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투루스의 자식들 -->
“한심한 놈. 사냥개 역할도 못하나.”
타브가 쓰러진 자리. 검은 연기가 형체를 이루었다. 검은색 몸과 대조적으로, 흰색 로브를 쓰고 있다. 타브가 처음 쓰고 있던 것과 비슷했다.
타브에게 힘을 준 괴물. 그는 쓰러진 타브를 보고 혀를 찼다.
그가 처음부터 노리는 것은 카르안이었다. 그게 그가 섬기는 주인의 뜻이었기 때문이다. 괴물은 알페라츠 백작령에 도착하고, 카르안을 일주일간 관찰했다.
딱히 카르안의 역량을 알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반쯤 폐인이 된 검사. 타브를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비록 약에 찌들었지만, 그래도 쓸 만한 몸뚱아리다. 기사단장급 실력자. 마나도 잘 다룰 수 있고, 무엇보다 마음이 한없이 무너져 있었다.
그는 타브의 팔을 고쳐주고, 흉하게 변한 피부를 재생시켜 주었다.
어차피, 껍데기뿐이지만. 사람을 조련하는데 그 정도 노력은 필요했으니까.
몇 번의 치료가 끝났다. 완전한 회복. 타브는 그에게 완전히 마음을 열었다. 기적이라도 본 기분이겠지.
그의 계획대로다. 마음을 연 상대만큼 쉽게 세뇌시키기 쉬운 것도 없다.......
그는 타브의 정신을 송두리째 뽑고, 의식을 변화시켰다. 그 과정에서 성격이 조금 역겹게 변했지만, 어차피 타브는 소모품에 불과했다.
“그렇게 공들였는데.”
지금 그 앞에 형편없이 쓰러져있다. 주먹 한방에. 그는 타브의 몸으로 손을 뻗었다.
“으.........”
검은 마나가 타브의 몸에 주입되었다. 그러자 타브는 잃었던 의식을 되찾았다. 그는 흐릿한 눈으로 검은 괴물을 올려다봤다.
“주, 주인이시여.”
“한심한 놈.”
경멸어린 말투에도, 타브는 어쩔 줄 몰라 했다. 군주에게 죄를 지은 패잔병 같은 모습. 그는 몸이 조금 회복되자마자, 절하듯 땅바닥에 엎드려서, 머리를 깊게 박았다.
“죄송합니다.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변명 따위는 필요 없어.”
그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을 사람들이 그를 보고 있다. 몇몇은 공포에 질린 눈. 다른 몇 명은 호기심에 가득 찬 눈.
겁먹고 도망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괴물은 다시 시선을 돌렸다. 타브가 힙겹게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한번만 더 충성할 기회를 주십시오.”
“좋다. 마지막 기회를 주지.”
괴물이 명령했다.
“전부 태워라.”
우두둑!
검은 연기가 폭발했다. 동시에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사방으로 퍼진다. 타브의 몸이 완전히 변하고 있다.
검은 갑옷이 깨지고, 근육이 불어난다. 갑작스러운 팽창에 피부가 찢어지고, 그 위에 다시 검은 각질이 생겼다.
“오오오!”
타브의 가슴이 떨려왔다. 이 느낌이다. 세상의 모든 힘을 손에 넣은 듯한 느낌. 압도적인 힘이 뱃속부터 부글거린다.
이미 그가 괴물이 되었고,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온 몸이 찢어지는 고통 따위는 느껴지지도 않았다.
‘마약 따위나 하는 게 아니었다.’
여기, 그런 싸구려 마약과는 비교할 수 없는 쾌감이 있다. 하늘까지 찢어버릴 것 같은 힘. 그가 거대하게 변한 손을 움켜쥐자, 온 힘이 팔에 모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경비병을 불러!”
“젠장, 영주는 뭐하는 거야! 괴물이 나타났는데!”
그제야 사람들은 상황을 파악했다. 한가로이 구경을 할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경비병을 부르기 위해 달려가거나, 자기 집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하지만 경비병이 와도 달라질 것은 없어보였다. 영지의 몇 없는 경비병. 서둘러 도착한 그들은, 떨리는 손으로 괴물을 올려봤다.
크기는 3미터가 넘어 보인다. 온 몸은 단단한 무언가로 감싸져 있었다. 광택조차 없는 흑색의 갑각.
경비병은 자신의 손에 있는 창을 봤다. 이런 가느다란 창은 힘껏 찌른다해도 박히지도 않을 것 같다.
“저것은........”
카라나리가 말을 흐렸다. 카르안과 카라나리도 괴물 쪽에 도착한 것. 카르안이 혀를 찼다. 타브가 또다시 변형을 일으키고 있다.
“저놈은 마법소녀도 아니고, 뭐 저리 변신을 좋아하나.”
이번에는 조금 더 스케일이 크다. 그의 골렘보다 더 커졌으니까.
하지만 타브보다도 신경 쓰이는 게 있다. 카르안은 위로 시선을 돌렸다. 변형돼 타브 위에, 무언가 둥둥 떠 있다.
“너는 뭐냐.”
“크흐, 네가 날 보는 것은 처음이겠지.”
그가 하얀 로브를 집어던졌다. 곧 흉측한 몸체가 드러났다. 거대한 곤충. 그의 눈이 번들거렸다.
“내 이름은 줄락. 네 놈의 최후를 장식하기 위해 왔다.”
“장식은 니 더러운 몸뚱이부터 하는 게 좋을 거다.”
카르안이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 괴상한 바퀴벌레 같은 것을 수십 배 확대한 모양. 그런 형태다보니,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친다.
타브가 콧김을 내뱉었다. 보이지 않는 실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줄락이 말했다.
“카르안. 너는 내가 직접 목을 따주마.”
“그런데, 잠깐만.”
카르안이 손을 저었다.
“대체 이유나 좀 물어보자. 왜 날 죽이려는 거냐.”
“답해줄 이유는 없지.”
줄락이 기괴한 목소리로 말했다. 카르안도 예상했다는 듯 말했다.
“조금 뒤에는 그 이유가 생길 거다. 몇 대 얻어맞다 보면 말이지.”
줄락은 카르안에게 달려들었다. 동시에 타브에게도 공격 명령을 내렸다. 그를 방해하는 여자, 카라나리를 막기 위해.
“크아하!”
타브가 유쾌하게 달려갔다. 카라나리가 아닌 카르안을 향해서 말이다. 줄락이 아차, 싶었다.
“젠장, 세뇌를 너무 걸어놨나.”
카르안을 찾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설정했다. 그 바람에 명령에 오류가 생긴듯하다. 줄락은 대신 카라나리에게 몸을 돌렸다.
‘어차피 내가 죽이나, 저놈이 죽이나.’
줄락은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변형시켰다. 검은 마나가 푸욱 퍼지고, 그의 몸이 물렁하게 변했다.
쿠웅!
먼저 붙은 쪽은 카르안의 골렘과 타브. 둘이 육중한 소리와 함께 몸을 부딪쳤다.
우두둑.
무언가 우그러드는 소리. 타브의 몸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비록 덩치는 그가 더 컸지만, 아이언 골렘의 힘은 무시무시했다.
“이미 정신이 없어 보이기는 하는데 말이야.”
카르안이 골렘에게 공격을 명령했다.
“골렘이랑 힘 싸움하는 미친놈은 없을 거다.”
“으으........”
처음에 기세 좋게 덤빌 때와는 다르게, 점점 타브의 몸이 밀려났다. 아이언 골렘의 눈이 빛났다. 팔이 우드득 소리와 함께 꺾이기 시작했다.
계속 힘싸움을 하면 손해라는 것을 눈치 챘는지, 타브가 한번 크게 물러났다. 그리고 다시 돌격. 이번에는 타격 싸움이다.
타브의 주먹이 골렘에게 날아들었다. 카르안이 명령했다.
“두 배로 갚아줘라.”
타브의 주먹이 골렘을 후려쳤다. 골렘은 막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아이언 골렘은 몸 자체가 거대한 방패였고,
또한 온 몸이 흉기였기 때문이다.
“크어억?!”
골렘의 주먹이 움직였다. 방어 없는 공격. 미친 듯이 쏟아지는 양 주먹의 ‘폭격’이다. 뭔가 잔득 박살나는 소리와 함께, 타브는 온 몸이 우그러들었다.
“세상에.”
경비병 뿐 아니라, 도망가던 사람들도 걸음을 멈췄다. 괴물과 골렘의 싸움. 그리고 그 골렘을 뒤에서 조종하는 남자. 카르안이 그들의 눈에 들어왔다.
“저 남자는.”
카르안을 아는 사람들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를 모르는 사람도, 흑룡회의 흰색 코트는 알고 있었다.
“흑룡회의 부 지부장이라는군.”
“누가 괴물인지 모르겠어.”
타브는 제대로 반격도 못하고 얻어터지고 있다. 카르안이 온 신경을 기울여 만든 골렘. 그 강철 거인이 진짜 힘을 발휘하고 있다.
비록 타브의 주먹도 물렁주먹은 아니기 때문에, 갑옷이 군데군데 일그러지고 마나가 흘러 나왔다. 하지만 그 정도는 기동에 아무 문제도 일으키지 않는다.
“슬슬 마무리다.”
카르안이 손짓했다. 그러자 허공에 또 하나의 마법진이 떠올랐다.
땅에서 약 10미터 이상이다. 뜬금없는 위치기에 카르안을 제외하면 눈치 채지 못했다. 그 곳에서 골렘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꽈악-
아이언 골렘이 타브를 붙잡았다. 단단한 고정. 그리고 그렇게 붙잡힌 타브를 향해, 다른 골렘 하나가 더 떨어졌다.
2미터짜리 골렘은 운석처럼 타브에게 떨어졌다. 그것을 눈치 챈 타브도 피하려 했지만, 양 팔이 단단히 고정되었다. 타브의 변형된 눈이 크게 빛났다.
‘이럴 수는 없다.’
분명 그의 주인께 힘을 받았는데, 이건 이상하다. 당장 저 골렘을 부수고, 카르안을 찢어발겨야 하는데.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지 않은가. 마치 거대한 철벽 앞에 있는 것 같았다.
“크아아아아아아악!”
커다란 비명. 그것이 타브의 유언이었다. 공중에서 떨어지는 골렘은 타브를 향해 손날을 내리쳤고, 그는 세로로 길게 쪼개져버렸으니까.
몇 번 꿈틀거리던 타브는, 완전히 힘을 잃고 쓰러졌다. 검은 피가 넘쳐난 강물처럼 주변으로 번져나갔다.
“이제 저놈 차례로군.”
카르안은 시선을 돌렸다. 골렘을 조작하느라, 카라나리를 도와주지 못했다.
‘문제없겠지.’
카라나리는 쉽게 쓰러지지 않을 것이다. 그는 카라나리를 돕기 위해 시선을 돌렸다.
“응?”
하지만 곧 그는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카라나리가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다.
“어리석은.”
줄락도 무사하지는 않았는지, 몸에서 뭔가가 줄줄 흐르고 있다. 사람으로 치면 부상을 당해 피를 흘리는 모습이다. 그가 중얼거렸다.
“내가 저놈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착각했나?”
그는 쓰러진 타브를 보며 말했다. 카라나리는 대꾸하지 못했다. 그저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카르안과 타브가 싸우는 사이, 줄락과와 맞붙은 카라나리. 처음에는 비등비등했다. 줄락은 처음부터 피하기에 집중 했으니까.
하지만 그 피하기가, 너무 재빠르다. 몸을 반쯤 유체로 만들어 이리저리 빠져나가는 줄락은, 상대하기 쉽지 않았다. 카라나리의 공격은 계속 빗나가는데, 그의 공격은 자꾸 카라나리를 괴롭힌다.
“하아, 아직!”
카라나리가 자세를 가다듬고 발을 움직였다. 보법, 순간적으로 거리가 확 줄어들었다. 그 상황에 보통 사람이라면 당황하기 마련이다.
그와 동시에 베기. 불꽃이 줄락을 향해 그어졌다.
“잔재주를.”
줄락은 몸을 유체로 변형시키며, 그녀의 공격을 회피했다. 그녀의 검로에 해당하는 부분만 유체로 바꾸어 데미지를 최소화 시킨다.
그리고 등 뒤로 점프. 날카롭게 변한 손이 그녀의 빈 등, 다리를 베었다. 날카로운 일격에 카라나리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크윽!”
그녀는 이를 악 물로 뒤돌며 검을 휘둘렀다. 주저앉은 채로 낮은 일격. 이번에도 줄락은 높이 떠오르며 피해내었다.
“귀찮게 구는구나!”
그의 손에 보랏빛 힘이 서렸다. 줄락이 그 손을 움직이자, 카라나리는 공중에 떠올랐다. 중력을 무시하는 듯한 힘. 염동력이다.
‘이대로는 당한다.’
카라나리도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그녀는 이를 물고 다리를 움직였다. 허공답보(虛空踏步). 순간적으로 그녀가 공중에서 허공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목적지는 줄락.
“어엇?”
그 순간은 줄락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공중에 떠서 방향을 틀다니! 그는 급하게 몸을 유체로 바꾸려 했으나, 조금 늦었다. 그의 몸에 석양처럼 붉은 불길이 생겼다.
“크아악!”
그가 괴성을 지르며 상처를 감싸려했다. 하지만 마력으로 생성된 불길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그의 상처를 태웠다.
“더러운 잡종이!”
줄락이 눈을 까뒤집고 카라나리에게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그녀도 반격하지 못했다. 다리에 검상을 입었는데, 급하게 큰 기술을 사용했다.
카라나리는 억지로 다리를 움직이려 했지만, 곧 힘이 풀려 쓰러져 버렸다.
허공에 검은 구체 수십 개가 떠오르더니, 그녀의 온 몸을 강타했다. 다리 부상 때문에 회피는 불가능. 카라나리는 검을 세워 최대한 막으려 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콰아앙!
한번 방어가 뚫리자, 계속해서 공격이 들어온다. 위를 막으면 허리에, 허리를 막으려하면 다리를 파고든다.
어둠에 강타당한 몸이 붕 떠올랐다. 그리고 줄 끊어진 인형처럼 쓰러졌다.
피투성이가 된 카라나리는 그를 노려봤지만, 줄락은 카르안으로 시선을 돌릴 뿐.
쿠웅-!
마침 타브가 두 동강 나서 쓰러졌다. 카르안은 쓰러진 카라나리를 놀란 눈으로 보더니, 줄락으로 시선을 돌렸다.
둘의 눈이 마주쳤다.
줄락이 잔인하게 웃었다.
“이제야 서로 방해꾼이 사라진 셈이군.”
“카라나리.”
카르안은 줄락을 무시했다. 그는 카라나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런 놈한테 당하면 어떻게 하냐.”
“죄송........ 합니다.”
카라나리가 작게 말했다. 끊어질 듯 가녀린 목소리. 줄락이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 냉정한 놈. 네놈도 나랑 비슷한 놈이었군. 하긴, 무르짐의 그릇이라면 그 정도는 되어야지.”
“그럴지도 모르겠어.”
카르안이 한숨을 내쉬었다. 걱정해 주는 척, 착한 척은 영 적성이 아니었다.
카르안은 그저 카라나리를 볼 뿐. 그가 처음 온 날, 타브에게 쓰러진 카라나리가 떠올랐다.
그때는 서로의 인연이 흐릿했고, 거리가 있었다. 2일간 일한 사이일 뿐이었으니.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달랐다. 서로 조금 가까워진 관계. 둘은 서로의 동업자였고, 일종의 파트너가 되었다.
“상관없겠지. 어울리는 최후를 선물해주마!”
줄락이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곧 달려들 기세. 카르안은 잠시 카라나리를 보더니,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너.”
카르안의 감정에 반응한 것일까. 두기의 골렘이 눈을 빛냈다. 그는 낮게 분노하고 있었다. 카르안이 입을 열었다.
“편하게 죽을 생각은 안하는 게 좋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