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션으로 무한성장 (12)화 (12/124)

12====================

검은 용의 성채

그날 저녁. 카르안은 여관을 들렸다. 흑룡회에 소속된 두 건달들과 약속한 장소.

“식사랑 증류주 한잔.”

그는 적당히 저녁을 고르고 술 한잔을 시켰다. 아직 놈들이 올 때까지는 시간이 꽤 남았다. 느긋하게 식사를 해도 괜찮았다.

곧 따뜻한 음식이 준비되었다. 찐 감자와 익힌 고기에서 고소한 향이 났다.

“적극적으로 나오지는 않는군.”

카르안은 구운 고기를 씹으며 생각했다. 기사단장 타브. 그는 카르안을 찾으라고 기사들에게 명령했다.

하지만 기사들은 하루 만에 물러가 버렸고, 다른 사람들도 그를 신고하지 않았다. 카르안이 카라나리와 함께 있는 것을 본 사람이 제법 있었지만 말이다.

결국 기사들이나 주민이나 타브의 명령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카르안에게는 다행이었다.

만약 현상금이라도 걸었다면 문제가 됐겠지만, 그놈도 카라나리에 집착할 뿐이다. 의뢰한 사람에게까지 집요하진 않은 것 같다.

카르안은 식사를 마치고 느긋하게 증류주을 마셨다. 이곳 술은 몰라서 적당히 비싼 것으로 시켰는데, 향이 제법 그럴싸했다.

맥주를 시키지 않은 것도 천천히 마시기 위해서였는데, 의외로 좋을 술을 찾았다.

그는 소소한 행운을 즐기며 건달들을 기다렸다. 잔이 거의 다 비워졌을 때쯤, 여관 문이 열렸다. 예의 2인조다.

그들은 카르안을 향해 곧바로 걸어왔다. 근육질은 정중히 고개를 숙인 반면, 주황머리는 여전히 껄렁거리며 대충 고개를 까딱였다.

“결정은 내리셨습니까.”

“어느 정도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당장 들어간다고 해도 어떤 취급을 받을지 정도는 알아야 한다. 그가 들어갈 곳은 사표 한장 쓴다고 나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니까. 근육질도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그것은 보스께서 직접 설명해 주실 것입니다.”

“보스?”

카르안의 얼굴이 굳어졌다. 보스. 그러니까 조직의 머리라는 뜻이다. 카르안은 알페라츠 백작령을 관리하는 지부장 정도를 만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보스라니. 그런 거물이 이런 곳까지는 무슨 일이란 말인가. 이런 대조직의 보스는 쉽게 움직이지 않는 법이다. 근육질이 그 앞에 앉았다.

“마침 보스께서 카르안님을 직접 보고 싶다고 하셔서 말입니다.”

“음.”

‘젠장.’

카르안은 상황을 이해했다. 그들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마음이 정해지면 모레 만나자고 했다.

다음날도 아니고 일주일 뒤도 아니고, 조금 애매한 날. 그 이유도 보스가 알페라츠 백작령에 오는 날이기 때문일 것이다. 왜 왔는지 이유는 알수 없지만.

‘설마 그정도 거물이 나 하나 만나러 온 것은 아닐테고.’

생각보다 판이 커졌다. 하지만 카르안은 마음을 고처먹었다.

‘보스면 어떻고 간부면 어때.’

어차피 보게 될 사람이다. 시간이 조금 당겨진 것 뿐.

“그럼 바로 가보지.”

“알겠습니다.”

카르안이 기세 좋게 일어났다. 겁먹은 것처럼 보이면 안 된다. 과연 건달 둘은 약간 놀란 표정.

보스를 만난다고 했는데 카르안이 기죽지 않는다. 보통 사람이라면 흑룡회의 보스를 만나라 하면 긴장부터 하는 법이다.

“밖에 마차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뭐, 눈을 가린다던가 그런짓은 안하겠지?”

“그런 유치한 짓은 안해요.”

주황 머리가 피식 웃었다. 밖으로 나가자 커다란 마차 한 대가 서 있었다. 근육질은 먼저 가서 문을 열어주었다. 카르안이 먼저 마차에 올랐다. 그러자 그 둘도 따라 들어왔다.

마차에는 창문이 달려있어 밖을 볼 수 있었다. 카르안은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두운 거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준비를 할 시간이다.

간간히 보이는 사람은 술에 취한 주정뱅이들뿐. 그들은 비틀거리며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그 보스라는 놈은 어디에 있다는 거지.’

카르안이 생각을 하는 사이에도 마차는 끊임없이 움직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거리가 소란스러워 졌다.

“사장님들, 어서 오십시오! 20대 아가씨들이 쫘악 세팅되어 있습니다~!”

“형님들, 조금 쉬었다 가세요!”

“오늘 에이스들 다 출근 했습니다......”

커다란 목소리. 그 사이사이로 기묘한 악기 소리가 들려왔다. 주변은 온통 형형색색의 불빛이 태양을 대신해 빛나고 있었다. 카르안은 한숨을 쉬었다.

‘유흥가로군.’

정말 암흑가의 보스에게는 어울리는 장소였다. 야행성의 거리. 낮보다 밤에 밝게 빛나는 곳. 그에게도 익숙한 장소다.

“저것좀 봐. 흑룡회의 마차야.”

“저 크기면 간부급이군.”

“조심해. 마차 건드리지 말라고.”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소리. 다른 사람들이 마차를 보고 이야기하고 있다.

‘성녀의 이야기가 허언은 아니었군.’

유흥가 사람들이 전부 알아볼 정도라면, 확실히 작은 조직은 아니다. 그나저나 간부급이라니.

보통 마차의 크기와 장식이 안에 탄 사람의 지휘를 상징했다. 그렇다면 설마 저놈들이 간부라는 말인가. 카르안은 근육질을 처다봤다.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저희는 아닙니다. 하지만 카르안님이 저희 조직에 들어오신다면, 바로 간부급이 되셔도 이상하지 않으니까요. 보스께서 특별히 배려해 주신 것입니다.”

“음.”

‘생각보다 좋은 사람 아닐까. 보스.’

카르안은 피식 웃었다. 그럴 리가 없지. 아무튼 나쁜 상황은 아니다. 이런 큰 조직에서 간부급. 연금술 길드에 말단으로 들어가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그러는 사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마차에서 내리자 거대한 건물이 카르안의 눈에 들어왔다. 5층은 되어 보이는 듯한 높이.

화려한 유흥가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곳이었다. 근육질이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이곳은 몽로(夢露)입니다. 흑룡회에서 직접 관리하는 요정이지요. 안에서 보스가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에 들어가자 웨이터들이 정중하게 그들을 맞이했다. 전부 양복을 깔끔하게 입은 남자들. 그중 한명이 다가오자 주황머리가 말했다.

“연금술사를 데려왔다고 보스께 전해.”

“알겠습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카르안의 머릿속에 의문부호가 떠올랐다.

‘근데 저놈은 왜 저렇게 까불지?’

분명 근육질은 그가 간부도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종일관 정중하게 말하는 것도, 성격일 수도 있지만 카르안을 특별취급 하는 것.

아무튼 그가 간부가 되면 미리 잘 보여서 나쁠게 없으니까.

그런데도 주황머리는 여전히 까불거리고 있었다. 저러다가 자신이 간부가 된다면 호되게 당할 텐데. 뭔가 이상했다.

‘혹시 보스의 아들?’

그럴 리는 없다. 주황머리는 근육질과 비슷한 위치. 만약 정말 주황머리가 높은 사람이라면 근육질도 정중하게 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주황머리에게 존대 따위는 쓰지 않았다.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보스의 명령이 떨어졌는지 웨이터가 말했다. 주황머리는 피식 웃었다.

“임마, 우리도 길은 알아.”

그러고는 앞장서서 걸어가 버렸다. 근육질은 한숨을 푹 쉬었다.

“저놈이 저런 성격이라....... 죄송합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그들은 계단을 올라갔다. 건물의 외관에서 알 수 있듯, 여기는 고급 요정이다. 금과 보석으로 만들어진 장식들이 군데군데 놓여있었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그림도 층마다 걸려 있었다.

스쳐 지나가는 여자들도, 전부 남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을만한 미녀들이었다. 소위 '수질'이 달랐다.

그들은 가장 위층에 도착했다. 5층. 더 올라갈 곳이 없다. 특이하게도 이 층에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오직 커다란 문 하나가 놓여 있을 뿐. 그 앞에는 작은 종이 달려있었다.

짤랑-짤랑-

근육질이 문 앞의 종을 살짝 흔들었다. 맑은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큰 소리는 아니었기에 카르안이 고개를 갸웃했다.

‘저게 안까지 들리기는 할까?’

그의 예상과 다르게 문이 열렸다. 일종의 마법적인 처리가 되어있는 것이다. 그들은 안쪽으로 들어갔다.

“이건.........”

엄청난 크기. 왜 여기 문이 하나밖에 없을까 생각했는데, 이 층 전체가 하나의 방이었다.

그 크기만큼이나, 방 안은 타락과 욕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문을 열자 마자 공기가 달라졌다. 진한 술과 담배, 향수의 냄새들이 하나가 되어 코를 찔렀다.

무대 위에는 몸에 기름을 바른 무희들이 느릿한 춤을 추고 있었다. 하도 노출이 심해서, 옷을 벗은 것인지 입은 것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

그 옆에서는 악사들이 각자의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고상한 듯 하면서도 어쩐지 요염한 곡. 그게 흥을 돋구어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무대 앞에는 거대한 테이블과 소파가 놓여 있었다. 식탁에는 술병과 안주로 가득 하다. 소파에는 약 10명정도의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이 그들을 보며 손짓했다. 가장 상석에 앉은 남자였다. 그러자 주황머리와 근육질은 재빨리 달려갔다.

“오랫만에 뵙습니다, 보스!”

“아이고. 귀청떨어지겠다. 작게 말해도 알아먹어 이것들아.”

“죄송합니다!”

카르안을 안내하던 건달들. 그들은 상석의 남자에게 깍듯이 인사했다. 완벽한 직각인사. 보스라 불린 남자는 장난스럽게 대답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긴장한 표정이었다.

“그나저나 저 친구가 그 연금술사인가?”

“네. 연금술 길드의 말에 따르면 엄청난 실력을 가졌다고 합니다. 매우 특수한 연금술사의 기교를 사용한다고 들었습니다.”

“으흠.”

카르안도 그들 앞에 섰다. 보스는 카르안을 쳐다보았다. 카르안도 허리를 굽혔다.

“뵐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카르안 이라고 합니다.”

“그래그래. 나도 만나서 반가우이.”

보스가 껄껄 웃으며 반겨주었다. 그는 사람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는지, 술병이 몇 개 비워져 있었다. 카르안은 슬쩍 주변 사람들부터 둘러봤다.

보스와 직접 술을 마신다는 것부터 흑룡회의 간부임을 증명했으니까. 지금 있는 자들이 흑룡회의 실세 들이리라.

마른 체구부터 근육질의 거한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살벌한 인상을 가졌다는 것 뿐.

‘여자도 있군.’

그들 중에는 늘씬한 미녀도 한명 끼어져 있었다. 20대 중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 색기 넘치는 여자였다. 그녀는 양 옆에 수려한 미남 둘을 끼고 있었는데, 카르안이 오자 흥미진진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카르안은 시선을 돌렸다. 저들도 어차피 보스의 수하. 저 무시무시한 사람들을 지배하는 보스는 어떻게 생겼을까.  그는 눈을 돌려 보스를 살폈다.

왕국의 뒷세계를 지배한다는 어둠의 제왕. 범죄자들도 이름만 들으면 벌벌 떤다는 흑룡회의 지배자. 카르안은 침을 한번 삼키고 보스를 살폈다.

그리고 그의 첫인상은.

‘그냥 동네 할아버지 같은데.’

정말 별것 없었다. 카르안은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대부 같은데서 보면 막 포스있고 뭐 그런........“

그는 다시 한번 보스를 쳐다봤다. 시가를 물고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뻥뻥 쏴대는, 카리스마 넘치는 할아버지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동네 공원에서 비둘기 먹이나 주며 시간을 죽일 것 같은 노인이다. 순박한 얼굴에 작은 체구.

흑룡회 보스는 커녕 성녀 뮬리펜의 할아버지라고 해도 믿을 것 같다. 그가 허허 웃을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나올것만 같았으니까.

“응? 내 얼굴에 뭐가 묻었나?”

“아, 아닙니다.”

카르안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자기도 모르게 너무 오랫동안 쳐다본 것 같다. 희귀한 광경이니 그럴 수밖에.

그 옆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전부 살기가 줄줄 흐르는 자들뿐이었다. 저 사이에 선량해 보이는 노인이 앉아있으니, 고기 집 메뉴판의 샌드위치만큼 어색해 보였다.

“뭐 이해하네. 남녀 할 거 없이 내 얼굴만 보면 다들 넋을 잃더라고. 깡패 짓만 안했으면 연예인이라도 했을 텐데. 안 그런가?”

보스가 사람 좋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주변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카르안도 방긋 웃었다. 웃고 있는 간부들의 분위기가, 안 웃으면 한 대 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고. 자네가 연금술사라고? 듣자하니 면허도 없다던데.”

“제가 가난해서 면허를 딸 틈이 없었습니다. 낮에는 공사장 일을 하고 밤에는 공부를 했습니다.”

‘저들은 내 과거를 어느 정도 조사했을 것이다.’

솔직히 대답해 줘 봐야 믿지도 않을 것이다. 쪽지에 적힌 곳으로 가서 나무에 손을 넣었는데 갑자기 연금술사가 되었습니다?

보나마나 속이려 든다고 느낄 것이다. 카르안은 적당히 진실을 섞어 말을 지어냈다.

“주경야독했군. 아주 훌륭해.”

보스는 감탄한 듯 말했다. 카르안은 어색하게 웃었다. 이런 대형 불법 조직 보스에게 훌륭하다고 칭찬을 들으니 묘한 기분이다.

그는 여전히 느긋한 얼굴로 말했다.

“성실한 친구일세. 게다가 연금술만 한것도 아니고 낮에 일까지 했는데 그 정도 경지라니. 한번 제대로 키워보고 싶구만.”

“과찬이십니다.”

카르안은 속으로 쾌제를 불렀다. 분위기가 아주 좋다. 그들 입장에서도 연금술사를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이 알페라츠 백작령에서 한 자리를 내주고 싶어. 마침 적당한 자리가 비었거든.”

“그렇다면.......”

“아, 물론 쉬운 일은 아닐세. 연금술 실력뿐 아니라 눈치도 빨라야 하고, 또 냉정한 판단력이 필요한 자리거든. 어떤가, 할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카르안이 자신감 있게 말했다. 대기업이든 폭력 조직이든 면접에서 자신감은 필수였다. 그리고 카르안은 이런 곳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나름대로 자신이 있다. 보스도 그의 대답에 웃음을 지었다.

“시원시원 하구만. 자네도 알다시피 말이야. 오늘은 아주 중요한 날일세. 우리는 귀한 인재를 얻고, 자네는 여기서 괜찮은 자리를 얻고. 안 그런가?”

“맞는 말씀입니다.”

“중요한 날이야. 그래, 아주 중요한 날이지.”

보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손벽을 한번 쳤다.

짝!

동시에

두 개의 칼날이 카르안을 향했다.

오러가 실린 검. 칼날이 그의 목 앞에서 멈춰 섰다.

“이게, 뭡니까.”

카르안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보스는 여전히 웃는 낯으로 서 있었다. 카르안은 옆으로 눈을 돌렸다.

주황머리와 근육질. 두 사내가 그의 목에 검을 대고 있었다.

‘오러를 쓸 정도의 실력자였나.’

적어도 잔챙이는 아니다. 그리고 그들이 단독으로 벌인 돌발행동도 아니다. 보스와 그 옆에 있는 사람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보고 있다. 처음부터 계획된 일.

카르안은 눈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어느 순간부터 춤을 추던 무희도, 음악을 연주하던 악사들도 사라져 있었다.

카르안이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교묘하게. 그런 카르안의 얼굴을 보며 보스가 미소 지었다.

“그러게 말일세. 이게 뭐 일것 같나?”

여전히 자상하게까지 들리는 목소리. 하지만 카르안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보스의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얼어붙어 있었다.

마치 궁지에 몰린 먹이감을 눈앞에 둔 맹수처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