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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션으로 무한성장 (63)화 (63/124)

<-- 골렘 깎는 노인 -->

뮬리펜은 카르안의 도움으로 텔레포트에 성공할 수 있었다. 마침 목적지도 똑같았다. 둘은 함께 수도로 이동했다. 그녀는 영 불만스러워 보였지만.

수도 아르페리움.

텔레포트를 마치고 눈을 뜨자마자, 북적북적한 마법사 길드가 보였다. 한눈에 봐도 정신이 없을 정도. 마법사 길드는 그가 있었던 백작령에 비해 몇 배는 거대해 보였다. 그리고 그 거대한 길드 안을 빡빡하게 채운 사람들.

길드 안쪽은 시장 통이 따로 없었다. 발 디딜 틈 하나 없이 북적거린다. 카르안과 뮬리펜은 밖으로 나가려 했다. 하지만 북적거리는 사람들이 철벽이 되어 그들을 가로막고 있었다.

“자, 잠시 지나갈게요!”

뮬리펜이 가녀린 목소리로 소리쳤다. 당연하게도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에 묻혀버렸다. 그녀는 낑낑거리며 사람들 틈을 지나려 했다. 영 불안한 모습. 카르안이 손을 내밀었다.

“제 손 잡으세요.”

“무, 무슨소리에요?”

“놓으면 중간에 미아가 되니까. 잘 따라오시고.”

“어린애처럼 대하지 말아주실래요? 엄청 기분 나쁘거든요?!”

그러거나 말거나, 카르안은 뮬리펜의 손을 잡고 사람들 사이를 치고 나갔다. 뮬리펜은 투덜거렸지만, 막상 인파 사이로 끼어드니 무서웠는지 자기가 손을 더 꽉 잡았다.

“크윽! 좁으니까 비켜!”

“어떤 새끼가 어깨 치고 갔어?”

역시 수도답게 사람들의 성격도 화끈했다. 좁은 공간을 파고들다보니 필연적 마찰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중 한 거한은 카르안이 자신을 치고 간 것이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은 것 같았다.

“........”

온갖 인상을 다 찌푸리던 거한. 하지만 카르안의 옷을 본 순간 입을 싹 다물었다. 흑룡회. 알펜 왕국에서 절대 건드리면 안 되는 조직. 그는 곧 멋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럴 때는 쓸모가 있구나.”

이 옷만 있어도 자잘한 마찰은 피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카르안은 마법사 길드 밖으로 나왔다. 둘의 눈이 커졌다.

“이게 무슨 일이지.”

“그러게 말이에요.”

길드 안보다는 덜했지만, 수도 안은 사람으로 미어터졌다. 수도라 해서 백작령보다 복잡할 줄은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정도 일 줄이야. 카르안은 뮬리펜에게 속삭였다.

“원래 여기 이렇게 사람이 많은가요?”

“평소에도 사람이 많기는 했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어요.”

뮬리펜은 수도에 몇 번 와 보았다. 그녀의 경험상 지금처럼 사람이 많았던 적은 없었다. 카르안이 턱을 톡톡 두드렸다.

“아무래도 연금술사 정기모임 때문인 듯 하군요.”

1년도 아닌 3년에 한번 있는 연금술사들의 대 집회. 카르안의 예상대로, 사람들이 많은 것은 그것이 원인이었다.

연금술사들이 파는 신비한 물건들. 그것들만 해도 보기 힘든 구경거리다. 몇몇 야심찬 재력가들은 연금술사를 스카웃하기 위해 오기도 했고, 또 그런 귀족들을 노리는 사기꾼이나 장사꾼들도 몰려들었다.

덕분에 수도는 더없는 호황. 이곳에 오래 살아온 장사꾼들은, 오늘이 큰 기회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젠장. 여관잡기도 빡세겠군.”

당연히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쓸 만한 여관은 진작 가득 찼을 것이다. 카르안은 쓰게 웃으며 뮬리펜에게 물었다.

“성녀님은 잘 곳 있으십니까?”

“예. 알샤인 교단은 수도에도 있으니까요. 방 하나 정도는 있겠죠.”

그녀는 딱히 숙소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알샤인 교단에 가서 자면 그만. 어쩐지 속 편해 보인다. 카르안이 말했다.

“그러면 슬슬 헤어질까요.”

“예. 아무튼 고마웠어요. 이 빚은 반드시 갚겠습니다.”

뮬리펜은 카르안에게 고개를 깊이 숙였다. 그와 동시에 무슨 소리가 카르안의 귀를 울렸다.

꼬르륵.

“...........”

참으로 고전적이고 노골적인 소리. 카르안은 대단하다는 표정으로 뮬리펜을 쳐다봤다. 당황한 뮬리펜.

“이, 이건 아니에요.”

“뭐가 아닙니까.”

텔레포트 비용을 벌기위한 눈물의 다이어트. 그녀는 하루에 한 끼밖에 먹지 못했다. 의도치 않게 살은 뺄 수 있었지만, 지금은 뮬리펜은 아사 직전이다. 떨어진 새 모이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여기는 한창 관광객 풍년을 맞이한 왕국의 수도. 음식집 주인들은 있는 힘껏 요리의 냄새를 사방에 퍼뜨리고 있다. 고소한 향이 사방에서 식욕을 돋우고 있다.

이 두 가지 요소가 만나면서, 뮬리펜의 배에서 음식을 갈구하는 비명소리가 퍼진 것이다. 카르안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조금 이르지만, 점심이라도 먹고 가실래요?”

뮬리펜은 조금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2.

원래라면 단칼에 거절했을 뮬리펜이지만,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배가 고픈데에는 성녀고 나발이고 장사가 없었다.

카르안도 원래는 그냥 그녀를 보내려 했다. 알샤인 교단이 아무리 돈이 없어 허리띠를 졸라 맸다 해도, 성녀한테 밥 한 끼를 안 주겠는가.

그런데 그냥 보내기에는 뮬리펜의 상태가 너무 위태로웠다. 정말 저러다가 정말 길거리에 쓰러질 것 같았다.

“식사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웨이터로 보이는 청년이 다가왔다. 뮬리펜은 잔득 흥분한 채 입을 열었다.

“여기 구운 돼지고기랑, 허브를 넣고 볶은 면이랑.........”

열심히 혀를 움직이던 뮬리펜. 그녀를 이상한 눈으로 보는 웨이터를 보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자그마치 3인분을 시킬 뻔했다. 식욕 때문에 잠시 이성이 증발해 버린 것일까.

“........그냥 이거 하나 주세요.”

뮬리펜은 메뉴판에 음식 하나를 가리키며 작게 말했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 카르안은 물 컵에 물을 따랐다.

“밥값 해봐야 얼마나 한다고. 그냥 드시고 싶은 대로 시키세요.”

“평소에 많이 안 먹어서 괜찮아요.”

“그러면 저는 이렇게 주세요.”

카르안은 메뉴 3개를 손가락으로 쭈욱 그었다. 웨이터는 열심히 쪽지에 메뉴명을 적었다.

“그렇게나 많이 드세요?”

“뭐, 너무 많으면 나눠먹죠.”

카르안이 살짝 웃었다. 뮬리펜은 잠시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휘휘 저었다.

웨이터가 떠나고, 그들은 물 대신 나온 주스를 홀짝거렸다. 잠깐의 침묵. 먼저 입을 연 것을 뮬리펜이었다.

“카르안씨.”

“네?”“혹시 흑룡회, 그만 두실 생각은 없나요?”

“없습니다. 이 좋은 직장을 왜 그만둬요?”

일은 편하고, 월급은 두둑하다. 게다가 직속 부하들까지 있고. 상사도 제법 마음에 드는 편. 이런 신의 직장을 누가 그만두겠는가.

연금술 길드에 들어갔다면 꿈도 못 꿀 상황이다. 아마 그를 처음 골탕먹이려했던 연금술사, 리젝트 밑에서 졸병 노릇이나 하고 있겠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게다가 제가 만약 흑룡회에 들지 않았다면, 뮬리펜씨는 지금 여기에 있지도 못했을 겁니다.”

“역시, 멈출 생각은 없으시군요.”

뮬리펜도 반쯤 포기한 것 같았다.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잠시 화장실좀 들릴게요.”

뮬리펜의 마음이 착잡하게 가라앉았다. 카르안의 말대로다. 만약 그가 흑룡회의 간부가 아니었으면, 그녀를 이렇게 도와주지도 못했겠지. 뮬리펜은 복잡해진 머리를 식히기 위해 세면대로 향했다.

뮬리펜이 자리를 떠나고 잠시 후, 음식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었다. 하나같이 먹음직스럽다.

그런데 그녀가 돌아오지를 않는다. 카르안이 빈 물잔에 물을 채웠다.

“무슨 일 있나?”

잠깐 그녀가 기분이 상해서 그냥 갔나,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그럴 일은 없다. 아무리 카르안이 싫어도, 밥은 먹고 떠날 것이다. 엄청 배고파 보였으니까.

카르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이 있는 쪽으로 걸었다. 일이 있어도 이 사이에 있었겠지.

아니나 다를까. 뮬리펜이 두 명의 남자들에게 잡혀있는게 눈에 들어왔다.

“저, 지금 가봐야 돼요,”

“잠깐만 시간 좀 내달라니까.”

뮬리펜의 절박한 표정에도, 둘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배고파 죽겠는데 웬 놈들이 붙잡고 보내주지를 않는다. 지금 그녀에게 이것만큼 짜증나는 상황도 없을 것이다.

그녀의 타들어가는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자 두 명의 얼굴에 짜증이 피어났다.

뮬리펜이 도저히 넘어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쯤에서 포기했겠지만, 그들은 남다른 열정을 가진 사나이들.

이 정도의 미녀는 보기 힘들었다. 그들은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들만의 비장의 무기.

“너 우리가 누군지 알아?”

연금술사 면허. 이제 막 발급 받았는지, 아주 반짝반짝 빛나는 면허장이다. 그 면허를 꺼내는 순간, 그들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넘쳐흘렀다. 국가가 공인한 엘리트라는 증거니까 말이다.

그들도 연금술사 정기모임 때문에 온 것이다. 비록 이제 막 면허를 딴 초보자였지만, 연금술사라는 자부심만큼은 하늘을 찔렀다.

정작 그 자부심의 원천을 헌팅에 사용한다는 것이 에러였지만.

뮬리펜도 화가 나서 한마디 했다.

“저는 알샤인 교단의 성녀입니다. 더 이상의 무례는 용납하지 않겠어요!”

“성녀?”

그러고 보니 옷이 뭔가 특이했다. 그들은 잠시 뮬리펜을 이리저리 살펴봤다. 그때.

“여기서 뭐하십니까.”

카르안이 그들 사이로 들어왔다. 뮬리펜은 후다닥 카르안 쪽으로 달려갔다. 그녀가 멀어져 감과 비례해서, 두 연금술사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카르안은 그들을 본채도 하지 않고 말했다.

“음식 다 식겠습니다.”

“넌 뭐하는 놈이냐?”

둘 중 덩치가 큰 쪽이 내뱉듯이 말했다. 카르안은 그를 슬쩍 보았다. 겉멋만 잔뜩 들어간 애송이들. 카르안은 그냥 그들을 무시한 채 가려했다.

“너 이 자식. 사람 말을 무시 하냐?”

“너야 말로 뭐하는 놈인데.”

카르안이 짜증스럽게 말했다. 그는 당당하게 외쳤다.

“나는 연금술사다!”

“...... 그게 뭐?”

카르안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연금술사야 많이 봐왔다. 딱히 특이할 것도 없다. 거들먹거리려던 남자도 카르안이 반응이 없자, 당황한 분위기.

“잠깐. 저거 혹시 흑룡회 아니야?”

뒤에 있던 동료가 덩치 큰 남자에게 말했다. 백색 코트에 검은 용. 그가 알기로 흑룡회의 상징적인 옷이다.

하지만 덩치 큰 연금술사는 코웃음을 칠뿐이었다.

“보나마나 짝퉁이겠지. 나도 저런 거 하나 만들어 입으면 흑룡회겠네?”

“미안하지만 가짜는 아닌데.”

“그러면, 그러면 어쩔 건데? 그래봐야 깡패 새끼들 아니야? 쫄거 없잖아.”

“응. 깡패 맞아. 그러니까 계속 떠들어라. 우린 간다.”

상대하기도 귀찮았다. 카르안은 그냥 빠지려했다. 오히려 화가 난 것은 뮬리펜이었다.

“당신들같이 무식한 사람들도 연금술사가 되다니, 알펜 왕국도 망조가 들었군요.”

“하, 성녀님. 지금 깡패들 편을 들어주는 거야?”

그들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뮬리펜도 잠깐 멈칫했으나,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누가 뭐라해도 카르안은 그녀를 도와준 은인이고, 그런 은인이 부당한 모욕을 듣고 있다. 화낼 이유는 충분했다.

연금술사 한명이 이죽거렸다.

“성녀 같은 소리하네. 저 깡패의 여자잖아. 얼굴은 반반하게 생겨가지고........”

“거기까지 해라.”

누군가 그들의 말을 잘랐다. 그것은 카르안도, 뮬리펜도 아니었다.

화려한 망토를 걸친 남자였다. 그의 얼굴을 확인한 두 연금술사는 사색이 되었다. 그들의 까마득한 선배이자, 포션 제작의 전문가로 불리는 사내.

“저 사람은 네놈들 따위가 왈가왈부 할 수 있는 남자가 아니다.”

4급 연금술사 리젝트. 그가 연금술사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니, 리젝트님이 여기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연금술사들이 이곳에 올 이유는 하나밖에 없지.”

연금술사 정기모임. 알페라츠 백작령, 연금술길드의 간부인 리젝트도 참가할 만 했다. 그는 카르안을 힐긋 보더니 말을 이었다.

“내 후배들이 큰 실례를 했군. 미안하네.”

리젝트가 먼저 사과했다. 고개를 숙이지는 않았지만, 그 정도면 충분했다. 순식간에 흙빛이 된 연금술사 둘도 넙죽 엎드려 버렸으니까. 누군지는 몰라도, 그들 때문에 리젝트 같은 대선배가 사과를 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리젝트의 지랄 맞은 성격을 생각했을 때, 후환이 두려웠다. 저런 요직에 있는 선배에게 찍히기라도 하면 출셋길에서 밀려날 수 있다.

직업 불문하고 모든 신참들이 두려워하는 일이다. 그들은 흙바닥에 바싹 고개를 숙였다.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높으신 분을 몰라 뵙고........”

한 놈이 최악의 변명을 중얼거렸다. 카르안은 혀를 찼다.

“그러면 내가 그 높은 사람이 아니었으면, 계속 무시했겠다, 이런 뜻인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저는..........”

“나한테는 그런 뜻으로 들린다. 멍청한 놈아.”

카르안은 이쯤에서 넘어가기로 했다. 이미 리젝트가 고개를 숙였다. 둘의 사이는 참 애매모호 했지만, 적대할 필요는 없겠지. 그를 생각해서라도 ‘즉석 골렘 마사지’ 같은 것은 할 수 없었다.

“10초 줄 테니까 내 시야 밖으로 전부 꺼져.”

카르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둘은 후다닥 사라졌다. 민첩성 하나만큼은 기가 막혔다.

“아주 눈치가 없지는 않군.”

“그나저나 여기는 무슨 일이지?”

리젝트가 카르안과 뮬리펜을 번갈아 보았다. 카르안은 조금 어색했지만, 리젝트는 그에게 서스럼없이 다가온다. 카르안이 답했다.

“네가 말하지 않았나. 연금술사들이 이곳에 올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고.”

“하긴, 그것도 그렇군.”

리젝트가 씨익 웃었다. 카르안을 처음 봤을 때보다 조금 초췌해 졌지만, 이래도 얼굴의 웃음은 조금 더 그럴듯해졌다.

“기대고 뭐고 할 것도 없어. 나는 이곳이 처음이니까 말이야. 정기모임이 중요한 게 아니라, 오늘밤 잘 숙소도 없어.”

“쯧쯧.”

리젝트가 혀를 찼다. 그러더니 문득 생각난 듯 말했다.

“아, 그러면 내 집에 와서 자고가면 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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