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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션으로 무한성장 (20)화 (2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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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무르짐이라. 그래. 너희들에게는 뛰어난 연금술사 정도로 알려져 있겠군.”

뮤프리드의 의식은 한숨을 쉬었다.

“유능한 친구였어. 그다지 선한 성격은 아니었지만, 눈부신 재능이 있었네. 연금술을 위해 태어난 게 아니라, 마치 연금술이 그를 위해 있는 것 같았지.”

“그 정도였습니까?”

“자네들은 잘 몰라. 그는 자기 연구를 보여주는 것을 싫어했지. 그가 책으로 낸 연구 성과는, 그의 진짜 지식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네.”

의문이 계속 떠올랐다. 저 뮤프리드가 무르짐을 알고 있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무르짐은 뮤프리드도 치료하지 못하는 병의 치료제를 어떻게 알고 있을까.

‘저 신이 치료하지 못한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있지.’

카르안은 고개를 저었다.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 그도 의술의 신. 오히려 카르안을 치료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돌면 안 좋은 이미지만 생기지 않겠는가.

“무르짐을 아는 것을 보니, 자네도 연금술사인 것 같은데. 치료를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하네.”

그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거짓말을 하는 얼굴은 아니었다.

“그러면 다른 용건은 없는가?”

“무르짐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습니다.”

“미안하지만, 더 이상을 알려줄 수 없네. 그에 대해서는 깊게 알려줄 수 없어.”

뮤프리드가 단호하게 말했다. 유들유들해 보였지만, 끊을 때는 확실하다는 것인가. 그에게 무엇인가를 더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면 이제 상담을 끝인가?”

카르안은 정신을 차렸다. 아쉽게 되었지만, 왜 치료하지 못하냐고 멱살이라도 잡을 수는 없지 않은가. 애초부터 그게 목적이 아니다. 그는 여기 온 원래 목적을 말하였다.

“얼굴을 고치고 싶다고? 허허. 보기 좋구만 왜?”

“제가 보기에는 영........”

아니었다. 절세 미남까지는 아니더라도, 평범한 얼굴 정도로는 돌아가고 싶었다. 뮤프리드가 고개를 저었다.

“자네 정도의 미남을 보는 것은 오랜만 이다만. 하, 이런 조각 같은 얼굴을 내 손으로 망쳐야 하다니. 아케르나라 인간종의 미의식은 이해할 수 없단 말이야.”

“미남이라뇨?”

카르안이 이 세계에 오고 나서는 처음 들어보는 말이다. 뮤프리드는 머리를 긁적였다.

“우리 종족 기준에서 자네는 둘도 없는 미남이야.”

“.........”

그러니까 저 혹성탈출 원숭이 족에서는 연예인 뺨 후려치는 얼굴이란 뜻이다. 잘생겼단 소리를 들어도 기쁘지 않은 것은 처음이었다. 카르안은 손을 저었다.

“저는 여기서 살아갈 거라서.”

‘당신네 고릴라 천국에는 죽어도 안가.’

카르안이 속으로 되새겼다. 정말로 쓸데없는 칭찬. 카르안이 착잡해 하자, 뮤프리드는 분위기를 환기 시키려는지 손뼉을 한번 쳤다.

“아무튼 좋아. 슬프긴 하지만 내 직접 힘을 써보지.”

“그런데 확실히 바꿔줄 수 있는 거죠?”

불안한 목소리. 눈 딱 감고 얼굴을 맡기기에는, 저 원숭이의 미의식이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뮤프리드는 씨익 웃었다.

“걱정 말게. 이곳의 미적 의식은 전부 파악하고 있으니. 그래야 장사, 아니 어린양에게 축복을 내릴 수 있지 않은가.”

“.........”

“아무튼 자네에게도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 주겠네. 대충 견적을 내어 놨으니, 나머지는 사제들한테 가면 된다.”

“아, 알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더 볼일은 없고....... 근데 자네 표정이 왜 그리 어둡나?”

“아뇨. 이렇게 인간적인 신을 본 것은 처음이라.”

사실 신 자체를 처음 봤지만. 상상과 달라도 너무 다른 모습이다. 그의 말에 뮤프리드가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 하면 안 되는 말을 한 것일까. 어떻게 생각하면 모욕일 수도 있었다. 살짝 긴장한 카르안. 하지만 뮤프리드는 피식 웃을 뿐이었다. 공허한 미소였다.

“인간적이라........”

그의 모습이 점점 흐려졌다. 상담이 끝난 것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남긴 채 모습을 감추었다.

“세상에 신은 없고, 신의 탈을 쓴 사람들만 있을지도 모르지.........”

3.

“어떠셨습니까. 형님.”

“그냥, 잘 풀렸다.”

밖에서 러슬라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카르안은 대충 대답했다. 괜히 여러 가지 물어봤다가 속 시원한 답은커녕 머리만 더 복잡해 졌지만. 어쩌면 상당히 중요할지도 모르는 정보들을 얻었다.

“그러면 나는 또 사제를 찾아가야 한다는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니까, 그냥 주변 구경이라도 하고 있어. 두 시간 후에 여기서 만나자.”

“알겠습니다.”

러슬라이가 흔쾌히 대답했다. 그도 내심 지루하던 참이었다. 카르안의 말이 끝나자마자 쪼르르 사라져 버렸다.

“저 녀석 처음 봤을 때는 무슨 관우인줄 알았는데.”

카르안이 한숨을 쉬었다. 며칠 지내다보니, 러슬라이의 과묵하고 진지하던 이미지는 싸그리 증발해 버렸다.

잠시 후, 그는 사제의 안내를 받아 다른 곳으로 향했다.

“어서 오세요. 뮤프리드님으로부터 비용이 계산되었습니다.”

“으흠. 얼마정도 드나요?”

“20골드 입니다.”

“20골드?”

카르안의 입이 떠억 벌어졌다. 20골드. 그가 가지고 있는 돈의 2배였다. 듣자마자 머리가 어질했다.

“아니, 왜 이렇게 비싸요?”

“그, 그것이........”

사제가 민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원래는 이것의 절반 정도밖에 안 하는데, 그, 이런 말씀 드리기는 죄송하지만, 워낙 건드릴 부분이 많아서 배 이상의 신성력이 든다고 합니다.”

“........”

카르안은 뭐라 할 말을 잊었다.

“하아, 내년에 다시 와야 하나. 아니 돈 쓸데도 많은데........”

성형도 하고 싶었지만, 그것보다 배는 중요한 일이 여러 가지 있다. 그를 치료할 숲의 심장. 그게 있어야 카르안의 불치병을 치료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물건도 가격이 더럽게 비싸다.

“많이 벌면 뭐하나. 다 빠져 나가는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돈이 줄줄 세어나갈 일만 남았다. 게다가 여기는 현실. 그 구멍을 막아줄 동화 속 두꺼비도 존재하지 않았다.

카르안은 한숨을 푹 쉬었다. 성형은 어차피 개인적인 욕망이다. 예상 외로 돈이 많이 든다면, 앞으로의 일을 위해 돈을 아끼는 편이 좋았다.

“그럼 포기하고 나중에.......”

“음. 그렇다면 다른 방법이 하나 있기는 합니다.”

“무슨 방법 입니까?”

카르안이 귀를 쫑긋했다.

“이게 마법사이시거나, 연금술사 분들께만 포함되는 이야기라.”

“제가 연금술사입니다.”

카르안이 절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

“그러시다면 한번 교주님께 말씀 드리겠습니다. 하아. 힘들 것 같기는 한데.”

“어지간한 일은 다 할 수 있으니까. 잘 좀 부탁드립니다.”

“걱정 마십시오.”

사제는 방을 나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카르안은 초조한 마음에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들겼다.

‘젠장. 대체 뭐 한다고 이렇게 고생을........’

얼마 지나지 않아 사제가 돌아왔다. 그는 카르안에게 말했다.

“교주님께서 한번 보자고 하십니다.”

3.

“오오. 자네가 연금술사인가?”

넓은 방. 교주의 방은 실로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주변에는 여러 그림과 금으로 된 장식품들이 널려져 있었다.

“그렇습니다.”

“만나서 반갑네. 내가 뮤프리드교의 교주. 예드프리어일세.”

“카르안입니다. 만나서 영광입니다.”

교주는 중년의 남자였다. 새하얀 법의를 입었는데, 한눈에 봐도 상당히 고급스러워 보였다.

그리고 그 법의 사이로 보이는 탄탄한 근육질의 몸이 인상적이었다. 성직자라기보다는 단련된 전사의 몸.

그리고 특유의 기품을 가진 사내였다. 과연 교주라고 할까. 고급스러운 옷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특히나 화려한 금발에, 커다랗고 화려한 모자가 무척이나 어울렸다.

그리고 부드러운 듯 하며 강단있어 보이는 모습. 과연 한 교단의 교주다운 분위기였다.

그는 멋스럽게 기른 콧수염을 쓰다듬으며 자리를 권했다.

“자, 차나 한잔 마시면서 이야기하지.”

“감사합니다.”

교주가 먼저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문이 열리며 한 명의 사제가 들어왔다. 그는 차가 담긴 쟁반을 들고 있었다.

“후후. 이게 알펜왕국 귀족들 사이에서 유행한다는 차인데, 아주 향이 좋더군. 한잔 들어보게.”

‘엄청 친절한데.’

조금 의심스러울 만큼 친절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저 남자도 교단의 교주. 그만한 인성은 갖췄을 것이다.

카르안은 찻잔을 들어올렸다. 잔에서 진한 꽃향기가 풍겨 나왔다. 과연 싱그러운 향이 봄에 어울리는 차였다.

“흐음. 역시 봄을 맞이하는 데에는 따뜻한 차 한 잔 만한 게 없지.........”

“저 교주님. 그런데 그 부탁이라는 게.”

“하하. 미안하네. 서론이 너무 길었군.”

예드프리어는 그렇게 말하며 사제에게 눈짓했다. 차를 들고 왔던 사제는 고개를 한번 숙이더니 방 밖으로 향했다.

달칵-

동시에 문이 닫혔다. 이제는 방에는 교주와 카르안 두 사람 뿐. 예드프리어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얼굴을 고치기를 원한다고 했지. 그런데 자네는 지금 돈이 부족하고.”

“예. 20골드는 너무 비싸더군요.”

“흠흠. 그러면 자네, 연금술사라고 했지. 내 부탁을 하나 들어준다면, 내가 가진 신성력으로 자네의 뜻을 들어 주겠네.”

“감사합니다. 어떻게 도와드리면 될까요?”

예드프리어는 지나칠 정도로 뜸을 들이고 있었다. 카르안은 한숨을 쉬었다.

“너무 성급하게 굴지 말게. 이게 조금....... 기밀을 요하는 일이라서 그래.”

“기밀이라면.”

“일단 자네가 연금술사라는 것부터 알아야겠지. 증명할 만한 물건이 있나?”

“흠.”

그는 아직도 연금술 면허가 없었다. 하지만 다른 물건이 하나 있었다. 그는 품에서 명패 하나를 꺼냈다.

흑룡회의 간부임을 증명하는 물건.

과연 그것을 보자마자 예드프리어의 눈이 커졌다.

“자네, 흑룡회의 사람이었군.”

흑룡회의 명성은 해외에서도 제법 유명했다. 게다가 뮤프리드 대신전과 알펜 왕국은 상당히 가까이 붙어있는 사이.

거리가 가까운 만큼 정보가 통하는 것이다. 알펜 왕국과 뮤프리드 대신전은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뮤프리드 교단은 범죄조직을 무조건 적대하지도 않았다. 이게 조금 신기한 일인데,  교단들은 범죄조직이건 뭐건 동등한 거래상대로 취급했다. 선과 빛의 신 알샤인 교단을 제외하면.

오히려 파괴와 전투의 신. 자락투스는 교단에서 암살부대를 키우기까지 한다. 결국 교단에 해를 끼치지만 않으면, 신경 쓰지 않겠다는 것이다.

“으흠. 흑룡회의 간부라면, 적어도 허언을 담을 사람은 아니겠지.”

‘다행이군.’

카르안이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교단의 교주 앞에서 ‘내가 범죄자요.’하는 게 영 어색했지만. 러슬라이에게 들은 대로 교주는 얼굴하나 찌푸리지 않았다. 예드프리어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면 자네. 지금부터 본 것은 어디에서도 말하면 안 되네.”

“저는 입이 상당히 무거운 편입니다.”

“하아. 좋아. 그러면 자네, 그리고 흑룡회를 한번 믿어 보겠네.”

예드프리어는 엄숙하게 말하더니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 곧 결심한 표정으로 손을 뻗었다. 그의 화려한 모자가 벗겨졌다.

동시에 무언가가 툭 떨어졌다.

“우아앗!”

카르안의 심장이 요동쳤다.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떨리는 손을 주체할 수가 없다.

우울한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이것을 해결할 수 있겠는가?”

거기에는 화려한 금발의 교주 대신

솜털 하나 없는 매끈한 대머리가 있었다.

4.

“이게 무슨?”

“보면 모르겠나. 탈모일세. 탈모. 탈모라고!”

교주가 반쯤 울먹거리며 말했다. 그의 발밑에서는 가발이 죽은 해파리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더 이상 기품을 갖춘 근엄한 사나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머리 빠진 중년 한명이 앉아있을 뿐이었다........

“이 일을 어찌한다는 말인가. 자네는 아직 모르겠지만........”

“아니. 잠시 만요.”

카르안이 머리를 긁적였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는 뮤프리드 교단의 교주였다.

“그냥 스스로 고치면 되지 않나요? 아니면 다른 사제들을 불러다가.........”

사람 얼굴도 다 바꾸어 놓는데, 고작 탈모하나 해결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여전히 슬픔에 차 있었다.

“나도 바보가 아니네. 그 생각을 왜 못했겠나. 하지만 여기에는 사정이 있다네.”

교주가 힘없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젊은 시절, 그는 뮤프리드의 성기사였다. 뛰어난 검술과 신앙심. 그리고 품위 있는 외모로 뭇 여성들을 설레게 했다고 한다.

그가 길고 풍성한 머릿결을 휘날리며 말을 달리면, 귀족집안의 영애부터 마을의 할머니까지 모두 얼굴을 붉혔다고 한다.

“그런데 그 행복도 잠시였어. 이제 막 시작될 비극의 서막에 불과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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