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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르나라
“최강민씨.”
작고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려온다. 듣기 좋은 목소리. 흐릿했던 의식이 느릿하게 돌아오고 있었다.
“빨리 일어나시죠.”
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약간의 짜증이 묻어있다. 강민은 정신을 차리려했다. 하지만 아직 몽롱하다. 약에 잔득 취한 듯한 느낌.
“으으윽.”
그는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났다. 허공에 몸이 둥둥 떠 있는 것 같다. 강민은 비틀거리며 간신히 중심을 잡았다.
“여긴......”
강민은 고개를 들었다. 주변은 온통 백색. 그는 눈을 찌푸렸다. 너무 밝았다. 그는 눈을 가느다랗게 뜨며 한 곳을 쳐다봤다. 목소리가 들리는 쪽. 그곳에는 한 사람이 서 있었다.
“너는....... 누구냐?”
새하얀 옷을 입은 여자였다. 긴 은발을 가진, 조각처럼 아름다운 여성이다. 강민은 자기가 죽은 것도 잊고 멍하니 그녀를 쳐다봤다. 단순히 아름다워서가 아니었다.
그녀의 등에는 커다란 날개가 있었다. 등 쪽에서 빛이 흘러나와 날개의 형상을 이루고 있다. 마치 동화 속에 나오던 천사와 같은 모습.
하지만 그 여자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마치 벌레를 쳐다보는 듯한 눈. 그녀는 강민을 혐오스러운 해충처럼 바라보았다.
“저는 균형과 조율의 여신. 알드하페라 님의 천사장입니다.”
그녀는 사무적으로 말했다. 강민은 멍하니 서 있었다. 천사장이라니.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린가.
“2017년 7월 8일. 당신은 경찰의 총격에 사망했습니다. 항 정신성 약품을 불법으로 거래하던 도중 말이죠. 이제 조금 기억이 나십니까?”
“아아.”
강민은 한손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말했다. 다행히 두통이 사라지고 있다. 그는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 할 수 있었다.
‘몰래카메라....... 같은 것은 아니겠지.’
연예인도 아닌데. 현역 약팔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예능 따위는 세상이 끝날 때까지 없을 것이다. 그것도 경찰이랑 협력까지 해가면서 말이지.
강민은 자신이 죽었던 때가 떠올랐다. 아직도 가슴 한 가운데가 저릿했다. 그는 힘겹게 웃어보이며 말했다.
“나는 죽었군.”
“이해가 빠르셔서 다행입니다.”
“그리고 여기는 심판의 어쩌구 그런 건가? 천국 갈지 지옥 갈지 정하는.”
“아주 틀린 말은 아닙니다.”
여자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는 그제야 왜 저 여자가 자신을 쓰레기처럼 바라보는지 알 수 있었다.
‘좋은데 가긴 글렀군.’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해봐도, 성실한 삶을 살았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착한 마약장수 따위가 있다면 더 신기하겠지만.
그는 한숨을 푹 쉬었다. 저 여자가 정말 천사같은 것이라면, 그의 과거도 전부 확인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것이리라.
“당신은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나락으로 빠뜨렸습니다. 그에 합당한 죗값을 치르는 것. 당연한 일이겠죠.”
강민은 담담한 표정이다. 어차피 그가 지은 죄다. 부인할 것도 없다. 처음 약을 팔던 순간부터, 지옥행 티켓은 일등으로 예약해 놨다고 생각했으니.
“그러면 나는 어떻게 되나.”
“원래 ‘정화의 방’에 가서 6년간 속죄한 후 다시 태어납니다........ 다만.”
천사장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약간의 동정심이 묻어있는 얼굴.
“당신의 악행. 그 행위에는 어느 정도 원인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결코 용서받을 수는 없지만,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형을 조금 줄였습니다.”
“원인이라. 원인.”
비릿한 웃음. 강민의 것이었다. 형이 줄었다면 기뻐해야 하겠지만, 그의 표정은 무섭게 일그러졌다. 무엇인가에 분노한 듯. 천사장은 그런 그를 무덤덤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면 뭐, 6년 살거 한 반정도 줄여주나?”
“속죄의 방에는 가지 않습니다. 단지 인간으로 다시 태어날 뿐이죠.”
“뭐?”
이해할 수 없는 말. 형을 줄이는 것과 형을 없애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강민은 짜증르럽게 머리를 긁었다. 지금 이 여자가 말장난을 하는 것인가.
당연히 장난 따위가 아니었다.
“다시 태어날 삶. 당신은 28살 남자의 몸으로 들어갑니다. 당신을 지켜줄 부모도 없고, 지독한 불치병에 걸렸습니다. 수중에는 푼돈밖에 없고, 외모 또한 추하기 그지없습니다.”
천사는 무표정하게 말했다.
“그 몸에 당신의 영혼을 정화 없이 넣을 것입니다. 당신의 기억은 그대로겠지요. 하지만 당신이 살던 세계도 아닙니다. 지금까지 살던 세계의 지식은....... 별 쓸모가 없습니다.”
강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최악의 삶. 게다가 뜬금없이 새로운 세계라니. 대한민국, 아니 지구가 아니라는 말인가.
“원래라면 처벌 기간을 줄여 정화의 방에 들어갔을 것입니다. 다만 저희 쪽에서도 사고가 있어서 이렇게 된 것입니다. 덕분에 조금 트러블이 일어났지만. 어차피 곧 사라질 세계니까 상관없겠지요.”
사고. 굉장히 불길한 단어다. 게다가 사라질 세계? 이건 또 무슨 말인가. 강민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잠깐. 사라질 세계라니.”
“........안식과 평온의신. 그가 당신이 갈 세계를 집어삼킬 것입니다. 남은 시간은 10년 정도. 특별히 알려주는 것이니 잘 기억해 두세요.”
“평온, 뭐?”
강민이 말을 더듬거렸다. 사고가 따라갈 수 없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거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정화의 방인지 뭔지 하는 곳에 들어가겠다.”
정화의 방인지 뭔지는 몰라도, 몇 년 거기서 살다가 깔끔하게 새 삶을 사는게 성격에 맞았다. 길어봐야 6년 아닌가. 하지만 천사장은 고개를 저었다.
“당신이 결정하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제가 분명 행운이라고 했을 텐데요. 하루면 미치기에 충분한 고통이 몇 년간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것보다는 비참한 삶이라도 사시는 게 좋을 겁니다.”
“젠장.”
이를 꽉 물었다. 생각보다 빡센 곳이었군. 그때 천사장이 손뼉을 한번 쳤다. 짝. 그 소리와 함께 그의 발밑이 푸른빛에 감싸였다.
“설명은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요. 그러면 좋은 삶 되시길. 그러기는 힘들겠지만.”
“잠깐!”
강민이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하지만 그녀는 기다려 주지 않았다. 은은하게 빛나던 푸른빛은 순식간에 그를 집어삼켰다.
다음 순간. 그는 온 몸이 분해되는듯한 기묘한 느낌과 함께 의식을 잃었다.
2.
“크으으윽!”
강민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가 처음 느낀 것은 지독한 추위. 그는 몸을 덜덜 떨며 눈을 떴다. 지독한 몸살에 걸린 듯 몸이 으슬으슬했다.
“다시 태어나자마자 얼어서 죽겠군.”
강민은 투덜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행히 주변은 별로 춥지 않았다. 오히려 봄처럼 포근하다. 그는 스트레칭 하듯 몸을 움직였다.
곧 몸에 피가 돌고 온기가 돌아왔다.
‘몸이 조금 삐걱 거리는데.’
아마 한참을 누워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시체처럼 있다 보니 몸이 열을 다 잃은 것. 그게 추위의 원인이었다.
그는 습관적으로 주변부터 살펴보았다.
‘여기는 어디지.’
당연하지만 처음 보는 곳이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그리고 진득한 풀내음. 과거 등산 중에 맡았던 냄새와 비슷했다. 주변에도 울창한 숲뿐이었다.
“산 한중간에 떨어진 것 같은데.”
그는 한숨을 쉬며 주변부터 둘러보았다. 일단 산에서 내려가야 한다. 이대로는 굶어죽든, 산짐승의 한 끼 식사가 되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 어느 쪽도 강민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산에서 길을 잃으면 계곡부터 찾으라고 했던가.”
강민은 과거 읽었던 서바이벌 만화책을 떠올렸다. 그는 두리번거리며 물줄기를 찾았다. 그때 무언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거대한 나무.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무야 많이 봐 왔다. 하지만 저 정도로 거대한 나무는 처음이다. 7층 아니, 8층 건물 높이는 될듯하다. 그리고 두께. 그 높이를 지탱하는 나무는 어마어마하게 굵었다.
그런 나무가 앞에 서 있었다. 다른 세계라고 했지. 그런 곳에서는 이런 나무도 흔한 것일까.
하지만 지금 나무가 중요한가. 신기하긴 했지만, 여기는 관광지가 아니다. 당장 살아나는게 문제. 그는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이건 또 뭐야?’
발걸음을 옮긴 순간, 무언가 품속에서 뚝 떨어졌다. 낡은 종이. 그가 쓰러져 있을 때부터 품고 있었던것 같다. 강민은 그 종이를 살펴보았다.
종이에는 지도의 일부분을 잘라낸듯한 것과, 거대한 나무의 그림이 있었다. 쓸모없는 것이군. 강민은 종이를 구겨 버리려 했다.
“잠깐.”
지도와 나무 모양의 그림. 그는 눈앞의 나무와 그림을 번갈아 봤다.
상당히 비슷했다. 어쩌면 이 그림은 이곳을 표시한 게 아닐까.
‘대체 왜 이 종이가 내 품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밑져야 본전이다. 그는 종이에 그려진 나무쪽으로 걸어갔다. 엄청난 크기. 나무는 단순히 크기만으로 무거운 위압감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한 바퀴 돌아볼까.’
나무가 너무 크다보니 살펴보는 것도 일이다. 강민은 머리를 긁적이며 나무 밑을 둘러보았다.
‘실은 이 쪽지가 보물상자가 표시된 지도....... 까지는 아니더라도 돈 되는 게 있다면 좋을 텐데.’
강민이 멈춰섰다. 그의 시선이 한 곳에 고정되었다.
“이건 뭐지?”
강민이 눈을 찌푸렸다. 반쯤 둘러봤을까. 나무 한중간에 사람 머리만한 구멍이 있었다. 꽤나 깊은지 안쪽은 보이지 않았다.
나무에 구멍이야 흔한 것이다. 하지만 이정도로 크고 깊은 구멍은 흔하지 않았다.
지나칠 정도로 인공적인 구멍.
강민은 그 안에 손을 넣었다.
하지만 안에서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별로 기대도 하지 않았으니 실망감도 없었다. 그는 손을 구멍에서 빼내려 했다.
꽈아악!
“윽?!”
그 순간 무언가 강민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대체 뭐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손을 빼야 한다! 본능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강민은 힘껏 팔을 당겼다.
“이, 이거 왜이래?”
온 힘을 다 쏟았지만 팔이 빠지지 않는다. 강민의 등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그의 손목을 쇳덩이처럼 단단한 무언가가 붙잡고 있다. 안쪽이 전혀 보이지 않으니 공포감이 배로 커졌다.
^&@**&^%!*@%?
그때 알수 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귀가 아니다. 마치 누군가 머릿속에 들어와서 소리치는 느낌. 머리가 웅웅 울렸다.
&*^@&^&*....... *@&^*&$!
머리가 쪼개질 듯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알 수 없는 말은 계속되었다.
외국어인가? 아니다. 사실 이게 언어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저 낮은 울림소기 같기도 하고, 고음의 노이즈 같기도 하다.
소리가 점점 커져갔다. 나중에는 그 소리가 미친 듯이 커졌다. 그와 비례해서 고통도 커져만 갔다.
“크아아아아악!”
입에서 침이 흐른다. 엄청난 격통. 마취 없이 수술을 받으면 이런 기분일까?
그리고.
‘이게 무슨!’
엄청난 양의 정보가 머릿속에 쏟아져왔다. 난생 처음 보는 수식과 도형. 지식과 언어.
지식이다. 그것도 상상할수 없는 분량의. 뇌수가 파도를 치는 듯한 착각까지 느껴졌다. 강민은 무릎을 꿇었다. 뇌가 타버릴 것 같다!
그는 덜덜 떨며 머리를 움켜쥐었다. 고통은 짧지 않았다. 강민은 주먹을 쥐고 참을 수 밖에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통증이 멈추었다. 과열된 기계에서 콘센트를 뽑은 것처럼. 그를 고문하던 통증은 어느 순간 뚝 끊어져 버렸다.
동시에 그를 붙잡던 무언가가 풀렸다. 강민은 구멍에서 팔을 뽑고 바닥을 굴렀다. 몸에 진이 다 빠졌다. 그는 한참동안 누워 있었다.
정신을 차린 후, 강민은 숨을 몰아쉬며 팔부터 살폈다.
“이게 대체.......”
그의 손에는 무언가 쥐여져 있었다. 투명한 유리병. 안에는 붉은색을 액체로 가득 차 있었다. 격통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손을 쥐었고, 그때 손에 집혔던 것.
하지만 그는 정체불명의 액체보다 신경 쓰이는 게 있었다.
머릿속에 새겨진 지식들. 아직 머릿속이 뿌연 안개처럼 흐릿했다. 하지만 분명 무언가 뇌 속에 각인되었다.
게다가 꽉 붙잡혔던 손목. 그곳에 검은색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마치 문신 같은. 처음 보는 문양이었다.
자세히 보니 나무 같기도 하고, 난생 처음 보는 식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민은 그곳을 만져 보았다. 딱히 쓰라린 다던가 하는 통증은 없었다. 잡혔던 팔을 움직여 봐도 아무 이상이 없었다.
“하아. 대체 뭔 짓인지.”
이곳이 자신이 살던 곳이 아니라는 것이 다시 한 번 느껴졌다. 나무에 손 한번 뻗었다가 이꼴이다. 한번 죽을 뻔 하다 보니 더 이상 이 나무를 살펴볼 마음이 들지 않았다.
@%&!$&^&^@!
그때 또 다시 들리는 외계어. 강민은 움찔했다. 다행히 방금 전처럼 머리가 울리지는 않는다. 대신 손목의 문신이 약간 욱신거렸다. 멍든 자국을 살짝 건드린 느낌. 크게 아프지는 않았다.
그는 반사적으로 문신쪽을 손으로 문질렀다. 다친곳을 문지르는 것처럼. 그러자 그의 눈앞에 무슨 글자 같은 것이 떠올랐다.
근력: 11
체력: 7
물리저항력: 11
마법저항력: 2
마나: 1
‘이건 또 뭐야?’
강민이 중얼거렸다. 마치 RPG 게임의 스테이터스 창 같다. 그는 글자가 보이는 곳으로 손을 뻗어보았다. 하지만 마치 글자는 만져지지도 사라지지도 않았다. SF영화의 홀로그램처럼.
하지만 그가 다시 손목의 문신을 만지자, 허공에 있던 글자가 사라졌다.
“진짜 지랄맞군.”
허무한 중얼거림.뜬금없이 떠오른 스테이더스 창. 뭘궁금증이 머리를 채웠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쿠르릉!
거대한 나무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오래된 나무가 꺾이거나 쓰러지는 것과 달랐다. 말 그대로 건물이 무너지듯 나무가 힘을 잃고 나무 토막으로 분해되기 시작했다.
어지간한 크기면 몰라도, 빌딩만한 나무다! 벽돌만한 나무토막에 머리를 잘못 맞으면, 그대로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
“우와아앗!”
강민은 정신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를 향해 거대한 나무토막들이 솓아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