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322화 (322/323)

322화 종장 (3)

“흐…….”

박기태라고 해서 군부대가 모여드는 걸 모르진 않았다.

가뜩이나 원래 인간들보다 더 감각이 예민하지 않던가.

수가 이전에 비하면 크게 줄었다고 해도, 다 모으면 여전히 수백에 달하는 병력이었다.

심지어 총력전에 가까운 승부다 보니 아껴 두었던 기름을 쏟아붓고 있었다.

거대한 차량들이 기동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어쩐다…….’

상식적으로 도망가는 게 옳았다.

하지만…….

대체 어디로 간단 말인가.

대통령을 잡았을 땐, 희열에 가득했더랬다.

하지만 원래 목적은 이루자마자 감상은 흐릿해지는 법이지 않던가.

오히려 대통령을 바라보느라 집중되었던 이목이 주변으로 흩어지면서 비로소 냉정하게 지금 상황을 돌아볼 수 있었다.

“크흐흐…….”

“으…….”

그 굳건해 보이던 거대 개체들 그리고 초거대 개체들이 골골대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원래 인간들보다 라드들의 칼로리 소모가 월등하지 않던가?

저것들은 그중에서도 거대한 놈들이다 보니 훨씬 더 소모가 심할 터였다.

-네놈들은……. 결코 우월한 존재가 아니야. 진화에 역행한 실패작일 뿐이지.

김조은 박사가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안에 갇혀 있을 때야 뭐 노상 듣던 말이니 특별히 화가 나지도 않았다.

그냥 또 떠드는구나 했을 뿐이었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못 하는 상황에서 대체 뭘 하겠나.

게다가 그땐 내심 속으론 이 새끼가 질투심에 하는 말이란 생각도 있었다.

어떻게 봐도 물리적으로…….

그러니까 일대일로 붙게 되면 찢어 버릴 수 있는 놈이었으니까.

‘정말 실패작인가, 우리는.’

허나 막상 밖에 나와 보니…….

자유로워지고 보니 오히려 그때 들었던 말이 한층 더 사무치기 시작했다.

인간들의 군대가 딱 이러할 거 같았다.

생산은 못 하고 끊임없이 소비만 하는 그런 존재…….

그중에서도 지나치게 많은 소비를 해야만 하는 존재가 바로 이들 라드였다.

그래도 사회가 얼추 돌아가고 있을 땐…….

인간들은 이미 망했다고 했지만, 라드의 입장에서는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나름의 사회가 돌아가고 있다고 여길 만했더랬다.

문명이 남겨 둔 식량들도 많았고, 무엇보다 예비 라드들도 많았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처음처럼 식량 경쟁이 계속되었던 건 아니었다.

식량이란 그냥 마트에 놓여 있으면 그대로 썩어 버리기 마련이니까.

차라리 반세기 전의 세상이었다면 사정이 훨씬 나았을 터였다.

그땐 통조림이 꽤나 잘 팔리던 시절이었으니까.

하지만 냉장과 유통망의 발달로 인해 신선 식품이 대세를 차지하게 된 지 오래 아닌가.

그렇다 보니 오히려 전기를 비롯한 여러 인프라가 끊기자마자 식량 자체도 삭제되기 시작했다.

‘나는…… 이놈들을 과연 책임질 수 있나.’

박기태는 바로 어제 사망해 버린 초거대 개체 앞에 서 있었다.

딱히 별말을 하지 않았더니만, 이미 뼈밖에 남지 않은 상태가 되어 있었다.

다들 굶주리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동료가 죽자마자 바로 먹어 버려서 그랬다.

지능이 있는 놈들까지도 그랬다.

뭐……. 인간도 인간을 먹어 치우던 역사가 있지 않던가.

그의 조국, 중국에서야 그리 멀지 않았던 역사에서조차 그런 일이 있었더랬다.

손가락 하나를 움직여 참새를 잡고 역사에 길이 남을 만큼의 기근을 겪었다는 얘기를 간신히 살아남았던 할아버지에게 전해 들었던 일이 기억에 생생했다.

그때는 그런 멍청한 사람이 다 있나 싶었는데, 막상 누군가를 이끌어야 하는 입장이 되자 덜컥 두려움이 앞서기 시작했다.

“저, 대장?”

그때 김민수가 다가왔다.

며칠 상간에 확연히 수척해진 것이 보일 만큼, 그 또한 굶주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물을 제대로 먹을 수 없는 것이 치명적이었다.

대통령을 잡은 지도 벌써 사흘째…….

그사이 교전은 딱 한 번 있었다.

딱히 그 교전에서 사망하거나 다친 라드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재빠르게 몸을 숨겨서 그랬다.

하지만 이렇게 도망만 가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음. 무슨 일이지?”

“뭐라도 수를 내야 될 거 같습니다. 초거대 개체들이 너무 굶주렸습니다. 당장이라도…….”

“지들끼리 쳐죽일 거 같다, 이거지?”

“네. 저도 이렇게 배가 고픈데……. 저놈들은 어떻겠습니까.”

“이놈 이거 하나를 다 먹었는데 그래도 부족하다, 이건가.”

“입이 너무 많습니다. 그나마 몇 놈이 다 먹었고, 나머지는 구경도 못 했을 겁니다.”

사태 이후 라드는 늘 쫓는 입장이었다.

그런 경우 라드는 정말이지 무서운 존재였다.

냄새만으로 숨어 있는 상대를 추적할 수 있고, 가까운 거리에서 대면할 경우엔 무엇으로 무장을 하고 있어도 대적할 수 없었으니.

허나 쫓기는 입장이 되자 약점들이 속속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우선 흔적을 도무지 숨길 수가 없었다.

고지능체들조차 쿵쿵 걷는 걸 피할 길이 없는데 저지능체들까지 끼여 있는 일행은 오죽하겠나.

“총알받이들……. 모두 몇이나 있지?”

“얼마 안 남았습니다.”

“어쩔 수 없지. 다 죽여.”

“그…… 분배는……?”

“알아서 하게.”

“네, 대장.”

그냥 걷는 것만으로도 흔적이 남는 놈들인데 싸기는 또 얼마나 싸는지……

당연한 일이긴 했다.

어마어마하게 먹지 않나.

물론 지금처럼 먹지 못하는 경우엔 그렇게 싸 재끼고 있지는 않지만…….

원래도 장거리 이동에는 불리한 놈들이지 않나.

애초에 걷는 게 일인 특수 부대나 달리기 선수들의 체형을 떠올려 보면 쉬울 터였다.

그런 놈들이 제대로 먹지도 못한 채 이동하고 있으니 속도마저 축축 처지고 있었다.

‘지금 당장에라도 급습당할 수 있어.’

기척?

아니, 냄새가 난다.

당장 힘들기로만 따지면 박기태 또한 누구 못지않게 힘든 상황이었다.

그가 거대 개체급의 몸집을 지니게 된 것도 벌써 1년이 훌쩍 넘어가고 있지 않은가.

그사이 제대로 지낸 시절보다 그렇지 못했던 시절이 훨씬 길었던 탓일까?

아니면 그냥 그 시간 동안 노쇠한 탓일까.

“하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각만은 여전히 날카롭다 보니, 사방에 그득한 인간들을 눈치챌 수 있었다.

아마…….

다른 라드들이라고 해서 다르진 않을 터였다.

이미 몇몇 참을성 부족한 놈들은 주변을 향해 울부짖고 있지 않나.

이전과는 달리 딱히 위협적이게 느껴지진 않았다.

오히려 상처 입은 개가 낑낑거리는 느낌이었다.

느낌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그렇긴 했다.

오랜 굶주림과 혹독한 이동 그리고 목마름 등이 일행은 비참한 지경으로 내몰고 있었다.

“시발…….”

박기태는 저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아버지가 이따금씩 하던 욕이었다.

조선족이라는 뿌리를 버리기 위해 한국어도 잊으려 했건만, 결국, 급한 상황에서 튀어나오는 건 한국어였다.

중국도 한국도 자신을 이용해 먹고 버리긴 매한가지 아니었나?

“대장은……?”

“일단 둬.”

“우린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X 된 거지, 뭘 어떻게 돼. 도망갈 수 있을 거 같냐? 차로 오는데?”

“이럴 바엔 차라리…….”

“들이받자고? 본능이 그걸 거부하는데 어째. 아니면 저 양반처럼 저 새끼나 가지고 놀든지.”

구우준과 김민수는 멀찍이 선 채 그들의 대장, 1호 박기태를 바라보다가 이내 김선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군인이어서 그럴까.

이미 상황이 얼마나 절망적인지 아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더 대통령 괴롭히기에 여념이 없었다.

“제…… 제발 그만…….”

“뭘 그만하라는거야.”

다 늙은 대통령은 불과 며칠 새에 엉망이 되어 버린 지 오래였다.

그렇게 심하게 대한 것도 아니었다.

손가락으로 여기저기 찌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심히 고통스러워 보였다.

여기저기 찢긴 옷가지 사이로 보이는 몸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심지어 멍까지 사방에 들었다 보니 더더욱 그렇게 보였다.

“차라리…… 죽이게.”

“오, 그 말. 많이 들어 봤던 말인데…….”

김선태는 라드 쪽을 돌아보면서 천천히 말을 이어 나갔다.

“네놈들이 이렇게 잡아 와서 라드로 만들라고 시켰잖아. 근데 날 버리고…… 심지어 이렇게 망해?”

심경이 무척 복잡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서였다.

아닌 게 아니라, 김선태는 배신감도 배신감인데 그렇게 배신까지 해 가면서 위로 올라가고자 했던 인간이 이렇게 초라해진 것에 대해서도 화가 난 상황이었다.

마치 대한민국의 미래가 지워져 버린 느낌까지 받고 있었다.

처음부터 다 잘못된 가정이었지만…….

이제 와서 그런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더욱이 당사자인 김선태에게는 더더욱 그러할 터였다.

“어쩔까요?”

한편, 라드의 한심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끔찍하다고 해야 할지 헷갈리는 꼴을 인간 군대는 적나라하게 관찰 중이었다.

이쪽은 정부가 즉 대통령이 알뜰살뜰 모아 두었던 전략 물품을 야무지게 사용할 수 있다 보니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어쩌긴. 더 지켜보면 되지.”

“애들이 지겨워하는데…….”

“그렇다고 지금 들어가? 그럼 지겨워하던 애들 꽤 죽을걸. 라드가 될 수도 있고. 봐라. 매일매일 수가 줄고 있잖아. 이대로 말려 죽이면 될 일이야.”

“하긴……. 그렇긴 합니다.”

최동호 대장은 이렇게 말을 하면서 동시에 유현의 말을 떠올렸다.

-라드는 이런 상황에서 별 힘을 못 쓸 거예요. 그저 추적에만 힘쓰시면 될 일입니다.

과연, 사태 전부터 라드를 추적해 온 사람답다고 해야할 거 같았다.

그의 예측이 아주 정확히 들어맞아 버리지 않았나?

-이건 우리에게 더할 나위 없는 호재예요. 만약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곧장 남하했다면 언제 잡을 수 있었을지 모를 일인데……. 대통령을 잡고 싶었는지 뭔지……. 아무튼, 이번 기회가 아니면 박멸 기회는 없습니다. 적어도 대한민국 내의 라드는 이것으로 거의 끝낼 수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사태의 종말이 눈앞에 다가와 있었으니.

저놈들만 잡으면 이제 정말 끝이다.

그런 생각으로 인간 부대는 당직도 마다하지 않고, 밤을 지새웠다.

결론만 놓고 보면 딱히 그럴 필요는 없던 일이었다.

라드들은 죽임당한 동료들을 아무렇게나 뜯어 먹고는 일단 잠이 들었으니.

몇몇 경계에 나선 놈들도 있었지만 워낙 지쳐서 그럴까, 다들 꾸벅꾸벅 졸고 있을 뿐이었다.

타다다다다다다

그렇게 새벽이 다가올 무렵 인간 부대에서 총성이 잇따랐다.

다분히 위협에 가까운, 상당히 거리를 둔 곳에서 이루어지는 사격.

허나 몇몇 총알은 분명히 라드를 살상하고 있었다.

유현과 함께 종군하고 있는 오예리가 쏘고 있는 총알들이 그러했다.

“도, 도망가라!”

그렇게 속절없는 라드의 퇴각이 또다시 시작되었다.

토끼 몰듯 몰다가 상대가 지친 것 같으면 기다리고, 또 몰고 하는 시간이 며칠 더 반복되었다.

그리고 유현의 입에서 드디어 이 말이 나왔다.

“오늘……. 다 쳐 죽여도 될 거 같습니다.”

“바로 그 말을 기다렸습니다.”

상대는 이제 약해질 대로 약해져 있었다.

뛰기는커녕 제대로 움직이는 놈들도 없을 지경이었으니, 이번이 적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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