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션으로 무한성장 (29)화 (29/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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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의 로망

카르안은 흑룡회 사무실에 출근했다. 안에는 조직원들이 피곤한 얼굴로 앉아있었다. 어젯밤을 늦게까지 불태운 대가였다.

“다들 피곤해 보이는군.”

“오셨습니까. 형님.”

그들은 카르안을 보자 인사부터 했다. 카르안은 밝게 웃으며 반겨주었다.

“어제 다들 너무 달린 거 아니야? 다들 눈 밑이 시커멓게 변했어.”

카르안은 책상 위에 있는 종이를 폈다. 재료 목록. 그가 없던 사이 들어온 물건이다. 카르안은 대충 품목을 훑어보았다.

“음. 해독제 재료는 이거랑........”

“형님. 커피 타왔습니다.”

조직원중 한명이 그에게 다가왔다. 그는 어제 카르안이 술 때문에 고생하는 모습을 봤다. 숙취에는 커피가 특효약. 조직원은 카르안의 눈에 띄기 위해 다가온 것이다.

카르안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쌉쌀하고 달달한 맛이 동시에 느껴졌다. 원두로 직접 내린 것 같았다. 의외로 정말 맛있다.

“머리 아플 때는 커피가 최고입니다.”

“고마워. 그나저나 나도 나만의 숙취 해소법을 알고 있는데. 알려주도록 하지.”

“그게 뭡니까?”

카르안은 살짝 미소 지으며 쪽지에 무언가를 적었다.

“등산.”

“예?”

“점심 먹기 전까지 여기 적힌 거 있는 대로 구해와.”

조직원인 얼떨떨한 표정으로 쪽지를 받았다. 거기에는 난생 처음 보는 식물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조직원은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 제가 약초 같은 건 잘 몰라서.”

“지금쯤 연금술 길드에 가면 채집꾼들이 있을 거야. 그 사람들한테 사던지 안내해달라고 시키던지. 편한 방법대로 하시게.”

“저희가 일이 조금.......”

“없는 거 다 알아.”

조직원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오전 내내 편히 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상한 일을 맡게 되었다.

생전 일했던 덕분이다. 카르안은 흑룡회에 들어온 지 한 달도 안 됐지만, 이미 조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부 파악했다.

그래도 카르안이 은화 2닢씩 용돈을 주자 다들 눈을 번쩍 떴다. 뜬금없는 용돈벌이의 기회. 안에 있던 4명의 조직원은 얼른 일을 받았다.

그들은 돈을 받자마자 잽싸게 움직였다. 조직의 일이라면 돈 같은 것은 안 줘도 되지만, 개인적인 일을 돈도 주지 않고 시키기는 미안했다.

“역시 부 지부장님은 씀씀이부터 사나이답습니다.”

“빨리 다녀오기나 해.”

‘에휴. 벌써 돈이 다 떨어져가네.’

그는 주머니를 뒤져봤다. 이리저리 돈을 쓰다 보니 금화는 없고, 은화 열 몇 개가 딸랑이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월급날이기는 하지만, 사이프카르에게 빚진 10골드도 문제. 빈털터리가 따로 없었다.

카르안은 허겁지겁 밖으로 향하는 조직원들을 쳐다봤다. 숙취에 찌든 얼굴을 찾아볼 수 없었다.

포션같은 것 보다, 만병통치약은 금화와 은화가 아닐까. 카르안은 홀쭉해진 지갑을 보며 중얼거렸다.

2.

카라나리가 오기로 한 시간은 점심시간. 부하들의 충성심 덕에, 그는 무사히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부하들이 뿌리째 파온 약초, 그리고 회복포션의 재료였던 것을 함께 사용했다.

사이프카르에게는 미리 말했다. 급하게 몇몇 재료를 사용해야한다고 하자, 그녀는 별 말없이 수락했다. 별로 비싼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 정도 유연함은 있는 게 사이프카르였다.

“색도 예쁘게 잘 뽑혔네.”

밝은 녹색의 포션. 진하지 않은 색의 포션이다. 무르짐도 카르안이 지금 걸린 병을 연구하다가 만든 치료제.

근본적인 치료가 될 수는 없지만, 감염된 세포를 사멸시키고 병원균을 파괴한다. 환자는 이것만 꾸준히 먹더라도, 일반인과 비슷한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똑. 똑.

“형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와.”

문을 열고 러슬라이가 들어왔다. 그는 카르안을 보더니 가볍게 목례했다.

“형님. 어떤 아가씨가 형님을 찾아왔습니다.”

카라나리인가. 이제 올 시간이었다. 카르안은 갓 만든 치료제를 작은 병에 옮겨 담았다.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해.”

“알겠습니다. 그런데.”

러슬라이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아주 예쁜 아가씨더군요. 혹시 벌써 애인분이라도 만드신 겁니까?”

카라나리가 애인이라. 그럴 리가 없지. 카르안은 고개를 저으려다가 멈췄다. 지루한 반복 작업을 한 탓인지, 장난기가 잠깐 머리를 내밀었다.

“애인이라, 그래. 며칠 안 됐지만. 그렇게 됐다.”

“하하, 형님도 참.”

러슬라이가 호쾌하게 웃었다. 마치 농담이라도 들은 것처럼. 카르안의 눈썹이 잠깐 움찔했다.

애인이 생겼다고 하면, 보통 놀라거나 축하한다거나 하지 않는가. 러슬라이는 전혀 믿는 것 같지가 않았다.

‘내가 애인이 생긴 게 농담 같다. 이거지.’

카르안은 더욱 짙게 웃었다.

“그래. 그러니까 내 여자 친구한테 함부로 하면 죽는다? 가서 차도 좀 내오고, 아니 커피. 오늘 아침에 보니까 올백으로 머리 넘긴 녀석이 커피 잘 타더라. 그 친구한테 커피 만들라 그래.”

“예?.......예.”

농담이 아니란 것을 알아들었는지, 러슬라이의 표정도 조금 굳었다. 그는 후다닥 나가려다, 잠시 멈춰 섰다.

“형님. 그런데 진짜입니까?”

“아니, 그게 그렇게 신기하냐?”

“크흠. 죄송합니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그는 뭐라고 중얼거리며 문을 닫았다. 카르안은 빠른 손놀림으로 약을 포장했다.

‘항상 무표정만 봤으니까.’

공주님 대접을 받으며 놀라고 있을 카라나리가 떠올랐다. 그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걸렸다. 과연 그 여자도 놀란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약간 궁금하기도 했다.

3.

카르안이 방을 나선 것은 20분쯤 지난 후였다. 새끼손가락만한 병 수십 개에 포션을 나눠 담으려니, 생각보다 상당히 어려웠다.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건물 안은 상당히 조용했다. 대부분 밥을 먹으러 갈 시간. 덕분에 한산한 것이리라. 카르안은 카라나리가 기다리고 있을 응접실로 갔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소란스러운 웅성거림. 응접실 쪽으로 가자, 조직원들이 전부 모여있는 게 아닌가. 크고 작게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카르안이 나타나자, 모두들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다들 여기서 뭐해.”

“하하하, 형님 애인분이 오신다고 하셔서.”

“그러니까, 잘 대접하라고 했더니 왜 다들 모여 있어?”

“으흠, 으흠. 아닙니다. 애인분이 생각보다 너무 아름다우셔서 다들 한번 보러온 것 같습니다.”

카르안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카라나리는 보기 드문 미인이었으니까. 청조하고 차가운 이미지는 이곳 사내들의 가슴에 불을 지르기 충분했다.

그렇다고 이렇게 우르르 몰리다니, 실례 아닌가. 동물원 판다도 아니고. 카르안은 손을 휘휘 저었다.

“아무튼 다들 비켜.”

“네.”

조직원들이 길을 터 주었다. 덩치들이 몸을 비키자, 그들의 몸에 가려져 있던 카라나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어.”

카르안이 입을 살짝 벌렸다. 그는 하마터면 손에 든 약병을 떨어뜨릴 뻔 했다.

“오빠? 한참 기다렸어요!”

거기에는 카르안의 애인으로 소개받은 소녀. 우락부락한 조직원들로부터 차와 과자를 받아먹고 있는 아르나가 있었다.

“오빠야~ 왜 이제 왔어요....... 오빠?”

딱딱하게 굳은 카르안. 아르나는 과자를 오물오물 씹으며 말했다. 그러다 목이 메는지, 따뜻한 차를 후루룩 마셨다. 어린 아이에게는 커피가 너무 썼던 것 같다.

주변 조직원들도 어색하게 서 있었다. 부 지부장님의 조금 독특한 애인을 본 탓이다.

아르나의 입가에는 과자 부스러기가 몇 개 묻어있었다. 어린아이다운 천진난만한 모습이 보기 좋았다....... 라고하기에는 주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야! 니들 여기서 뭐해?”

기막힌 타이밍에 사이프카르가 등장했다. 그녀의 시선은 모여 있는 조직원들을 지나, 의자에 앉아있는 아르나에 가서 멈췄다.

“.........?”

머리까지 문신을 할 근육질 남자가 과자접시를 들어주고, 올백머리를 한 조직원이 조용히 차를 따라주고 있다. 그 중간에 있는 것은 12살짜리 소녀. 뭔가 초현실적인 풍경에, 사이프카르는 말을 잃었다.

러슬라이가 얼른 달려가서 사이프카르에게 귓속말을 했다. 그녀의 표정이 당황에서 충격, 충격에서 공포로 바뀌었다.

“지부장님. 이건 오해입니다.”

“괜찮습니다. 형님. 누님이 오셨다고 거짓말 할 필요 없어요. 분명 이해해 주실....... 크어억!”

러슬라이가 형님의 불 주먹에 쓰러졌다. 일반인 근력의 2배, 거기에 분노로 인한 힘까지 4배. 러슬라이는 푹 고꾸라졌다. 사이프카르가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

“너 얼굴 갈아치운 이유가, 설마 이거였냐.”

“아니요. 이건 잠깐 제가 장난을 치려다가, 오, 오해가 생긴 겁니다.”

사이프카르는 고개를 저으며 담배를 꺼냈다. 마법을 사용했는지 입에 대자마자 불이 붙었다. 흐릿한 연기가 사방으로 퍼졌다.

“내가 이런 말하기 좀 그런데, 이정도로 어린애는 좀....... 심했다 야.”

“험......”

“크흠. 크흠.”

“취향이 조금 독특하시긴 하지만.”

조직원들도 다들 수긍하는 눈치였다. 살다 살다 조직폭력배에게 이런 시선을 받아보다니, 눈물이 앞을 가리려했다.

“지금 다들........ 아르나, 약부터 받고 먼저 가거라.”

카르안은 일단 카라나리의 여동생부터 보내기로 했다. 이러고 있어봐야 오해만 커질 뿐. 얼른 오해의 근원부터 해결 봐야 했다.

“우음. 네.”

그녀는 입 안에 남은 과자를 몰아넣었다. 볼이 다람쥐처럼 부풀었다. 그녀는 과자를 꼴깍 삼키고 나서야 카르안에게 다가왔다.

카르안은 얼른 약을 건네주었다.

“전부 입으로 마시는 약이야. 하루에 아침저녁으로 두 번 먹으면 된단다. 그런데 왜 네가 온 거냐?”

“언니는 오늘 바빠서요.”

기사단장 타브가 쓰러진 만큼 일도 늘어났다. 그리고 아르나의 약 값을 벌려면, 그만큼 더 움직여야 하니까. 조금 불안해도 여동생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아직 카르안의 약이 효과 있다는 것을 모르니까, 먹던 약을 계속 사려는 것이다. 항상 신중한 카라나리다웠다.

“그나저나 꼬마야. 넌 이 녀석 어디가 좋니?”

사이프카르가 물었다. 아르나는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응....... 일단 멋지고! 또 굉장히 친절해요.”

“친절해?”

“네. 어젯밤에도 침대에서 이런 저런........”

“제발 그만해........!”

카르안이 우울하게 소리쳤다. 카라나리에게 장난 한번 치려다가, 이게 무슨 아마겟돈인가. 그때 누군가 카르안의 발목을 움켜쥐었다. 러슬라이였다.

“형님. 무엇 때문에 화가 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죄하기 위해 오늘밤 최대한 어린 아가씨들을 불러놓겠습니다. 12살은 힘들겠지만.”

빠악!

묵직한 소리가 사무실 안을 울렸다. 어쩐지 슬퍼 보이는 소리였다.........

4.

카르안은 오해를 풀기위해 1시간동안 눈물의 간증을 했다. 그 결과 나름대로 오해를 푼 것 같기는 했다. 몇 명 정도는 아직도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냈지만.

“아무튼 앞으로 이상한 소리하면 혼날 줄 알아.”

러슬라이는 부어오른 뺨을 붙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부의 천재고 나발이고 오늘은 센서가 조금 틀어졌다. 덕분에 존경스러운 형님에게 얻어맞기까지 했다.

이런 몇 가지 해프닝도 있었지만, 대체로 무난하게 시간이 흘러갔다. 카르안은 몰래 강화포션을 만들고, 골렘을 공부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의 빠른 포션제조 능력 덕분에, 시간을 널널하게 보낼 수 있었다.

남은 시간은 골렘에 대해 연구했다. 이너리움을 다루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준까지 올라야 한다. 다행히 무르짐이 남긴 재능은, 그가 책의 내용을 스펀지처럼 쭉쭉 빨아들일 수 있게 만들었다.

“와. 진짜 천재라는 게 이런 거구나.”

생전에 없던 재능. 포션 제작이야 원래 머릿속에 전부 들어있었다. 그러니까 별 생각이 없었는데, 골렘 제작을 새로 배우자 ‘진짜 재능’이라는 게 뭔지 느껴졌다.

하나를 보면 열 개의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복잡한 내용들이 두 번만 읽자 전부 이해된다. 생전에 느낄 수 없었던 감각. 결국 그는 일주일 만에 사람 허리까지 오는 골렘을 만들 수 있게 됐다.

“진짜 움직인다.”

그의 저택 안. 그는 처음으로 작은 골렘을 움직여 봤다. 일주일간 꾸준히 노력한 결과다. 카르안이 마나를 불어넣자, 어린애 크기 정도의 골렘은, 어색하게 걷기 시작했다.

“이게 재밌는데, 주먹!”

마치 동심으로 돌아온 기분. 카르안의 명령에 따라 골렘은 주먹을 내질렀다. 아주 빠르진 않았지만, 충분한 속도. 그리고 골렘의 주먹이 카르안에게 날아왔다.

“우왓!”

카르안은 얼른 고개를 숙여 피했다. 주먹만한 돌은 그를 스쳐 뒤에 있던 거울을 박살냈다.

-와장창!

“10초쯤 버텼나.”

카르안이 쓸쓸하게 말했다. 그의 마나는 아직도 11. 골렘을 운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카르안은 빗자루를 들고 깨진 유리를 치웠다. 아직도 갈 길이 한참 멀었다는 것을 느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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