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1화 종장 (2)
김선태는…….
시간이 참 오래 지난 것 같겠지만 사실 돌이켜 보면 불과 며칠이 지났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모습은 참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때는 그래도 인간처럼 보였더랬다.
아니, 대통령은 지금까지도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좀 이상하긴 했어도 김선태의 모습에서 라드를 떠올리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너……. 자네…….”
허나 지금의 모습은 라드 그 자체였다.
우선 날씨가 아직 봄임에도 불구하고 옷을 무척 헐렁하게 입고 있었다.
그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김선태의 우람해진 몸집이 무척이나 잘 보였다.
뭐, 원래도 체격이 좋은 편이긴 했다.
대령임에도 불구하고 현장 지휘관을 자처할 만큼이나 정력적이지 않았나?
사태 후에는 숫제 회춘이라도 한 것처럼 열심히 나가서 싸우곤 했더랬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는 아니었다.
“당신이 날 이렇게 만들었지. 뭐, 탓하려는 건 아니야.”
거대하다는 말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몸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 봐야 주변에 우글거리는 거대 개체나 초거대 개체에 비하면 그렇진 않지만…….
이렇게 눈앞에서 보기엔 거대했다.
대통령이라는 직함을 내려놓고 보면 그저 노쇠한 노인일 따름이지 않은가.
그가 보기에 지금의 김선태는 숫제 괴물이었다.
“어…….”
“어떻게 합니까?”
병사들이 보기에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분명 몸집에만 압도당한 건 아니었다.
잦은 경우는 아니었지만, 거대 개체를 사냥해 본 경험도 있었다.
근거리만 아니라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긴 했다.
어차피 혼자 상대하는 건 그 누구도 기대하지 않으니까.
그보다 그들을 두렵게 하는 건 김선태의 말이었다.
이렇게까지 명료하게 말하는 라드는 처음이었다.
실험실에 접근 가능하던 이들이 아니었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뭘 하긴……! 쏘…… 아.”
그렇게 당황하고 있으려니 뒤에 있던 거대 개체들이 모습을 드러낸 병사들에게 돌덩이를 던졌다.
퍽
“으아아악!”
하나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머리가 터져 나가고, 다른 하나는 비명만 지를 수 있을 만큼 다쳤다.
그것도 물론 잠시뿐이었다.
퍽
곧 둘 다 조용해졌다.
그렇게 김선태는 눈앞에 노쇠한 노인 하나만을 남겨 두게 되었다.
‘이게 그 대통령인가.’
살짝 어이가 없어질 지경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대통령은.
김선태는 한때 이자야말로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을 지킬 수 있을 거라 진심으로 믿었던 사람이기 때문에 슬슬 화까지 나기 시작했다.
“이보게. 오해야.”
“오해라.”
아마…….
박기태의 명이 없었다면 지금 당장에라도 때려 죽였을 터였다.
본능은 죽이는 대신, 이 보잘것없는 노인이라도 물어서 감염시키라 하고 있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이겨 내고도 남을 정도로 강한 분노가 아니, 배신감이라고 해야 할지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는 감정이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그……. 그래. 중장…… 그놈이 잘못일세.”
“흐흐. 뭐……. 어찌 되었건 간에 좋지.”
“좋다니……. 자네 그게 무슨 말인가.”
“무슨 말인지는 찬찬히 들어 보시지.”
허나…….
본능보다 더한 명령이 김선태의 주먹을 붙잡고 있었다.
대통령은 부들부들 떨리는 그의 주먹은 쳐다보지도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을 사시나무 떨듯 하고 있었다.
‘어……. 어째야 한단 말인가.’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마지막 동앗줄이라 할 수 있었던 병사들은 아무것도 못하고 죽었다.
아니, 그건 차라리 잘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오히려 뭔가 하려고 했었다면, 지금쯤 덩달아 휩쓸려 자신도 죽었을 테니.
하지만…….
‘이런 망할. 망할!’
차라리 거기 있을 걸 그랬나?
아니, 아니다.
그랬다가는 천지평이나 이종범 또는 박충훈…….
아니지.
그 셋 모두의 전리품이 되었을 것이 분명했다.
종로 시민들 앞에서 조리돌림당하다가 죽거나 또는 죽기보다 더한 꼴에 처해졌겠지.
더군다나 이미 지난 일에 대한 후회는 해서 뭐 하겠나.
나온 이상에야 그게 옳았다고 믿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 해결책은 뒤가 아니라 앞에 있으니.
허나…….
“오랜만이로군. 나 기억하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박기태…….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수많은 라드들을 보고 있으려니 해결책은커녕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었다.
아니, 어둠…….
그래, 절망만이 그득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일단은 살아 있다. 살아남아야 해.’
물려?
그것도 최대한 피해야 할 터였다.
우선 자신에게 지능이 남을는지도 모를 일이거니와, 설령 남더라도 문 놈의 명령을 개처럼 따라야 하지 않던가.
무엇보다 라드의 수명은 극단적으로 줄어든다는 걸 이미 여러 차례 실험을 통해 확인해 본 바 있었다.
특히 대통령은 자신과 신체 조건이 비슷한 이들을 이용한 실험을 여러 차례 했는데, 그중에 지금까지 살아남은 라드는 단 하나도 없었다.
짧은 놈은 불과 몇 주, 긴 놈도 두 달을 넘기지 못했다.
“오랜만이로군…….”
“그래, 잘 지냈나? 난 그러지 못했는데.”
그럴 수 있을까.
대통령은 상대에게서 느껴지는 적대감에 그만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했다.
어쩌겠나.
대통령은…….
박기태를 두 번이나 잡아들였다.
그리고 고문에 가까운 실험을 했다.
뭐, 나중엔 1호라는 특수성이 아까우니 살려 두자는 의견이 있어 그냥 두긴 했지만…….
뭐가 되었건 잡아 와서 가둔 것만으로도 최악의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나도 잘 지내지 못했네. 다 망한 나라를 일으켜 세우는 게 쉬울 리가 없지 않나?”
“이 나라? 내 조국도 아닌 것을.”
“그래, 그렇지. 하지만……. 그대의 조국도 그대를 버린 건 매한가지야. 게다가 한민족, 한 핏줄 아닌가? 따지고 보면 가족……. 그래, 가족일세.”
“당신은 가족을 가두고 고문하는 버릇이 있나.”
“그…….”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야 살아날 수 있을 테니.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겠지만 태어나 단 한 번도 특수 계층에 있어 보지 않은 적이 없는 그에게 이건 그냥 당연한 일이었다.
앞으로가 더 중요했다.
“그건 내가 잘못했네. 하지만…… 말일세. 들어 보게. 내게 계획이 있어.”
“계획이라?”
한편 박기태에게는 그저 우스울 따름이었다.
그래, 한때 이자가 청와대에 앉아 있을 때는 무소불위의 권력자였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여기 있는 어떤 라드라 해도 단 한주먹에 이 정도 노인은 쳐 죽일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더라도 딱히 뒤탈도 없을 터였다.
박기태 자신이 눈감아 줄 테니까.
헌데 이 노인은 잘도 떠들어 대고 있었다.
그 꼴이 재밌어서 박기태는 장단을 맞춰 주었다.
“그래. 저기……. 인간들. 인간들을 지배해야 하지 않겠나?”
“어째서 그렇지?”
“라드……. 그러니까 자네들은 인간들을 물어야 하지 않나?”
“흐음.”
생각보다도 더 말을 잘하는 사람이다 보니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대통령은 김조은을 위시한 모두에게 직통으로 보고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라드에 대한 정보도 많았다.
“괴롭지 않나? 그냥 있으면?”
“계속해 봐.”
그에 따르면 라드는…….
그러니까 ARS-24 바이러스는 번식을 위해 라드를 충동질하는 놈이었다.
인간을 물어야 한다는 지상 명제에 따라, 그러지 않고 있으면 감정을 건드린다는 얘기였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애초에 림빔 시스템, 그러니까 감정 중추에 주된 감염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니까.
김조은 박사의 이론에 따라 실험을 해 본 결과 확실히 갇혀 지내는 라드의 혈액에서 엔돌핀과 세로토닌 등이 크게 감소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마 박기태 또한 그러한 우울감을 느꼈을 터였다.
“저놈들을 발아래 두게……. 그리고 번식시켜. 공물처럼 받아서 물어 버리는 거야.”
“흐……. 흐하하하! 저놈들……. 당신이 그토록 살리고자 했던 대한민국의 국민들 아닌가?”
“그 진심을 몰라주고 나를 배반한 사람들이기도 하지.”
“그래서…… 버리겠다?”
“그렇게라도 살게 해 주겠다는 걸세. 저들은 양 떼야. 내가 없이는 살 수 없어, 어차피.”
“흐…… 흐흐.”
박기태는 웃음을 흘렸다.
우습기도 했거니와…….
‘그럴싸하지 않나?’
이놈의 말이 맞기도 해서 그랬다.
더 이상 인간은 아니지 않나.
어쩔 수 없이 바이러스의 통제를 받는 몸이 되어 버렸다.
“내가 널 어떻게 믿지?”
“내게 다른 방도가 있어 보이나?”
“그래, 질문을 바꿔서……. 네놈이 이 상황에서 어떤 도움이 된다는 건가? 이미 다 돌아선 거 같은데.”
“다는…… 다는 아닐세. 여전히 내 통제에 따를 수 있는 병사들은 많아!”
“그 병사들이 어디에 있나. 나는 안 보이는데.”
“그…….”
그래, 인간들을 어찌 되었건 안정적으로 감염시킬 수 있는 방법은 필요했다.
또 더 나아가 자신이 당했던 굴욕을 주고 싶었다.
강제로 교배시키고, 일을 시키고…….
그냥 이대로 있기엔 미래가 없다는 건 기정사실 아닌가.
저 밖에 더 많은 인간들과 라드가 남아 있던 시절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다 보니 당연히 대통령의 계획을 염두에 두긴 해야 했다.
하지만 방금 말한 것처럼 대통령이 이 일에 필요한가?
“인정하지, 넌 이제 그냥 노인이야. 아무것도 없는!”
“어……. 어……. 이, 이러지 말게! 난……. 그래, 자네 말대로 노인이야! 굳이…….”
살심을 품었다.
주먹을 치켜들었다.
허나 이렇게 때려죽이는 것은 너무 쉬운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더…….
더한 형별을 내려야 했다.
무엇이 있을까?
신체적 고통?
자신 없었다.
아프게야 할 수 있겠지만 오래도록 살려 둘 수 없을 터였다.
“웁…….”
해서 박기태는 두들겨 패는 대신 그저 대통령의 머리를 붙잡아, 그가 도망쳐 나왔던 곳을 가리켰다.
한창 달려오던 차들은 벌써 한참 전에 돌아간 상황이었다.
덕분에 아무것도 보이는 것은 없었다.
그저 사방이 박살 난, 여전히 불이 꺼지지 않은 채 엉망으로 남은 기지가 보였다.
“네 나라였던 것을 망가뜨려 주마. 너도 그 안에서 살게 해 주고. 놈들이 널 어찌할지 기대가 되는구나.”
“아니……. 안 돼……. 나는 그들을…….”
“이 늙은이를 데려가. 다치지 않게 주의하고.”
“네.”
김선태는 대통령을 붙잡아다가 포박했다.
이미 물리적인 저항은 포기한 지 오래다 보니, 대통령을 끌고 다니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어찌할까요?”
한편, 천지평……. 그러니까 유현 측 또한 회의 중이었다.
반포대교 남단에 나타난 라드 무리를 어찌할까에 대한 회의였다.
사실, 결론은 이미 난 상태이긴 했다.
실제로 싸워야 하는 이들은 어찌 생각하고 있을는지 몰라도 지휘권자들의 생각은 대개 일치했다.
“마지막 남은 위협입니다. 정리해야죠.”
“네, 제 생각도 같습니다.”
대통령의 부재.
시민들은 사상 초유의 사태에서 지도자를 잃었다.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천지평이 나섰지만 아무래도 결집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 아닌가.
그럴 때 제일 좋은 방법은 아무래도 시선을 밖으로 돌리는 것이었다.
설령 피해가 크다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큰 피해를 입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놈들을 쓸어버리기만 한다면…… 쓸데없는 군부대는 없는 게 나아.’
그렇게 얼마 남지 않은 부대는 반포대교 북단을 향해 모여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