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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션으로 무한성장 (26)화 (26/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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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금술사의 로망

    다음날 아침, 알페라츠 백작령은 이상한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평소에 크게 떠들던 상인들은 조용히 팻말만 들고 있었고, 대장장이들은 망치질을 멈추었다.

    오직 길거리의 고양이들만이 나른한 눈으로 돌아다닐 뿐이었다.

    어느 순간, 사람들이 좌우로 쫙 갈라졌다. 마치 모세의 기적을 보는 듯 했다. 모두가 침묵한 거리, 그런 거리를 딱딱한 군화 소리가 뒤덮기 시작했다.

    은색 갑옷으로 중무장한 기사들. 번쩍이는 갑옷과 섬뜩한 진검은 보는 이의 기를 질리게 만들었다. 그들은 묵묵히 한 곳을  향해 걸어갔다.

    중앙광장. 타브와 사이프카르의 결투 장소다. 먼저 도착한 쪽은 타브의 알페라츠 기사단. 그들은 광장 한 중간에 자리잡았다.

    “흑룡회다.”

    “조용히 해.”

    그리고 잠시 뒤 흑룡회가 나타났다. 사이프카르가 앞장서고 있었다. 그녀의 오른쪽 한걸음 뒤에서는, 카르안이 따라오고 있었다. 그 뒤로 중무장한 조직원들이 우르르 몰려오고 있었다.

    이쪽도 전원 무장한 상태다. 가벼운 가죽 갑옷. 여러 가지 무기. 검으로 무기를 통일한 기사단과 다르게, 그들의 무기는 장검부터 석궁, 활, 단검등 다양했다.

    “하.”

    사이프카르가 웃음 지었다. 대담한 미소. 그녀는 크게 소리쳤다.

    “타브 놈은 어디로 갔나? 설마 겁먹고 네놈들만 보낸 것은 아니겠지?”

    도발에 조직원들이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그때 기사들 사이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늦게 온 주제에 목소리만 크군. 천박한 놈들은 시간약속도 못 지키나?”

    기사단장 타브 알페라츠. 그 역시 은빛 갑옷으로 몸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다른 기사들과 차이점이라면 화려하게 금으로 장식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커다란 백색 망토를 두르고 있다는 점이다.

    타브의 말에, 사이프카르는 여전히 웃으며 응수했다.

    “내가 미안할건 없지 않아? 늦게 온 덕에 네 명줄이 몇 분이라도 늘어난 건데. 오히려 감사 인사를 받아도 부족하지.”

    “이년이!”

    타브는 주먹을 말아 쥐었다. 그는 검집에서 검을 뽑아올렸다.

    “살아갈 생각은 하지 말아라.”

    “너야말로.”

    사이프카르도 검을 꺼냈다. 동시에 기사단과 흑룡회 모두가 뒤로 물러났다. 단지 두 명의 대장만을 남겨두고.

    “그나저나 왜 광장에서 만나자고 한거지?”

    “네년의 무덤으로 여기만한 곳이 없으니까!”

    사이프카르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광장은 영지의 중심.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었다. 하긴, 알페라츠 백작령 기사단장과 흑룡회 대장의 결투다. 평생 한번 볼수 있을까 말까 한 볼거리.

    덕분에 위험한 것을 알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여기서 지는쪽은, 영지의 시민들 모두가 보는 곳에서 치욕을 당하는 것이다.

    단순히 목숨만 걸린게 아니다. 조직과 가문의 얼굴이 달려있었다. 두 사람의 어깨는 더욱 무거우리라.

    “좋아. 네놈이 수치 플레이를 즐기는 마조히스트라는데, 어울려주지.”

    타브가 이를 악 물었다. 아드득 하고 이 갈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

    하지만 타브는 입을 닫아 버렸다. 사이프카르도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았다. 신경전은 끝. 남은것은 진짜 피가 튀는 싸움뿐이다.

    “으아압!”

    먼저 달려든 쪽은 타브였다. 그는 기합과 함께 힘껏 돌격했다. 동시에 그의 검에 푸른 오러가 실렸다.

    사이프카르도 여유롭게 방어자세를 취했다. 그녀의 검의 붉게 달아올랐다. 핏빛 오러. 다음 순간, 두 개의 검이 부딪혔다.

    콰아앙!

    “으음!”

    “굉장한 힘입니다!”

    폭발음과 함께 지축이 흔들렸다. 땅에 있던 모래가 뿌연 연기를 만들어내었다. 그 연막 안에서, 두 검사의 검이 빠르게 움직였다.

    타브가 폭풍같은 공격을 퍼부었다. 무게감과 속도를 전부 갖춘 검술. 반면 사이프카르는 유연하게 검을 돌리며 힘을 흘렸다.

    타브는 발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공격에 집중했다. 사이프카르는 그저 방어에 온 신경을 집중할 뿐이었다. 계속되는 방어, 물을 흘리는 듯한 부드러운 움직임 덕에 유효타는 나오지 않았다.

    “뭐하는 거지?”

    예상외로 사이프카르가 소극적이다. 타브도 약아 바싹 올랐는지 큰 공격을 준비했다. 그는 한번 크게 물러나더니, 공세를 취한채로 다시 달려들었다. 그의 검 끝이 사이프카르를 향했다.

    “아니!”

    사이프카르는 그가 거리를 벌리자마자, 검 대신 손바닥을 그에게 향했다. 그녀의 손 안에는 진한 흑색이 구체를 형성하고 있었다.

    마법. 순식간에 구체는 사람 머리만해졌다. 마법에 대해 잘 모르는 카르안도, 저게 맞아도 될 것은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잘가라.”

    “크윽!”

    흑색의 구가 타브를 향했다. 엄청난 속도! 타브는 발에 힘을 모아 크게 점프했다. 구체는 그의 발 끝을 아슬아슬하게 스쳐갔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구체는 공격이 빗나가자 마자 산탄처럼 잘게 흩어졌다. 관성의 법칙을 무시하듯, 검은 마법은 잘게 쪼개진 후 방향을 바꿨다.

    비어있는 타브의 등을 향해. 러슬라이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건 치명타입니다!”

    “흥!”

    타브는 뒤를 슬쩍 보더니, 망토를 방패처럼 휘둘렀다. 검은 구체는 망토에 막혀 전부 튕겨나가 버렸다.

    타브는 망토를 폼으로 차고 온게 아니었다. 강력한 반마법이 걸린 망토. 사이프카르에게 악마의 피가 섞였다는 것을 알고 대비한 것이다.

    “비싼 망토인가 보네!”

    하지만 사이프카르의 공격은 이제 시작일 뿐. 타브가 망토를 펼치지마자, 그녀도 타브에게 달려든 것이다.

    “크윽!”

    마법은 방어했지만, 사이프카르의 일격은 막을 수 없었다. 어찌어찌 급소만 막은 수준의 방어. 순식간에 타브의 갑옷이 깨지고 피가 튀었다.

    상처가 터졌다. 사이프카르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마치 피냄새를 맡은 상어처럼. 사이프카르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으아악!”

    사이프카르의 검이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언제 방어를 했냐는 듯이, 이번에는 극단적인 공세였다. 타브도 지지 않으려는 듯, 있는 검술을 모두 펼치며 그녀를 상대했다.

    하지만 상처를 입었고, 기본적인 역량 차이가 심했다. 타브가 한번 공격하는 사이, 사이프카르는 두세번 공격했다. 검이 한번 부딪힐 때마다, 타브의 상처만 늘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피투성이가 되었다. 빛나던 은빛 갑옷은 더 이상 제 성능을 하지 못했다. 멋들여긴 갑옷은 부위별로 조각나 바닥을 굴렀다. 타브는 마치 맹수에게 사냥당하는 인간 같았다.

    “제법 버티는데?”

    “개소리!”

    분노한 타브가 기력을 폭발시켯다. 엄청난 에너지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몸에 있는 마나를 크게 소모한 일격.

    과연 사이프카르라도 한번 물러설 수 밖에 없었다. 그녀가 뒤로 점프함과 동시에, 이번에는 타브가 달려들었다.

    “엇!”

    서로의 검격이 교차했다. 그리고 누군가의 검이 뚝 떨어졌다. 사이프카르의 것이다. 그녀는 반쯤 잘린 팔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악에 찬 공격, 최후의 발악이 통한 것이다.

    물론 타브도 무사하지 못했다.

    “허억!”

    타브가 피를 토했다. 한번 베였던 복부를 또 베였다. 이제는 거의 내장이 보일 지경. 그는 피를 폭포처럼 쏟으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맞는것밖에 할줄 모르는줄 알았더니, 의외로 매서운 맛이 있네.”

    사이프카르가 팔을 지긋이 누르며 웃었다. 물론 그게 결코 긍정적 마음에서 나오는 미소는 아니었다. 그녀가 양 주먹을 꽉 쥐었다.

    “상으로 좋은것을 보여주지.”

    순식간에 사이프카르의 팔이 불처럼 달아올랐다. 그리고 금빛 눈동자가 태양처럼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팔부위를 감싸던 가죽갑옷이, 전부 녹아내려 버렸다.

    “저건 대체 뭐냐?”

    “누님의 진짜 힘입니다. 하, 저러면 말리지도 못하는데.”

    제이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러슬라이도 상당히 긴장한 듯, 손수건으로 머리의 땀을 닦았다.

    반쯤 잘렸던 팔은 마술처럼 빠르게 복구되었다. 대신 팔 부위 피부가 붉게 변하고, 손바닥이 머리보다 더 커졌다.

    마치 악마의 팔 같은 형상이다. 근육질로 비대해 지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흉측한 형상. 붉은 피부는 장인의 방패보다 단단해 보였고, 길게 자란 손가락은 무엇이든 잘라버릴 듯이 날카로웠다.

    사이프카르는 타브에게 성큼 걸어갔다. 변한 부위는 팔 밖에 없었지만, 그의 가슴에서 공포감이 흘러나왔다.

    간신히 팔에 한방 먹였는데, 오히려 괴물같이 변해서 다가온다. 도저히 이길것 같지가 않았다. 무엇보다 부상이 너무 심하다. 타브는 그녀가 다가오는 만큼 뒷걸음질 쳤다.

    툭.

    타브가 뒤를 돌아보았다. 벽. 도망치다 보니 건물의 벽까지 온 것이다. 더 이상도망칠 수가 없었다.

    “....... 내가....... 졌다..........”

    타브가 작게 중얼거렸다. 굴욕에 찬 목소리. 하지만 사이프카르는 멈추지 않았다. 뭔가 이상했다.

    그는 알 리가 없지만, 저렇게 악마의 힘을 이끌어내면 이성이 대부분 사라진다. 그 자리를 대신하는것은 폭력적인 충동과 욕망. 사이프카르는 당장 타브를 박살내 버리고 싶었다.

    타브는 서둘러 검을 들었다. 그리고 남은 힘을 짜내 오러를 둘렀다. 그는 비틀거리는 몸으로 자세를 잡았다. 그때, 타브의 눈이 잠깐 번쩍였다.

    ‘그러고 보니 저년. 검이 없잖아?’

    아직 기회가 남았다. 괴물처럼 변하는 바람에, 상처가 하도 심한 바람에 물러나기는 했지만, 검없이 어떻게 싸운다는 말인가. 타브는 있는 힘껏 검을 휘둘렀다.

    치이이이이잉!

    하지만 사이프카르는 한 손으로 검을 막아버렸다. 타브의 눈이 미친듯이 커졌다. 오러가 실린 검을 맨손으로 막다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업는 상황이다. 오러와 악마의 손이 서로를 갈아내었지만, 그녀의 손에는 아무런 상처도 나지 않았다.

    채애애앵!

    먼저 박살난 것은 타브의 검이었다. 소문난 대장장이가 만든 명검. 거기에 오러까지 둘렀는데 박살나 버렸다. 박살난 검의 조각이 타브의 얼굴을 긁고 지나갔다.

    “잠깐!”

    사이프카르는 듣지 않았다. 그녀는 양 주먹을 쥐고 타브를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단 주먹 두 번만에 두꺼운 벽이 박살났다.

    그녀는 벽을 부수고 날아가 바닥을 기는 타브를 한쪽 발로 짓밟았다.

    쿵! 쿵! 쿵!

    도저히 사람을 패는 소리가 아니었다. 무슨 무거운 물건으로 바닥을 찍는 소리. 조직원들과 기사단이 급하게 달려왔다.

    “이제 그만 됐어! 누님! 그만하세요!”

    러슬라이가 달려들어 그녀를 막으려했다. 물론 결투이긴 하지만, 타브는 백작의 아들. 정말로 죽여버리면 뒷일이 상당히 복잡해진다.

    “하아.......”

    러슬라이와 제이크, 두 명이 그녀의 팔을 붙잡고 때어내었다. 다행히 이성이 남아있기는 한지, 부하를 공격한다던가 하는 일은 없었다.

    날카롭게 변한 팔이 서서히 돌아왔다. 그녀는 머리가 아픈지 잠깐 비틀거렸다.

    “으으, 무슨일이 있었던 거지?”

    “누님. 기억이 안 나시나요?”

    “농담이야. 등신아. 당연히 기억나지.”

    사이프카르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녀와 부하들은 쓰러진 타브를 바라보았다.

    “내가 했지만 좀 심했네.”

    타브는 거의 다진 고기가 되어 있었다. 일단 숨을 쉬는것을 보니 살아있기는 한데, 인간이라고 보기도 어려웠다.

    얼굴이 완전히 뭉게져 버렸다. 팔다리도 성질 고약한 어린이의 인형처럼 기괴하게 뒤틀려있다.

    그나마 타브가 기사이기에 살아있는거지, 보통 사람이었으면 열 번은 죽고도 남을 부상이다.

    “단장님!”

    기사단은 거의 초상집 분위기. 타브를 부축하러 온 기사들도, 어떻게 부축해야 할지 알수 없었다. 잘못 건드리면 죽을것같기도 했다.

    “저 얼굴은 뮤프리드도 못 고칠걸.”

    “하하하.”

    카르안은 어색하게 웃었다. 꼴 좋다고 하기에는 조금..... 많이 비참한 상황이었다.

    사이프카르가 기사단에 다가갔다. 방금 전 악마적인 상황을 라이브로 목격한 기사들은, 한걸음 물러설 수 밖에 없었다.

    “앞으로 뭐 가격을 깍아달라, 이딴 소리 나오면 너희들도 이렇게 되는거야. 빌어먹을 백작놈한테 전해.”

    기사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결투는 사이프카르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2.

    그날 저녁. 카르안과 조직원들은 술집 하나를 전세내고 마셨다. 그들의 대장, 사이프카르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서다.

    원래라면 고급 요정을 찾았겠지만, 일반 조직원들도 모두 참가해야 하기에 그냥 일반 술집을 이용한 것.

    “잠시 바람좀 쐬고 오겠습니다.”

    “다녀오십시오. 형님!”

    카르안도 그날은 열심히 술통을 비웠다. 전부 분위기 때문. 사이프카르는 다친것도 전부 나았는지, 증류주를 물처럼 마셔대었다.

    지부장이 그렇게 마시다보나, 부 지부장인 카르안도 안 마실 수가 없었다. 그는 잠시 머리를 식히기 위해 술집 밖으로 나갔다.

    “하아. 그만 마셔야 하는데.”

    카르안은 벽에 기대어 있었다. 바람을 쐬니, 울렁이는 속도 조금 괜찮아 지는것 같았다.

    "........."

    그때, 옆에서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카르안이 고개를 돌리자, 한 소녀가 보였다. 아는 얼굴이다. 카르안은 반갑게 인사를 건냈다.

    “카라나리씨. 여기는 무슨 일이야?”

    “........ 저를 아시나요?”

    긴 흑발의 검사, 카라나리. 그녀가 카르안을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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