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션으로 무한성장 (47)화 (47/124)

47====================

파리떼 -2

그 뒤로도 여행은 20일 동안 계속되었다. 마을과 도시, 도시와 마을 사이를 끝없이 이동했다. 원래 이동에 지장이 없을 만큼만 챙기려했지만, 처음 마을에서 구한 가방이 있었다.

덕분에 불편함 없이 물건을 있는 대로 담을 수 있었다. 그들의 가방 안에는, 마차 두세대 분량의 물건이 가득 차 있다.

게다가 괴생명체의 공격도 없었다. 아니, 없는 수준이 아니라 그런 놈들을 구경도 못했다. 레이아라의 말 대로였다.

“처음 마을에서 얻은 물건이 도움이 되네.”

“그러게 말입니다.”

“후발 주자들이 땅을 치겠군.”

당연히 카르안 일행은 가장 앞장서고 있었다. 물건에 대한 부피걱정도 없었기에, 마을과 도시의 쓸 만한 것들을 전부 쓸어 담았다. 그들이 지나간 곳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나저나 찾으려는 물건은 보이지 않는군요.”

“그건 걱정 마세요.”

레이아라가 웃으며 말했다. 그녀의 우울한 모습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연금술사 연합의 괴물’을 본 다음날. 그녀는 언제 우울했냐는 듯이 활발하게 움직였다.

마치 그날의 기억이 사라진 것처럼. 레이아라는 카르안을 처음 만났던 날처럼 농담을 던지고 웃어주었다.

“숲의 심장. 이번에 갈 도시에 있을 거예요. 르네키르다 최대의 연금술 도시거든요.”

“연금술사의 도시라.”

“르네키르다 대부분의 연금술 재료는 그곳에서 모여요. 제가 살던 때도 그랬으니까. 아마 숲의 심장 같은 고급 재료는 그곳 연금술사들이 다뤘을 거예요.”

“하긴, 실수라도 하면 큰일이니까요.”

다이아몬드를 초보 세공사에게 맡기는 사람은 없다. 귀한 보석이 박살날 수 있기 때문. 마찬가지로 귀한 재료를 초보 연금술사에게 맡긴다면, 토저보화나 숲의심장같은 보물도 순식간에 쓰레기로 변할 수 있다.

‘거기서 다른 보물도 얻을 수 있겠군.’

지금까지 많은 곳을 털어대었지만, 연금술과 관련된 물건은 이상하게 적었다. 마치 전부 소모해버린 것처럼. 마법이나 다른 무구를 잔득 얻을 수 있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뒤에 올 사람들이 불쌍하군요.”

카라나리가 뒤를 힐긋 보았다. 나름대로 목숨을 걸고 왔을 텐데, 카르안 일행이 있는 물건을 전부 쓸어간 것이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 값나가는 물건은 쌀 한 톨 만큼도 남지 않았다. 농작물을 습격하는 메뚜기떼가 따로 없었다.

“상관없어. 남에 집 털 거면 그 정도 각오는 했어야지.”

카르안이 답했다. 선인에게 악행을 저지르는 것은, 아무래도 마음에 거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차피 여기 오는 놈들도 카르안과 같은 악당들 아닌가. 카르안은 아무런 죄책감 없이 그들을 엿 먹일 수 있었다.

“그리고 조금 남겨두긴 했잖아.”

“그거 받고 싶어 하는 사람은 세상이 멸망할 때까지 없을 거예요.”

레이아라가 쓰게 웃었다. 물론 그들도 들고 오지 못하는 게 있다. 바로 폭발물이다.

그들은 도시의 무기고를 들린 적도 있었다. 거기에는 검과 활뿐 아니라, 연금술로 만들어진 폭탄도 있었다. 괴생명체들에게 워낙 순식간에 당하는 바람에, 다 소모하지도 못한 것들.

그런 물건을 가방 안에 넣었다가, 혹시 폭발이라도 한다면 끔찍한 상황이 벌어진다. 카라나리는 그냥 버려두고 가자고 했지만, 카르안의 생각은 달랐다.

“정성껏 만든 함정인데.”

전부 부비트랩으로 사용한 것이다. 그들이 올만한 연금술연합, 마법사의 탑 입구 쪽 등, 온갖 위치에 함정을 설치해 놓았다.

“솔직히 그런 짓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전부 카라나리님께서 만들었으면서, 이제와 무슨 소리입니까아?”

카르안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카라나리는 그런 카르안을 찌릿 노려봤지만, 카르안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 말대로 함정은 카라나리가 전부 완성했다.

카르안이 연금술 폭탄을 구분할 수는 있어도, 그것으로 부비트랩을 설치하는 법은 몰랐다.

의외로 레이아라도 잘 모르는듯했고. 오직 용병경험이 풍부한 카라나리만이 그 요령을 알고 있었다.

카라나리는 거절했으나, 카르안이 고집을 부렸다. 연금술 폭탄 같은 것은 만져본적도 없는 카르안. 그는 불안한 손으로 자꾸 폭탄을 만지작거렸다.

“음, 이걸 당기면 터지니까.......”

“.........”

“차라리 불을 한번 붙여보면.........”

카르안은 자꾸 간 떨어지는 소리를 해댔다. 결국 보다 못한 카라나리가 나서게 되었다. 물론 그런 이야기를 한 것은 카르안의 계산이었다.

불안한 짓을 하면 카라나리가 도와준다. 그녀도 어찌 보면 단순한 면도 있는 여자였다.

‘혹시라도 메이론놈이 얻어 걸린다면 좋겠군.’

공들여 부비트랩을 설치한 이유도 메이론 때문이었다. 그런 위험한 놈에게는 한방 먹여두어야 했으니까. 연금술 폭탄정도로 죽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부상정도는 입힐 수 있으리라.

그렇게 카르안은 며칠 전 생각을 하며 발을 놀렸다. 레이아라가 눈을 가늘게 떴다.

“도시가 보이는군요. 한 시간 거리입니다.”

‘한 시간 거리에 있는 게 보인다는 게 더 신기하다.’

카르안이 혀를 찼다. 아무튼 괴물 같은 시력. 그들은 레이아라의 안내를 받아 도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거리는 여전히 허전했다. 사람들이 사라진 거리. 그들은 황폐한 거리를 걸어, 연금술사 연합에 도착할 수 있었다. 카르안은 흙먼지로 뒤덮인 간판을 쳐다봤다. 레이아라가 말했다.

“여기입니다.”

엘프의 언어, 연금술사 연합이라고 적혀있다. 카르안은 심호흡을 했다.

“엄청난 크기군요.”

그 말대로, 무슨 건물이 축구장 만했다. 과연 연금술의 대표하는 도시의 중심. 카르안이 말했다.

“바로 들어갈까요?”

“체력보충을 하는 게 좋을것 같은데. 안에는 온갖 경비 골렘들이 서 있어요.”

레이아라가 강한 파트너를 찾던 이유. 바로 연금술사 연합의 강력한 보안 시스템이다. 수십 개의 전투골렘들이 그들을 맞이하게 되어있다.

출중한 실력은 가진 레이아라도, 단독으로 그 시스템을 돌파하기는 불가능.

다른 마을이나 도시의 연금술사 연합과는 차원이 다르다. 귀한 재료와 상급 연금술사들이 모인만큼, 보안도 강화된 것이다.

“아니, 지금 바로 들어갑시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카르안의 단호한 대답, 카라나리도 마찬가지였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못 먹었지만, 적당히 공복인 상태가 오히려 싸움에는 적합했다.

점심을 실컷 먹고 들어가 봐야, 체하기밖에 더 하겠는가.

“근데, 혹시 이 전투 시스템이라는 것도 엘프가 없으니까 망가지지 않았을까.”

카르안의 혼잣말. 레이아라는 고개를 저었다.

“물론 그렇게 되면 좋기는 합니다만, 글쎄요. 이곳이 쉽게 뚫릴 가능성은 없어 보여요. 워낙 방어가 견고해서.”

카르안의 머릿속에 한 가지 의문이 지나갔다. 괴생명체가 이곳을 습격할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엘프족 대부분이 당했다. 그 정도로 강력한 놈들이, 고작 이곳의 방어 시스템을 뚫지 못할 리 없다.

‘엘프만 노리는 것이라 해도.’

그러면 연금술사 엘프들이 이곳으로 도망쳤을 것 아닐까. 화살이 날아오면 방패에 몸을 숨기는 게 당연하다. 이곳에 강력한 방어시스템이 구축되어있다면, 이곳으로 도망칠 수도 있다.

카르안은 레이아라를 한 번 더 노려봤다.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생글거리고 있다. 가슴 한구석이 무거웠다.

카라나리가 문을 열었다. 거대한 건물답게 안쪽도 널찍했다. 오후의 태양빛이 건물 안을 비추고 있었다.

“저놈들인가.”

기습 같은 것은 대비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들이 길드 안에 발을 내딛은 순간부터, 골렘들이 눈을 빛내며 다가왔으니까.

“%^%$&((@&!^*”

괴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약간의 기계음 같은 목소리. 카르안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가 처음 듣는 언어다.

엘프의 언어다. 지금까지 레이아라는 인간의 언어, 능숙한 제국어로 소통을 했다. 그녀 외에는 엘프는 본적도 없었다. 카르안은 엘프어를 처음 들어 보는 것. 그가 물었다.

“무슨 말이에요?”

“지금은 전시상황이라면서, 이곳에 접근 권한이 없으면 공격하겠다고 하네요.”

“역시, 싸워야 할 것 같습니다.”

카라나리가 검을 뽑았다. 카르안도 골렘을 생성할 준비를 했다.

“전부 골렘이로군.”

“무인으로 방어를 하려면 골렘이 최적이라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물러날 생각을 하지 않자, 몇 기의 골렘이 더 일어섰다. 카르안이 지금까지 보여준 골렘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위협적인, 아이언 골렘이었다.

“아이언 골렘 10기.”

카라나리의 검 끝이 살짝 떨렸다. 혼자서 상대하기 벅차다. 레이아라와 카르안도 도와주겠지만. 그래도 부상을 각오해야했다.

“어렵겠어요.”

레이아라가 활을 들었다. 그녀의 마법, 마나로 화살을 만들어 쏘는 기술도 골렘에게는 효과가 줄어든다.

강력한 고열만으로 상대를 녹이는 것이다. 그런데 저 아이언 골렘들은 열에 대한 저항력이 엄청나다. 단순한 쇳덩이가 아니라, 여러 겹의 마법에 의해 보호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르안의 입 끝은 살짝 올라갔다. 골렘 외의 놈들이라면 상당히 위험하지만, 골렘만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오히려 상대하기 쉽다.

“자, 일어나라.”

카르안이 골렘을 한기 소환했다. 주변의 모래가 모여 큼직한 형상을 이루었다. 3미터 가까이 되는 위협적인 골렘들 사이에서, 2미터 정도 되는 카르안의 골렘이 일어섰다.

“제가 전부 상대할 테니까. 보고만 있어요.”

“네?”

“농담할 때가........”

카라나리와 레이아라 모두 고개를 저었다. 물론 카르안의 골렘도 강력하지만, 힘이라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다. 거대한 강철의 벽 앞에서 그의 골렘은 너무나 초라해 보였다.

“가라.”

먼저 달려간 것은 카르안의 골렘. 아이언 골렘은 카르안의 골렘을 인식했다. 그리고 강철의 주먹을 휘둘렀다.

파앗!

카르안의 골렘이 몸을 움직여 피했으나, 몸의 일부가 날아갔다. 이번에는 그의 차례. 카르안의 골렘이 주먹을 뻗었다.

모래로 이루어진 골렘이다. 그의 주먹은 강철 앞에 산산조각나버렸다. 공격이 먹히지 않는다. 모두들 그렇게 생각했다.

“음?”

부서진 모래 조각들이, 아이언 골렘 사이로 파고들었다. 아이언 골렘은 모래의 침입을 막으려 했지만, 작은 모래조각을 전부 막을 수는 없었다.

“해제.”

카르안의 한마디. 그 순간 빛나던 아이언 골렘의 눈이 빛을 잃었다. 마치 전원이 끊어진 로봇처럼, 축 늘어져버렸다.

“뭘 하신 거죠?”

“별거 아니지. 겉이 단단해도 속은 물렁하니까.”

일종의 해킹이었다. 무인 골렘은 강력했지만, 다른 연금술사의 침입에 약했다. 특히 카르안정도의 실력자라면, 무인 골렘쯤은 쉽게 무력화 시킬 수 있다.

만약 무인 골렘이 아니라 연금술사가 조종하는 물건이었다면, 이렇게 쉽게 막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연금술사가 즉석에서 대처할 수 있기 때문. 하지만 무인 골렘은 그게 안 된다.

다른 골렘들도 달려들었다. 카르안의 골렘은 연체동물처럼 유연하게 움직였다. 아이언 골렘의 주먹을 모래가 휘감았다.

잠시 후, 아이언 골렘 8기가 힘을 잃었다. 그의 골렘이 그들을 무력화 시킨 것.

지친 것은 카르안도 마찬가지였다. 마나가 부족하다. 더 이상 골렘을 유지시킬 수 없다. 그의 골렘이 다시 모래로 돌아갔다. 카르안이 이마의 땀을 훔쳤다.

“나머지는 부탁 좀 하지.”

“알겠습니다.”

카라나리가 치고 들어갔다. 비교적 느린 골렘의 공격. 날렵한 카라나리를 맞추지 못했다. 만약 수가 많았다면 그녀도 위험했겠지만, 지금 카라나리가 감당할 골렘은 고작 1기였다.

“하압!”

레이아라도 활을 뽑았다. 화살촉에 마나가 맴돌았다. 관통력의 강화시켜주는 마법이다.

보통 아이언 골렘이라면 화살쯤은 튕겨낼 수 있다. 하지만 레이아라의 마력이 담긴 화살은 일반적인 물건이 아니었다.

여섯 발. 레이아라가 골렘을 쓰러뜨리는데 사용한 화살이다. 그녀는 달려오는 골렘의 주먹을 엘프 특유의 민첩함으로 피했다.

그러면서 빠르게 활시위를 당겼다. 아이언 골렘도 특유의 내구성으로 버티려 했지만, 6번째 화살에 핵이 뚫렸다.

“생각보다 시시하군.”

두 여전사가 골렘을 쓰러뜨리자, 그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보다, 이 넓은 곳을 다 둘러보려면 하루 종일 걸릴것 같네.”

“중요한 물건은 중앙에 보관되어 있을 거예요.”

레이아라가 말했다. 카르안은 그녀의 말에 따라, 건물의 중심으로 걸어갔다.

“이건 뭐죠?”

카르안이 혀를 찼다. 건물 중앙에는, 투명한 구체 하나가 있었다. 수정을 깎아 만든 것처럼 굉장히 매끈했다. 뒤따라 걸어온 레이아라가 답해주었다.

“이건 엘프 연금술사들이 만든 역작, ‘하늘의 문’이에요.”

“하늘의 문?”

거창한 이름이다. 그리고 그가 처음 보는 물건이기도 했다. 적어도 포션의 재료는 아니리라.

“한번 구경이나 할까?”

그는 손을 뻗어 구체를 들어올렸다. 그 구체는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었지만, 카르안이 힘을 주자 뽑혀버렸다.

순간 구슬이 은은하게 빛났다. 그 구체에서 빛줄기가 생성되어, 카르안에게 흘러 들어왔다. 하지만 워낙 희미한 빛이었기에, 카르안은 눈치 채지 못했다. 그것보다.

우우웅.........

“이상한 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카르안이 중얼거렸다. 이 구슬을 든 순간, 뭔가 김빠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그때였다. 카라나리가 입을 열었다.

“카르안씨.”

“왜 그러지?”

“누군가 접근하고 있습니다.”

카라나리는 긴장된 표정으로 말했다. 그녀의 귀에 요란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한두 명이 아니다.

백 여명의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