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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션으로 무한성장 (8)화 (8/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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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케르나라

    어제 카르안을 상대하던 안내원, 루이는 일찍 출근했다. 이제 막 들어온 신입인 만큼, 선배들보다 부지런한 모습을 보여야 하기 때문. 그는 가방을 두고 접수대를 정리하려 했다.

    짤랑 짤랑-

    경쾌한 종소리가 연금술 길드 안을 울렸다. 문이 열리며 누군가 안으로 들어왔다. 은색의 고급스러워 보이는 코트를 입은 남자.

    루이는 그를 보자마자 급히 고개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루이가 크게 인사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자는 손만 한번 휘저을 뿐이다. 무례한 태도였으나 그는 어색하게 웃었다.

    남자는 의자에 아무렇게나 앉고 모자를 벗었다. 그러더니 대뜸 루이에게 말을 걸었다.

    “커피나 한잔 주게.”

    “네? 하지만.......”

    루이는 말을 흐렸다. 지금 길드 안에 안내원은 그 밖에 없다. 연금술 길드 규정상 문을 열면 무슨 일이 있어도 접수대에 한명은 자리를 지켜야 하는 법. 원칙적으로 그 철칙을 어겨서는 안 되었다.

    “어차피 이런 시간에 누가 오겠나? 귀찮게 하지 마. 숙취 때문에 속이 울렁거리니까.”

    짜증스러운 말투. 루이는 잠시 망설였지만 곧 발걸음을 옮겼다. 다른 사람에게 들키면 욕을 바가지로 먹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저 남자는 4급 연금술사 리젝트. 이 연금술 길드의 간부 중 한명이다. 그리고 성질이 더럽기로도 유명한 자였다.

    문제는 1급부터 10급까지 있는 연금술사중 4급이라는 것이다. 상당히 높은 위치. 적어도 일반 사무직인 그보다 한참 위의 존재였다. 리젝트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수는 없다.

    ‘지가 좀 타먹지.’

    손이 없나 발이 없나. 루이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커피를 내렸다. 곧 고소한 향이 길드 안에 잔득 퍼졌다.

    -짤랑

    그때 문이 벌컥 열렸다. 동시에 루이의 가슴도 벌컥 내려앉았다. 손님이라면 차라리 다행이다. 혹시 지금 들어온 사람이 상사라면 잔소리를 엄청나게 들을 것이다.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다행히도 들어온 사람은 상사가 아니었다. 낡은 옷차림의 남자. 카르안이다.

    “음?”

    카르안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분명 길드가 문을 열었는데, 접수대에 아무도 없다.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너무 일찍 왔나?”

    “아닙니다. 손님. 이쪽으로 오십시오.”

    루이가 급하게 안쪽으로 뛰어갔다.

    “약초를 팔러 오셨습니까?”

    “아. 어제 그분이군요.”

    카르안이 루이를 알아봤다. 워낙 친절한 사람이라 기억에 남은 것. 카르안이 가방을 뒤적였다.

    그때 리젝트는 카르안을 슬쩍 보았다.

    형편없이 낡은 옷. 볼품없는 외모. 한눈에 봐도 별 볼일 없는 채집꾼이다.

    "내 명령보다 거지 놈을 상대하는 게 더 중요한가."

    리젝트는 허공을 보며 한탄하듯 말했다. 그 말에 카르안이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봤다. 바보가 아닌 이상 ‘거지놈’이 카르안을 지칭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 새낀 뭐하는 새끼지?’

    “저분은 4급 연금술사님입니다. 그 죄송하지만.......”

    루이는 카르안의 귀에 대고 작게 말했다. 그제야 카르안은 상황을 이해했다.

    ‘그냥 잡놈이로군.’

    4급이라면 실력이 출중한 연금술사. 하지만 지금 카르안에 비하면 그저 애송이에 불과하다. 그도 그럴게 카르안은 이미 1급, 아니 그 이상의 연금술사다.

    기사단장과 이제 막 들어온 신입 기사만큼이나 실력차이가 나는 것이다.

    “괜찮습니다. 오늘은 팔게 있어서 왔어요.”

    카르안은 슬쩍 웃으며 넘어갔다. 그는 무시당했다고 주먹부터 나가는 다혈질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런 곳에서 멱살 잡아가며 싸우기도 귀찮은 일. 카르안은 그냥 저 남자를 무시하기로 마음먹었다.

    “죄송합니다. 리젝트님. 일이 끝나면 바로 가겠습니다.”

    “바빠 보이는데. 빨리 끝내죠.”

    살짝 비꼬는 말투. 루이가 리젝트의 눈치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예. 죄송합니다. 그런데 약초는 가방에 있으신가요?”

    “가방에 있기는 한데, 약초는 아니지만.”

    우르르르

    테이블 위로 뭔가로 가득 찬 병들이 쏟아졌다. 예상외의 물건. 루이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병을 살펴보았다. 그의 입이 떡 벌어졌다.

    “이, 이건 달의 눈물?”

    2.

    “뭐?”

    뚱하게 앉아있던 남자가 시선을 돌렸다. 달의 눈물. B급 포션으로 효능은 마나의 회복. 당연히 귀한 포션이다. 여러 가지 재료와 복잡한 술식이 필요한 물건.

    게다가 마나 회복이라는 특성상 마법사들에게 주문이 끊임없이 들어오는 물건이다.

    “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채집꾼 놈이 뭔 포션을 들고있어?”

    그가 벌떡 일어나 둘에게 다가왔다. 그의 눈에도 포션이 들어왔다. 리젝트의 이마에 주름이 생겼다.

    물론 저 물건이 위조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짜 물약을 파는 사기꾼들은 절대 연금술 길드에서 사기를 치지 않는다.

    어수룩한 용병이나 모험가를 상대하지. 상식적으로 은행에서 위조지폐를 쓰는 위조범들은 없는 것과 비슷했다.

    “저,저,저, 이건 어디서 구하셨습니까?”

    “그냥 집에서 만들었는데, 이거 가격 이만큼 맞죠?”

    카르안이 포션의 가격이 적힌 종이를 꺼내들었다. 어제 이곳에서 받아간 것. 꼬깃꼬깃 적힌 종이에는 포션의 가격이 정확히 적혀 있었다.

    “네. 네. 맞습니다. 하지만 확인을 해 봐야........”

    “내가 직접 확인하지.”

    리젝트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카르안을 노려보았다. 그는 숙취로 땡기는 머리를 붙잡고 생각했다.

    ‘포션은 굴러다니는 물건이 아니야. 어디서 주워올 수 없는 물건이다.’

    적어도 저만한 포션을 팔러 왔다는 것은, 그가 연금술사라는 증거였다. 변을 당한 마법사나 모험가 품에서 슬쩍 할 수도 있지만. 저만한 양은 아니다.

    마나 포션을 저만큼 구입해 둔 곳은 마법사 길드, 아니면 연금술 길드, 그것도 아니라면 이 백작령의 주인 알페라츠 백작가 뿐이다.

    그리고 그 세 곳은 이 영지 안에서 가장 철통같은 보안을 지키고 있는 곳. 거기서 마나 포션을 훔쳐오는 놈은 세상에 둘도 없는 대도(大盜)일 것이다.

    아니, 뛰어난 도둑놈이라도 금 같은 것을 훔쳐오지 거기까지 가서 마나포션을 훔칠 미친놈은 없다.

    무엇보다 방금 자기입으로 집에서 만든, 이라고 했다. 허언일 수도 있지만 확인을 해봐야 했다.

    리젝트은 병 뚜껑을 열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시원한 박하향. 확실히 달의 눈물의 특유의 향이다.

    마나포션 특유의 마나도 느껴진다. 가끔 사기꾼들이 가짜 물약을 팔기도 했지만, 적어도 이것은 아니었다. 맛이나 향은 위조할 수 있어도, 안에 흐르는 마나까지 가짜로 만들 수는 없다.

    “흠....... 달의 눈물이 맞군.”

    “그럼 빨리 계산해 주시죠.”

    카르안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저놈이 밑도 끝도 없이 성질을 건드리고 있다. 자기가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는 것 마냥 거들먹거리고 있었다. 카르안은 그게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예. 바로 금화로 계산......”

    “잠깐.”

    리젝트가 말했다. 루이의 눈썹이 구겨졌다. 하지만 움직임을 멈출 수밖에 없다. 카르안이 입을 열었다.

    “또 뭐가 문제입니까.”

    “이 포션은 확실히 달의 눈물이 맞다. 그것은 인정하지. 근데 이것을 자네가 어떻게 구했나?”

    “아, 만들었다고요.”

    “그것을 어떻게 믿지?”

    ‘이 새낀 정신병자인가?’

    카르안은 입 밖으로 본심이 튀어나올 뻔했다. 모르는 사이에 원수라도 진 건가. 그는 화를 꾸욱 눌러담았다. 대체 저 놈이 왜 저러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만약 다른 곳에서 훔쳐온 것이나, 혹은 상단을 습겨해서 얻어온 것일수도 있지. 자네 얼굴이 꼭 도적새끼 같은데. 훔친 것을 되팔면 길드의 신용에 금이간다.”

    “잡소리는 됐고, 그럼 어떻게 하면 믿어줄 거요?”

    카르안의 말이 짧아졌다. 더 이상 예의를 갖추기도 귀찮다는 것. 리젝트의 이마에 깊게 주름이 생겼다.

    “긴말할 필요가 있나. 자네도 연금술사라면 국가에서 내준 면허가 있겠지. 그것을 보여주게.”

    연금술사는 국가의 인재. 일정한 수련과 자격을 채우면 면허를 발급해준다. 물론 초보자에게는 어림도 없다. 어느정도 실력이 있는 연금술사에게 해당되는 것.

    하지만 B급 포션을 만들 정도라면 면허를 딸 수준으로는 충분했다.

    “흐흠. 그게 지금은 사정이 있어서 없지만......”

    이번에는 카르안이 말끝을 흐렸다. 실력이 일급이든 특급이든 그는 일용직 노동자. 당연히 면허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스승 밑에서 배우다가 막 실력을 인정받아 나온 거라서. 아직 면허는 없소.”

    “그래? 그렇다면.”

    리젝트의 눈에서 더욱 의심이 짙어졌다.

    “직접 보여주면 되겠구만.”

    “뭘?”

    “포션 만드는 것. 그건 할 수 있을거 아니야?”

    3.

    ‘젠장 웬 미친놈한테 걸려가지고.’

    카르안은 한숨을 푹 쉬었다. 지금 시간 빼앗기는 것도 아깝다. 카라나리가 기다리고 있다. 마을 정문에 서 있으리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가 선불로 준 돈은 20실버뿐. 오늘 것은 주지 않았다. 너무 늦는다면 이상한 오해를 살 수도 있다. 물론 그날 팁으로 20실버를 주기는 했지만, 그것은 별개의 이야기였다.

    “헛소리 하지 마시오. 이럴 시간도 아까우니.”

    “만약 보여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포션을 사지 않겠네.”

    “네에?”

    이번에 놀란 것은 로이였다. 뜬금없이 포션을 사지 않겠다니. 마나 포션은 원래 수요가 많은 물건. 되팔기만 해도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을 제 발로 걷어차겠다니?

    “하지만 리젝트님.......”

    “돈 몇 푼보다 길드의 신뢰가 중요하지. 안 그래?”

    순 어거지였다. 하지만 개소리도 힘있는 놈이 하면 더 이상 개소리가 아니게된다. 루이는 잠자코 입을 닫았다.

    “그런데 여기서 어쩌란 것이오? 맨땅에서 포션을 만들라고?”

    “당연히 그건 아니지. 따라오게.”

    리젝트는 앞장서서 걸어갔다. 카르안은 루이를 쳐다보았다. 루이는 어깨를 으쓱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길드 2층으로 올라갔다. 계단에는 ‘관계자 외 출입금지’ 라고 작게 적혀있었다. 길드의 연금술사만 사용할 수 있는 공간. 리젝트는 그 문구를 무시하고 카르안에게 손짓했다.

    둘이 2층에 올라가자 문 하나가 보였다. 그는 거침없이 문을 열었다.

    넓은 공간. 연금술사들의 작업실이다. 그 안에는 몇몇 연금술사들이 자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들도 이제 막 출근한 것. 연금술사들의 시선이 리젝트와 그 뒤의 이방인에게 쏠렸다.

    “리젝트님. 안녕하십니까!”

    “그래.”

    “리젝트님. 죄송하지만 그 뒤에 분은.......”

    그의 후배로 보이는 연금술사가 조심스래 말했다. 이 곳은 연금술사나 길드의 고위 간부만 올 수 있다. 외부인을 데려오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 그런데 웬 거지꼴을 한 남자가 들어온 것이다.

    “이놈이 자기가 연금술사라고 우겨서 말이지. B급 포션을 지 혼자 만들었다고 하네.”

    “그게 정말입니까?”

    그러자 한 명이 끼어들었다. 그는 과장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럴 리가 없잖습니까. 보나마나 사기꾼일겁니다. 연금술사가 저런 꼴로 다니는 게 말이 됩니까?"

    “내 말이 그 말일세.”

    리젝트가 웃으며 말했다. 그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그래. 그러면 안돼. 절대로.’

    리젝트. 그는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연금술사다. 주변에서 모두 그의 재능을 부러워했고, 그도 자신이 둘도 없는 천재라고 굳게 믿어왔다. 실제로 그의 연금술에 대한 재능은 뛰어난 수준이었다.

    원래는 이렇게 뒤틀린 성격도 아니였다. 자신감 넘치고 당당한 성격. 그가 왕립 연금술 아카데미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연금술을 배우면 배울수록, 그보다 뛰어난 자들이 수도 없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우물 안의 개구리. 그의 머릿속을 채운 한 문장이다. 그는 점점 자신감을 잃고 좌절에 빠졌다.

    방황을 더욱 커져만 갔다. 그는 술 뿐 아니라 불법적인 약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다. 연금술사이기에, 약을 구하는 것은 너무나도 쉬웠다.

    결국 그의 재능으로는 4급 까지가 한계였다. 청춘을 전부 태우고 남은 것은 검고 진득한 열등감뿐. 리젝트는 결국 가장 멍청한 방법으로 열등감을 해소했다.

    우울해질 때마다 아랫사람을 욕하고 주먹을 휘둘렀다.

    아무것도 못하고 떠는 부하. 사람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전능감. 그 순간만큼은 자신이 재능 넘치던 과거로 돌아간 것 같았다.

    잠깐의 착각일 뿐이었지만. 그것은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 성격 덕분에 수도에서 알페라츠 백작령으로 좌천되었다. 하지만 그의 성격을 고쳐지질 않았다.

    “나 약 올리려고 이곳까지 온 건가?”

    카르안이 짜증난다는 얼굴로 말했다. 리젝트는 손을 저으며 생각했다. 저런 놈이 B급 포션을 만들리 없다.

    그에게도 B급 포션을 만드는 일은 고된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웬 거지같은 놈이 B급 포션을 한바가지 만들었다고 하다니.

    리젝트의 짜증이 치밀어 오른 것. 결국 그의 열등감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 그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물론 아니지. 연금술 실력을 보여주면 그만일세. 설마 이것마저 못한다고 하지는 않겠지?”

    리젝트가 도발하듯 말했다. 카르안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하는 짓도 유치하기 짝이 없군. 그래. 내가 뭘 하면 되나?”

    “그런데 이 자식. 말투가 그게 뭐야?”

    “되었네. 못 배운놈이 그렇지.”

    리젝트가 부하를 말리며 말했다. 말이 말리는 거지, 사실상 더한 욕과 다를 게 없다. 노골적인 멸시. 카르안이 이를 꽉 물었다.

    “여기 재료는 충분하지. 이것으로 만드라고라의 피를 만들어보게. 보다 쉬운 일이니.”

    만드리고라의 피. C급 포션. 효과는 상처 치료. 확실히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무슨 속셈이지?’

    정말 카르안의 실력을 보러온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단순하게 생각하기에는, 저 놈의 성격이 너무 더러웠다.

    ‘천박한 놈. 만들지 못한다면 연금술사를 능멸한 죄로, 감옥에 처넣어주마.’

    리젝트가 씨익 웃었다. 어두운 미소였다.

    ‘그리고 설령 진짜 연금술사라도....... 쉽게는 안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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