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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된 계절 (카라나리 외전)
“으아악!”
“문, 문 열어!”
카라나리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방이 붉게 타오르고 있다. 매캐한 연기가 목을 태웠다.
“카라나리! 아르나!”
누군가 카라나리의 몸을 감싸 안았다. 그녀의 어머니였다. 비명과 절규로 가득 찬 공간에서, 그녀는 두 소녀를 품에 안았다.
“젠장! 창문이 없어. 구멍을 내야해!”
한 남자가 소리쳤다. 그의 눈에는 절망이 가득했다. 카라나리는 그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녀의 시선을 눈치 챈 것일까. 남자가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어린 그녀가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너무나 어색한 연기.
작은 마을, 백작령 근처의 화전마을이었다. 그곳에 전염병이 돌았다. 게다가 치료제는 더없이 비쌌다.
이대로 두면 역병이 더 멀리 퍼지리라. 영주는 자신의 영지로 역병의 불길이 옮겨 붙는 것을 싫어했다. 그래서 나온 해결책.
전부 태워 죽여라.
영주의 병사들이 마을에 왔다. 그들은 창과 검을 내세우며 주민들을 마을의 창고에 몰아넣었다. 도망치려는 자는 모두 창으로 찔러 죽였다.
주민들이 모두 창고에 갇히자, 병사들은 그곳에 불을 질러버렸다. 사람들의 비명이 마을을 울렸지만,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창고는 거대한 아궁이가 되어 주민들을 태워 죽이고 있었다. 이대로는 다 죽는다. 남자는 나무로 된 벽에 힘껏 발길질을 해댔다.
불길이 남자를 지졌다. 살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하지만 그는 그것밖에 할 줄 모르는 것처럼, 벽을 발로 찼고 또 찼다.
꽈직!
간절한 기원이 닿았던 것일까, 두꺼운 벽에 그의 발만 한 구멍이 뚫렸다. 남자는 급히 손짓했다.
“레이샤! 어서 애들부터 보내!”
남자가 소리쳤다. 천장이 흔들거린다. 불에 타 죽는 것보다 창고가 먼저 무너질 것 같다. 여자는 얼른 두 딸을 안고 남자에게 갔다.
“으윽.......”
그 사이에도 남자는 힘껏 틈을 벌렸다. 양 손으로 구멍에 힘을 주었다. 맨 손이었기에 피가 흘렀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결국 카라나리가 빠져나갈 만한 틈이 생겼다.
“카라나리부터, 빨리 나가. 나가야 돼!”
“하지만 엄마!”
카라나리가 망설였다. 구멍은 작다. 결코 그의 부모가 나갈 수 없을 만큼. 그러자 여자는 화난 표정으로 소리쳤다.
“너희가 나가야 우리가 나갈 수 있어! 시간 끌지 말고 어서!”
처음 보는 어머니의 화난 표정에, 카라나리는 몸을 움직였다. 작은 구멍이었다. 나무의 단면에 긁혀 피가 흘렀다. 하지만 아파할 틈도 없었다. 여동생을 받아주어야 했다.
“엄마!”
아르나가 버둥거렸다. 죽더라도 어머니 품속에서 죽고 싶은 것처럼. 여자는 억지로 카라나리에게 아르나를 밀었다.
“싫어! 나 가기 싫어!”
아르나가 악을 썼다. 그녀는 너무 어렸다. 하지만 본능일까, 지금 어머니의 손을 놓치면 영영볼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녀의 어머니는 가혹하리만큼 단호하게 아르나의 손을 처냈다.
카라나리는 밖에서 어머니가 건네주는 여동생을 받았다. 두 소녀는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남자가 소리쳤다.
“우리도 따라가마.”
“저도 도와드릴게요!”
카라나리가 벽에 손을 뻗었다. 남자도 틈을 더 벌리려는 듯 손을 내밀었다. 그 순간이었다.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
카라나리의 얼굴에 무언가 튀었다. 뜨겁고, 빨간 액체였다. 그녀는 손을 올려 얼굴을 만져보았다. 축축했다.
“........”
다시 시선을 틈새 사이로 돌렸다. 공중에서 떨어진 나무에 찍혀, 얼굴이 반쯤 박살난 남자가 있었다.
“아빠?”
카라나리가 아르나의 눈을 가렸다. 동시에 창고가 완전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비명이 터져 나왔다. 끔찍한 소리. 카라나리는 귀를 막아버렸다. 도저히, 도저히 들을 수가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는 귀에서 손을 때었다. 비명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대신 발소리가 들렸다. 묵직한 군화소리. 그녀는 시선을 돌렸다.
건물이 무너지자, 병사들이 돌아오고 있다. 카라나리는 몸을 숙였다.
피해야 했다.
그녀는 아르나를 품에 안고 산 속으로 움직였다. 다행히 병사들도 치밀한 감시를 펼치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설렁설렁 여유롭게 걷고 있었다.
카라나리는 산으로 도망쳤다. 나무 틈 사이로 나오면서 다친 상처에서는, 피가 계속 흘렀다. 하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언니, 추워.”
아르나가 그녀의 품 안으로 파고들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겨울이었다. 방금 전 불지옥 같은 곳과는 반대로, 하늘에서는 차가운 눈송이가 떨어지고 있었다.
카라나리는 아르나를 더욱 세게 안았다. 아르나가 몸을 떨었다. 그녀는 보이는 대로 걷기 시작했다.
‘나도 추워.’
그녀는 입 밖으로 아무 말도 내지 않았다. 사나운 겨울이었다.
2.
그 뒤로 거친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켜줄 부모도, 돈도 없는 12살 소녀에게 세상은 무척 잔인했다. 그녀는 아무런 힘도 없었고, 돌봐줘야 할 동생까지 있었다.
카라나리는 근처의 도시로 갔다. 그녀의 마을에 불을 지른 영주, 그의 영지였다. 추운 겨울에 산을 넘어 다른 곳으로 갈 수는 없었다.
도시의 삶도 고단했다. 선량한 사람들이 동화 몇 개나 따뜻한 빵 같은 것을 주기도 했지만, 침을 뱉거나 주먹질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또한 질 낮은 장난을 치는 사람들도.
“오늘 저녁 가지고 왔어~”
“가, 감사합니.......”
“우엑, 가까이 오지는 말라고, 냄새나니까.”
한 무리의 사람들이 그녀 곁에 몰려있었다. 그들은 한 덩이의 빵을 들고 있었다.
“야야, 너무 불쌍하잖아. 그냥 줘.”
“착한 척 하지 마. 새끼야. 그러니까 나만 나쁜 놈 같잖아.”
한 남자가 놀리듯 말했다. 그러자 빵을 들고 있던 여자가 투덜거렸다. 그녀는 카라나리 앞에 빵을 던져 주었다.
그리고 그대로 발로 밟았다.
“아......”
“사양하지 말고 먹어. 고맙지?”
흙바닥에 짓뭉겨진 빵. 망설임은 없었다. 카라나리는 그들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얼른 빵을 주웠다.
“어? 진짜 먹네?”
“크아! 내가 이겼다.”
“젠장! 아직 먹지는 않았어!”
그들은 내기를 한 듯 했다. 과연 카라나리가 빵을 먹을지 말지. 그러거나 말거나 카라나리는 빵에서 비교적 깨끗한 부분을 골라내기 시작했다. 아르나의 몫이었다.
그녀는 흙이 묻지 않은 부분을 때어낸 뒤, 남은 부분을 입에 넣었다. 빵과 함께 딱딱한 돌가루가 씹혔다.
“이 거지년이! 너 때문에 저녁밥을 내가 사야 되잖아!”
내기에 진 남자가 씩씩거리며 다가왔다. 순간 뭔가 불안함을 느꼈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악!”
남자는 있는 힘껏 그녀의 머리를 발로 내려찍었다. 그의 동료들은 웃기만 했을 뿐, 아무도 그녀에게 관심이 없어 보였다.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카라나리는 싹싹 빌며 몸을 웅크렸다. 너무 아팠다. 한번 발로 찍힐 때마다, 온 몸이 울리는 것 같았다. 그녀의 머릿속에, 한 가지 단어가 떠올랐다.
‘저녁값.’
저 남자는 그것 하나 때문에 그녀를 죽일 듯 밟고 있었다.
‘내 목숨이 저녁값만도 못한 걸까.’
잠깐 허무한 감정이 떠올랐다. 눈물이 나올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손에 있는 빵을 꽉 쥐었다. 그녀가 삶을 포기한다면, 다른 누군가가 죽는다. 하나 남은 여동생마저 죽게 만들 수는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발길질이 멈췄다. 드디어 간 것인가. 카라나리는 팔 사이로 슬쩍 고개를 올려보았다.
화려한 옷의 중년 남자가 서 있었다. 그 옆에는 그녀를 괴롭히던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굉장히 불안한 표정이었다.
“메락 님께서 여기는 어찌.......”
“왜. 나는 오면 안 되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아까 그녀를 밟던 남자가 말했다. 메락이라 불린 남자는 그를 노려봤다.
“다 큰 놈들이 어린애 한명을 괴롭히고 있다니. 보는 내가 다 부끄럽다!”
그가 크게 호통을 쳤다. 사람들은 긔의 목소리에 움찔했다. 메락은 카라나리에게 다가왔다.
“힉........”
남자가 손을 뻗자, 그녀는 반사적으로 움츠려들었다. 남자는 민망했는지 옅은 웃음을 지었다.
“정말 얼굴이 말이 아니구나. 많이 다친 것 같은데.”
그는 카라나리를 일으켜 세워 주었다. 깨끗한 옷에 얼룩이 묻었지만,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괜찮다면 우리 집으로 오지 않겠니? 내가 도와주고 싶어서 그런데.”
“아, 하지만.”
남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카라나리가 작게 말했다.
“저, 여동생이 한명 있어요.”
“아이고. 그러면 진작 말을 했어야지. 그럼 동생도 같이 갈까?”
부드러운 목소리. 카라나리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곧 남자의 경호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그녀를 부축해 주었다.
“지금 다쳐서 걷기도 힘들어 보이잖아. 업어 줘.”
“알겠습니다.”
경호원이 카라나리를 등에 업었다. 그녀는 남자에게 물었다.
“아저씨는 누구세요?”
“작은 영지를 꾸리는 사람이란다. 그냥 메락 아저씨라고 부르려무나.”
“허허, 남작님이 영지만 꾸리시는 게 아니잖습니까. 도와준 아이들만 해도 벌써.......”
“이 사람아. 귀족을 놀리면 불경죄야.”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경호원의 장난에도 그는 관대하게 넘어갔다.
“아무튼 지나가다 너 같은 아이들을 보면 남일 같지가 않아서 말이지.”
남자는 카라나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3.
카라나리와 아르나는 메락의 저택으로 초대받았다. 커다란 저택, 두 소녀는 처음 와 보는 귀족의 집에 입을 살짝 벌렸다.
“우선 몸부터 씻으렴. 그리고 따뜻한 우유와 스프를 준비해 줘. 참, 우유에는 꿀도 좀 넣어 주고.”
그가 시녀들에게 명령했다.
“알겠습니다.”
시녀 두 명이 소녀들에게 다가왔다. 그녀들은 카라나리와 아르나를 욕실로 안내했다.
“오와와와와! 언니야. 이거 엄청나게 크다!”
욕실 안, 아르나가 호들갑을 떨었다. 처음 보는 거대한 욕조. 붉은 돌 위에 손을 올리자, 따뜻한 물이 꽐꽐 쏟아졌다. 마법석 이었다.
“물도 엄청 따뜻해!”
아르나가 활짝 웃었다. 마치 세상을 다 얻은 표정. 카라나리도 그녀를 따라 밝게 웃었다.
두 명의 시녀는 카라나리와 아르나를 씻겨주었다. 그동안 받아보지 못한 귀족 같은 대접에, 카라나리의 가슴도 들뜨기 시작했다.
“오오. 씻고 나니 천사가 따로 없구나!”
메락은 감탄하듯 말했다. 그동안 찌든 때를 벗기고 나니, 그야말로 대 변신이었다. 옷도 헝겊조각같은 옷이 아니라, 하얀색 원피스였다. 그녀들의 고운 흑발과 잘 어울렸다.
“그보다 많이 배가 고팠을 것 같구나.”
카라나리와 아르나 앞에는, 고소한 향의 닭고기스프와 우유가 있었다. 아르나는 먹이를 앞둔 강아지처럼 행복한 표정.
“자. 며칠은 푹 쉬고, 내가 그동안 천천히 일자리를 알아봐주마.”
“저희는 무슨 일을 하게 되나요?”
“아무래도 힘쓰는 일은 못 하겠지. 마침 저택에 시녀가 부족하니까. 으흠. 조금 어린가.”
그는 고민하듯 말했다. 아르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스프의 반을 비우고 있었다. 남자가 웃음을 터뜨렸다.
“배고플 텐데 일단 저녁부터 먹으렴.”
카라나리도 스프를 떠먹었다. 고소한 닭고기와 땅콩의 향까지 느껴졌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스프를 해치워 버렸다.
“아저씨. 이거 무지 달아요!”
간만에 제대로 된 음식. 아르나는 하늘을 날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르나가 흥분해서 말하자, 메락은 귀엽다는 듯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천천히 마시거라. 잘못하면 채하거든.”
그리고 따뜻한 우유. 카라나리도 허겁지겁 우유를 마셨다. 한번 스프를 먹기 시작하니까, 잠자고 있던 소화기관이 번쩍 정신을 차렸다.
그녀들을 설거지가 필요 없을 정도로 깨끗하게 그릇을 비웠다.
“맛있게 먹었니?”
“네!”
“잘먹었습니다.”
두 소녀는 행복한 표정으로 메락에게 고개를 숙였다.
카라나리의 의식은 거기까지였다. 우유를 다 마시고 잠시 뒤, 그녀는 몸에 힘을 잃고 쓰러져 버렸다.
흐릿한 의식 속에서 마지막으로 봤던 것은, 처음 봤을 때처럼 밝게 웃고 있는 귀족. 그리고 그의 뒤에 있는 특이한 깃발이었다. 거기에는 검은 용이 그려져 있었다.
4.
“간만에 물건이 들어왔어.”
“역시 메락님이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아보셨습니까? 솔직히 때에 찌들어서 그냥 거지새끼인줄 알았는데.”
“내가 이 일을 한두 번 해보나? 숨은 진주를 찾는 게 내 전문이야. 이렇게 구한 아이들만 모아놔도 이 방은 채우고도 남을 거다.”
카라나리는 흐릿한 의식 속에서 눈을 떴다. 몸이 저릿하고, 혀가 움직이지 않는다. 그녀는 딱딱한 바닥 위에 누워 있었다.
“둘 다 조금만 키우면 보석이 될 거야. 금화 몇 십 개로는 한참 부족할 만큼 말이지.”
메락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그는 한 남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자세히 보자, 그녀를 업어주었던 경호원이다.
“그나저나 너야말로 확실히 했겠지?”
“저도 한두 번 하는 거 아닙니다. 나리랑 같이 일한 게 저 아닙니까. 내일까지는 무슨 짓을 해도 못 일어납니다.”
“좋아.”
진득한 악의가 느껴졌다. 그 동안에도 카라나리의 몸은 점점 감각이 돌아오고 있다. 흐릿했던 시야가 뚜렷해졌다.
그녀는 바로 움직이기 보다는, 실눈을 뜨고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이야기는 이쯤 하자고. 빨리 처리해.”
“왼발 힘줄만 자르겠습니다.”
남자가 일어나더니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의 손에서 날카로운 단검이 번뜩였다.
그는 카라나리의 작은 발을 붙잡았다. 그리고 가느다란 발목 뒤쪽에 칼을 대었다. 서늘한 쇠의 감촉이 느껴졌다.
퍼억!
“크악!”
경호원이 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그 코에서 피가 쏟아지고 있었다. 가만히 있던 카라나리가 반대편 발로 얼굴을 걷어찬 것. 상상도 할 수 없던 기습에 그는 비틀거렸다.
동시에 단검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분명....... 이럴 리가!”
경호원은 서 있는 카라나리를 보고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이었다. 그녀는 공중에서 단검을 낚아채고 뛰어들어 경호원의 목을 찍었다. 공기가 새는듯한 소리와 함께 피가 튀었다.
“커어억.......”
“무능한 새끼!”
귀족은 경호원을 욕하며 손을 모았다. 순식간에 붉은 구체가 생성되었다. 마법사, 메락은 마법사였다.
달려가면 늦는다! 정면으로 뛰어갔다가는 더 화염구에 몸이 박살나리라. 그녀는 단검을 힘껏 던져버렸다.
“크윽!”
신의 축복인지 악마의 장난인지, 처음 던져본 단검은 정확히 메락의 어깨를 뚫었다. 그는 비명을 터뜨렸다. 집중이 풀리자 화염구는 힘을 잃고 소멸해 버렸다.
“나가야 돼.”
카라나리는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여동생 아르나가 세상모르게 자고 있었다. 다친 곳은 없어보인다.
카라나리는 메락에게 달려가 턱을 걷어찼다. 뼈가 어긋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몸이 축 늘어졌다.
“하아! 하아!”
메락은 기절해 버렸다. 그녀는 옆을 돌아봤다. 눈을 부릅뜬 채 죽은 경호원이 보였다. 처음 해보는 살인. 지나친 흥분 때문에 온 몸이 덜덜 떨려왔다.
“밖으로, 빨리 밖으로.......”
카라나리는 최면을 걸 듯 중얼거렸다. 그녀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억지로 끌고 아르나를 등에 업었다.
그녀는 밖으로 나왔다. 나무와 바위, 숲이 보였다. 여기는 저택이 아니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도망쳐야 한다. 이제 그녀가 있던 도시에서는 살 수 없다.
봄바람이 뺨을 스쳐 지나갔다. 얄미울 정도로 따뜻한 바람. 하지만 그녀는 그 온기를 느끼지 못했다.
그녀에게 남을 계절은 겨울 뿐이었다. 찬바람이 몰아치는 허무한 설원. 카라나리는 그 곳을 향해 발을 내딛었다. 차가운 추위가 뼈 속을 파고들었다. 그녀는 몸을 떨었다.
"너무, 추워."
============================ 작품 후기 ============================
내일은 3연참 일줄 알았으나..... 2연참이 되어 버렸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