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렘 깎는 노인 -->
카르안은 카라나리를 백마법사에게 맡겼다. 마법에 의해 타격을 입었지만,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라고 한다.
“젠장. 부족했어.”
마법사 길드 앞, 안에서 나온 카르안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봄바람에 연기가 실려 나갔다. 그는 손등의 문신을 문질렀다.
근력: 35
체력: 25
물리저항력: 13
마법저항력: 6
마나: 302 (-180)
능력치는 상승했다. 압도적일 만큼.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근접전에 너무 취약하다.”
골렘을 사용하는 연금술사. 그 위력 자체는 막강하다.
특히 전쟁 병기로써 골렘은 그야말로 압도적인 효율을 자랑한다. 비록 유지시간이 길지는 않지만, 짧은 시간동안 전장의 분위기를 바꿀 만큼의 힘. 뛰어난 골렘의 장인들은 대마법사 못지않은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그거야 전쟁에서 이야기고, 소수끼리의 싸움에서는 연금술사의 골렘은 힘이 많이 빠진다.
전쟁터에서는 연금술사를 지켜줄 병력들이 존재한다. 적진 한가운데에서 골렘을 조작하는 연금술사의 목을 따기란, 지휘관을 암살하는 것만큼 어려웠다.
반면 소수끼리의 싸움에서는 연금술사가 완전히 노출된다. 상대하는 입장에서도 골렘은 무시하고 연금술사만 노리면 그만이다. 몇 명이 경호한다고 하더라도, 분명 한계가 있다.
“뭔가 대책이 필요하다.”
오늘만 해도 위험했다. 다행히 이번 상대는 적당히 똑똑했고, 또한 적당히 멍청했다. 그의 틈을 노릴 만큼에 지식은 있었지만, 그 안에 숨겨진 칼날을 회피할 통찰은 없었으니까.
이번에는 운 좋게 승리했다. 다만 그런 행운이 언제까지 이어질까.
어느새 담뱃잎은 재와 연기가 되어 날아갔다. 일단 보고가 먼저다. 사이프카르에게 지금 상황을 알려야 했다.
카르안은 약간의 피로감을 느끼며, 흑룡회로 향해 걸어갔다.
2.
“이야기는 들었다.”
사이프카르가 카르안을 쳐다봤다. 도심에서 일어난 대소동. 그녀가 모를 리 없었다. 카르안이 카라나리를 길드에 데려간 사이. 이미 카르안의 괴물 사냥은 동네방네 소문이 퍼졌다.
사이프카르도 자세한 상황을 알지는 못했지만,적어도 카르안이 괴물과 싸워 이겼다는 것정도는 알았다.
“자세히 설명해봐.”
“오늘 저녁쯤이었습니다.”
카르안은 일어난 일을 요약해서 전달했다. 그가 카라나리에게 약을 전해주러 간 일, 그런데 타브가 난데없이 괴물로 변한 일. 마지막으로 줄락이라는 괴물이 습격한 일까지.
물론 숨길 것은 숨겼다. 특히 자신이 무르짐의 힘을 이어받았다는 것은 말이다. 많은 사람이 알아서 좋을 게 없다. 카르안은 그저 ‘정체불명의 괴한들’ 이 자신을 습격했다고만 했다.
“그놈들이 대체 왜 너를 습격한 거야?”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카르안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배운 연금술. 그것과 관련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아시다시피 제 연금술은 조금 독특합니다.”
카르안은 적당히 말을 지어내었다. 자신이 어린 시절 연금술 서적을 주웠다. 그 서적으로 공부를 해서 이런 수준까지 올 수 있었다. 자신은 다른 사람과 큰 인연 없이 살았으니, 만약 누군가 자신을 공격한다면 그 책이 원인일 것이다.
“그러면 그 책은?”
“다 외우고 태워버렸습니다. 남들이 알아봐야 좋을 게 없으니.”
“그렇겠지.”
정보를 독점한다. 이세계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굳이 남 좋은 일을 시켜줄 필요는 없으니까. 사이프카르도 어느 정도 수긍하는 눈치.
여기까지는 아무런 이상한 점이 없다. 그리고 그의 거짓말을 다른 사람이 확인할 방법도 없다.
“그리고 그놈들은 또다시 저를 습격한다고 하더군요. 참 곤란하게 말입니다.”
“이상한 놈들에게 물렸구나.”
사이프카르는 잠시 고민했다. 카르안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보고는 여기까지입니다. 대책은 제가 세우겠습니다.”
“잠깐 기다려.”
사이프카르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카르안을 찬찬히 살폈다.
“너 최근에 골렘에 한창 빠져있는 것 같은데.”
“그렇습니다만.”
“쯧. 그걸로는 부족할거다.”
사이프카르가 혀를 찼다.
“물론 골렘이 무지막지하게 강하긴 하지만, 술사인 네가 다치면 말짱 도루묵이라고.”
“.......”
“너도 경호라고 해봐야 러슬라이랑 제이크, 두 명밖에 없잖아. 잘못하다가는 큰일 날 수가 있어.”
카르안은 입을 다물었다. 과연 수많은 경험이 쌓인 전사인 것일까. 카르안의 문제점을 정확히 집어내었다. 그녀는 턱을 긁었다.
“뭔가 생각해둔 대책은 있냐.”
“아직은...... 지금 생각중입니다.”
“그 생각만하다가 놈들이 덮쳐오면 어쩌게?”
사이프카르는 책상을 톡톡 두들겼다. 뭔가 생각에 빠졌을 때의 표정이다. 그녀는 벽에 걸린 시계로 시선을 돌렸다.
“그나저나 슬슬 가볼때가 되었군.”
사이프카르가 코트를 챙겼다. 그리고 문을 향해 걸어간다. 그녀는 카르안에게 손짓했다.
“마침 잘 됐다. 너에게도 도움이 될 거야. 따라와.”
사이프카르는 그 말만 남기고 나가버렸다.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카르안은 그녀의 뒤를 따랐다.
사이프카르가 향한곳은 거대한 체육관. 이곳은 사이프카르가 커다란 창고를 빌려 개조한 건물이다.
목적은 조직원들의 훈련. 흑룡회의 조직원들은 대부분 2가지 일을 겸업했다. 흑룡회의 일 만으로는 비는 시간이 생기고, 또 수입도 약간 모자랐기 때문이다. 몸을 놀리는 것보다는 뭐라도 하는 편이 좋았다.
그런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열에 열 명은 전부 용병 일을 했다. 흑룡회의 일과 비슷했고, 의뢰만 해결하면 즉석에서 돈을 만질 수 있다.
용병과 조직원의 가장 큰 공통점이라면, 모두 몸을 험하게 굴린다는 것. 무기술은 조직원들에게 필수적인 기술이었다.
“조직원들의 전투력은, 곧 흑룡회의 힘이지.”
사이프카르는 조직원들에게 검술을 전수했다. 그 외에 석궁, 창등 다양한 무기술 까지.
조직원의 수만 많다고 장땡이 아니다. 그보다 질이 중요했다. 쓸모없이 부풀기만 한 몸집은, 중요한 순간 풍선처럼 터져버린다.
단단한 내실이 중요하다. 수도 많고 질도 높은 병력. 그것이 사이프카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전투조직이다.
러슬라이, 제이크 등의 고수들도 조교로 참여한다. 흑룡회는 그런 모임을 주기적으로 갖는다. 조직원들도 대부분 좋아했다.
공짜로 무기술을 배우는 것이다. 그것도 기사급, 그 이상의 실력을 가진 실력자들에게. 당연히 열심히 배우는 게 득이라는 것을 알기에, 대부분 농땡이 치지 않고 참여했다.
“여기는.......”
“네 약점을 극복하게 해주지.”
카르안은 눈앞에 커다란 창고를 올려봤다. 그도 이곳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다만 연금술사라는 특성상 주먹질할 일이 없기에, 따로 참여하지 않았을 뿐이다.
"근접전이 약하면, 검술을 익히면 그만 아니겠냐?"
사이프카르가 거대한 창고의 문을 열었다. 안에는 수십 명의 조직원들이 몸을 풀고 있었다. 제이크도 웃통을 벗고 어깨를 돌리고 있었고, 러슬라이는 목검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오셨습니까, 응?”
러슬라이가 사이프카르를 향해 인사했다. 하지만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 옆에 서 있는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오늘은 형님도 참가하십니까?”
“어쩌다 보니.”
카르안이 한숨을 쉬었다. 그놈의 병 때문에 몸이 안 좋기는 하지만, 체력은 차고 넘친다. 무리만 하지 않는다면 괜찮을 것이다.
사이프카르가 안에 들어서자, 모두들 조용해졌다. 그런 조직원들을 향해 그녀가 소리쳤다.
“자. 다들 근력운동부터 시작하고. 마나 돌아가는 놈들 있지? 그놈들은 바로 호흡법을 연습해라.”
“예!”
군기가 바싹 든 모습이다. 조직원들은 각자 팔굽혀펴기나 아령 등을 이용해 근육을 단련했다. 몇몇은 무거운 검을 휘두르기도 했다.
마나를 다루는 조직원들. 그들은 가부좌를 틀고 명상을 시작했다. 일단 검술의 기본은 근력이지만, 그들은 이미 그 경지를 뛰어넘었다. 차라리 마나를 조금이라도 쌓는 게 더 효율적일 것이다. 사이프카르는 카르안에게 시선을 돌렸다.
“카르안. 너 칼 좀 잡아 봤냐?”
“제대로 배우지는 못했습니다.”
카르안은 고개를 저었다. 단검은 몇 번 사용해 봤고, 주먹질은 제법 능숙할 정도다. 하지만 장검은 사용해 본적이 없다. 그나마 경력이라면 초등학교때 1년간 배운 대한검도가 전부.
“알겠어. 음.”
사이프카르가 팔짱을 꼈다. 그리고 부하들에게 명령한다.
“제이크는 애들 봐주고. 러슬라이. 너는 잠시 여기로 와라.”
“예.”
러슬라이는 얼른 뛰어 나왔다. 사이프카르는 목검 하나를 꺼내 그에게 던져주었다.
“지금 카르안이랑 한판 붙어봐.”
“형님이랑 말씀이십니까?”
러슬라이가 당황했다. 갑자기 싸움이라니, 그것도 그의 직속상관과 말이다. 사이프카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카르안이 싸우는 모습을 봐야 문제점을 알 수 있다.
“너무 진심으로 싸우지는 말고. 적당히.”
“알겠습니다.”
머뭇거리던 러슬라이. 그도 그녀의 뜻을 이해했다. 사이프카르가 그를 지목한 이유. 그것은 러슬라이가 믿을만한 숙련자이기 때문이다.
수준을 맞춘다고 어설픈 실력의 조직원과 대련하면, 오히려 상황이 더 위험해진다. 러슬라이 정도라면 초보자를 상대로도 적당할 만큼 힘조절이 가능하다.
“쌓인 거 있으면 이참에 풀어도 되고.”
사이프카르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녀는 카르안에게도 목검 하나를 건넸다.
“자, 너도 그냥 죽기 살기로 덤벼봐. 실전이라고 생각하고.”
“예. 알겠습니다.”
카르안도 목검을 쥐었다. 묵직한 나무가 손에 잡힌다. 무언가로 검게 칠한 목검은, 상당히 단단해 보였다.
둘은 연무장 위로 걸어갔다. 그러자 수련을 하던 제자들도, 그들을 지도하던 제이크도 슬쩍 고개를 돌렸다.
‘부 지부장님의 싸움을 보는구나.’
그들은 카르안이 골렘을 사용하는 것만 봤다. 직접 검을 겨누는 싸움은 처음.
대부분은 러슬라이가 승리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카르안은 연금술사, 러슬라이는 검사다.
중요한 것은 카르안이 어느 정도의 검술을 보여줄 것인지. 그게 그들의 궁금증을 자극했다.
사이프카르도 눈치 챘지만, 딱히 말리지는 않았다. 이럴 때 보지 말라고 해봐야 역효과밖에 더 나겠는가. 지금은 어느 정도 풀어줄 때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한수 배워가겠네.”
러슬라이와 카르안. 서로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각자 자세를 잡았다.
‘흠.’
러슬라이는 한손으로 검을 잡고, 나머지 손으로 안정감을 유지했다. 그는 평소 양손을 모두 사용하지만, 카르안을 상대로는 한손정도가 적당했다.
반면 카르안은 검도의 중단(中段) 자세를 취했다. 그가 아는 자세가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카르안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젠장. 뭘 어떻게 해야 하지.’
이런 결투는 처음이다. 상대는 러슬라이. 그의 검술을 본 카르안은 쉽게 긴장이 풀리지 않았다. 러슬라이가 웃기는 놈이기는 한데, 검술까지 웃기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둘은 잠시 서로를 노려봤다. 러슬라이도 이 순간은 진지한 표정. 카르안은 숨을 크게 몰아쉬고, 방어 자세를 취했다.
“먼저 들어갑니다!”
외침과 함께 러슬라이가 달려들었다. 처음은 정석적인 머리를 향해 내려찍기. 카르안은 얼른 목검을 들어 막았다.
따앙!
나무끼리 부딪히는 맑은 소리가 울렸다. 깔끔한 공격과 어설픈 방어. 러슬라이의 공격은 거기가 끝이 아니었다. 카르안의 허리를 향해 두 번째 공격이 들어왔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동작. 카라나리라면 어떻게 막고 반격을 하겠지만, 카르안과는 어어어? 하고 당황할 뿐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카르안은 그냥 힘싸움을 걸기로 했다. 그는 몸을 옆으로 틀면서, 쥐고 있던 목검을 러슬라이의 목검에 냅다 후려쳤다.
까앙-!
“어엉?”
싸움을 보던 사람들, 그들 전부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 그들의 시선이 위로 올라갔다가, 다시 아래로 떨어졌다.
-팍.
땅에 부러진 목검 하나가 박혔다.
카르안이 검을 휘두르자, 러슬라이의 목검이 그대로 박살나 하늘로 떠오른 것이다.
그리고 공중에서 몇 번 회전한 뒤, 땅에 그대로 낙하. 사이프카르도 살짝 입을 벌렸다.
“러슬라이. 목검 관리 제대로 안하냐.”
“아닙니다. 분명 튼튼한 목검인데.”
그가 억울하게 말했다. 목검 관리는 그의 몫. 매일 빠짐없이 관리해 왔다. 사이프카르도 그걸 알기에 더 말하지 않았다.
카르안이 주변을 둘러봤다. 어쩐지 분위기가 싸하다. 카르안이 어색하게 말했다.
“고작 목검하나 부러진 건데 왜들 그러냐. 이게 무슨 백오동나무도 아니고.”
“형님. 이 목검은 보통 물건이 아닙니다.”
단단하기로 유명한 흑단(黑檀)나무를 가공해 만든 물건. 거기다가 약간의 보호마법까지 걸었다. 내구성만큼은 어지간한 진검 못지않다.
그게 두 동강나버렸다. 단 두번 부딪혔을 뿐인데.
그 모습을 본 조직원들의 머릿속에 공통적으로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딴건 모르겠는데, 힘 하나는 괴물이다!'
========== 작품 후기 ==========
12시 정각에 두 편을 뙇뙇! 올리는 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더군요. 요즘 손이 느리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도 소설을 봐주시는 독자님들 덕에 힘이 나네요. 특별한 일이 없으면 1일 2연재는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