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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션으로 무한성장 (48)화 (48/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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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떼 -2

    “누가 오고 있다고?”

    카르안의 눈이 날카롭게 변했다. 메이론인가? 아니면 다른 용병이나 도적들일수도 있다. 그리고 그게 누구든, 카르안에게 좋을 게 없었다.

    ‘뭐 벌써 여기까지 오냐.’

    카르안과 카라나리는 레이아라 덕에 앞장설 수 있었다. 그런데 그들과 비슷한 시기에 이쪽까지 오다니. 예상 이상의 속도였다.

    “일단 저희가 빠져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충돌해봐야 얻을게 없어요.”

    그들은 지금까지 도시를 싹쓸이해왔다. 상대가 누구든, 그들보다 많은 물건을 들고 있지는 않으리라. 카르안도 고개를 끄덕였다.

    “창문을 깨고 나가지. 가자.”

    카르안과 카라나리가 뒤돌아 가려 했다. 하지만 레이아라는 움직이지 않았다.

    “레이아라씨?”

    “카르안씨, 카라나리씨.”

    그녀가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죄송하지만 나갈 수는 없습니다.”

    “뭐?”

    콰아앙!

    동시에 연금술사 연합 건물의 문이 박살났다.

    2.

    은색 갑옷의 기사들, 하얀 백의를 걸친 사제들. 그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들 사이로, 금빛 갑옷을 입은 기사가 걸어 나왔다. 그는 레이아라를 보더니, 반갑게 웃었다.

    “잘했다. 레이아라.”

    기사의 칭찬에도, 그녀의 표정은 한겨울처럼 차가웠다. 그녀는 한숨을 쉬며 기사들 쪽으로 걸어갔다.

    “자, 하라는 대로 했어. 그러면 약속은........”

    “물론 지켜야지. 이래봬도 약속은 칼같이 지킨단 말이야.”

    기사가 가슴을 탕 치며 말했다. 레이아라는 그의 옆에 섰다.

    카르안이 주변을 한번 둘러봤다. 한두 명이 아니다. 기사들은 백 명에 가까웠고, 사제는 수십 명.

    그들의 갑옷과 사제복에는 한 가지 문양이 박혀있었다. 알샤인 교단을 상징하는 태양. 전원 똑같은 그림이었다.

    “왜 알샤인 교단의 기사들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카르안이 입을 열었다.

    “우리는 배신당한 것이로군.”

    카르안은 지금 상황을 한마디로 정리했다. 설마 저들이 카르안의 도적질을 환영하는 응원단은 아니리라.

    그는 레이아라를 쳐다봤다. 담담한 눈으로. 고개를 돌린 것은 레이아라였다. 그녀가 작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

    “카르안씨, 카라나리씨. 두분에게 악의는 없습니다. 다만.......”

    “상관없어.”

    카르안이 말했다. 가벼운 목소리였다.

    “너도 너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겠지.”

    “저는........”

    “그보다, 네 배신을 눈치 채지 못한 것은 내 잘못이고.”

    카르안은 긴장하지 않은 말투였다. 황금 갑옷을 입은 기사가 눈을 찌푸렸다.

    “거기, 흑룡회의 똥개 놈아. 넌 내가 누군지 모르는 모양인데.”

    “처음 보는 놈을 어떻게 아나?”

    카르안이 받아쳤다. 하지만 기사는 재밌다 는 듯이 답했다.

    “나는 아로이드. 영광스러운 알샤인 기사단의 단장이다.”

    “기사........단장.”

    카라나리가 힘없이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절망이 묻어있었다. 알샤인 교단의 기사단장. 그의 힘을 질리도록 들었다.

    알샤인 교단, 대형 교단의 기사단장이다. 그 자리에 앉기 위해서는 상상 이상의 실력이 필요하다.

    알페라츠 기사단의 단장 타브 알페라츠, 그런 놈과는 격이 다르다. 승냥이들의 우두머리와, 호랑이들의 우두머리. 같은 단장이라도 속해있는 물이 다른 것이다.

    간단한 예로, 뮤프리드 교단의 교주 예드프리어가 있다. 그도 뮤프리드 기사단의 단장이었다. 그는 홀로 순혈 뱀파이어의 목을 베었다.

    지금 카르안의 눈앞에 있는 기사. 그도 기사단장 시절의 예드프리어와 동급의 실력을 가진 자다. 저런 자에게서 도망칠 방법은.

    ‘텔레포트 스크롤.’

    그게 마지막 희망이었다. 카르안의 가방 속에 있는 마법도구. 그것을 사용하면 안전하게 마을로 돌아갈 수 있다.

    그것을 아는지, 카르안도 태연한 표정이었다. 그의 표정을 확인한 레이아라. 그녀가 눈을 찌푸렸다.

    “혹시 이것을 믿고 있는 것입니까?”

    그녀는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단순한 종이가 아니었다. 텔레포트 스크롤이다. 카라나리의 눈이 커졌다.

    “언제........”

    “저한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레이아라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첫날, 그들이 연금술사 연합 지하에 들어간 날이다.

    ‘뭐, 정말 괴물이 나타나도 도망치면 되니까요.’

    ‘제 가방 안에 텔레포트 스크롤이 있어요. 잠깐만 버티면 세 사람 모두 도망칠 수 있습니다.’

    레이아라는 카르안이 한 말을 전부 암기했다. 그녀는 오늘 새벽, 카르안의 가방에 있던 스크롤을 훔쳐내었다.

    “도망칠 수단은 없습니다.”

    “멍청한 놈들이군. 최후의 수단은 마지막까지 숨겨두고 있었어야지!”

    아로이드가 미친 듯이 웃었다. 악의 가득한 비웃음. 카라나리는 이를 악 물었다. 도망칠 수단이 사라졌다. 게다가 주변은 기사단에게 포위당한 상황.

    ‘바로 이거지.’

    아로이드는 묵은 체증이 쫘악 내려가는 기분을 느꼈다. 비장의 한수가 무너지는 순간, 그러는 순간 그의 적들이 짓는 표정은 그를 짜릿하게 만들었다.

    저놈은 이제 도망칠 수 없다. 동료를 믿은 죄로, 레이아라에게 배신당해 이곳에서 죽을 운명이 된 것이다.

    하지만 카르안은 여전히 태연자약했다. 그는 품속을 뒤졌다. 종이 한 장이 나왔다.

    텔레포트 스크롤이었다.

    “무슨!”

    레이아라가 깜짝 놀랐다. 카르안이 비웃듯 말했다.

    “그래, 아로이드라고 했나? 네 말이 맞아. 최후의 수단은 마지막까지 숨겨야지.”

    “바꿔치기 한 것인가요? 하지만 분명 이건.......”

    레이아라가 스크롤을 다시 확인했다. 마나가 흐르고 있다. 분명한 진품. 카르안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너 바보냐?”

    “네?”

    “처음부터 두 장이었어. 멍청아.”

    2.

    이곳에 오기 전, 알페라츠 백작령. 그는 마법사 길드에서 텔레포트 스크롤을 구매했다. 거금이 들었지만, 월급도 충분했기에 별 걱정은 없었다.

    그리고 품속에 넣어두었다. 일종의 보험. 그리고 그가 처음 출발했던 마을, 르네키르다 앞의 마을에서도 한 장 더 구매했다.

    가방에 텔레포트 스크롤이 있다고 말한 것도 하나의 함정이었다. 카르안이 그렇게 말을 함으로써, ‘텔레포트 스크롤은 가방에만 있다.’는 착각을 심어두었다.

    만약 레이아라가 배신할 생각이 없더라도 손해 볼 것은 없다. 그냥 그 스크롤을 사용하면 되니까. 그리고 만약 배신한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만들 수 있다.

    카르안의 상식에서는, 속는 놈보다 속은 놈이 잘못한 것이다. 의심은 당연한 것. 그렇기에 카르안은 레이아라가 배신을 선언했을 때도, 딱히 화를 내지 않았다.

    그렇게 말하는 순간. 손 안의 구체, 하늘의 문이 밝게 점멸했다. 카르안이 살짝 비틀댔다.

    “카르안씨?”

    “아, 괜찮아.”

    그는 곧 중심을 잡았다. 카르안은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말했다.

    “그나저나 가기 전에 한 가지 물어보자, 왜 우리를 습격한거지? 원하는게 있다면, 그냥 네놈들이 와서 훔치면 그만 아닌가.”

    “지금 가야합니다.”

    카라나리가 작게 말했다. 지금 수다 떨 때가 아니다.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탈출해야 한다. 시간을 끌 이유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카르안도 그것을 잘 알고 있을 터,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카르안은 느긋하게 입을 움직이고 있었다.

    아로이드의 눈이 잠깐 빛났다. 그가 팔짱을 끼었다.

    “궁금하다면 알려주지.”

    그렇게 말하며 그는 사제들에게 눈짓했다. 일종의 사인이었다. 뒤에 있던 사제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구체적인 지시가 없더라도, 지금 할 일은 하나밖에 없다.

    ‘텔로포트를 방해한다.’

    사제들도 알샤인 교단의 정예부대. 그들의 신성력은 텔레포트 스크롤을 무력화 시킬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천천히.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한다. 만약 눈치 채고 그들이 스크롤을 사용한다면, 죽도 밥도 안 된다.

    사제들은 조용히 카르안와 카라나리의 시야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 뒤, 곧바로 신성력을 사용했다. 눈치 채지 못하게, 느릿하지만 확실하게 말이다.

    시간을 끌기위해, 아로이드가 말했다.

    “물론 저따위 골렘은 문제가 안 되었다. 하지만 여기 있던 연금술사 놈들. 아주 징글징글하더군.”

    “연금술사들이?”

    “자네가 들고 있는 성물. 놈들은 하늘의 문을 끝까지 넘기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가 그 물건을 달라고 하자, 이 시설에 강력한 결계를 쳤지. 알샤인님의 신성력이 있는 자들을 들어오지 못하게.”

    그는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간을 조금 더 끌어야했다.

    “우리도 억지로 뚫어보려 했지만, 그 결계는 하늘의 문의 힘으로 만든 것이지. 도저히 풀 수가 없었어.”

    “오호.”

    카르안은 자신에 손에 들린 하늘의 문을 바라봤다. 무언가에 반응한 듯. 그가 처음 잡은 순간부터 신성한 빛이 카르안에게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강력한 성물로 만든 결계. 그만큼 뚫기도 힘들었다. 결국 알샤인 교단의 관계자들은 절대 이 성물이 있는 곳으로 들어올 수 없었다.

    알샤인 교단 사람이 아닌 자가, 저 강력한 골렘들을 뚫고 하늘의 문을 뽑아내어야 했다. 그래야 결계가 풀린다.

    그들도 용병을 고용하려 했지만, 저 골렘을 전부 상대할 실력의 용병은, 그 수가 매우 드물었다. 연금술사를 고용하자니, 골렘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연금술사가 몇 없었고.

    그런데 밑저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맡긴 레이아라. 그녀가 해낸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저놈이 도망치지만 않으면. 아로이드가 살짝 뒤를 돌아보았다. 사제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아직 조금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

    그는 속이 탔다. 더 할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때, 타이밍 좋게 카르안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나는 한 가지 의심을 하지 않을 수가 없네. 엘프가 하늘의 문을 완성했다. 그러고 나서 괴생명체들이 엘프들을 습격했다........ 게다가 여기는 괴생명체들이 들어온 흔적이 없더군. 뭔가 이상하지 않나?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말이야.”

    “그건........”

    아로이드가 말을 흐렸다. 말할 수가 없다. 그것은 교단에서도 기사나 사제급 이상만 알수 있는 비밀. 그가 우물쭈물하자, 카르안은 스크롤을 들어올렸다.

    저걸 사용하게 해서는 안 된다! 아로이드가 다급하게 말했다.

    “그건 말이야. 음........ 괴생명체라는 놈들이 알샤인님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지.”

    “뭐, 뭐라고요?”

    카라나리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괴생명체의 습격이 없을 것이라는 레이아라의 말.

    ‘괴생명체는 알샤인 교단에서 만든 것들이었어. 그래서 우리를 습격하지 않았던 것이고.’

    그렇기에, 알샤인 교단에서 통제가 가능한 것이다. 알샤인 교단과 손잡은 레이아라. 그녀가 괴생명체에 죽으면 곤란했기에, 알샤인 교단은 자신의 피조물을 보내지 않았다.

    “그래서 이곳에 괴생명체가 침입한 흔적이 없던 것이로군.”

    카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샤인 교단에서 만들었다면, 그 생명체에도 알샤인의 신성력이 깃들어 있을 것이다. 이곳의 결계는 알샤인의 신성력을 모두 거부한다.

    “고작 이런 것 하나 때문에, 나라를 이 꼴로 만들어버리다니. 한심하구나.”

    “그 성물의 위대함을 모르는 모양이군. 그것은........”

    “알고 있다. 신의 영향력을 극대화시키는 물건. 그렇기에 모든 교단에서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것도.”

    “음?”

    ‘저걸 어떻게 알았지?’

    이상했다. 아로이드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연금술사 연합에서 일하는 엘프를 제외하고, 하늘의 문의 존재 자체를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그런데 그 물건의 효과까지 알고 있다니.

    하지만 변하는 것은 없다. 아로이드는 다시 한 번 눈을 돌렸다. 사제가 웃고 있다. 아로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텔레포트 스크롤의 봉인이 끝났다.

    “흐흠. 그런데, 자네는 내가 왜 이 모든 것들을 다 알려주었는지 알겠나?”

    “시간을 끌기 위해서지. 이 스크롤을 무력화 시키려고. 귀여운 짓이야.”

    “.......!”

    카라나리가 카르안의 손에서 스크롤을 빼앗아들었다. 사용하면 근처 사람과 함께 지정된 장소로 이동된다. 그녀는 황급히 스크롤을 사용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카르안씨!”

    카라나리가 보기 드물게 분노했다.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살아날 기회를 놓쳤다.

    더욱 그녀를 분노케 하는 것은, 그가 모든 사실을 알고도 그랬다는 것이다. 제정신으로 할 짓이 아니다.

    ‘대체 왜?’

    카르안은 바보가 아니다. 이렇게 스크롤이 종이쪼가리로 변하기 전에, 미리 이동해야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하하하하하! 우리가 아주 우스워보였나 보군. 스스로 도망칠 기회를 포기했다?”

    기사들도 카르안을 정신병자처럼 노려봤다. 고작 두 명. 두 명이서 그들 전체를 상대한 다라. 절대 있을 수가 없었다.

    “무슨 생각입니까.”

    카라나리가 작게 말했다. 카르안은 말없이 살짝 웃고 있을 뿐이었다.

    뭔가 이상했다.

    ‘말투가 조금 바뀌신 것 같았는데?’

    그리고 카르안의 손. 손 안의 구체가 점점 더 강하게 빛나고 있었다. 처음에 은은하던 빛이, 이제는 누구나 눈치 챌 수 있도록.

    ‘신의 영향력을 극대화시키는 물건’

    카라나리의 머릿속에 저 물건의 효과가 떠올랐다. 지금 그 하늘의 문이 번쩍거리고 있다.

    “카르안씨?”

    “카르안. 이 몸의 이름인가.”

    카르안이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수십의 사제와 수백의 기사들 앞에서. 그는 권태로운 표정이었다.

    “뭐야, 너무 무서워서 정신이 나가버렸나?”

    아로이드가 빈정거렸다. 하지만 카르안은 그를 한심한 눈으로 내려볼 뿐이었다.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정정해주지.”

    순간이었다. 그의 몸에서 엄청난 위압감이 쏟아져 나왔다. 카라나리마저도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의.

    카르안, 아니 카르안의 몸을 빌린 남자가 답했다. 그의 입가는 기묘하게 뒤틀려 있었다.

    “지금은 무르짐이 내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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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뭔 개소리야!”

    아로이드가 소리쳤다. 무르짐이라는 이름. 오래된 연금술 서적에서나 나오는 이름이다.

    그가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무르짐은 한숨을 쉬었다.

    “엘프들이 이 물건을 완성했군. 조잡한 실력이지만, 그래도 아주 나쁘지는 않아........”

    그는 하늘의 문을 쳐다봤다. 카라나리는 그런 무르짐에게서 한걸음 물러났다.

    “당신은........”

    “사정이 있어 신의 자리는 놓쳤지만, 이정도 성물이라면 강림할 수 있거든.”

    무르짐은 자신의 몸을 한번 훑어봤다. 카르안의 몸. 그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이 몸이 있다면 말이지.”

    “멋대로 떠들고 있군. 어디 목에 칼이 들어가도 떠들 수 있나 보자고.”

    아로이드가 기사단에 돌격준비를 명령했다. 무르짐의 손 안에서 빛나는 성물. 그게 조금 거슬렸다. 하지만 그의 뒤에는 수많은 기사들이 있다.

    백 명의 기사들과 서른 명의 사제. 그것도 엄선된 알샤인의 보물들이다. 그들의 전투력은 일반 병사 수천을 가볍게 상회한다.

    고작 두 명이다. 그런 정예들을 상대하는 사람은 단 두 명뿐. 질 수가 없다. 아로이드는 레이아라에게 손짓했다.

    “너도 협력해라.”

    “제 일은 끝났어요.”

    “하늘의 문을 회수하기 전까지는 아니야.”

    “제가 명령받은 것은 전투 골렘을 무력화시키고, 하늘의 문을 꺼내는 것........”

    아로이드의 검이 번쩍였다. 순식간이었다. 레이아라의 로브가 잘려나갔다.

    “으........”

    핏방울이 쏟아진다. 레이아라는 무릎을 꿇었다. 온 몸에 힘이 빠져나간다. 그녀가 힘겹게 말했다.

    “야, 약속은.......”

    “지켰잖아? 조금 있으면 네 죽은 부모를 볼 수 있을 테니 말이야.”

    레이아라가 그들과 협력한 이유, 그것은 사고로 죽은 부모를 다시 보기 위해서였다. 저 하늘의 문만 있다면 얄샤인의 권능으로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며, 알샤인의 사제들이 그녀를 유혹했다.

    거기에 넘어가서 레이아라는 카르안과 카라나리를 속인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비참했다.

    그들을 속인 줄 알았는데, 결국 속고 있던 것은 그녀 혼자뿐이었다.

    ‘제일 멍청했던 건 나였나 보네.’

    레이아라는 피가 흐르는 배를 손으로 막았다. 하지만 피는 도저히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의식이 흐려졌다.

    “자, 하늘의 문만 회수해라. 저 둘은 죽여도 상관없다!”

    쓰러진 레이아라를 뒤로하고, 아로이드가 소리쳤다. 그의 명령에 모든 기사들이 달려들었다.

    “어떻게 하죠?”

    카라나리는 다리에 힘을 주려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이제 정말 죽는 수밖에 없는 것인가.

    아로이드만 해도 상상 이상으로 강했다. 그가 검을 뽑고 베는 것을, 카라나리도 보지 못했다. 섬광 같은 빠르기.

    그 괴물 같은 놈이, 백 명은 돼 보이는 기사단과 함께 달려오고 있다. 그 뒤에는 사제들이 버티고 있다. 도저히 도망칠 수도 없을 것 같았다.

    “쯧쯧. 쓸데없이 요란하기는.”

    무르짐은 시시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그가 달려오는 기사단을 향해 입을 열었다.

    “만물의 아버지, 나 무르짐의 이름으로 명한다.”

    느긋한 목소리. 기사단과 무르짐의 거리가 열 걸음도 남지 않았을 때, 그가 이어 말했다.

    “정지.”

    돌격하던 모든 기사단이 멈춰 섰다. 아로이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가. 갑자기 발이 얼어붙기라도 한 것처럼, 기사들이 멈춰섰다.

    하지만 문제는 돌격이 멈춘 게 아니었다. 무르짐이 정지를 명령한 것은, 다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크아아악!”

    “가슴이, 으아아악!”

    “아, 아, 알샤인이여.......”

    기사들이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무르짐이 한마디 했을 뿐인데, 모든 기사들의 심장이 멈춰버렸다. 그들은 몸을 비틀며 괴로워했다.

    그것은 아로이드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도 가슴 속에 돌덩이가 가득 찬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명령했다.

    “신성력....... 알샤인님을 믿는 것이다! 전부 알샤인님의 권능에 기대어라!”

    그는 서둘러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가슴을 조여오던 통증이 사라졌다. 다른 기사들도 기를 쓰며 그를 따라했다.

    “으아........”

    기사들의 절망에 찬 신음, 비명이 건물 안을 가득 채웠다. 아로이드가 버틴 것은 그의 신성력이 강했기 때문이다. 힘이 부족했던 많은 기사들은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저 비겁한 놈!”

    “빛이여, 창이 되어 악을 멸하여라!”

    사제들은 사태가 심상찮다는 것을 눈치 챘다. 30명의 사제들이 힘을 모아 신성 마법을 준비했다. 공중에서 눈부신 빛이 형체를 이루기 시작했다.

    가느다란 창의 형태. 그 빛의 창은 수십에서, 수백, 수천 개로 늘어났다. 무르짐은 그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사라져라!”

    빛이 쏟아졌다. 저 빛은 따스한 햇살과는 성질이 달랐다. 햇살은 생명을 자라게 하지만, 저 공격적인 빛은 모든 생명을 태워버린다.

    “........”

    무르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손가락은 위쪽으로 한번 까딱했을 뿐. 그러자 무르짐을 향해 내려오던 창들이 방향 바꿨다. 빛이 하늘로 솟구쳤다.

    콰아아앙!

    천장이 박살나 버린다. 그것도 모자라 그 빛의 창들은 구름까지 뚫고 올라갔다. 마치 하늘에 거대한 빛의 기둥이 생긴 것만 같은 모습.

    손짓 한번으로 사제들의 공격이 무력화 되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알샤인의 정예, 서른 명의 사제들은 차라리 기절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놈도 저놈도 미적지근하군. 진짜 공격은 그런 게 아니지.”

    무르짐의 혀가 다시 움직였다.

    “검은 장미가 피어난다.”

    이번에는 사제들이 서 있던 곳이 검게 물들었다. 사제들의 등 뒤에 식은땀이 흘렀다. 뭔가, 뭔가 알 수는 없지만, 오면 안 될게 오고 있다.

    “아아아아아아!”

    피어난 것은 꽃이 아니었다. 장미의 가시, 수십 개의 검은 가시가 땅에서 솟아올랐다. 사제들은 온 몸이 뚫리다 못해 찢겨져 버렸다.

    “마, 마법이.......”

    그들도 바보가 아니었다. 땅이 검게 물든 순간, 몇 명은 방어 마법을 펼쳤고, 다른 몇 명은 단거리 텔레포트를 시도했다. 땅이 물들지 않은 방향으로 몸을 던진 사제도 있었다.

    하지만 전부 무의미.

    “순발력은 좋지만, 뭐, 기본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되지.”

    무르짐이 짧게 평가했다. 그가 명령을 내린 순간, 그 공간은 밖과 격리되어 버린다.

    물리적으로, 마법으로도 피할 수가 없게 변하는 것이다. 몸을 던진 사제는 벽에 부딪혔고, 단거리 텔레포트는 전부 취소되었다. 방어 마법을 펼친 사제들도 죽음을 피하지는 못했다.

    그들의 신성력으로 막기에, 검은 가시는 너무나 강력했다.

    “씨발........ 이거 꿈이지?”

    아로이드가 중얼거렸다. 알샤인 교단의 최대 전력. 그들이 한순간에 시체로 변했다. 그것도 한 남자의 말 몇 마디에 의해서.

    차라리 대단한 마법이나, 전설 속 악마에게 전멸한 것이라면 이해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도저히 이해 불능의 무언가였다.

    “오, 오지 마!”

    심장 공격에서 살아남은 기사들은 도망치기 시작했다. 알샤인 교단의 최정예 기사들. 그들이 눈물을 흘리며 도망치고 있다.

    “이놈들........”

    아로이드는 입을 열었으나, 다음 말을 떠올리지 못했다. 그 자신도 지금 상황이 현실감 없게 느껴졌다.

    게다가 무르짐은 그다지 자비로운 성격도 아니었다. 그는 도망치는 병사들을 전부 사살했다. 그가 손을 뻗자, 도망치던 기사들의 몸이 숭숭 잘려나갔다.

    신성력이 깃든 은빛 갑옷. 오우거의 대검부터 마법사의 파이어볼까지, 전부 막아주는 갑옷이 두부처럼 잘려나간다.

    기사도 사제도 전부 죽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기사단장, 아로이드 뿐이었다.

    “오호, 자네가 이 무리의 우두머리로군. 심장이 튼튼해 보이는데, 마음에 들어.”

    무르짐이 웃으며 그에게 다가왔다. 그 순간, 아로이드는 죽음을 직감했다.

    ‘어차피 죽을 것이라면.........’

    아로이드는 각오를 굳히고 품 안에서 성물을 꺼내들었다. 알샤인 교의 신성한 태양. 황금빛으로 빛나는 펜던트였다.

    “위대한 알샤인이여! 그대의 시종이 몸을 바치나이다! 내 몸을 갈가리 찢어, 그대의 영광을 이 땅에 재현시키소서!”

    긴 영창이 끝나고, 그의 몸이 불타기 시작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아로이드가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아아악!”

    “곧 죽을 놈이 소리 한번 우렁차네.”

    무르짐은 그를 비웃을 뿐이었다. 무르짐의 손에 검은 어둠이 맺혔다.

    “그만 자라.”

    검은 어둠이 불타는 아로이드를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그의 예상과 다르게, 어둠은 엉뚱한 곳으로 휘어버렸다. 무르짐은 머리를 긁었다.

    “어라?”

    “무르짐! 네놈이 무슨 짓을!”

    아로이드가 소리쳤다. 아니, 그것은 아로이드가 아니었다. 아로이드의 형상을 한 무언가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나를 방해하다니, 당장 찢어 죽여주마!”

    신의 분노, 옆에 서 있던 카라나리는 다리에 힘이 풀렸다. 서 있을 수조차 없었다. 막강한 권능을 휘두르는 알샤인 앞에서,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

    고개를 들고 서 있는 것조차 불경할 듯한 권위. 그동안 싸워오면서 얻은 대담함도, 냉정함도 전부 쓰레기통에 넣었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오직 무르짐만이 뚱한 표정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알샤인인가? 하도 오랜만이라 못 알아볼 뻔했군.”

    “이놈이!”

    “자네는 강신도 불안해 보이는 게, 그냥 포기하고 가서 잠이나 자지 그러나. 싸워봐야 피만 볼 텐데.”

    “닥쳐라! 나에게 명령하지 마!”

    “명령이 아니라 사랑이 담긴 충고.......”

    알샤인이 땅에 주먹을 찍어 내렸다. 순식간에 땅이 깊게 갈라졌다. 거대한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나의 사도들이여!”

    그 틈 사이가 붉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그 사이로 검은 생명체들이 기어 나왔다. 무르짐이 혀를 찼다.

    “이게 네 부하들이 만든 괴생명체였군.”

    흉측한 모양이었다. 온 몸의 근육이 기괴하게 발달한 놈들. 인간의 형상을 했지만, 아무도 인간이라고 부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들은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괴생명체의 숨결에서는 약한 유황 냄새가 났다.

    무르짐은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생명체들은 꾸역꾸역 기어 올라왔다.

    “내가 차지할 보물을 빼앗은 댓가! 지금 당장 치르게 해주마!”

    “자네, 혹시 소리 지르지 않으면 말을 못하나?”

    무르짐은 자기가 말해놓고도 웃긴지 실없이 웃었다. 알샤인의 사도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였다.

    대규모 소환 마법, 하늘의 문으로 강신한 무르짐과 다르게, 알샤인의 강신은 조금 불안했다.

    그나마 알샤인 교단에서 손꼽히는 신성력을 가진 기사. 단장 아로이드의 몸이었기에 이만큼 이라도 힘을 쓸 수 있는 것이다.

    그 덕에 자신의 권속을 직접 불러내는 것은 힘들었다. 대신 알샤인 교단이 만들어둔 괴생명체를 이곳에 전부 소환하였다.

    교단의 교주가 안다면 머리를 잡고 쓰러지겠지만, 섬기는 신에게 화풀이를 할 수도 없는 노릇.

    알샤인은 주변의 시체들을 둘러보았다. 기사와 사제들. 전부 그가 아끼는 종들이다. 귀한 노예를 전부 잃은 귀족처럼, 그의 분노는 태양처럼 타올랐다.

    “나의 군대까지 이런 꼴로 만들다니!”

    “자네, 뭔가 큰 착각을 하는 것 아닌가?”

    무르짐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손뼉을 한번 쳤다.

    짝!

    “아아.......”

    카라나리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허공에서 마나가 뭉치고 있다. 엄청난 속도. 곧 마나들은 고체의 형태로 모양을 바꾸었다.

    쿠오오오오!

    골렘. 골렘들이 허공에서 나타난다. 다른 골렘들과 격이 다르다. 모래도, 바위도, 강철 아닌 마나로 이루어진 골렘이다. 그 반투명한 골렘들은, 땅에서 기어 올라오는 괴생명체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땅에서, 하늘에서 가벼운 몸을 가진 무언가가 내려왔다. 흑룡회와 표두회, 그 둘이 힘을 합쳐 토저보화를 얻으려 할 때 방해했던 수호령들.

    그 수호령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토저보화의 힘으로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수호령들이 아니었다. 완전한 힘을 갖춘 수호령들. 그들은 빛을 뿜으며 허공을 떠다녔다.

    “나는 말일세, 손가락 몇 번 움직였다고 전멸하는 놈들을 군대라고 부르지 않아.”

    무르짐의 주위로, 골렘과 수호령들이 몰려들었다. 골렘들의 그의 앞에서 굳건한 성벽처럼 서 있었고, 수호령들은 공중을 돌며 당장이라도 공격할 태세를 갖추었다.

    그 수는 합쳐서 수백을 가뿐히 넘겼다. 당장 명령을 내린다면, 나라 하나가 아니라 대륙 전체를 초토화 시킬 수 있는 불가항력의 군세.

    그 압도적인 힘 앞에, 얄샤인의 사도들은 몸을 떨었다. 여러 가지 실험으로 공포가 제거된 생명체였지만, 그럼에도 떨림을 참을 수 없다.

    무르짐은 자신의 병력을 한번 둘러보았다. 마나 골렘은 묵묵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주위의 공기를 짓눌렀고, 수호령들은 당장 돌격해 알샤인의 가증스러운 생명체들을 찢어버릴 것만 같았다.

    무르짐은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알샤인. 이게 바로 ‘군대’라는 것일세.”

    ========== 작품 후기 ==========

    다음화는 내일 아침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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