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320화 (320/323)

320화 종장 (1)

“자, 이쪽으로!”

“그래. 고맙네.”

대통령은 병사 둘의 안내에 따라 세워져 있던 차량에 탑승했다.

안과 밖에 있던 병사들 태반은 연설을 듣기 위해 이동한 상황이었다.

중간에 오가며 마주친 이들 중 일부가 대통령의 이동을 좀 이상하게 여기긴 했지만, 딱히 제지하는 이는 없었다.

감히 대통령을 어찌 제지한단 말인가.

물론 지금도 들려오고 있는 방송을 보면 대통령이 이상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긴 했다.

하지만 그래도 대통령이었다.

지금까지 받아 온 세뇌에 가까운 교육 때문에라도, 대통령에게 뭐라 하는 이는 그 누구도 있을 수 없었다.

부르릉

그렇게 별 위험 없이 차에 탄 일행은 시동을 걸자마자 밖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목표 지점은 다른 군부대가 아니었다.

애초에 수도권도 아니었다.

“여긴…….”

대통령이 퇴임한 이후 지내겠다는 명목하에 지어 둔 건물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안가 같은 개념이라고 보면 되네. 어지간한 물품은 거기 다 있어.”

물품만 있는 게 아니었다.

애초에 이게 승인 난 것이 코비드 사태 때이다 보니 안가보다도 벙커와 같은 느낌으로 지어 놨더랬다.

발전 시설부터 자급자족을 위한 설비도 갖추어져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둘뿐이긴 해도 관리인도 배정되어 있었다.

그게 뭐…….

지금도 있으리라는 보장이 있는 건 아니었다.

통신을 날려 버렸을 때, 그쪽과의 연결도 끊겼으니.

전적으로 실수였다, 그건.

‘병신들이 오폭을 해 가지고…….’

그렇다고 해서 벙커가 파괴되진 않았을 거다.

그냥 그 근처에 있는 통신 설비가 날아간 것일 뿐일 거라고, 대통령은 믿고 있었다.

그렇게 허투루 지어 둔 건물도 아니거니와 작정하고 쏘더라도 어지간히 잘 조준한 것이 아닌 이상엔 제대로 맞히지 못하게 산속에 잘 지어 두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정확한 주소도 공개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언론에서조차 대강 어느 지역에 있다 정도만 파악했다.

코비드 사태에 이어 라드 사태에 대비한 건설을 시작하게 된 이상 숨길 수밖에 없지 않았겠나?

“네, 알겠습니다. 모시겠습니다.”

“그래.”

기지에서 빠져나가는 것은 참 쉬운 일이었다.

이미 벽이란 벽은 다 허물어진 상태인 데다가 부대의 사기 또한 뚝 떨어진 상황 아닌가.

심지어 연설하겠다는 명목하게 배치되어 있던 병계 병력 또한 안으로 불러들인 상황이었다.

거기에 더해 그 어느 누구도 설마 이 타이밍에 대통령이 도망갈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하고 있었더랬다.

“어?”

“저기…….”

중장 또한 그런 생각은 못 하고 있었다.

다만 고민은 했다.

대통령을 넘길까 말까 하는 고민을.

이 자식만 믿고 있다가는 이거…….

진짜 크게 잘못될 수도 있을 것 같지 않나.

가라앉는 배에 같이 어물쩍거리고 있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런 그의 눈에 빠르게 빠져나가고 있는 차량이 보였다.

“저, 저 새끼 잡아!”

“네?”

“대통령이 도망가잖아!”

“아니……. 그럴 수가.”

“저 개새끼가……. 저 새끼가 우릴 속였어!”

“잡아, 잡아라!”

중장의 외침과 함께 현장을 지키고 있던 대령 또한 길길이 날뛰기 시작했다.

곧 부대 안에 멀쩡한 차량들은 거의 전부 시동이 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부우웅

그렇게 출발하는 차량들 전부가 대통령의 뒤를 따르게 된 것은 아니었다.

‘X 됐구나…….’

‘시발……. 개새끼들. 어쩐지 우리끼리 싸우라고 할 때부터 이상했어.’

‘대통령이 튀었는데 우리라고 튀지 말라는 법이 어딨냐.’

절반 이상이 각자 살길을 향해 튀기 시작했다.

사방팔방으로, 도로를 따라 차량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이 말이었다.

그 모습은 당연하게도 이쪽을 주시하고 있던 이들에게 발각될 수밖에 없었다.

강 이남 쪽에 있었다면 더 빨랐을 테지만 이북에 있던 이들이라고 해서 감지가 느리지 않았다.

“텅 비었어!”

“어찌할까요?”

그렇다고 해서 바로 움직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함정…… 일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그게 가능할 것 같은 상황은 아니지 않나.

게다가 설령 함정이라고 해도 지금 도망가는 숫자를 보면 별 위협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일단 이쪽으로 오는 놈들은 받아 줘! 병사들이야……. 어떻게든 쓸모가 있을 거야.”

“네. 나머지는……?”

“천천히 진입하도록 하지. 이미 승기는 우리가 잡았어. 괜히 무리하다가 일 치르느니 조심하는 게 나아.”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천지평 의원의 명에 의해 따라 들어왔던 최동호 대령은 이제 대장 지위에 오른 상황이었다.

그래 봐야 뭐…… 밑에 있는 인원 다 합쳐서 수백 단위밖에 안 되는 허울뿐인 지위긴 했지만.

어찌 되었건 이 부대 체제 안에서는 제일 높은 사람이라는 얘기였다.

게다가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천지평은 말만 그렇게 안 했을 뿐, 이미 대통령에 오른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으니.

그 옆을 보좌하게 된 것은 기존 총리였던 박충훈과 외부에서 온 유현이었는데, 아무래도 대통령과 한 묶음처럼 보이기에 십상인 박충훈보다는 유현의 위세가 더 높았다.

심지어 천지평마저 함부로 하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유현의 밑에 있는 인원이 적지도 않을뿐더러 그 우수함이 대단해서 그랬다.

무엇보다 아무래도 안에서만 있던 종로 시민들 입장에서는 같은 처지였던 이들보다는 밖에 있던 유현 일행에게 기대고픈 마음이 클 수밖에 없었다.

“이런 보고가 왔는데……. 무슨 일일 거 같습니까?”

당연하게도 회의에 유현이나 김태평이 빠지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천지평은 최동호 대장에게서 온 보고를 바로 총리와 유현에게 공유했다.

유현은 명목상 보건복지부 장관을 맡고 있었는데 임명한 천지평도 임명받은 유현도 거기에 뭐 크게 의미를 두고 있지는 않았다.

나라가 개판인데 각 부처가 무슨 의미가 있겠나.

말마따나 독재를 해도 될 만한 사이즈였다.

“으음.”

하여간, 천지평의 질문에 다들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총리였던, 그러니까 전 정권의 부역자였던 박충훈이 제일 깊은 고민에 빠졌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제대로 된 의견을 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아무리 생각하면 뭐 하나.

감도 안 잡히는데.

“아무래도 대통령이 도망간 거 아니겠습니까?”

오히려 설득력 있는 답을 내놓은 것은 유현이었다.

김태평의 조언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긴 했지만, 아무튼, 유현 스스로 판단하기에도 그게 제일 설득력 있는 일이었다.

“네? 대통령이?”

“생각해 보십시오. 이미 승부는 완전히 갈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막말로 우리가 피해를 감수하고 돌격하게 되면 저 반포대교 북단 부대 정도는 박살 낼 수 있는 상황 아닙니까?”

“그건 맞긴 하지.”

“그걸 상대가 모를 리가 없어요. 거기에 우리가 며칠 전부터 계속 스피커로 떠들어 대고 있으니 병사들의 불안감도 가중되고 있을 겁니다. 압박이라는 건 보통 위에서 가하는 것이긴 하지만……. 오히려 무서운 건 아래에서 시작되는 압박이죠.”

“그렇지. 하긴……. 그 프로 정치꾼이 안에 돌아가는 분위기를 읽어 내지 못했을 리가 없지. 그러고 보니…….”

“뭔가 짚이는 구석이라고 있으십니까?”

유현의 말에 천지평은 언젠가 한번 들었던 지명을 떠올렸다.

강원도 홍천.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지만 수도권은 벗어나 있어 언론이나 각 부처의 관심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워 보이는 곳에 대통령이 퇴임 후 지내겠다는 집을 짓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타이밍상 말도 안 되는 일이긴 했다.

곧 박살 날 것이 자명한데 뭘 내려간단 말인가.

“홍천으로 튀었을 거 같은데……. 정확한 위치는 모르겠군요.”

“뭐……. 거기로 튀었다면 대통령은 우선 순위가 더 이상 아니지 않겠습니까? 여기부터 단속하는 것이 좋을 거 같습니다.”

“제 생각도 같습니다. 현장 판단도 그렇고……. 무리하는 대신 일단 서울부터 정리를 해야 할 거 같습니다. 시민들도 현실을 직시해야 할 때가 왔고…….”

“노동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 포함해서요.”

“그렇죠. 그래서는 안 될 말입니다.”

천지평은 이미 스스로를 다시 태어나는 대한민국의 지도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한다고 그리는 모습도 있었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현실화되기 한참 전부터 꿈은 꾸고 있었으니.

‘나부터 솔선수범해야겠지…….’

그가 그리는 대한민국의 모습은 이상향에 가까웠다.

뭐…….

지도자층부터 열심히 해서 아래까지 한마음 한뜻으로 나라 재건을 위해 힘쓰는…….

70도 넘은 대통령에 비해 천 의원은 이제 겨우 50 좀 넘은 나이 아닌가.

시간이 있다, 이 말이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독재가 필요할 텐데…….

‘여기서 무슨 투표를 하겠나.’

항시 전쟁 상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였다.

그리고 그러한 위급 상황에서 정권 교체는 어불성설이었다.

‘대충 협력하다가 아니다 싶으면 갈아야겠지.’

천지평의 생각과는 달리 김태평은 유현을 밀고 싶었다.

천지평에 대해 뭔가 아는 게 많아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아는 게 없었다.

그에 반해 유현은……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을 터였다.

지금까지 보여 준 모습만 생각해 봐도 그렇지 않나?

옳은 길을 걸어갈 터였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실리를 추구할 터였다.

무엇보다 원죄가 없었다, 이자에게는.

부우웅

종로가 각자의 계산에 의해 추적을 포기한 순간에도 대통령은 달리고 있었다.

금세 다리를 건너고 자신의 손에 의해 무인지경이 되어 버린 고속 터미널을 지나고 있었다.

“어?”

“왜 그러나?”

“앞에 차들이…….”

“응? 여긴 정리도 안 하고 살았나?”

“모르겠습니다. 돌아……. 어.”

그렇게 반포대교를 건너 법원 쪽을 거쳐 터널까지 가는 것이 계획이었는데, 다리가 딱 끝나자마자 대로에 차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인위적인 느낌이 들었다.

사태가 터진 지가 언젠데 아직도 차가 있겠나.

여기가 뭐 아무것도 없던 곳이었다면 또 모를 일이겠으나, 실제로 고속터미널 근처에는 상당히 커다란 집단이 존재했더랬다.

그 존재를 모르지도 않았고.

쌔한 느낌과 함께 돌아서자, 라드들이 보였다.

그것도 아주 많이.

“도, 돌아가!”

뒤쫓아오던 병사들과 중장, 대령들은 이미 다시 유턴해서 원래 있던 곳으로 도망가고 있었다.

한둘 아니 십수 단위였다면 그래도 덤벼 봤을 텐데…….

숫제 백을 헤아리고 있지 않던가.

게다가 그 크기도 대단했다.

“가, 각하.”

대통령과 차 안에 있던 병사들은 나름 훈련을 받은 이들이었다.

아니, 훈련뿐 아니라 나름 실전 경험도 꽤 있었다.

하지만…….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백도 넘는 라드를 보고 있자니 용기가 나기는커녕 순식간에 겁에 질려 버렸다.

그와는 달리 대통령은 침착했다.

하지만…….

“이런 망할.”

침착하면 뭐 어쩌겠나.

호랑이에게 물려 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는 말은…….

사실 물려 가기 전에나 의미가 있는 말이었다.

이미 물려 간 다음에는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많으니.

“각하, 오랜만입니다?”

그렇게 둘러싸인 가운데 낯익은, 그러나 기억 속의 목소리보다는 훨씬 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 김선태?”

“네, 맞습니다.”

김선태가 라드 가운데서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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