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션으로 무한성장 (10)화 (1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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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용의 성채

“흑룡회?”

카르안은 고개를 갸웃했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 카르안이 별 반응이 없자 남자 둘은 당황한 표정이다.

“혹시 흑룡회를 모르십니까?”

“처음 들어보는데. 그게 뭐하는 건가?”

카르안이 답했다. 흑룡회인지 광어회인지 알게 뭔가.

“흑룡회는 저희가 몸담고 있는 조직입니다. 알펜 왕국 최대의 조직이죠. 연금술 길드의 정보통이 말하길, 뛰어난 실력의 연금술사가 계신다고 해서 이렇게 찾아뵌 것입니다.”

한마디로 깡패 조직. 하지만 조직을 소개하는 근육질의 얼굴에 자부심이 묻어났다. 깡패 조직 따위에 자부심을 갖다니. 카르안은 머리를 긁적였다.

“뭐, 그렇다 치자. 그런데 거기에 연금술사가 왜 필요한 거지?”

“연금술사 분들은 여러모로 유능하니까요. 그리고 또....... 여러 가지 약물을 조제하실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근육질의 눈이 어둡게 빛났다.

‘마약을 만들라는 말이군.’

폭력조집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것. 무르짐의 지식에는 마약의 제조법도 있었다.

마약에도 품질이 있다. 대부분은 환각 작용이 있는 열매를 섭취한다. 효과가 강렬하고 뒤끝이 깔끔할수록 좋은 마약으로 취급받는다.

섭취 법은 입으로 먹는 것부터 주사, 담배처럼 태워서 연기를 마시는 것까지 다양했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잘 쳐줘야 중상급. 진정한 최상품의 마약은 연금술사의 손을 통해 만들어진다.

한번 하면 뿅 간다는 사람들의 인식과 다르게, 대부분의 마약은 사람에 따라 불쾌감을 주기도 한다. 또한 중독과 몸이 상하는 등 부작용은 말할 것도 없고.

연금술사의 마약은 그런 부작용이 훨씬 덜하다. 몸이 울리는 듯 저릿한 쾌감과 무한한 해방감. 끝없이 증폭되는 고양감등. 중독성도 덜하고 신체 조직의 손상도 비교적 적다.

‘어째 죽기 전에 했던 일이랑 비슷하군.’

파는 쪽에서 만드는 쪽으로 바뀌긴 했지만. 카르안이 말이 없자 근육질이 헛기침을 했다.

“흠. 물론 그런 일 말고도 연금술사 분들은 꼭 필요합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른 분께서 해 주실 겁니다.”

“난 아직 들어간다는 말 안했는데.”

“하. 이자식이 좋게 말하니까 우리가 만만해 보이나.”

주황 머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상당히 다혈질인 듯하다. 하지만 곧 근육질의 팔에 가로막혔다.

“좀 조용히 있어. 귀한 분이시다.”

“그것도 우리 조직에 들어왔을 때 이야기지.”

주황머리가 투덜거렸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리에 얌전히 앉았다.

‘저놈이 분위기를 잡고 근육질이 말리는 것이군.’

카르안은 대충 눈치 챘다. 그 또한 죽기 전, 범죄 조직에 몸담고 있었다. 이런 것은 그의 전공. 사실 경력으로 따지면 저 남자 둘의 한참 선배인 셈이다.

주황머리가 협박하듯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근육질이 말린다. 정신이 없게 만드는 것이다. 조직에 들어오지 않으면 큰 일이라도 일으킬 것처럼. 기가 약한 사람이라면 말려들 수 도 있는 상황.

하지만 카르안은 그런 세계에서 살다 온 사람이다. 그는 둘이 뭘 하건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겁쟁이는 아니군.’

근육질은 속으로 생각했다. 연금술사가 엘리트라 해도 결국 공부만 한 샌님들. 결국 기세 싸움에서 건달들을 이길 수 없다.

하지만 저 남자는 달랐다. 흔들림이 전혀 없다. 마치 조직에서 오래 일해 본 듯한. 근육질은 고개를 살짝 저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조금 더 생각해 보지. 중요한 일이니까.”

“알겠습니다. 그러면 모레 이 시간에 이곳으로 오겠습니다. 그리고.”

근육질은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주먹만 한 주머니. 그는 일어서며 그것을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툭!

묵직한 소리가 울렸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이것은 저희의 성의입니다. 받아주십시오.”

카르안은 주머니를 슬쩍 열어 보았다. 설마 저 안에 돌덩이라도 들어있지는 않을 것이다. 역시 안에는 금화로 가득했다. 잘그락 거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하지만 그는 주머니를 남자들에게 돌려주었다.

“아직 정해진 것도 없지 않나. 내가 미안하니까 이런 것은 못 받아.”

“저희 얼굴을 봐서라도.......”

“그러면 그 돈으로 밥이라도 사 먹게.”

‘저런 것을 받으면 귀찮아 진다.’

카르안은 손을 저었다. 대충 봐도 큰돈이지만, 그 돈 때문에 조폭과 엮이는 것은 사양하고 싶다. 어차피 주머니 사정도 괜찮은데 괜한 돈을 받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거 주는 돈을 왜 안 받는데?”

남자들은 그렇게 말하며 자리를 떴다. 카르안은 잠시 그들을 노려보다가 남은 술을 마셨다. 차갑던 술은 어느새 미지근하게 변해있었다.

2.

다음날 아침.

카르안은 연금술 길드부터 들렸다. 이번에는 별 마찰 없이 포션을 팔 수 있었다. 그의 예상대로, 어제 많은 양을 팔았지만 가격은 떨어지지 않았다.

“일단 조직에 대해 알아봐야겠어.”

카르안은 약초 지도를 둘러보았다. 이곳에 있는 약초로는 가장 중요한 ‘강화 포션’을 만들 수 없다. 그리고 돈 되는 포션을 만들 약초 또한 많지 않았다.

여기 있는 약초로 만들 수 있는 B급 포션은 달의 눈물 하나뿐. 그 이상은 없다. 나머지는 그저그런 E급 혹은 그 이하의 포션들 뿐이다. 한마디로 연금술 재료의 불모지.

“여기서는 내가 성장할 수 없다.”

카르안은 멍하니 중얼거렸다. 급하게 움직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되지만, 천사장의 말이 떠올랐다.

“평온과 안식의 신. 10년. 세계가 사라진다라.”

분명 10년이라고 했다. 길지 않은 시간. 카르안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다.

“힘을 키우고, 세력을 모아서 정보를 얻어내야해.”

최우선 목표. 아케르나라가 사라진다는데 자신이 무사할리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에게 힘이 있다는 것. 카르안은 생각을 정리했다.

‘만약 연금술 길드에 들어간다면.’

나쁘지 않다. 그 곳에서 카르안의 능력이라면 얼마든지 올라갈 수 있다. 무엇보다 안정적. 월급도 꼬박꼬박 나오고 목숨이 위험할 일도 별로 없으리라.

하지만 좋지도 않다. 사회생활에서는 능력만 중요한 게 아니다. 특히나 이 세계에서는, 평민과 귀족. 신분차가 있다.

그가 살던 곳보다 소위 ‘빽’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는 것이다. 같은 연금술사라도 귀족과 평민의 대접은 차이가 엄청나다.

결국 압도적인 실력이 있더라도 정상에 오르기까지는 까마득한 세월이 걸리리라. 평민 출신인 그에게는 말이다. 카르안은 고개를 저었다.

‘그냥 프리랜서로 지내?’

그것도 나쁜 것은 없었다. 전국을 떠돌며 재료를 모은다. 약초가 잘 나는 곳을 찾아다닌다면 돈을 불리는 것도 쉽다. 적어도 연금술 길드보다는 더 큰 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위험했다. S급 강화포션을 마시긴 했지만, 결국 지금 그의 무력은 힘이 조금 더 강한 인간이다. 당장 B급 포션의 재료를 캘 때만 해도, 카라나리가 없었다면 죽은 목숨이었다.

사람들이 사는 도시 밖은 상상 이상으로 위험하다. 그를 위협하는 것은 고작 야생동물 따위가 아니다.

“흑룡회.”

마지막 선택지. 조직에서 일한다. 이것은 말 그대로 도박. 조직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가능하면 선택하고 싶지 않은 길.

하지만 좋은 점도 있으리라. 어둠 속에 있는 조직인 만큼 신분은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연금술사가 귀하다.

카르안의 몸값이 끝도 없이 뛰어 오르는 것. 만약 세력이 큰 조직이라면, 귀한 재료들을 잔득 얻을 수도 있다. 게다가 연금술길드에서는 벌 수 없는 돈을 만질 수 있다.

“고민되는군.”

“카르안씨?”

맑은 목소리가 그의 상념을 깼다. 한 여자가 반가운 얼굴로 그에게 오고 있다. 카르안도 잘 아는 얼굴이다. 그를 처음으로 치료해준 성녀였으니까.

“일터에서 안 보여서 무슨 일이 있나 했어요.”

“하하. 잠시 휴가 좀 냈습니다.”

“휴가라니, 엄청 부러워요. 푹 쉬시면서 맛있는 것도 많이 드실수 있겠네요. 헤헤.”

카르안이 웃으며 말하자, 그녀도 헤실헤실 웃었다. 순진한 얼굴. 그를 보자마자 치료해 준 것도 그렇고, 지나칠 정도로 사람이 좋다. 카르안은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아. 그런데 성녀님. 혹시 흑룡회라는 곳에 대해 아십니까?”

“네? 흑룡회?”

그 순간. 밝게 웃던 뮬리펜 성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리고 심각한 표정. 잠시 후 울먹거리는 표정으로 변했다.

“저기, 거기는 안되요오......”

“네?”

“설마 흑룡회 사람들이 거기에 들어오라고 한 건 아니죠? 아니면 설마 협박? 그러면 어떻게해야........”

“아니. 그런 건 아닌데요. 그리고 저한테 왜 물어봅니까.”

카르안이 말했다. 들어오라고 한 것은 사실이지만. 살짝 거짓말을 하였다. 그녀는 한숨을 폭 쉬었다.

“다행이에요. 흑룡회는 절대 발을 들이면 안되는 곳이니까.”

그렇게 말한 뮬리펜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흑룡회는 알펜 왕국 전체를 좀먹는 악의 조직이었다. 왕국 안에서 없는 곳이 없다고 한다.

마약 판매부터 용병업까지 못하는 게 없는 조직이었다. 실제로 ‘왕 다음가는 권력자는 흑룡회의 보스’ 라는 불경한 말까지 나돌 정도라고.

다른 조직들도 나름대로 쟁쟁하지만, 결국 1인자는 흑룡회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조직과 관련 없는 일반인들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점 정도였다. 흑룡회가 관리하는 구역에서 장사를 해도, 수익의 일정 부분만 때주면 깔끔하게 보호해준다.

무엇보다 그 보호비도 많은 편은 아니다. 몇몇 상인들은 무능한 백작가의 경비병보다 흑룡회를 더 신뢰할 정도였다.

“보통은 아니군.”

“그러니까 그놈들은 못된 짓을 밥 먹듯이....... 네?”

“아무것도 아닙니다.”

확실히 동네 양아치들과는 격이 다르다. 저런 조직은 엮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

반대로 한번 엮이면 그대로 끝. 그곳에서 돈을 빌리거나, 마약을 사거나 하면 그것으로 그 사람의 인생은 종착역으로 달려 가는 것이다.

조직은 깊은 늪처럼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뼛속까지 빨아먹을 것이다.

‘사람들은 어리석으니까.’

성녀는 이제 흑룡회의 험담만 하고 있다. 쓸모없는 이야기들.

카르안은 성녀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생각했다. 범죄조직이 돈을벌 때, 굳이 칼을 들이대며 돈을 빼앗지 않아도 된다.

필요한 것은 약간의 꿀. 꿀 덩이를 눈앞에서 살짝 흔들기만 해도, 사람은 너무나도 쉽게 따라온다. 그 꿀에 얼마나 많은 독이 녹아있는지 모르고.

죽을 줄 알면서 불덩이에 뛰어드는 불나방과 똑같다. 인류는 그 수준에서 더 진화하지 못했다.

그가 조직에 살면서 느낀 것들이다.

‘내가 은룡의 심장을 만든 것까지 하루 만에 찾아낸 것도 대단한 일이지.’

연금술 길드에도 흑룡회의 정보통이 숨어있다. 어제의 묵직한 돈 주머니도 그렇고. 조잡한 잡놈들은 아니다. 성녀의 말까지 들어본 결과, 알펜 왕국 최대의 조직이라는 말은 허언이 아니였다.

“성녀님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카르안이 말하자 뮬리펜도 말을 멈추었다. 의외로 엄청 수다스러운 여자. 성녀는 민망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제가 너무 길게 붙잡고 있었네요.”

“괜찮습니다. 지금은 급한 일도 없으니까.”

“에이. 휴가잖아요. 놀 시간도 없을 텐데요.”

그녀가 성녀복을 한번 털고 일어났다.

“힘들어도 그런 사람들의 유혹에 빠지면 안돼요. 전부 사탕발린 말 뿐이니까.”

“믿을 놈들이 아니긴 하죠.”

성녀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카르안의 대답이 마음에 든 것 같다.

“그나저나 성녀님은 뭘 하고 계셨습니까? 옷이 말이 아니군요.”

“아, 고아원에서 배식을 하다보니까....... 조금 묻었네요.”

처음에는 몰랐는데, 자세히 보니 성녀의 옷이 엉망이었다. 새하얀 의복은 여러 가지 소스가 튄 듯 얼룩져 있었다.

“앞치마를 둘렀는데, 부끄럽게도 아직 익숙하지가 않네요.”

“성녀님이 고아원에서 봉사라니.”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이지만, 실제로 보기 힘든 게 현실이다. 성녀라면 교단 내에서도 상당한 고위직.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는 봉사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신성력을 가다듬는데 집중하는 게 보통의 성녀다.

“애들이 얼마나 귀여운데요.”

“그래도 바쁘시지 않습니까.”

“물론 그렇긴 하지만요. 그래도 남들을 돕는 것은 즐겁잖아요.”

“즐겁다라.”

카르안이 중얼거렸다. 그에게는 별로 공감이 되지 않는다. 뮬리펜은 고개를 저었다.

“힘들어도 타인에게 도우며 살다보면, 언젠가는 그 사람이 당신을 도와줄 거예요. 정성들여 키운 꽃이 당신에게 향기를 선물하는 것처럼. 저는 그렇게 믿고 있어요.”

성녀는 웃으며 말했다. 마치 태양처럼. 밝은 미소였다. 대조적으로 그 말을 들은 카르안의 입가가 기묘하게 비틀렸다.

비웃음. 다행히 뮬리펜은 눈치 채지 못했다. 카르안은 슬쩍 손으로 입을 가렸다.

“멋진 말이군요.”

“헤헤, 고마워요. 그래도 말만 그럴싸 하게 하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뮬리펜은 열심히 무언가를 이야기했다. 카르안은 듣고 있지 않았다.

확실히 멋진 말이었다. 카르안이 생각하기에, 현실성 따위는 쥐뿔만큼도 없지만 말이다.

3.

연금술 길드냐 흑룡회냐.

뮬리펜과 헤어진 후, 카르안은 길을 걷고 있었다. 하지만 머릿속은 생각으로 가득했다.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그게 흑룡회라는 조직이었다. 거대해서 얻을 것은 많지만 반대로 내가 그 조직에 삼켜질 수도 있다.

그때 어딘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콰앙-!

카르안이 고개를 돌리자,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귀를 울렸다. 용병길드쪽. 카르안은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무슨 일이지?’

과연 길드에 가까워질수록 고함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주변을 지나던 주민들도 길드 쪽으로 몰려들었다. 카르안도 사람들 사이에 끼어 길드 안쪽을 바라보았다.

용병길드 안은 밖에서도 훤히 보였다. 문이 박살나 있었기 때문이다. 안에서는 갑옷을 입은 기사들과 용병들이 대치하고 있었다.

“네놈들. 내가 분명 카라나리 그년을 길드에서 제명시키라고 했을 텐데.”

“웃기지 마시오. 우리 용병길드가 당신 말을 따라야 할 이유는 없소.”

기사는 6명 정도. 기사라면 다들 마나를 쓸 줄 아는 검사들이다. 6명 이었지만 그 전투력은 믿을 수 없을 만큼 강하다.

반면 용병들도 40명이 넘었다. 하지만 먼저 공격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도 기사들의 전투력을 아는 것. 서로 대치 중 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카라나리가 외로이 서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아무 표정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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