다. 사기도 어중간한 놈들에게나 통하는 것이다. 과연 카르안의 눈을 속일 사람이 있기나 할까. 리젝트는 할 말을 다 했는지, 냅킨으로 입을 닦고 일어났다.
“아무튼 이정도만 알아 두라고. 나머지는 직접 경험해 보는 편이 빠르겠지.”
리젝트는 그 말만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카르안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식사를 계속했다.
“의외의 사람한테 도움을 얻었네.......”
뭣도 모르고 갔다가 크게 헤맬뻔했다. 생각을 마치고, 카르안은 남은 음식을 해치우려했다. 하지만 그가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 접시가 전부 비워져 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
“아~ 잘 먹었어요.”
뮬리펜은 포근한 미소를 지었다. 뭔가 상쾌한 표정. 카르안이 허탈하게 말했다.
“그새 다 드셨습니까.”
대화에 신경 쓰느라 음식이 사라지는지도 몰랐다. 뮬리펜은 리젝트가 있던 자리를 쳐다봤다.
“어? 이 사람 언제 갔어요?”
“성녀님이 열심히 드시는 동안.”
“아.”
뮬리펜도 조금 민망한지, 어색하게 웃었다. 카르안이 말했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저야 알샤인 교단으로 가야죠. 거기서 빠르게 회의를....... 아참.”
뮬리펜이 손뼉을 쳤다.
“그냥 카르안씨도 흑룡회 사무실에 가서 주무시면 되잖아요. 여기도 흑룡회가 있을 텐데.”
“별로 가고싶지 않아요.”
친절한 분위기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같은 흑룡회라도, 다른 지부에서 온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진 않을 것이다. 범죄조직과 종교단체는 큰 차이가 있으니까.
“아무튼 큰 도움을 받았어요. 그, 다음에 혹시라도 도움이 필요하시면 제가 힘써 볼게요. 흑룡회에 관련된 것만 아니라면.”
“알겠습니다. 성녀님도 살펴 가시길.”
먹이를 잔득 먹은 뮬리펜은 헤실 거리며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먹을 것 하나로 사람이 저렇게 변하다니.
“나도 이제 움직여야겠다.”
정기모임. 오늘부터 시작이다. 장소는 물어볼 것도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향하는 곳으로 걸어가기만 하면 되니까. 카르안은 음식 값을 치루고, 사람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2.
연금술사 정기모임의 장소.
알펜 왕국 연금술 길드에서는, 그냥 거대한 광장 한 개를 통째로 빌려버렸다. 수도의 광장을 빌린다. 어마어마한 돈이 들기는 하지만, 연금술 길드의 힘이라면 그 정도는 비용은 새발의 피였다.
거기서는 연금술사들이 각자의 연금술을 시연하고 있었다.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그래야 지식이든 돈이든 건네줄 사람이 붙지 않겠는가.
“마법도구로군.”
카르안은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봤다. 연금술의 종류가 다양한 것처럼, 연금술사들의 특기도 제각각이었다.
어떤 이는 마법 도구를 잔득 만들어 진열해둔다. 만들어둔 포션을 꺼내놓는 사람들, 골렘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신기한 듯 구경하는 사람들. 그때였다.
“저기 싸움이 일어났다!”
“골렘끼리 한판 붙는다는데?”
카르안의 귀에 흥분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이 어딘가로 우르르 몰려가고 있다. 카르안도 궁금증이 샘솟았다.
사람들이 향한 곳. 카르안도 서둘러 뛰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콰앙!
“오오!”
거대한 골렘 두기가 맞붙고 있다. 그 골렘들 뒤에서는 연금술사로 보이는 중년 사내들이 열을 올리고 있었다. 땀을 뻘뻘 흐리며 마나 포션을 삼키는 게, 상당히 힘들어 보였다.
“형편없는 실력이구나!”
“내가 할 말이다!”
한쪽은 거대한 스톤 골렘. 즉석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 바위를 조각해서 만들어 놓은 물건이다.
다른 쪽은 아이언 골렘이다. 일단 골렘의 소재부터 크게 차이가 났다. 평소라면 아이언 골렘이 유리할 것이다. 하지만 그 아이언 골렘이라는 게 영 부실해 보인다.
끼릭- 끼익-
4미터는 되어 보이는 꺽다리 골렘이 비틀거린다. 카르안의 골렘과 다르게, 무게 밸런스부터 엉망이었다. 게다가 몸통도 군데군데가 비어 있어서, 만든 주인의 주머니 사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한 번 더 간다!”
스톤 골렘이 주인이 우렁차게 외쳤다. 동시에 거대한 바위들이 주먹질을 퍼부었다.
퍼엉!
다시 터진 폭발음. 아이언 골렘이 휘청거렸다.
“크윽!”
궁지에 몰린 연금술사. 그는 힘겹게 골렘의 조종을 계속했다. 하지만 한번 기울어진 기세는 회복될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콰아앙!
우렁찬 소리와 함께 아이언 골렘이 쓰러졌다. 승자는 스톤 골렘. 그가 흥분한 듯 외쳤다.
“으쌰!”
사람들도 환호했다. 즉석에서 일어난 연금술사들의 자존심 싸움. 승리한 연금술사가 흥분을 주체 못하고 주먹을 추켜올리자, 골렘도 손을 힘껏 올렸다.
“어?”
사람들의 환호가 비명으로 바뀐 것은 한순간이었다. 이긴 것도 좋았고, 주먹을 추켜든 것도 좋았지만, 문제는 흥분 때문에 자기 마나가 바닥난 줄도 몰랐다는 것이다.
힘겨운 싸움이었다. 전투에서 마나를 대부분 소모해 버릴 정도로. 주먹을 힘껏 치켜든 순간, 큰 동작으로 얼마 남지 않은 마나가 바닥을 드러내었다.
동시에 골렘은 돌덩이로 변해버렸고, 바위들을 붙잡고 있던 인력은 모두 해체되었다.
골렘의 치켜 올라간 주먹까지 말이다. 위를 향해 움직이던 주먹, 바위는 관성의 법칙에 따라 쑤욱 올라갔고.
“피, 피해!”
사람들이 꽉꽉 찬 광장 한가운데로 떨어질 예정이었다. 저만한 바위에 맞는다면, 그 자리에서 쥐포처럼 꽉 눌려 버릴 것이다.
바위가 무서운 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카르안이 얼른 시선을 돌렸다. 바위가 떨어질 것 같은 장소, 거기에는 수염이 덥수룩한 노인 한명이 앉아있었다.
“영감님! 빨리 피해요!”
사람들이 소리쳤지만, 그는 귀가 안 좋은지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바위가 떨어진다. 곧 벌어질 끔찍한 광경을 예상하며, 사람들은 모두 눈과 귀를 가렸다.
쿠웅!
바위가 부딪히는 소리. 처음 스톤 골렘을 조종하던 연금술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싸움에서 승리하고 큰 광고가 될 줄 알았는데, 그냥 대형 사고로 끝나버렸다.
“허억!”
하지만 바위가 떨어진 곳에 노인의 시체는 없었다. 거대한 골렘. 은빛의 기사가 양 손으로 바위를 움켜쥐고 있었다.
“다음부터 조심 좀 하세요.”
카르안이 땀을 닦으며 말했다. 조금만 늦었어도 큰 사고가 날 뻔했다. 갑작스러운 아이언 골렘의 등장에, 사람들은 전부 몰려들었다.
“정말 아이언골렘이다!”
“마치 갑옷을 입은 거인 같군.”
“그러면 방금 전 본 아이언 골렘은 뭐였지?”
“그냥 고철조각 모음이었지. 이게 진짜 아이언 골렘이고.”
사람들의 시선이 카르안에게 집중되었다. 아이언 골렘을 순식간에 소환한 실력자. 카르안은 살짝 웃어주었다. 이것을 원하던 것이다.
노인을 구하자는 목적도 있었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이 주목받는다. 여기서는 힘을 숨기는 게 아니라, 최대한 드러내야 했기 때문에.
덕분에 광고가 제대로 되었다. 그냥 아이언 골렘을 소환한 것보다, 몇 배는 극적인 효과가 생겨났다. 이제 그의 골렘에 관심 있는 자들이 찾아올 것이다. 그것과 교환할만한 지식이나 돈을 가지고.
“허! 내가 죽을 뻔했구만. 허허허!”
깔려 죽을 뻔한 노인. 그는 그제야 위쪽을 보고 헛웃음을 터뜨렸다. 전혀 긴장하지 않는 모습이다.
“고맙네, 젊은이.”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악수를 건네는 노인. 카르안도 웃으며 맞잡아 주었다. 어울리지 않는 선행을 한 탓에 조금 어색하기도 했지만. 좋은 게 좋은 거 아닌가. 노인이 말했다.
“오호. 자네도 골렘을 다루나보군.”
“예. 보시다시피.”
“아이언 골렘이라. 상당히 돈을 발랐구만. 흠흠. 나쁘지 않은 수준이야.”
그는 카르안의 골렘을 평가하듯 둘러봤다. 골렘은 바위를 빈 공간에 내려두고 다시 돌아왔다. 그 움직임을 유심히 살피던 노인.
“하지만 좋은 수준도 아니로군.”
“네?”
카르안이 얼굴을 찌푸렸다. 물론 그가 아직 벨트리의 골렘책을 완전히 소화한 것은 아니다. 그래도 부족할 실력은 결코 아니었다.
노인이 어린애 같은 웃음을 지으며 양 손을 펼쳤다.
“영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는구나. 그렇다면 한번 겨뤄보지 않겠어?”
“싸움이요?”
“여기서는 특이할 것도 없지.”
노인도 연금술사인 것 같다. 그의 발밑에서 환한 마법진이 피어났다. 카르안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른 사람들이 흥분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다. 보기 힘든 골렘. 그 거인들의 싸움은 더 없이 진귀한 구경거리다.
“후회하지 마십시오.”
카르안도 수락했다. 즉흥적인 결투지만, 목숨 걸고 싸우는 것도 아니다. 노인의 말대로, 골렘술사끼리 서로 힘을 증명하는 것은 특이할 게 없었다. 특히나 지금같은 정기 모임에서는 말이다.
“자, 신명나게 싸워보지.”
마법진 안에서 골렘 한기가 튀어나왔다. 카르안이 눈썹을 찌푸렸다.
그 안에서, 왜소한 골렘 한기가 튀어나온 것이다. 게다가 돌로 이루어진 골렘. 카르안의 골렘에 비하면 한없이 작아보인다. 하지만 노인은 여유 만만이었다.
“겉만 보고 판단하지 말게. 먼저 들어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