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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떼 -2
카라나리를 고용하게 된 것은 좋았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남아있었다. 바로 아르나.
보통 카라나리가 집을 비워봐야 일주일 정도다. 지금은 조금 이야기가 다르다. 최소한 한두 달은 걸릴 것이다.
아무리 건강이 좋아졌다고 해도, 어린 아이를 몇 달씩 방치하는 것은 조금 위험했다.
“그렇다면, 저! 러슬라이에게 맡겨 주십시오!”
“쯧쯧. 애 경기 일으킬 일 있냐.”
카르안이 한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가 한 한마디 중얼거림에, 러슬라이가 귀신같이 나타난 것이다.
카르안이 혀를 찼다. 그는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래 봬도 제가 국가 공인 가정 보육사 자격증까지 있습니다.”
“국가 보육 뭐?”
“국가 공인 가정 보육사 자격증이요. 공부하느라 힘들었어요.”
카르안이 입에 물려던 담배를 떨어뜨렸다. 믿을 수가 없었다.
국가 공인 자격증이라는 것은 정말로 나라에서 인정한다는 뜻이다. 그만큼 공신력 있는 자격. 난이도는 상당히 다르지만, 연금술 면허와 비슷했다.
“아무리 그래도 임마, 거짓말은 치지 말아야지.”
카르안의 말에 러슬라이는 손바닥만 한 조각을 꺼냈다. 거기에는 그 말대로 가정 보육사라는 말과 함께, 밝게 웃고 있는 러슬라이의 얼굴이 있었다.
카르안은 곧 러슬라이가 보육원의 스페셜리스트고 특기는 ‘삶은 문어 따라 하기’라는 것까지 알 수 있었다.
“야,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왜 그렇습니까?”
“아니, 뭔지는 몰라도 그냥 좀 아닌 것 같아.”
그저 본능이 경고하고 있었다. 삶은 문어 뭐시기도 3살짜리 애기들이나 좋아하지, 아르나 에게는 별 효과가 없을 거다.
“그나저나 어쩌다가 이런 것까지 따게 됐냐?”
“흑룡회에 오기 전에 거기서 일했거든요.”
“혹시 아이들을 좋아한다던가?”
러슬라이가 씩 웃었다. 러슬라이가 아이들을 좋아한다라. 참 실례되는 말이지만 위험한 상상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아니요. 그냥 일이 편하다고 해서. 돈은 벌어야 했거든요.”
“그래. 차라리 그게 낫지.”
“무슨 말씀이신지.......”
“몰라도 돼. 아무것도 아니다.”
결국 아르나를 맡아준 것은 알샤인 교단의 뮬리펜 이었다. 뮬리펜은 흔쾌히 수락했다.
그리고 러슬라이가 적극적으로 아르나를 맡겠다고 한 이유도 알 수 있었다. 그것을 핑계로, 힘든 일을 빠지려 했던 것이다. 화내기도 안쓰러워서 카르안은 그냥 넘어가 버렸다.
2.
다음날 아침. 둘은 마법사 길드에 도착했다.
“갈 준비는 다 하고 왔나?”
카라나리와 사이프카르도 눈이 마주쳤다. 잠깐의 침묵. 사이프카르는 그녀를 못 본 것처럼 이야기했다.
“올 때 기념품이라도 사와.”
“물론입니다.”
기념품은 잔득 가져올 것이다. 다만 돈을 주고 사오지는 않겠지만. 마법사들이 전이 마법을 준비하는 사이, 사이프카르는 카르안을 잠시 불러내었다.
“같이 간다는 용병이 저 녀석이야?”
“네.”
사이프카르는 잠시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과거에 카라나리를 죽일 뻔 한 일이 있었다. 사이프카르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카라나리도 내색하지는 않았다.
“그러면 조심해야 할 녀석이 하나 있어.”
“그 괴생명체는.......”
“그게 아니지. 광기의 메이론. 아마 괴생명체보다 그놈이 더 위험할거다.”
카라나리의 스승을 습격했고, 그 과정에서 두 눈을 잃은 흑룡회의 지부장. 카르안은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지부장은 자기 지역을 지켜야 되는거 아닙니까.”
“그렇지. 근데 걔가 왜 광기의 메이론이겠냐. 제정신이 아니니까 그렇지.”
“전이 마법이 준비되었습니다.”
마법사 한명이 소리쳤다. 카이프카르는 괜히 발끝으로 땅을 콕콕 찍었다.
“또 수호령 잡을 때처럼 오버하지 말고. 잘 다녀와라.”
카르안과 카라나리는 밝게 빛나는 마법진 안에 섰다. 그것을 보자, 그가 처음 아케르나라로 왔을 때가 떠올랐다.
“그러면 장거리 텔레포트를 시작합니다. 3,2,1......”
0 이라는 말은 듣지 못했다. 갑자기 몸이 땅으로 쑥 꺼지는 느낌. 그리고 끝없이 추락하는 느낌이 동시에 들었다.
당연히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주변이 눈부시게 빛나는데 계속 추락하는 느낌이 든다. 카르안은 없던 고소공포증까지 생길 지경이었다.
“윽!”
그러다 한순간. 빛이 사라지며 딱딱한 돌바닥이 느껴졌다. 무중력 상태였다가 갑자기 묵직한 느낌이 들자, 그는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이런.”
그는 옆으로 주저앉아 버렸다.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그때 누군가 그를 붙잡아 주었다.
“괜찮으십니까?”
“고마워.”
카르안은 민망하게 웃으며 일어났다. 주변에는 여러 사람들이 삼삼오오 몰려 있었다.
“전부 르네키르다를 털어 먹으로 온 놈들이로군.”
여기는 르네키르다 주변의 작은 마을이었다. 평소에는 찾는 사람이 거의 없는 마을.
그나마 르네키르다와 가깝기 때문에, 엘프들과 교류를 원하는 마법사들이 살고 있었다. 여기 주민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법사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
덕분에 작은 마을이지만 마법사 길드가 있었고, 장거리 텔레포트가 가능한 것이다.
“흉흉한 분위기네요.”
카라나리가 작게 말했다. 그녀 말대로 여기는 죄다 한건 하러온 사람들 뿐. 소수의 모험가들도 보였지만, 대부분 범죄조직, 거친 용병들이다.
가끔 마족들도 보였다. 다만 서로의 목적을 알기에 싸울 기세는 아니었다.
“흑룡회도 있군.”
사람들 사이로, 검은 용이 그려진 옷들이 보였다. 저들도 흑룡회에서 뽑혀온 사람들. 그와 비슷한 위치일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그 흑룡회 조직원 중 한명이 카르안에게 인사했다. 짧은 머리에 근육질 몸. 집에 도마가 없어서 얼굴을 사용했는지, 칼자국이 가득한 얼굴.
굉장히 무시무시하게 생긴 녀석이었다.
“아, 반갑습니다.”
“흠흠. 그런데 방금 텔레포트 지역에서 넘어지시지 않았습니까.”
“아? 예. 제가 이런 일에는 익숙하지가 않아서.”
그는 거만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러면 안 되지요. 지금 그 옷을 입고 있으면, 당신은 흑룡회의 간부임을 모두에게 알리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당신이 실수를 하면, 한명이 아닌 흑룡회 전체를 비웃음거리로 만들게 되는 거죠.”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러니 다음부터는 조심하십시오. 여기는 다른 조직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는 뒷짐을 지고 그렇게 말했다. 뜬금없는 지적. 카르안은 뭐라 하고 싶었지만, 존대를 유지하고 또 아주 틀린 말도 아니기에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알아 들으셨다니 다행입니다. 음. 그럼 저는 이만.”
“라아이님!”
그때 호리호리한 남자가 그에게 다가왔다. 장거리 텔레포트는 2명까지 지원해 준다고 했지. 아마 그가 저 남자의 파트너일 것이다. 그는 손에든 봉지를 흔들며 소리쳤다.
“속옷 사왔습니다. 어휴. 아무리 장거리 텔레포트가 처음이라고 하셔도 오줌을 지리시면........”
“.......”
라아이라고 불린 남자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는 얼른 새 속옷을 낚아채었다.
“보, 본인은 잠시.”
“라아이씨는 다음부터 기저귀라도 차고 오세요. 조직의 명예를 위해서.”
카르안이 빈정거렸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라아이는 후다닥 어딘가로 사라졌다.
‘혹시 저놈 본명이 광기의 메이론 아닐까.’
일단 제정신이 아닌 것은 확실해 보였다. 아무리 훈수를 두고 싶어 미치겠어도, 팬티는 갈아입고 해야 할 것 아닌가.
카르안과 카라나리는 밖으로 나가려했다. 그가 중얼거렸다.
“흑룡회가 진짜 제대로 된 조직인지 요즘 회의감이 든다.”
카라나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카르안이 길드의 문을 열었을 때였다.
“저기 무슨 일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마법사 길드 밖, 마을의 광장에서는 소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싸움인가. 하긴, 지금 이곳에는 온갖 싸움꾼들이 다 몰려있다.
한마디로 전원이 움직이는 화약고들. 자그마한 불씨만 있어도 죄다 폭발해 버릴 것이다.
“네가 나한테 부딪혔잖아! 이 새끼가 어디서 구라를 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싸우고 있었다. 가죽갑옷으로 무장한, 용병으로 보이는 남자들. 그들은 한 명의 남자를 둘러싸고 있었다.
“이거 봐라. 내 말을 씹어대?”
“말을 해보라고. 말을!”
둘러싸인 남자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용병들에게 둘러싸여서 머리밖에 보이지 않았다. 여기까지 온 이상 그도 한가닥 하는 사람이겠지만, 용병들에게 둘러싸이니 별 수 없을 것이다.
“쯧쯧. 이런 곳에서도 싸움질이라니.”
카르안이 혀를 찼다. 대충 저 남자가 참고 넘어갈 것 같은 분위기. 카르안은 발걸음을 돌렸다.
“카라나리. 식량부터 구하지. 잡화점에 들려야 한다.”
장거리 텔레포트를 위해서는 최대한 짐을 줄여야 했다. 식량도 현지에서 조달할 수밖에 없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툭.
그런데 카르안 옆쪽으로 무언가 떨어졌다. 그는 그냥 지나치려 했지만, 알수없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그 물건을 자세히 봤다.
“윽!”
그건 물건이 아니라 사람의 머리였다. 우악스럽게 뽑힌 듯 피가 줄줄 새고 있었다. 이게 어디서 날아온 것일까. 그가 시선을 돌렸다.
아까 사람들이 싸우던 곳. 그곳에서 일어난 일이다. 머리가 없어진 용병 한명. 그의 몸이 힘을 잃고 쓰러졌다. 혼자 있던 남자가 한 짓처럼 보였다.
“이 새끼야!”
동료가 죽자, 다른 용병들도 전부 달려들었다. 그들은 각자 검과 단검 등을 남자의 몸에 찔러 넣었다.
“이게 뭐야!”
하지만 박살난 것은 남자가 아닌 무기. 단단한 검은 부러지고, 유연한 검은 휘어졌다. 남자가 갑옷을 입고 있던 것도 아니다. 그는 셔츠 하나만 입고 있었다.
“개미 새끼한테 물리는 게 더 아플 것 같구나.”
남자가 섬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그의 키가 쑥 켜졌다. 카르안의 입이 벌어졌다.
“저게....... 앉아있던 거였어?”
성장기 어린이도 아니고 갑자기 키가 커질 리가 없었다. 사람들에게 둘려 싸여 얼굴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남자는 의자에 앉아있던 것이었다.
안 그래도 커 보였던 키가 2배 가까이 불어났다.
그 뒤는 살육의 시간. 남자는 맨 손 하나로 모든 용병들을 상대했다. 싸움이라도 부르기도 민망했다. 사람이 개미를 밟아 죽이는 것을 전투라고 하지는 않으니까.
용병들의 공격은 모두 막혀버렸고, 남자의 맨 손은 그들을 찢어버렸다. 일분도 되지 않아 한 무리의 용병들이 고깃덩어리로 변했다. 남자는 피 범벅이 된 얼굴로 시체를 내려다봤다.
“지루하던 참에 잘 됐군. 탐색 전에 몸풀기로는 딱이야.”
싸움 구경에 몰려든 사람들도 그 모습에는 질려버린 것 같았다. 남자의 힘과 잔혹성은 상상 이상이었으니까.
그는 의자에 걸려있던 코트를 걸쳤다. 깃발로 써도 될 것처럼 거대한 코트에는, 흑룡회의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3.
남자는 주변을 한번 둘러봤다. 그러더니 거대한 사자후를 날렸다.
“여기있는 흑룡회! 모두 집합!”
쩌렁쩌렁한 목소리. 그냥 고함소리를 10배쯤 확대한 것 같았다. 귀가 웅웅거릴 정도로 큰 목소리였다.
“흑룡회?”
“알펜 제국의 조직이다.......”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세계에 널리 퍼진 조직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별로 자랑스러울 것도 없지만.
그의 외침에, 몇몇 사람들이 그의 앞으로 걸어갔다. 전부 흑룡회의 옷을 걸치고 있었다. 그들을 보며 남자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래. 지부장의 명령에는 바로 따라야지. 반갑다. 나는 메이론이라고 한다.”
그는 붉은 빛을 내는 눈동자로 그들을 쳐다보았다. 저런 덩치에 눈에서 빛까지 나니, 도저히 같은 인간으로 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내가 너희들을 부른 이유는, 여기서 찾고 싶은 물건이 있어서다. 같은 흑룡회 동지들끼리 힘을 합쳐야 하지 않겠나?”
그의 눈이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보나마나 힘을 합쳐 구한후, 몫은 그 혼자 챙길 것이다.
“카르안씨.”
카라나리가 카르안을 불렀다.
“가지 않으셔도 괜찮나요?”
“저놈은 내 상관이 아니니까.”
그의 상관은 사이프카르, 그리고 흑룡회의 보스뿐이다. 다른 지부는 지부장이건 지부장의 할아버지건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저 지부장 메이론의 박력에, 다른 흑룡회 사람들은 기가 죽은 것 같았다. 사람이 순식간에 고깃덩어리로 변하는 환상의 차력 쇼를 실시간으로 봤으니 이해가 가기도 했지만.
카르안은 자신이 입던 코트를 슬쩍 벗었다. 눈에 띄어봐야 좋을 게 없으니까. 그런데 메이론이 다음 말을 한 순간, 그의 표정도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보물중 보물이라는 숲의 심장! 나는 그것을 찾고 싶다! 동지들이라면 나를 도와줄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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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된 계절 편에 댓글은 모두 확인했습니다. 즐겁게 읽어주신 분들도 스킵하신(....)분들도 계시더군요. 읽지 않으셔도 괜찮도록 노력하겠습니다만. 여유가 되실때, 느긋하게 즐겨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