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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의 로망
그날 저녁, 흑룡회는 한바탕 비상이 걸렸다. 조직의 부 지부장, 2인자가 습격당했다. 그것도 상대 조직에게.
덕분에 술집을 관리하고 있던 사이프카르부터, 다른 조직원들이 전부 돌아왔다. 내일까지 갈 것도 없었다. 조직원들은 타브와 기사단을 상대할 때처럼, 전부 무기를 꺼냈다.
공포의 분위기 속에서, 표두회의 부대장만이 덜덜 떨고 있다.
“이놈이 너희들을 습격했다고.”
제이크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이프카르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웃기 시작했다. 그녀는 팔이 묶이고 무릎을 꿇은 사내에게 속삭였다.
“야, 이유나 들어보자. 대체 왜 그랬냐?”
“.........그게 카르안, 아니 카르안 님을 보스께 데려가야 해서...... 그랬습니다.”
“부를 거면 조곤조곤 말로 해야지, 너는 다짜고짜 칼부터 뽑나? 숲속에 고릴라새끼들도 너보다는 신사적이겠다. 그러니까 왜 카르안을 데려가야 하냐고.”
부대장은 바닥만 쳐다봤다. 사이프카르는 그런 부대장을 노려봤다. 고문이라도 할 셈인가.
조직원들이 전부 긴장했다. 하지만 사이프카르는 미련 없이 일어났다. 대신 한 가지 명령을 내렸다.
“됐어.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너희 대장한테 직접 물어보면 되니까.”
그녀가 조직원 한명에게 말했다.
“야. 힘 좋은 애들 열 명만 데려가라. 가서 표두회가 운영하는 술집 있지? 전부 불 지르고 와.”
“자, 잠깐.......”
“뭘 잠깐이야.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불을 질러야지.”
부대장이 말리건 말건. 조직원 십여 명이 우르르 빠져나갔다. 남자의 표정에 절망이 깊게 새겨졌다.
“저기, 이렇게까지.......”
“한방 먹었으면, 우리도 한방 치고 난 다음 이야기를 시작 하는 거야. 그래야 공평하지.”
사이프카르는 그녀만의 인생철학을 설파했다. 가만히 있었더니, 웬 잡놈들이 부 지부장을 납치하려 한다.
그럴 때는 매가 약이였다. 잠시 후면 표두회의 레드스톰이 헐레벌떡 달려오리라.
그런데 방을 나갔던 조직원들이 전부 돌아온 게 아닌가. 나간 지 1분도 되지 않았다.
“누님!”
“뭐야. 벌써 다녀왔어?”
“그게 아니라....... 표두회의 레드스톰입니다! 지금 정문에서 들여보내달라고 하고 있어요.”
“들어오라 그래.”
잠시 후. 두 자루의 장검을 찬 남자가 들어왔다. 호리호리한 체격. 하지만 그가 나타나자, 흑룡회 조직원들도 긴장한 듯 몸에 힘을 주었다.
“오랜만이군. 사이프카르.”
“오랜만은 얼어 죽을. 우리 애들 조지려다가, 그마저도 못한 놈이 뭐이리 당당해? 그리고 혼자 여기까지 오다니. 장수에는 별 관심이 없나보지?”
놀랍게도 레드스톰은 혼자였다. 하지만 표정에 여유가 있다. 그냥 허세밖에 없던 부대장과 다르게, 그는 정말로 긴장하지 않고 있다.
‘빈틈이 없군.’
제이크가 생각했다. 여유로운 듯하면서도, 사이프카르, 러슬라이, 제이크등의 실력자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
기습하더라도 막을 수 있도록. 손에 힘을 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손이 칼자루 바로 앞에 있다.
“여기서 나와 싸워봐야 서로 좋을 게 없지 않나.”
레드스톰은 어깨를 으쓱했다. 사이프카르도 이번에는 별 말을 하지 않았다.
레드스톰. 두 자루의 검을 사용하는 검사. 특이한점이 하나 있다면, 다수의 적을 상대할 때 대검 두 개를 하나로 붙여 휘두른다는 것이다.
그렇게 검을 풍차처럼 돌리면 그야말로 인간 믹서기가 된다. 게다가 오러를 사용하는 실력자. 일대일 보다 오히려 적이 많을수록, 난전이 될수록 강해지는 특이한 타입이다.
표두회가 알페라츠 백작령 두 번째 세력을 자랑하는 것도, 단순히 레드스톰 한명의 무력 때문이다.
그가 휩쓸고 간 자리는 붉은 피 밖에 남지 않는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 레드스톰. 이제는 이름처럼 불리고 있다. 실제로 레드스톰의 본명을 아는 사람은 많지도 않다.
“아무튼 이 일은 그냥 넘어갈 수 없어.”
사이프카르가 그 앞에 걸어갔다. 레드스톰은 말없이 그의 부하, 부대장을 내려 보았다. 부대장은 그의 시선을 피했다.
“형님. 이건......”
“됐다.”
부대장이 카르안 습격을 실패한지 한참이 지났다. 만약 레드스톰이 직접 지시했다면, 실패하자마자 뭔가 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이게 당신 부하가 멋대로 한 짓이건, 아니면 정말로 네가 시킨 일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무슨 뜻인지 알거라고 믿어.”
레드스톰이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저 부대장이 멋대로 저지른 일이다. 실력도 없는 놈을 오랜 시간 알고지낸 사이라고 ,부대장 자리에 앉혔다. 결국 이 사단이 난 것이다.
‘전부 내 업이지.’
레드스톰은 한숨을 쉬었다.
“뭘 원하지?”
“진심어린 사과.”
사이프카르가 피식 웃었다.
“같은 것은 필요 없어. 물질적인 뭔가가 있어야지.”
사이프카르는 대담하게도 레드스톰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레드스톰의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레드스톰이 팍 인상을 썼다. 누가 봐도 턱없는 가격을 불렀으리라.
“지금 조직에 돈이 많이 없어.”
“얼마 전에 작은 무투대회에 나가지 않았나? 작은 대회 치고는 상금이 꽤 있었는데.”
“준우승은 얼마 못 받아. 빌어먹을 대회는 저번에도, 이번에도 2등밖에 못했지.”
그가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결승까지는 잘 치고 올라갔는데, 항상 결승전만 되면 컨디션이 안 좋았다.
“돈이 없으면 다른 것도 좋지. 네가 운영하는 술집이랑 무기점. 몇 개만 넘겨.”
“그건 우리 밥줄이야.”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다. 그러면 대체 뭐가 좋을까? 정말 네 목이라도 내 놓게?”
사이프카르도 레드스톰을 노려보았다. 그는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하다가, 결심한 듯 말했다.
“대신 금화보다 좋은 게 하나 있다.”
“말해봐.”
레드스톰이 입을 열었다.
“정보.”
2.
“정보?”
“귀중한 정보다. 이놈이 너희 부대장을 납치하려 했던 이유이기도 하고.”
레드스톰은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적대적인 조직원들.
“토저보화(土底寶花). 그것의 위치를 알고 있다.”
“토저보화?”
사이프카르는 부하들을 쳐다봤다. 조직원들도 전부 고개를 저었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너희는 모를 수도 있지. 나도 연금술사들에게 묻기 전에는 몰랐으니까. 하지만.......”
레드스톰은 카르안을 쳐다봤다. 연금술사들이 아는 물건이면, 그도 알고 있을 것이다. 과연 카르안은 놀란 표정이었다.
“토저보화. 그게 정말로 있단 말인가.”
“그래. 오백년 만에 피어났다고 하더군.”
“둘이서만 놀지 말라고. 토저뭐시기가 뭐냐.”
“100개의 연금술을 펼칠 수 있다고 알려진 재료다.”
레드스톰이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연금술사들에게는 전설 같은 물건이지. 마지막으로 발견된 것은 10년 전쯤이었나. 그때 루크바르 국왕이 큰돈을 주고 구매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게 그렇게 대단한 거냐?”
“귀한 물건이기는 합니다.”
카르안이 대답했다. 토저보화. 땅 속에서 피는 꽃이다. 땅 밖이 아니라 땅속 깊은 곳. 굉장히 특이한 꽃이다.
그 꽃이 완전히 개화하는 데에만 500년이 걸린다. 그리고 땅 위로는 작은 싹 하나만 내 놓는다고 한다.
꽃에서 아무 향도 나지 않아 사냥견의 코로도 찾을 수 없다. 게다가 자르기 전까지는 마나도 전혀 새어나오지 않아, 마법적인 방법으로도 추적이 불가능. 결국 그 작은 싹 하나를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 그것을 뽑으려 들면, 반투명한 형태의 수호령이 나타나 꽃을 지킨다. 뽑으려 드는 사람들을 전부 죽여 대는 것.
인공적인 재배도 불가능하다. 애초에 씨앗이 없다. 대체 씨도 없이 어떻게 생겨나는지는 학자들도 밝혀내지 못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토저보화를 식물이 아니라고 한다. 씨도 없고 싹도 없고, 그냥 맨 땅에서 아무 개연성도 없이 쑥쑥 자라난다.
무엇보다 뽑으려 들면 무시무시한 수호령까지 튀어 나오는데, 이딴 식물이 대체 어디 있다는 말인가.
“토저보화는 백장의 꽃잎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꽃잎 한 장 한 장이 귀중한 표션의 재료가 되지.”
“재료.”
“그래. 그것의 위치를 알고 있다. 만약 토저보화를 얻는다면, 가게 몇 개보다는 훨씬 가치 있겠지.”
“음.”
국왕이 직접 사들일 정도다. 당연히 그 가치를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사이프카르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좋아. 지금 가격부터 알아보지. 근데 카르안은 왜 납치하려 한거냐?”
“내가 시킨 것은 아니지만, 대충은 알겠군. 토저보화도 그 자체를 파는 것보다, 포션으로 가공해서 파는 게 몇 배는 비싸지니까.”
“그래서 나를 잡아가려했다고?”
카르안은 어이가 없었다. 부대장은 몸을 떨었다.
“그, 그것이.”
부대장은 구구절절 사연을 이야기했다.
그는 흑룡회에 기막힌 실력의 연금술사가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때문에 지금 마약 장사가 되질 않았다. 질 좋은 물건을 흑룡회에서 잔득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분위기가 안 좋은데, 그의 보스 레드스톰이 무슨 정보를 얻었다. 연금술 길드의 스파이가, 토저보화의 위치를 알아낸 것이다. 그 보물을 구하면 조직의 주머니가 든든해진다.
그런데 부대장의 머릿속에 뭔가가 지나갔다. 남들이 보기에는 망상이지만, 부대장 자신의 생각으로는 기막힌 아이디어.
카르안을 납치해서 감금한 다음, 토저보화를 포션으로 만들게 한다. 토저보화는 다루기 상당히 어려운 물건이지만. 카르안 정도의 실력이면 충분할 것이라 예상했다.
게다가 카르안을 잃으면 그들의 경쟁자. 흑룡회에도 큰 타격이 간다. 일타이피. 꿩 먹고 알 먹고 보너스로 약까지 먹을 수 있다.
결국 카르안을 습격하기로 한 것이다. 레드스톰에게 말한다면 거절당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그가 직접 뽑은 특공대를 이끌고 나선 것.
문제는 러슬라이와 제이크가 상상 이상으로 강했던 것이다.
엄선된 특공대는 그들에게 달려드는 순간 자살 특공대로 변했다. 부대장은 분위기를 타면서 슬쩍 빠지려 했는데, 그것도 안됐다.
“야 이 병신아. 얘가 잡혀가면 나는 가만히 있을 것 같냐.”
사이프카르가 한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레드스톰이 강하다 해도, 사이프카르와 전투를 벌인다면 승산이 희박했다.
기사단장 타브마저 일방적으로 두들겨 팬 여자다. 도저히 상대가 안 된다.
“아무튼 좋아. 그러면 그 토저보화라는 게 어디 있지?”
“지금 말할 수는 없지.”
레드스톰도 고개를 세웠다. 그가 거짓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토저보화는 충분히 가치 있는 보물이다. 먼저 실수하긴 했지만, 고개를 숙일 필요는 없다.
“그러면 어쩌라고.”
“이렇게 하지. 마법사를 고용해서 계약서를 쓴다.”
“뭔 계약서? 그런 거 필요 없어. 너희는 위치를 알려주고. 우리는 찾는다. 네 말이 사실이면 카르안을 공격한 일은 넘어가 주지.”
“설마 토저보화를 통째로 먹으려고 그러나? 혼자 먹으려다가는 탈이 날 것 같은데.”
레드스톰이 피식 웃었다.
“게다가 한 가지 문제점이 있다.”
“무슨 문제점.”
“내가 이 정보를 얻은 게 연금술 길드야.”
“젠장. 나는 못 들었는데. 벌써 물 갈 때가 됐나.”
‘물’은 사이프카르가 연금술 길드에 심어놓은 정보통이다. 그녀는 거기 말고도 마법사 길드, 용병 길드에도 몇 명의 스파이를 붙여 놨다.
그런데 연금술 길드에서 정보를 줘야 할 스파이가 제 역할을 못했다. 슬슬 은퇴시키고 새로운 녀석을 넣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나중이다. 레드스톰이 연금술길드에서 토저보화의 정보를 얻었다. 즉 연금술 길드도 그 위치를 알고 있다. 귀한 재료라면 환장하는 연금술사 놈들이 말이다.
“그러니까.”
“연금술 길드가 용병을 모으고 있다. 수호령을 상대하기 위해서지. 들키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어.”
“하아.”
사이프카르가 담배를 물었다. 연금술사 몇 명이 용병을 모은다는 정보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특별한 일이 아니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좋아. 아무튼 그러면 손을 잡자 이거로군.”
“내가 너를 돕겠다. 우리 표두회가 전부, 연금술 길드의 용병단을 막아주지. 대신 수익의 일부를 줘.”
“얼마나?”
“7대 3으로 하지. 네가 7이야.”
“7대 3은 말도 안 되고, 처음부터 7대 3이라고 해놓고 살살 풀다가 8대 2 정도로 하려고 했지? 9:1이다. 사실 1 주는 것도 아주 아까운데, 정보 값이라 치고 주는 거야.”
레드스톰은 잠시 그녀를 노려봤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저 여자는 말장난이 통할 상대가 아니다.
무엇보다 그 혼자서는 얻을 수가 없다. 안 그래도 힘들었는데, 부대장 때문에 조직원이 많이 다쳤다. 기록을 보면 수호령은 레드스톰 혼자 상대할 놈이 아니었다.
“좋아. 길게 말 할 거 없지. 내일 아침에 당장 계약서 써.”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얼마 안가 연금술 길드가 출발할거야.”
“카르안. 너도 괜찮겠지? 토저보화를 얻으면 너한테도 꽤 돌아갈 거야.”
아무튼 공격당한 것은 카르안이다. 최종적으로 그가 승낙해야 하는 것. 카르안은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생각했다. 다친 것도 아니고, 거절하기에는 토저보화가 너무 아까웠으니까.
“저는 찬성입니다.”
그의 말에 러슬라이와 제이크도 동의했다. 카르안의 결정을 따르는게 맞다고 생각했다.
“좋아. 내일 아침 바로 출발 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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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준우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