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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션으로 무한성장 (43)화 (43/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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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떼 -2

    레이아라가 앞장서서 그들을 인도했다. 어제와 같은 로브를 쓴 엘프. 그녀가 정확한 길을 알려주자 카라나리와 카르안은 편하게 갈 수 있었다.

    주변을 보자 그들이 가장 앞장서서 가고 있다. 다른 용병들은 대부분 지도와 나침판을 이리저리 확인하고 있다. 그만큼 뒤쳐질 수밖에 없다.

    저들은 모두 엘프의 나라, 르네키르다에 가 본적이 없다. 당연히 초행길이니 헤맬 수밖에. 하지만 레이아라는 다르다.

    ‘고용하기를 잘했네.’

    단순히 르네키르다 내부뿐만 아니라, 가는 길에서도 도움이 된다. 트랙 없는 레이스에서 네비게이터 역할을 해 주는 것이다.

    세 명은 한참을 걸어갔다. 어느 순간부터 주변의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 사람이 줄어든 만큼, 여러 가지 식물들이 늘어났다.

    숲이 점점 우거져간다. 걷기 힘들 정도로. 셋은 각자 검을 꺼냈다. 그것으로 앞을 가리는 수풀을 쳐내었다.

    “숲의 심장은 엘프 마을 깊은 곳에 있어요.”

    “그 전에 얻을 수 있는 것은 전부 얻어보자고.”

    “물론이죠.”

    “그런데 말이야. 대체 어디서부터 르네키르다입니까?”

    2시간쯤 걸었을까. 카르안이 입을 열었다. 주변을 대충 둘러보긴 했지만, 그냥 숲뿐이다. 레이아라가 잡초를 힘껏 쳐냈다.

    “방금 지났어요.”

    “방금?”

    믿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자연인이 좋다지만, 그래도 국가라면 성벽이나 방책 같은 것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는가. 하지만 여기는 국경선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다.

    그녀는 카르안의 의문에 답해주었다.

    “원래 감지마법부터 여러 마법적인 함정이 가득 있었어요. 지금은 전부 파괴되었지만.”

    괴생명체의 습격. 엘프의 활로도, 고도로 발달된 마법으로도 막을 수 없었다. 마법을 유지하던 엘프들은 전부 죽어버렸다. 덕분에 그들은 아무 방해 없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괴생명체라.’

    카르안은 눈썹을 찌푸렸다. 지루하게 걷기만 했기 때문일까, 그의 머릿속에 무언가 떠올랐다.

    “혹시 그 괴생명체 놈들의 습격이 전에도 있었나요?”

    카르안은 카라나리와 레이아라, 둘에게 말했다. 카라나리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고, 레이아라도 어깨를 으쓱했다.

    “그거야 아무도 모르죠. 하지만 없지 않았을까요. 제가 여기서 살아봐서 아는데, 르네키르다의 엘프들은 강하거든요. 르네키르다가 당신이 살던 나라보다 몇 배는 튼튼할걸요?”

    레이아라가 자신감 있게 말했다. 그만큼 엘프의 숲은 견고하다. 그런데 그런 르네키르다가 파괴되었다.

    르네키르다가 이렇게 박살났다. 그것을 보면 괴생명체의 습격이, 한번 공격을 시작하면 강대한 왕국 하나를 초토화시켜버릴 정도의 힘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전에도 그런 습격이 있었다면 조용히 지나갔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괴생명체가 처음 공격을 한 것이군.’

    카르안의 머리가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발은 르네키르다를 향하고 있지만, 시선은 과거로 돌아가 있었다. 그가 이 세계, 아케르나라에 처음 온 날.

    안식과 평온의 신. 그가 당신의 세계를 집어삼킬 것입니다.

    대충 그런 말이었다. 카르안이 이곳에 오기 전에 들은 정보. 그 여자가 왜 그런 정보를 알려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냄새가 났다. 카르안의 예민한 후각이 경고를 울리고 있었다. 하지만.

    ‘지나친 비약이다.’

    아무런 근거도 없다. 그저 그런 ‘느낌’이 들었다. 뜬금없이 듣도 보도 못한 괴생물체의 침공이라니. 그것도 나라 하나를 반쯤 마비시킬 정도로 강력한 공격.

    ‘만약 저게 그 안락 뭔가 하는 신과 관련이 있다면.’

    이번일은 의문투성이였다. 차라리 마족의 침공이나 이런 것이라면 속이 편할 텐데. 카르안은 심호흡을 했다. 답답한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그는 머리를 흔들었다.

    ‘알아볼 시간은 많아. 일단 숲의 심장이 먼저다.’

    그때였다. 앞장서던 레이아라가 걸음을 멈췄다.

    “하아. 이쯤 되면 충분하겠군요.”

    레이아라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굳은 표정으로 뒤를 돌아봤다.

    “길을 잘못 들었나요?”

    카르안이 말했지만 그녀는 답이 없다. 그저 묵묵히 그를 바라볼 뿐이다. 갑자기, 그녀가 활을 꺼내들었다.

    갑작스러운 행동. 게다가 그녀는 뒤에 있던 카르안을 노려보고 있다. 카라나리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당신........”

    카라나리가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러거나 말거나 레이아라는 활에 화살을 먹였다. 활이 탄력 있게 휘었다. 카르안을 향해서. 카라나리는 검을 뽑았다.

    “무슨 짓이죠.”

    그녀의 몸이 레이아라의 활처럼 팽팽하게 긴장했다. 언제라도 튀어 나갈 수 있게.

    어제부터 뭔가 이상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무슨 죄를 짓고 추방당했는지도 모르는 여자. 그런 여자를 믿는 게 아니었다. 어제 저녁의 불길한 눈웃음. 그게 떠올랐다.

    그리고 지금 그녀의 화살을 카르안을 향하고 있다. 만약 그녀가 막지 못한다면, 카르안이 위험하다.

    “쉿.”

    레이아라는 한마디만 남긴 채, 활시위를 놓았다. 커다란 화살이 빠르게 튀어나갔다. 그 화살은 카르안을 스쳐 지나갔다.

    ‘빗나갔나?’

    카라나리는 그녀가 화살을 쏘는 순간, 그게 빗나갈 것이라는 것을 예측했다. 대충 각도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도 맞추지 못하다니, 그것을 확인한 순간 카라나리 밑의 땅이 깊게 파였다.

    -파앗!

    카라나리가 달려들었다. 열 걸음. 그 거리가 한순간에 좁혀졌다. 그녀의 검이 레이아라의 목을 향했다.

    “으아아앗! 잠깐만요!”

    레이아라의 표정이 갑자기 변했다. 그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활을 들어올렸다. 검과 활이 부딪혔다. 카앙 소리와 함께 그녀가 뒤로 밀쳐졌다.

    “오해, 오해에요!”

    카라나리는 무시하고 달려들려 했다. 그 순간 그녀의 귀가 움찔했다. 작게나마 비명 소리가 들린 것이다.

    목소리는 절박한데, 굉장히 소리가 작다. 아마 상당히 떨어진 곳에서 들린 것이리라.

    “카르안씨를 쏘려던 게 아니에요!”

    “그러면.”

    “뒤에 따라오는 사람이 있었으니까요!”

    레이아라가 울먹거리는 눈으로 말했다. 카라나리는 한걸음 물러섰다. 뒤에서 무언가 비명이 들리기는 했다.

    카라나리는 귀에 온 감각을 집중시켰다. 그러자 급하게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카르안이 한숨을 쉬었다.

    “또 뭔 일이야.”

    “이쪽이다! 분명 여기서 화살이 날아왔어!”

    잠시 후,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다가왔다. 수는 6명. 한 명은 팔에 화살이 박혀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들은 전부 무기를 뽑았다.

    “젠장. 왜 들킨 거지.”

    대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말했다. 그는 검은 복면을 쓰고 있었는데, 상당히 위협적인 기운이 흘러나왔다.

    키나 덩치가 크지는 않지만, 바람처럼 날렵해 보이는 인상. 잘 숙련된 암살자 같았다. 레이아라가 말했다.

    “저 사람들이 저희를 따라오고 있었어요.”

    “그러면 말을 해야.......알지요.”

    “말을 하면 집중이 안돼서........”

    카라나리가 다시 말을 높였다. 그녀가 카르안을 노리는게 아니란 것을 알았다. 그리고 저 암살자들과 레이아라의 거리는 상당했다. 그만큼 섬세한 조준이 필요한 것.

    ‘전혀 눈치 채지 못했어.’

    저 6명의 남자들은 결코 하수가 아니었다. 카라나리도 미행을 눈치 채지 못할 만큼 훈련받은 암살자들.

    하지만 레이아라는 정확히 그들을 파악했다. 심지어 상당한 거리에 있었을 텐데 화살을 명중시키기까지.

    활을 이용한 원거리 저격이다.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먼 거리, 그중에서도 숙련된 암살자를 활 한번으로 명중시키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 묘기를 레이아라가 해낸 것이다.

    “그래서 우리를 왜 쫄래쫄래 따라온 거지?”

    카르안이 한걸음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암살자들은 한걸음 물러섰다.

    “잠깐. 우리는 그저 르네키르다에 가고 싶었을 뿐이야. 너희들이 망설임 없이 가기에, 우리도 뒤따랐을 뿐이다. 다른 의도는 없었어.”

    “저들은 암살자입니다. 상당한 실력의.”

    카라나리도 검의 방향을 돌렸다. 레이아라에서 암살자들 쪽으로. 위협적인 오러가 검에 실렸다.

    “젠장. 우리도 여기가 박살났다는 소식을 듣고 온거란 말이야.”

    암살자들도 오해를 받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었다. 암살자가 뒤를 밟는다. 이것 자체가 의심스러운 상황이니까. 그들의 대장이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솔직히 우리가 너희랑 왜 싸우겠냐.”

    “대장. 그냥 그어버릴까요.”

    암살자중 한 사람이 말했다. 그러자 물러서던 보스도 잠깐 눈빛이 바뀌었다. 암살자가 계속 말했다.

    “그냥 경쟁자를 줄여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다른 녀석들은 뒤쳐졌으니까.”

    “나쁘지 않은 의견입니다.”

    다른 암살자가 그를 거들었다. 대장은 머리를 굴렸다. 부하들의 말이 맞다. 지금 르네키르다는 텅 빈 집이다. 거기를 경쟁자 없이 전부 차지한다.......

    그의 시선이 돌아갔다. 미행하는 동안 뒷모습만 봐서, 저들이 누구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그의 시선이 카라나리, 레이아라를 지났다. 그리고 카르안의 얼굴을 보는 순간, 냉정했던 남자의 동공이 덜덜 떨렸다.

    “제, 젠장. 포기한다.”

    “왜 그러십니까.”

    “어제 싸움 못 봤나? 저 남자는 아이언 골렘 수십 마리를 소환하는 괴물이야!”

    암살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어느새 다섯 기가 수십 기로 늘어났다. 기억이 조금 왜곡된것 같았다. 암살자들도 깜짝 놀랐다.

    “잠깐, 자세히 보니. 그 남자로군.”

    “그래도 우리가 먼저 공격한다면 승산이 있습니다.”

    연금술사는 기본적으로 근접전에 약하다. 암살자는 몸을 낮추고 카르안을 노려봤다. 동료 두 명이 여검사를 맡고, 다른 두 명이 엘프를 막는다. 그리고 자신과 대장이 달려든다면.......

    ‘젠장. 계산이 안 된다.’

    여검사와 엘프도 굉장히 강하다. 하지만 저 남자, 카르안은 도저히 그 끝을 알 수 없다. 섣불리 접근했다가 순식간에 연금술의 밥이 될 수도 있다.

    ‘너무 깊다. 너무 깊어.’

    카르안은 양 팔을 내려놓고 편한 자세로 있었다. 대장과 암살자들은 작게 속삭였다.

    “아무래도 싸움은 잘 모르는 모양입니다.”

    대장은 예리한 눈으로 카르안을 살폈다. 편하게 서 있는 자세. 어쩌면 어정쩡하기까지 해 보이는 자세........

    그를 살피던 대장은, 무언가 깨달은 듯 눈이 커졌다. 그는 떨리는 손을 간신히 진정시켰다.

    “안 된다. 역시 우리는 물러간다.”

    “대장.”

    “멍청한 녀석. 저 남자는 싸움을 모르는 게 아니다.”

    그가 침을 꿀꺽 삼켰다. 수많은 암살을 하고, 수많은 위험이 있었지만, 지금처럼 압도적인 공포를 느껴본 적은 없다. 그는 우둔한 부하들에게, 카르안을 관찰한 결과를 알려주었다. 그가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남자는, 우리를 적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다.”

    “그럴 수가!”

    “쟤들 뭐라는 거야?”

    카르안이 투덜거렸다. 뭐라고 계속 중얼거리는데 뭐라는 지는 하나도 안 들린다. 단지 팔다리가 벌벌 떨리는 게 상당히 긴장한 듯 했다. 카라나리와 레이아라도 겨누던 무기에서 힘을 풀고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암살자들은 여전히 진지했다.

    “젠장. 너는 길가에 개미를 보면 어떤 기분이 드나?”

    “별 느낌 안 듭니다.”

    “그래, 저 남자도 똑같은 거야. 우리가 그런 개미 정도의 위협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지.”

    암살자들이 굴욕에 몸을 떨었다.

    “그런! 아무리 강하다 해도 골렘 정도로는......

    .”

    “골렘이 끝이 아니야. 보나마나 비장의 수를 몇 개씩이나 숨겨두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저것도 본체가 아닌 키메라일지도 모르지........ 정말 심오한 놈이야.”

    “크읏!”

    “싸울 건지 말지 확실히 해주지?”

    그때 카르안이 말했다. 단순히 한마디 했을 뿐인데, 암살자들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펄쩍 뛰었다.

    “읏.”

    “우리에게 살 기회를 주는 것인가.”

    “어쩌면 그것마저 함정일수도.......”

    “하지만 방법이 없다.”

    대장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카르안을 보더니 슬금슬금 물러났다.

    “기, 기회를 줘서 고맙다! 우리는 더 이상 그대들의 뒤를 따라가지 않겠다! 그, 그러니 용서해다오.......”

    “뭐?”

    “그럼 이만!”

    그들은 순식간에 달아나 버렸다. 팔에 화살이 박힌 녀석도 어기적거리며 뒤따라갔다.

    “뭐하는 놈들이었지.”

    “그러게요.”

    카라나리가 허탈하게 말했다. 아무도 답해주지 않았다. 그저 암살자들의 호들갑스러운 발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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