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리떼 -2 -->
“건방떨지 마라!”
그가 일으킨 지진 덕에 건물은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그 잔해 가운데서, 알샤인이 분노에 찬 표정으로 소리쳤다.
그리고 괴생명체, 사도들에게 돌격을 명령했다. 몸을 변형시킨 사도들이 달려들었다.
“정말 개미떼처럼 많구만,”
무르짐이 한숨을 쉬었다. 알샤인이 그의 사도들을 전부 소환했다. 르네키르다를 멸망으로 몰고 가던 병력들. 그들 전부가 몰려오고 있다.
사도들의 손에서 빛의 검이 소환되었다. 하나하나가 기사의 오러 못지않은 힘을 가지고 있다.
사도는 결코 약하지 않다. 단순히 수만 많은 피라미들이었다면, 르네키르다를 궁지까지 몰고 갈수 있었겠는가.
비정상적으로 발달된 근육. 그들의 근력은 오크를 뛰어넘었다. 그리고 육중한 몸에 어울리지 않게 엘프처럼 날렵하기까지 했다.
거기에 전원이 빛의 검을 사용할 수 있다. 오러와 비슷한 힘을 가진 알샤인의 빛. 비록 이성이 없어 고급 검술을 펼치지는 못하지만, 타고난 전투감각과 반사 신경을 가지고 있기에 위험한 상대였다.
그 사도들이 검을 앞세웠다. 알샤인의 신성력으로 강화된 빛들, 그 검 끝이 골렘들을 향했다.
“캬아아악!”
사도들이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검을 찔렀다. 빛의 검이라면, 아무리 마나골렘이라도 타격을 입을법했다.
과연 주먹을 휘두르던 골렘도, 공격을 허용한 순간 잠시 비틀거렸다. 그러더니 눈이 붉게 빛났다. 그 입에서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분석 완료.”
“뭐냐!”
알샤인이 소리쳤다. 검에 찔린 골렘이, 갑자기 검게 변해버렸다. 짙은 어둠. 빛의 상극인 어둠의 형태로 변한 것이다.
찔러 넣었던 빛의 검이 사라진다. 어둠에 삼켜진 것이다. 골렘은 검을 찌른 사도에게, 육중한 주먹을 휘둘렀다. 주먹에 맞은 사도의 몸이 폭탄이라도 맞은 것처럼 산산조각 나버렸다.
다른 곳도 비슷한 상황. 검게 변해버린 골렘 앞에서, 사도들은 맥없이 쓰러졌다.
사도들의 공격수단이 파훼되었다. 반면 골렘들은 그들이 이 잡듯이 때려잡을 수 있다. 승패는 뻔했다. 일방적인 학살. 무르짐이 그 살육을 가속시켰다.
“전부 태워라.”
지이이잉-
마찰음과 함께, 골렘의 주먹이 붉게 빛났다. 그리고 다음 순간, 골렘이 양 손에서 불꽃을 뿜어내었다.
마나 골렘은 다른 골렘들과 다르게, 온갖 마법을 자유롭게 사용했다. 거대한 덩치와 내구성, 아이언 골렘 급의 힘에 마법까지 사용한다. 그야말로 연금술사의 최종병기.
그 괴물이 능력을 완벽하게 발휘한다.
“으아악!”
사도들이 비명을 질렀다. 하늘색 불꽃, 레이아라가 사용하던 단죄의 불이다. 마나 골렘은 그 불을 화염방사기처럼 뿜어대었다. 불꽃들이 사도들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푸른 파도가 넘실거린다. 마치 개미떼를 소각하는것 같은 모습. 알샤인이 소리쳤다.
“산개해라!”
산개시켜야 한다. 뭉쳐있다가는 저 불에 단체로 녹아버릴 것이다. 산개를 통해 저 불꽃의 효율성을 떨어뜨려야 했다.
알샤인은 상황을 파악했다. 비록 빛의 검이 무력화되고, 사도들이 녹아내리고 있지만. 이 대신 잇몸이다. 빛의 검 없이 싸워야했다.
승산이 없지는 않다. 여전히 사도의 괴력인 굉장했고, 물리적으로 타격을 가하면 골렘들에게도 피해가 축적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살아남아 골렘에 붙어야 했다. 그때였다.
“사냥 시작.”
사도들이 거리를 벌리자, 무르짐이 다시 한 번 명령을 내렸다. 하늘에서 배회하던 수호령들이 사도들에게 떨어져 내렸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모르나?”
무르짐의 조소, 수호령은 내구성이 골렘만 못하기에, 뭉쳐있는 사도들을 상대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흩어진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먹이를 노리는 독수리처럼, 수호령들이 사도들을 사냥했다. 그들은 팔이 긴 칼날로 변하여, 사도들의 몸을 찢어발겼다.
그리고 수호령을 상대하기 위해 모인 사도들은, 다시 한 번 골렘들의 불 맛을 봐야했다. 무르짐이 유쾌하게 웃었다.
“그런데 여기는 뭉치나 흩어지나 죽는 것은 똑같군.”
알샤인은 타오르는 눈으로 주변을 둘러왔다. 기사단을 잃고, 사제를 잃었다. 거기에 교주가 힘들게 만들어 놓은 사도들까지 녹아내리고 있다.
“음.”
증오에 타던 머리가 조금 차가워졌다. 감정적으로 일을 저질렀다가, 아차 싶어서 후회하는 기분.
더 이상 사도들을 소모할 수 없었다. 안 그래도 많은 인재들이 죽었는데, 사도들까지 없어지면 교단 자체가 위험하다.
“.......다시, 돌아가라.”
알샤인이 명령했다. 그러자 하나 둘씩 사도들의 몸이 사라졌다.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는 것.
잠깐 사이에 사도 수백 마리가 죽었다. 전력에 큰 손실. 그래도 본전 찾겠다고 더 쏟아 붓는 것 보다는 나았다.
“꽤나 현명한 선택이군. 포기했나?”
“아니.”
알샤인이 대답했다.
“지금부터는 내가 직접 싸운다.”
2.
그의 주먹이 빛났다. 직접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렇게 한다면 자신의 힘을 직접 사용할 수 있지만, 기사단장 아로이드는 영혼까지 산산 조각난다.
‘어차피 죽은 놈.’
뒤는 알바 아니었다. 알샤인은 주먹을 쫙 쥐고 순식간에 돌격했다.
“네놈의 화신을 찢어주마!”
그가 무르짐을 계속 공격하는 이유. 화신한 상태에서 그 화신체가 파괴되면 본체도 피해를 입는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그러기에 신들도 화신을 조심스럽게 진행하는 것이다.
알샤인이 지나간 자리는, 순식간에 땅이 갈라지고 화염이 치솟았다. 무르짐도 이번만큼은 진지한 표정. 그가 양 손을 알샤인에게 향했다.
“검은 장미.”
알샤인이 달려오는 경로가 검게 물들었다. 무르짐이 사제들을 전부 죽였던 기술이다. 예의 검은 가시가 다시 한 번 솟아올랐다. 알샤인의 몸이 가시에 완전히 가려졌다.
“개화.”
그게 끝이 아니었다. 무르짐이 명령하자, 가시 안에서 또 다시 가시가 자랐다. 그리고 또 자라난 가시에서 새 가시가 자라고........ 그것이 무한히 반복되었다.
빽빽이 자라난 가시들, 저 검은 가시는 온갖 치명적인 독들을 가지고 있다. 찔리는 게 아니라 닿기만 해도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
“장난치지 마라!”
하지만 그런 가시들이 산산이 박살났다. 알샤인은 아무런 피해 없이 검은 장미를 박살냈다. 공간을 차단하는 능력도, 그의 주먹질 한방에 깨졌다.
그것을 무르짐도 예상하고 있었다. 아무리 불안정한 화신이라도 고작 저런 공격 한방에 쓰러질 리는 없었다.
오직 시간을 벌기 위해 펼친 기술. 무르짐은 다른 주문을 외웠다.
“신체 변형. 드래곤 폼(dragon form).”
투명한 비늘이 그의 피부를 감싸 안았다. 용의 모양이 아닌, 폴리모프한 용만큼의 전투력을 가지게 된다. 준비가 끝났다. 알샤인이 빠르게 달려들고 있다. 무르짐의 앞을 골렘들이 막아주었다.
알샤인이 소리쳤다.
“꺼져라!”
그야말로 사자후. 그를 가로막던 골렘들은 닿기도 전에 마나로 돌아가 버렸다. 앞을 막던 골렘이 사라지고, 무방비하게 서 있는 무르짐이 들어왔다.
“아까처럼 혀만 놀릴 수는 없을 거다.”
알샤인의 주먹이 그를 향했다. 화신이 힘을 다 실은 일격. 그의 주먹이 무르짐에게 부딪힌 순간.
콰아아앙!
땅이 깊게 파인다. 거대한 충격파가 무르짐과 알샤인의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아앗!”
카라나리도 그 충격파에 휘말렸다. 몸이 붕 떠오르더니 한참 뒤로 날아갔다. 그녀는 공중에서 몸을 한 바퀴 돌려 착지했다.
“이럴 수가.......”
직접 맞은 것도 아니고, 단순히 옆에 앉아있었을 뿐. 그런데 몸이 날아가 버릴 정도의 충격이었다. 그녀는 알샤인의 진짜 힘에 전율했다.
“주먹싸움으로 가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나?”
그 충격의 가운데에서, 무르짐은 알샤인의 주먹을 손으로 잡고 있었다. 빛으로 타오르는 주먹이 드래곤 비늘과 불협화음을 내었다. 알샤인이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그의 일격을 완벽하게 막다니.
“무슨!”
“무슨은 얼어 죽을.”
무르짐의 주먹이 그를 내리찍었다. 알샤인의 머리가 돌아갔다. 이를 악문 알샤인이 다시 고개를 돌렸지만, 이번에는 발차기가 그의 배를 강타했다.
“커억.”
고개가 푹 숙여졌다. 무르짐은 그런 그의 안면을 무릎으로 찍었다, 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알샤인이 공중으로 떠오르자, 무르짐의 몸이 순간 사라졌다.
단거리 텔레포트, 그의 몸은 붕 뜨고 있는 알샤인의 등 뒤에서 나타났다. 또다시 호쾌한 발차기. 떠오르던 알샤인의 몸이 다시 한 번 땅에 처박혔다.
육탄전이다. 그런데 무르짐이 주먹으로 알샤인을 때릴 때마다, 주변이 흔들린다. 괴물들의 싸움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알샤인이 이를 악 물었다.
“어떻게, 연금술사 놈이!”
“너도 그렇고, 다들 연금술사는 주먹질을 못한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더라고. 그 편견을 이겨내며 성장하는 게 인간의 멋진 점이지.”
“닥쳐!”
알샤인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예상외의 상황. 연금술사라 근접전이 약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무르짐이 알샤인을 복날에 개패듯 잡고 있었다.
‘웃기지 마라.’
다시 한 번 분노가 타올랐다. 무르짐은 신의 자리에 오르지도 못한 인간이다. 비록 괴물 같은 힘을 가지고 있지만, 신의 좌까지 차지한 알샤인이 밀릴 수는 없었다.
“아직 나는........”
알샤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무르짐의 주먹이 그의 얼굴을 박살내었다. 접근전은 무리다. 그는 황급히 마법을 영창했다.
“나에게 종속된 빛이여.”
허공에 수십 개의 창이 떠올랐다. 사제들이 사용했던 것과 비슷한 기술. 하지만 그 격이 전혀 다르다.
빛의 신인 알샤인이 직접 사용하는 것이다. 더 이상 압축될 수 없을 만큼 고농도로 뭉쳐진 빛. 보기만 해도 눈이 멀어버릴 것 같다. 그 10개의 창이 무르짐을 향했다.
“흠.”
무르짐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빛의 창을 피하기 위해서. 하지만 창끝은 끝까지 무르짐을 향했다.
“이건 못 피할 거다!”
조준을 끝낸 빛의 창이 날아왔다. 무르짐은 급히 창의 궤도를 바꾸려 했지만, 전처럼 되지 않았다.
“상관없어.”
무르짐이 손을 펼치자, 어두운 천 하나가 생성되었다. 무르짐은 마치 투우를 하는 투우사처럼, 그 천을 휘둘렀다.
그를 향해 맹렬히 달려오던 빛은 검은 천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마치 블랙홀처럼, 빛을 순식간에 빨아들였다.
그 공격을 다른 공간으로 보내버린 것이다. 아무리 강력한 마법 공격이라도 무력화 시킬 수 있었다.
“슬슬 끝을 보지.”
무르짐이 대답했다. 여러 번 얻어터지고 큰 기술을 사용해서 그런지, 알샤인의 불꽃은 점점 약해져갔다.
처음에 죽일 듯이 타오르던 불꽃도 많이 가라앉았다. 이대로라면 얼마 안가 강신이 풀릴 것이다.
‘그러면 안돼.’
기황 알샤인을 끌어낸 것. 그에게 타격을 줘야했다. 강신이 풀리기 전, 결정타를 먹인다.
그런 무르짐의 생각을 모르는지, 알샤인은 다시 한 번 큰 공격을 감행했다. 빛의 창을 소환했을 뿐 아니라, 그가 직접 창을 타고 하늘로 돌격해왔다.
무르짐의 손에 황금색 빛이 뭉쳤다. 무르짐의 최강 기술. 다만 빗나가면 손해가 크기에 조심해야 했다.
무르짐은 하늘에서 알샤인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알샤인을 그를 향해 올라가고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돌격하는 상황. 알샤인이 무르짐을 노려봤다.
“직접 죽여주지!”
빛의 창들이 다시 무르짐을 향했다. 그는 검은 천을 다시 휘둘렀다. 그러나
“읏.”
무르짐이 처음으로 신음을 흘렸다. 빛이 창들이 잘게 부스러진 것이다. 수만 개로 쪼개진 빛의 파편이 그에게 날아왔다.
아무리 무르짐이라도 그것을 전부 막지는 못했다. 물론 나눠진 만큼 약화되었고, 또한 대부분의 공격은 검은 천에 막혀버렸다. 게다가 지금 무르짐의 피부는 드래곤의 비늘처럼 단단하다.
그럼에도 피가 튀었다. 알샤인의 발악에 가까운 공격. 무르짐도 상처를 피할 수는 없다.
‘잘 버텼다.’
“아직 안 끝났다!”
직접 들고있던 알샤인의 창, 그는 빛의 창에 힘을 잔득 주입했다. 신성력을 품은 창이 거대해졌다.
그 비대해진 창을 무르짐에게 던졌다. 무르짐은 검은 천을 다시 휘둘렀지만, 그 천에 붙이 붙어 타버렸다. 너무 큰 힘들 감당하지 못한 것이다.
“으윽!”
피한다고 했지만, 창이 옆구리를 스쳐 지나갔다. 피가 왈칵 쏟아진다. 무르짐은 이를 물고 고통을 참았다.
알샤인과 무르짐이 공중에서 교차했다. 이번에는 무르짐이 아래로, 알샤인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 과정에서 알샤인의 등이 완전히 노출되었다. 무르짐은 알샤인을 향해, 그가 아껴둔 기술을 사용했다. 알샤인의 창에 반격하지 않은 이유도 이 한방을 위해서였다.
“엔트로피 버스트(entropy burst)”
그의 손 안에 있던 황금 빛이, 미친 듯이 발광했다. 뒤늦게 돌아본 알샤인이 말했다.
“이건 무슨 잡기술....... 크아아악!”
황금색 불빛이 닿은 순간, 알샤인의 몸이 사정없이 뒤틀렸다. 그 뿐만 아니라, 그의 주변의 공간도 뒤틀리기 시작했다.
그 공격에 알샤인의 몸도 버티지 못했다. 억지도 유지되던 몸이, 점점 사라진다. 그는 이를 악물고 무르짐을 노려봤다.
"나중에....... 두고보지."
"마음대로."
무르짐이 손가락을 한번 더 튕겼다. 그러자 튀틀림이 가속화되고, 알샤인의 몸은 완전히 사라졌다.
"하아, 지긋지긋한 놈."
무르짐은 땅 아래로 내려왔다. 온통 폐허가 되었다. 주변을 둘러보자 살아있는 사람은 두 명의 여자뿐이다.
카라나리와 레이아라. 그 중 레이아라는 상태가 위독했다. 피를 너무 흘렸다. 하지만 무르짐은 그녀를 무시하고 걸었다. 카라나리를 향해서.
"카르안씨...... 아니 무르짐."
무르짐은 대답하지 않았다. 카라나리는 그런 그를 올려다봤다. 그리고 소름이 돋았다.
그는 냉정한 표정으로 카라나리를 내려보고 있었다. 거기에 카르안이 보여줘던 호의같은 긍정적 감정은 찾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