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션으로 무한성장 (19)화 (19/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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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형님! 마차를 구했습니다!”

“수고했다.”

러슬라이가 달려왔다. 실로 무시무시한 행동력. 그는 한 시간도 안 돼서 뮤프리드 대신전행 마차에 자리를 얻었다.

“그러면 나는 러슬라이와 다녀오겠다. 제이크. 너는 일 보고 있어라.”

“형님........”

제이크가 길가에 버려진 강아지 같은 눈으로 그를 올려보았다. 그가 애처로운 표정을 짓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러면 사이프카르님이랑 즐거운 시간 보내라.”

러슬라이가 놀리듯 말했다. 제이크가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곧 꼬리를 말 수밖에 없었다.

‘그러게 평소에 열심히 했어야지.’

카르안이 마약을 잔득 만들어놓은 덕분에, 조직은 한동안 바빠질 예정이다. 만들어 놓은 물건을 팔아야 하는 것이다.

이게 상상 이상으로 고된 일이다. 원래라면 실력 있는 조직원 대부분이 동원된다. 당연히 러슬라이와 카르안도 거기에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사이프카르의 한마디에 카르안은 뮤프리드 대신전으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 카르안에게도 경호원이 필요한데, 거기에 러슬라이가 뽑힌 것이다.

미리 뮤프리드에 대해 알아놓은 게 도움이 되었다. 덕분에 카르안에게 좋은 인상도 남겼고, 무엇보다 피말리는 노동에서 면제될 수 있다. 그는 전쟁터에서 대승을 거둔 장군처럼 늠름하게 말했다.

“가시죠. 형님.”

“그래.”

시원한 봄바람이 지나갔다. 카르안은 눈을 가늘게 떴다. 어쩐지 아련한 기분. 마음이 홀가분한 게 여행이라도 떠나는 기분이다.

그는 사람의 외모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세상에 멋지게 변할 수 있다는데 기뻐하지 않을 사람이 있기는 할까.

러슬라이도 기분이 좋았다. 카르안 정도면 결코 까다로운 상사가 아니니까. 게다가 지금 그의 기분도 매우 들뜬 상태이기 때문에, 피곤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들은 점심을 해결한 뒤 마차에 올라탔다. 그다지 이미 몇 명이 올라타 있었다. 아주 넓은 공간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앉을수도 있고, 누워서 잘 만한 공간은 나왔다.

“그러면 출발하겠습니다!”

마부가 소리쳤다.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마차가 움직였다.

“이거 관광이라도 가는 기분이군.”

“하하. 정말 그렇습니다. 마침 뮤프리드의 대신전에는 맛있는 먹거리가 많다고 하니, 즐거운 일이 될 것 같습니다.”

“하긴. 대신전이라면 크긴 크겠지.”

“보통 대신전은 하나의 나라로 취급 받습니다. 소유한 땅만해도 저희 백작가보다 훨씬 클 것입니다. 그리고 이곳이 관광지로 유명한지라........”

그들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참을 떠들고 나자 기분 좋은 졸음이 쏟아졌다.

카르안은 눈을 감았다. 춘곤증일까. 마차 바퀴의 불협화음마저 자장가처럼 느껴졌다. 옆에있는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낮잠에 빠져 있었다.

카르안은 몰려오는 수마에 저항하지 않았다. 곧 그는 푸근한 기분과 함께 잠에 빠져들었다.

2.

일주일 후, 그들은 뮤프리드 대신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카르안과 러슬리이는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주변을 둘러봤다.

러슬라이가 말한 대로였다. 대신전에는 신전 하나만 달랑 있는 게 아니다. 그 주변으로 거대한 도시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 도시는 어느 국가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독립된 작은 신성국인 셈이다.

러슬라이가 감탄하듯 말했다.

“거리가 아주 깨끗하군요. 바닥에 광칠이라도 해놨나 봅니다.”

“정말이군. 훌륭한 도시야.”

길바닥이었지만 쓰레기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세련돼 보이는 집들이 보기 좋게 늘어져 있었다.

카르안은 마치 그가 살던 현대로 돌아온 것 같은 착각까지 느꼈다. 관광 책자에서 사진으로 보던 유럽과 매우 비슷했다.

무엇보다 농경지가 많지 않았다. 역시 유명한 관광지답게, 산업도 그쪽으로 발달해 있다. 굳이 농사에 열을 올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카르안은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음. 그나저나 좀 씻어야겠군. 우리 꼴이 말이 아니야.”

“그러면 여관부터 찾아보겠습니다.”

일주일 내내 작은 마차 안에서 지냈다. 중간 중간 강가에서 씻기는 했지만, 여전히 찝찝했다. 그들은 도시를 돌아다니며 잘만한 여관을 찾았다.

“2인 1실은 10실버입니다.”

“끄음. 조금 비싼데.........”

“어휴, 저희 여관이 싼 편이에요. 다른 곳은 최소 15실버는 받는다니까?”

러슬라이가 머리를 긁적였다. 여관을 잡기는 했는데, 관광지답게 숙박비가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비싼 가격에 놀라 다섯 곳이 넘는 여관을 돌아다녔지만, 어디를 가나 값이 비슷했다.

“그런 그 방으로 주시죠.”

“네. 여기 열쇠입니다.”

결국 가장 싸고 깨끗해 보이는 곳으로 여관을 잡았다. 층을 올라가면서도 러슬라이는 불편한 표정이었다.

“천하의 흑룡회에게 바가지를 씌우다니.”

“됐어. 다 이렇게 사는거지.”

카르안은 방문을 열었다. 화려한 방. 이곳 특유의 센스로 장식된 방이었다. 그리고 방마다 욕실까지 있었다. 보통 여관이 공용 욕실을 단체로 사용하는 것과 대조적이었다.

“그래도 비싼 값은 하네요.”

러슬라이가 장식용 촛대를 살펴보며 말했다. 도금이었지만,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서인지, 벽에 단단히 붙어있는. 러슬라이가 그 촛대를 톡톡 두드리자, 카르안이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가져갈 생각 하지 마.”

“흐흠. 그냥 구경만 한 겁니다. 구경만.”

그는 아쉬운 표정으로 촛대를 놓았다.

“씻고 바로 신전부터 가자.”

“알겠습니다.”

러슬라이가 조금 아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잠시 턱은 만지작거리던 카르안이 덧붙였다.

“일단 신전부터 갔다 와서 주변 구경좀 하자고.”

그 말을 들은 러슬라이의 얼굴이 밝아졌다. 알페라츠 백작령 토박이인 그는 처음 와보는 관광지다. 내색은 안했어도 여러곳을 둘러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가 아쉬워하자마자, 카르안이 직접 관광을 하자고 한 것이다. 러슬라이의 코끝이 시큰해졌다.

‘내가 아쉬워하니 형님이 챙겨주신 것이다. 정말 사려가 깊으신 분이야.’

‘이계까지 관광 온 놈은 나밖에 없을 거다.’

그의 생각과 달리, 카르안은 그를 배려한게 아니다. 그냥 자기가 보고 싶었던 것. 러슬라이의 표정같은것은 보고있지도 않았다. 워낙 타이밍이 절묘했기에 러슬라이가 멋대로 오해했다.

‘목숨 바쳐 모시겠습니다, 형님.’

충성심에 뜨겁게 달아오른 러슬라이를 뒤로하고, 카르안은 욕실로 들어갔다.

3.

“이거 먹을 만하지 않냐?”

“그러게 말입니다.”

깔끔하게 씻고 난 뒤, 개운한 몸으로 대신전에 향했다. 가는 길에 노점상 음식도 하나씩 사 먹었다. 지금 그들의 손에는 특제 숯불 꼬치구이가 하나씩 들려 있었다.

여러 가지 몬스터의 고기를 숯불에 구운 고기다. 특이한 양념을 끼얹어서 고소한 맛이 일품. 카르안은 난생 처음 먹어보는 음식에 감탄했다. 길거리 음식이지만 예상 이상으로 맛있었다.

러슬라이도 고기가 혀에 쫙쫙 달라붙었다. 지금쯤 기사단과 눈치싸움을 하며 고생하고 있을 동료들을 생각하니, 고기가 두 배는 맛있었다.

남들이 고생할 때 여유롭게 관광지. 그 묘한 느낌이 더없이 훌륭한 조미료가 되어 그의 미각을 자극했다.

“여기가 뮤프리드의 대신전입니다. 역시 사람이 북적북적 하군요.”

미남 미녀가 된다는 소문 때문일까.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그들은 줄까지 서 가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 지금 오신 분들은 여기서부터 서시면 됩니다!”

사제복을 입은 남자가 크게 소리쳤다. 그러자 막 들어온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갔다.

“음, 이건 내 생각인데, 여긴 신전이라기보다는 잘나가는 성형외과 같아.”

“성형외과가 뭡니까?”

“여기랑 비슷한 곳. 그런 게 있다.”

카르안이 한숨을 쉬었다. 이 세계에 와서 처음 와보는 신전이다. 좀 신성한 이미지를 상상했는데, 지금 저 피켓을 들고있는 사제부터 그의 순수한 동심을 박살내고 있었다.

“그런데 저런 짓 하면 신도 화내지 않을까?”

“소문에 따르면, 뮤프리드라는 신도 공물이 늘어 아주 기뻐한다고 합니다.”

“그, 그래?”

어쩌면 신이란 것도 사람과 비슷비슷하지 않을까.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다. 러슬라이가 자리를 잡았다.

“그러면 형님은 편히 쉬고 계십시오. 몇 시간은 기다려야 될 것 같은데. 제가 대신 서겠습니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저는 신경 쓰지 마십시오. 원래 형님을 힘들게 하는 것이 불충입니다.”

카르안은 가장 앞줄을 살펴보았다. 줄이 거의 끝나자 시종으로 보이는 소녀가 뭐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화려한 드레스의 여자가 쪼르르 달려왔다.

귀족을 대신해서 시녀가 줄을 선 것이다. 실제로 줄을 차지한 것은 대부분 그들의 시녀나 시종들 이었다.

“됐어. 그냥 같이 서 있어.”

“형님.”

“그냥 사람 구경이나 하지 뭐.”

줄이 길기는 했지만 그만큼 빠르게 줄어들었다. 이대로 한 시간도 안 걸릴 것 같다. 오히려 다른 곳에 가는 게 더 번거로웠다.

그의 예상대로 얼마 안 가 줄이 끝나버렸다. 카르안은 안내에 따라 뮤프리드의 사제를 만날 수 있었다.

“어서 오세요. 사랑과 희망이 가득한 뮤프리드 신전입니다. 무슨 일로 찾으셨나요?”

사제가 사무적으로 말했다. 사랑도 희망도 없는 무미건조한 말투였다. 몰려드는 사람들이 지겨워 죽을 것 같은 표정. 카르안은 자리에 앉았다.

“얼굴을 좀, 손대고 싶어서 찾았습니다.”

“으으흠.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곧 뮤프리드님의 의식을 불러 드리겠습니다.”

“뮤프리드님의 의식?”

“뮤프리드님이 만들어 두신 지식 덩어리입니다. 물론 뮤프리드님이 직접 강림하시는 것만은 못하지만, 어지간한 질문은 다 답해 드려요.”

그러니까 일종의 인공지능과 비슷했다. 카르안은 신전 밖의 사람들을 떠올렸다. 아무리 터프한 신이라도, 저 많은 인파를 상대하려면 몸이 열 개쯤 필요하리라.

상담을 위해 따로 만들어 놓은 시스템. 그것이 뮤프리드의 의식 이었다. 한번 만들어 놓으면 따로 신경쓸 것 없이 작동하는 원리. 사제는 서랍에서 은으로 된 구를 조심스럽게 꺼내었다. 뮤프리드교의 성물이었다.

“상담료는 3실버입니다. 선불이고 시작하면 환불 안 되고요.”

“알겠습니다.”

카르안은 주머니에서 은화 3개를 꺼냈다. 그나저나 보면 볼수록 사제가 아니라 삶에 찌든 샐러리맨 같았다........

돈을 받은 사제가 눈을 감고 집중했다. 그러자 그의 양 손이 빛나더니, 허공에서 무언가 나타났다. 거대한 남자였다.

“어떤 이가 길을 잃고 나 뮤프리드를 찾아왔는가.”

“접니다.”

카르안이 슬쩍 손을 들었다. 뮤프리드의 의식은 그런 카르안을 내려 보았다.

‘인간이 아니었군......... 유인원 같이 생긴 종족인가.’

뮤프리드를 본 카르안의 감상. 그가 처음 보는 종족이었다. 온 몸이 털에 뒤덥혀 있었고, 손이 4개인 듯, 발이 있어야 할 부위에도 손이 달려있었다.

마치 과학책에서 보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비슷했다. 그러니까 진화가 덜 된 원시인 말이다. 그런 원시인이 자상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뭔가 묘한 기분이다.

“흐음. 그대는 무엇 때문에 왔는고?”

“제 얼굴 때문에....... 아니.”

생각 없이 말 하려던 카르안이 말을 멈추었다.

‘왜 이 생각을 못했지?’

갑자기 카르안이 침묵하자, 뮤프리드는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가?”

“아닙니다. 그런데 혹시 뮤프리드님은 제 병을 고쳐주실수 있는가 싶어서 말입니다.”

“물론 내가 못 고치는 병은 없지.”

뮤프리드가 웃으며 말했다. 온화하지만, 자신감 넘치는 당당한 웃음. 카르안도 미소 지었다.

‘내 불치병을 여기서 고치면 그만이잖아?’

뮤프리드는 의술의 신이다. 당연히 병을 치료하는데는 아케르나라 전체에게 가장 뛰어나리라. 당연히 그의 불치병도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

“어디 한번 몸을 확인해볼까.”

그가 카르안에게 손을 뻗었다. 그러자 무언가 간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카르안의 몸 상태를 확인하는 것.

다른 백마법사처럼 복잡한 마법 따위는 쓰지도 않았다. 그는 손을 한번 슥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카르안의 신체를 완벽하게 파악했다.

“으흠? 이럴 수가.”

뮤프리드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문제가 생긴 것일까. 카르안은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그러십니까?”

그는 상당히 당황한 것 같았다. 마치 미지의 물체를 본 과학자같은 표정.

“허, 이런 말 하기는 민망하지만, 자네의 병은 치료가 불가능하네.”

“뭐라고요?”

믿을 수 없었다. 의술의 신이 치료할 수 없는 병이라면, 세상에 누가 고칠 수 있단 말인가.

“자네가 걸린 병은, 절대 자연적으로 생긴 병이 아니야. 굉장히 복잡한 저주와 독을 함께 사용했어. 이런 것은 나도 처음 보는 것이야. 허어........ 미안한 이야기지만, 세상 누가 와도 자네의 병을 고칠 수는 없을것일세.”

카르안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 없었다. 의술의 신, 뮤프리드도 처음 보고, 치료도 불가능하다고 한 병.

하지만 이 병의 치료법을 알고 있는 자가 있다. 카르안은 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연금술사 무르짐.

‘대체 무르짐은 어떻게 뮤프리드도 모르는 치료법을 알고있는건지..........’

단순히 뛰어나다, 천재다라는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 카르안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연금술사 무르짐이라는 사람에 대해 아십니까?”

“무르짐이라. 모를 리가 없지.”

뮤프리드는 아련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너희들에게는 뛰어난 연금술사 정도로 알려져 있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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