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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션으로 무한성장 (56)화 (56/124)

<-- 악투루스의 자식들 -->

연주는 밤늦게까지 계속되었다. 레이아라는 가끔 노래를 부르고, 또 가끔은 악기를 연주했다.

결국 그녀가 악기를 놓은 것은 새벽이 다 되어서. 그 시간까지 남아있던 술꾼들은, 그녀에게 취기어린 갈채를 보냈다.

“훌륭한 연주였어!”

“저 무희가 레이아라라고 하던데.”

“최고다! 레이아라!”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으며, 레이아라는 고개를 깊게 숙였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묘하게 힘이 없었다.

그녀의 유리알 같은 눈동자가 한 구석을 향했다. 카르안이 있던 자리. 거기에는 카르안이 아닌 다른 남자가 있었으니까.

‘쉽지 않네.’

레이아라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 앞에서는 미소를 유지했다. 인사가 끝나고, 그녀는 무대 뒤로 내려왔다.

“하아, 힘들어 죽겠어.”

그녀가 어깨를 풀었다. 긴 시간동안의 연주. 중간 중간 교대도 하였지만, 아무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나마 용병일로 단련되어서 이정도인 것이다. 보통 초보 무희들이 레이아라만큼 길게 연주하는 일은 없다.

긴 연주로 손끝이 얼얼하고, 목은 칼칼하다. 그녀는 직원이 건네주는 물을 마셨다.

“레이아라. 수고했어. 레이아라만 오면 매출이 급상승 한다니까.”

그녀를 스카웃한 남자. 루이즈가 웃으며 말했다. 그의 예상이 맞았다. 처음에는 엘프라는 희소성만 보고 접근했는데, 예상 외로 노래도 잘하고 악기도 기가 막히게 다루었다.

덕분에 루이즈는 표두회 안에서도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다닐 수 있다. 특급 신인을 낚아챈 것이다. 큰형님 레드스톰도 올라가는 매상에 아주 흡족해했다.

이대로 크면, 조직의 3인자 정도는 노려볼 수 있지 않을까. 부동의 1인자 레득스톰은 처음부터 예외였고, 부대장 검은 늑대 록프올도 공포 그 자체였다. 싸움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소문으로는 무시무시하게 강하다고 들었으니까.

그래도 3인자 정도라면. 그가 레이아라 에게 다가갔다.

“그나저나 레이아라. 조금 중요한 이야긴데.”

“네?”

루이즈가 그녀에게 다가갔다. 주변을 한번 둘러보고, 그가 레이아라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실은 만나고 싶어 하는 손님들이 있어. 따로 말이야.”

“거절할게요.”

“들어봐봐. 이 손님이 돈을.........”

“아, 안 해요. 안 해.”

레이아라가 손을 휘휘 저었다. 안 그래도 힘들어 죽겠는데, 그녀의 기분은 바닥까지 수직 낙하했다.

노골적인 밤 상대 요청이다. 저녁노을은 고급 술집. 그만큼 오는 손님들도 전부 재력가들 뿐.

그 중에서 아름다운 무희를 안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사람들은 매니저인 루이즈에게 돈을 찔러주며 부탁을 했고, 결국 레이아라에게 이야기가 건너간 것.

사실 특별한 일도 아니다. 무희가 몸을 파는 일은 어떻게 보면 흔한 일. 술집에서 춤을 추던 여자가, 남자의 침대 위에서 춤을 춘다........ 오히려 그 일을 반기는 무희들도 있었다. 큰돈을 만질 수 있으니까.

“정말? 액수나 한번 들어보라니까? 나도 이일하면서 이만큼 부른 사람을 못 봤어.”

“루이즈씨.”

레이아라가 말했다.

“저 옷 갈아입으러 가거든요? 그만 비켜주세요.”

하지만 레이아라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이미 돈이라면 충분히 벌고 있는데, 뭐 하러 몸을 팔겠는가. 그녀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루이즈를 노려봤다.

그녀는 무희였지만, 동시에 4급 용병이기도 했다. 그녀의 살기어린 눈빛에 루이즈는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부자들의 제의를 거절한 것은 아쉽지만, 레이아라에게 함부로 대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지금 황금알을 낳아주는 거위고, 루이즈는 그 거위의 배를 가를 만큼 멍청하지는 않았으니까.

적어도 상품 가치가 있는 지금은 말이다. 루이즈의 눈이 잠깐 빛났다. 하지만 레이아라는 눈치 채지 못했다.

“하아. 이 일도 오래할건 아닌가봐.”

육체노동을 피해왔더니,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팍팍 받는다. 그녀는 평소에 있던 옷으로 갈아입고, 탈의실 밖으로 나왔다. 루이즈는 아직도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레이아라. 마차 안타고 갈 거야?”

“그냥 걸어갈래요.”

“밤길도 위험한데.”

그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보통 술집이 끝나는 것은 야밤이니, 마차를 이용해서 무희들의 귀갓길을 챙겨준다.

혹시라도 그녀들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큰 손해니까. 당연히 마차 안에는 조직원 몇 명이 타고 있다.

하지만 레이아라는 코웃음을 쳤다.

“이래봬도 4급 용병이라서요. 밤길 걱정은 안 해주셔도 되요.”

고양이가 호랑이 걱정해주는 판이다. 레이아라는 고개를 획 돌리고 술집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시원한 밤공기가 몸을 휘감았다. 텁텁한 술집 공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상쾌한 기분.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았다.

“아,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답답했던 기분이 조금은 풀렸다. 시원한 밤공기. 그녀가 마차를 타지 않는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

밤길을 혼자 걷는 것은 그녀가 좋아하는 일이니까. 그녀는 하늘에 펼쳐진 다이아몬드를 바라보며, 어두운 밤길을 걸었다.

“그나저나 밥만 먹고 진짜 가버리냐.”

카르안이 떠올랐다. 간단하게 식사만 하고 간다더니. 정말로 간단하게 식사만 하고 떠나버렸다. 언행일치의 끝이라고 해야 하나.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철벽도 이런 철벽이 없었다.

“괜찮은 남자 하나 낚아보려 했는데. 쉽지가 않네. 쉽지가 않아. 그보다.”

레이아라가 앞을 향해 말했다.

“거기 숨어있는 사람. 있는 거 다 아니까. 빨리 나오시지?”

레이아라의 귀가 살짝 움찔했다. 누군가 골목에 있었다. 단순히 걸어가는 게 아니라, 가만히 멈춰 서서. 레이아라는 민감한 청각은, 숨어있는 사람의 미묘한 숨소리까지 잡아내었다.

우연이라기에는 너무 절묘했다. 사람도 없는 밤거리에, 골목에 홀로 숨어있는다. 그녀가 지나가는 길에 맞춰서. 그리고 레이아라는 그것을 그냥 속아줄 만큼 바보는 아니었다.

딱히 위협적일 것도 없다. 무기가 없다 해도, 이 마을 안에서 그녀만한 전투력을 가진 사람은 별로 없다.

설령 정말로 위험하다고 하더라도, 그냥 술집으로 뛰어가면 그만이다. 표두회의 사람들과 협력하면, 어지간해서는 문제 없을 것이다.

그녀의 말을 들었는지, 골목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그녀도 아는 사람이었다. 그가 말했다.

“놀래켜 줄 생각이었는데, 다 틀려먹었군.”

“카르안씨?”

그녀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카르안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레이아라는 깜짝 놀란 표정. 카르안이 말했다.

“뭐하다 이제 나온 거야. 그냥 집에 가려고 했는데, 아슬아슬하게 맞춰 나오는군.”

“저야 지금 일이 끝났으니까요. 그러면 카르안씨는?”

“나도 지금 일 끝났어.”

열심히 골렘을 완성한 카르안.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 보니 어느새 새벽이었다. 결국 목표대로 아이언 골렘을 완성하기는 했지만, 너무 늦은 시간.

그는 마지막으로 술집 저녁노을에 들려 한잔만 하고 집에 가려했다. 기황이면 레이아라에게 인사도 하고.

하지만 술집은 영업이 끝나가고 있었다. 10분 정도면 문 닫는다는 소리를 듣고. 그는 근처 건물 벽에 몸을 기대었다.

레이아라가 나온 것은 30분 후. 마침 카르안이 포기하고 가려는 찰나에 그녀가 나타난 것이다.

“온다고 말을 하지. 제가 마차타고 갔으면 어떻게 할 뻔했어요.”

“그러면 바람 맞는 거지 뭐.”

카르안이 속 편하게 말했다. 레이아라가 눈짓하자, 카르안도 발걸음을 옮긴다. 두 사람은 말없이 걷기 시작했다.

조용했다. 새벽의 거리는, 낮과 정 반대의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마치 처음 와보는 도시 같다.

달빛으로 채색된 두 사람만의 공간.

그 침묵 속에서, 레이아라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정말로 제게 할 말이 뭔가요. 카르안씨.”

2.

“할 말이라.”

“그야, 당신이 이유도 없이 나를 기다릴 리는 없으니까.”

레이아라가 쓰게 웃었다. 아름다운 무희를 기다려주는 폭력 조직의 이인자. 나름 퇴폐미 넘치는 로맨스지만, 아무래도 카르안에게 기대하기는 힘든 것이었다. 카르안이 웃으며 말했다.

“아름다운 여인을 기다리는 것은 모든 남자의 꿈이지.”

“농담하지 말고요.”

레이아라가 팍 식은 얼굴을 했다. 카르안도 진지하게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농담은 여기까지.

“하늘의 문. 너는 뭔가 알고 있지?”

“어머, 제가 뭘 알겠어요? 전 아무것도 몰라요.”

“거짓말.”

무르짐이 카르안의 몸에 강신했을 때, 그녀는 무르짐과 카라나리의 대화를 모두 듣고 있었다. 그리고 뭔가 이상하다는 것까지.

카르안은 무르짐의 말에서 한 가지 이상한 내용을 들었다. 하늘의 문이 불완전하다.

그렇다면, 왜 알샤인 교단은 그 물건을 노렸을까. 알샤인의 사제들은 모르겠지만, 그들의 신, 알샤인까지 그것을 몰랐을까.

또한 엘프들은, 왜 그 불완전한 물건을 지키려고 목숨을 걸었을까.

마지막으로. 정말 불완전한 물건으로, 알샤인의 신성력이 있는 자들을 완벽하게 차단하는 결계. 그것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여기까지는 약간의 의심 정도로 끝날 수 있었다. 불안전하다해도,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쓸 만한 성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알샤인 교단이 노렸다. 그리고 엘프들은 그 물건을 지키려했다.

그런데 엘프의 숲. 르네키르다에서의 일이 있은 후였다. 하늘의 문. 그것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레이아라의 표정이 약간씩 변했다. 의문스러운 표정.

평소였으면 그 미묘한 차이를 눈치 채지 못했겠지. 하지만 카르안은 하늘의 문에 대해 조금 의문을 가지고 있었고.

그 의심은 레이아라의 표정과 연결되어, 하나의 선을 완성했다.

“이해 못하겠으면, 다시 한 번 묻지. 정말로, 정말로 말이야.”

카르안이 레이아라의 어깨를 잡았다.

“하늘의 문은 불완전한 물건인가?”

잠깐의 정적. 레이아르는 카르안을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곧 한숨을 내뱉었다.

“저도 장담할 수는 없어요.”

“말해봐.”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저의 부모님은 연금술사였어요. 국가에서 진행하는 큰 작업에도 동원될 만큼, 능력 있으신 분이었죠.”

“그래.”

카르안은 레이아라의 부모를 떠올렸다. 어머니 아버지 모두 연금술사였고, 비인도적인 실험을 거부하다가 국가에 의해 처분 당했다.........

“저희 부모님도, 예전부터 하늘의 문을 만드는 일에 참여하셨어요. 처음부터는 아니었지만, 끝까지는 말이에요.”

“흠.”

“그런 부모님께서 장담하신 물건이에요. 몇 백 년의 시간, 긴 시간을 들인 노력 끝에 완성했다고.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고리. ‘완벽한’ 하늘의 문을 완성하는데 성공했다고.”

카르안이 머리를 굴렸다. 무르짐은 세상에 유일무이한 천재중의 천재였다. 반면 엘프의 연금술사들은, 그에 비해서 부족하다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면, 무르짐은 그저 하늘의 문을 잠깐 사용한 게 끝이었고, 엘프들은 몇 백 년 동안 그 물건을 실험하고, 연구하고, 구축해왔다.

어떠한 계기가 있다면, 약간의 실수로 무르짐이 오해한 것이 아닐까.

완벽한 물건을, 완벽하지 못하다고 오해했다. 그 과정에 무언가 누락된 것이 있을 것이다........

“혹시 강신에 대해 아는 것이 있나.”

“제가 무슨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인줄 알아요?”

레이아라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뜬금없이 강신은 무슨 강신인가. 카르안도 이번에는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군. 그것까지는 모르겠지.”

“어휴. 참.”

카르안이 어깨를 잡던 손을 풀었다. 레이아라는 팔을 휘휘 돌렸다.

‘뮬리펜을 찾아야하나.’

뭔가 큰 줄기를 하나 놓치고 있다. 당장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만약 이것을 놓친다면 나중에 큰 문제를 일으킬 것 같았다.

조금 껄끄러워도, 전문가를 찾아봐야 했다. 그때 레이아라의 눈이 빛났다.

“앗, 지금 다른 여자 생각했죠?”

“네가 무슨 초능력자냐.”

“초능력 따위와 비교할 수 없는, 여자의 감이랍니다.”

레이아라가 툴툴거리며 말했다. 카르안은 두 팔을 들었다.

"뭐, 여자가 맞기는 한데."

"거봐. 저는 제 앞에서 다른 여자 생각하는거 싫어하는데."

다시 침묵. 두 사람은 밤길을 계속 걸었다. 어느새 레이아라가 얻은 여관이 보였다.

"제 집은 여기.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조심해서 들어가."

레이아라가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여관을 향해. 하지만 몇걸음 안가서 레이아라의 발이 멈췄다. 카르안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일 있어?"

"카르안씨."

레이아라가 뒤돌았다. 장난기 가득한 표정. 그녀의 분홍빛 입술이 열렸다.

"어차피 밤도 얼마 안남았는데, 조금 쉬었다 가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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