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319화 (319/323)

319화 분열 (5)

“야, 그거 들었냐.”

“뭐.”

“뭐긴 인마. 저거.”

“아……. 내가 귀머거리도 아닌데 당연히 들었지.”

반포대교 북단 경비대.

사실상 대통령이 확보한 유일한 부대라고 보면 되었다.

대통령이 보통 사람은 아닌 만큼 당연히 재빠르게 다른 부대에도 손길을 뻗었지만…….

원래 한 손보다는 두 손이 더 빠른 법 아니겠나.

종로 측에서 훨씬 더 빠르게 움직인 탓에 대통령은 그대로 여기 잔류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승산이 있다고 여기고 있었다.

왜?

여기는 그래도 전투를 해 본 병력이니까.

-반포 경비대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대통령에게 속고 계신 겁니다.

-그는 종로 시민들의 안전을 겁박하면서 자신의 권력만을 탐한 사람입니다.

-대통령이야말로 지금 이 사태에 책임이 있습니다.

게다가 다른 다리 경비대들 또한 언젠가는 포섭할 자신이 있었다.

김선태를 실각시키고 대통령이 직접 인선에 참여했기 때문이었다.

지휘관들…….

속된말로 다 아는 얼굴이었다.

허나 상대는 대통령의 허를 찌르고 있었다.

어느 틈엔가 트럭 몇 대가 오더니만 해가 떠 있는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저따위 방송을 틀어 놓고 있었다.

‘개자식들이.’

내부 통제는 가동 중이었다.

동요하지 말라고 하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아예 듣지 말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경비를 서야 하는데 안에 들어가라고 할 수가 있나?

저 소리에 묻힌 채 누군가 침입해 오고 있지 않다고 장담할 수가 있나?

애초에 포격으로 다 박살 내 버린 곳인 만큼 수비력은 크게 떨어지는 곳이었다.

“진짜 대통령이 범인일까?”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다고? 그럼 저 말을 믿어?”

“뭐……. 듣다 보니까 그럴싸하던데? 확실히 우리는 테러당했다는 게 좀 불명확하잖아. 다른 나라 영상들 보면 장난 아니었잖아.”

“그건……. 그건 그렇지.”

중국이나 미국이 왜 무너졌나.

테러가 너무 동시다발적으로, 그것도 집요한 방식으로 터져서 그랬다.

자살 폭탄 테러가 아닌 인간을 매개로 한 전염병을 퍼트리는 방식은 정말이지 폭력적이었다.

심지어 미국은 인도적인 국가다 보니 더더욱 취약한 면모를 보이고 말았다.

감염된 국민들을 이송하고 또 치료하는 과정에서 너무 많은 희생을 치러 버렸다.

중국?

중국은 애초에 제대로 된 타깃이었다 보니 어디라고 특정을 짓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곳에서 엄청난 물량의 테러가 있었다.

오죽하면 오가는 트럭만 봐도 사람들이 경기를 일으킨다는 말이 나돌 지경이었다.

그 두 국가 못지않게 빠르게 또 확실히 무너진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우린 그런 게 있었나?”

“모르겠네. 그냥 어느 날 갑자기 막 보도되고 그랬잖아.”

“하긴……. 그러고 나서는 진짜 순식간에 이렇게 됐지? 그래서 나는 우리도 테러당한 줄?”

“응, 우리도 그런 줄 알았어. 일단 윗사람들이 다 그렇게 말하니까? 근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말이야…….”

“시발, 만약 그게 맞으면 우리 왜 여기 있어?”

“몰라, 이따 밤에 얘기나 좀 해 보자고.”

“아……. 그래.”

이상하지 않은가?

명확한 테러도 없이 무너졌다.

그냥 말로만 테러가 있었다고 떠들어 댈 뿐…….

대한민국은 해외에서 나도는 영상과는 상황이 명백하게 달랐다.

“각하, 병사들의 동요가 너무 심합니다. 해명이 필요할 듯싶습니다.”

“죄다 헛소린데 뭘 하라는 건가.”

낮에도 문제지만 밤이 되면 낮에 들었던 얘기가 병사들 사이에서 확대 재생산되고 있었다.

이러한 움직임을 대령이 모를 리는 없었다.

부대가 무슨 사단급도 아니고 일개 중대급도 못 되는 병력 아닌가.

심지어 잠자리도 거의 붙어 있다시피 한 상황이다 보니 못 알아보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었다.

“그럼 헛소리라고 해 주십시오. 이러다…… 조만간 큰일 날 거 같습니다.”

대통령은 대수롭지 않다는 얼굴로 답하다가, 대령의 얼굴에서 두려움을 읽었다.

옆에 있는 중장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진 않았다.

공포에 짓눌린 상황이었다.

외부의 적이 아니라 그냥 내부의 분위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

‘이런 모자란 새끼들…….’

김선태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아마 주로 떠드는 몇 놈 끌어다가 죽였을 거다.

그러곤 그 시신들을 밖에 내걸었을 거다.

반역자들이라는 낙인을 어떻게든 씌워서.

그게 완벽한 방법이라는 얘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렇게 자기 앞에서 어떡하냐고 호들갑만 떨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일단 다른 부대들이 다 종로 측에 붙었다는 말이 너무 결정적입니다, 각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중장이 아까보다도 더 똥 씹은 얼굴이 되어 이렇게 말했다.

여기에 대해서는 대통령도 딱히 바로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사실이지 않나.

이제 대통령은 부대 수로도 종로에 밀린다.

최동호에게…….

아니, 최동호가 아니다.

‘이 목소리…….’

계속 반복적으로 들려오는 이 목소리.

어디서 들어 봤다 했다.

허나 딱 떠오르진 않았다.

그러다 병사들의 투덜거림을 듣고 나서야 누군지 특정할 수 있게 되었다.

‘정유현…….’

최동호가 정유현 같은 야인과 야합할 만큼의 깜냥이 있던가?

없다.

능력만 얘기하는 게 아니라 그럴 필요가 없는 인간이었다.

뭐 이렇게 다 무너지고 난 다음이라면 당연히 필요가 생겼겠지만, 이 이후에 연결 고리가 생겼다고 하기엔 일의 진행이 너무 급하다.

불만이 있던 놈이 주인공일 터였다.

그리고 대통령은 그러한 놈들을 열 놈도 더 넘게 꼽을 수 있었다.

물론 그중에서 이렇게 깜찍한 짓을 저지를 수 있는 놈을 고르라면 몇 놈 안 남긴 했다.

다들 죽거나 좌천되거나 했거든.

‘아마도 천지평……. 그 자식이겠지.’

개자식.

배은망덕한 놈.

살려 둔 것이 화근이다.

같은 당이랍시고…….

박태식 사망 이후에 알랑거리는 것이 기껍고 또 놈의 인맥이 아쉬워서 곁에 두었는데, 역시 그게 실수였다.

“각하?”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으려니 중장이 재차 그를 불렀다.

답을 원하는 얼굴을 하고서였다.

정말.

정말로 화가 났다.

답이 없는 상황에서 이 지랄을 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이 자식…….’

아니, 화가 나는 건 잠시뿐이었다.

이제는 두려워졌다.

‘다른 마음을 품었구나.’

충성?

그런 게 있는 세상인가?

조선 시대에는 충신들이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실제로 조선 왕조가 유럽의 왕조들보다 훨씬 오래 갈 수 있었던 것이 유교의 영향이라고 하지 않던가.

허나 지금은 그러한 과거의 유산은 다 사라진 지 오래다.

사태 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20세기, 21세기 대한민국을 일컫는 것이었다.

‘이거……. 자칫하면 전리품이 되겠는데.’

상황이 좋을 땐 아랫것들을 좀 덜 의심해도 좋을 터였다.

진짜 충성은 사실 상황이 허락할 때 가능한 것이라 여기는 것이 틀리지 않다, 이 말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떠한가.

이보다 더 최악일 수가 있나 싶을 지경이었다.

여전히 불도 채 다 끄지 못한 상황이었다.

한강에서 물을 길어 올 수 있었다면 얘기가 좀 달라질 수도 있었겠지만, 오염된 물이지 않나.

게다가 지금도 신경 써서 세어 보면 수십 구는 족히 넘을 시신이 분 단위로 흘러내려 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안 그래도 스트레스 지수가 높을 병사들에게 거기 가서 불 끌 물을 길어 오라고 시켜?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잠자리도 변변치 않지.’

사태 이후라고 해도 정부 측은 단 한 번도 풍족하지 않았던 적이 없다.

민간인을 약탈해서라도 물자를 확보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병사들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진 않았다.

아마 대부분은 이런 환경에 처해진 것이 처음일 터였다.

거기에 더해 식량도 별로 없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무리 아껴 먹는다 해도 앞으로 3일? 아니, 이틀?

“각하.”

다시금 중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명이 아니라 변명이라도 해 보라는 식으로 들렸다.

여차하면 지금 당장이라도 붙들어 매서 밖으로 나갈 거 같았다.

“걱정 말게. 내 연설을 해 보지.”

“아, 네. 감사합니다, 각하.”

면피용 말이라도 던져야 했다.

다행히 지금 당장은 그걸 원하고 있었는지, 중장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밖으로 향했다.

같이 나가려던 대령을 대통령은 불러 세웠다.

“자네.”

“네, 각하.”

“병사들 다 불러 모으게. 경비 서는 인원들까지 다.”

“네? 그랬다가 쳐들어오면…….”

“당장 쳐들어올 생각이면 소리를 저렇게 틀어 놓고 있겠나? 말도 안 되는 얘기지. 놈들은……. 이를테면 오합지졸이야. 상황에 의해 하나로 모인 것이지, 계기만 있으면 사분오열될 놈들이란 말일세. 내 장담하지. 여기 쳐들어오다가 자기 병사들 단 몇 명이라도 더 죽게 되면 바로 내분이 일어날걸? 적도 바보는 아니니 그런 일을 원하고 있지 않아. 그래서 저렇게 스피커나 틀어 놓고 있는걸세.”

“아, 네. 각하. 역시 혜안이 대단하십니다.”

그러곤 감언이설로 속여 다시 내보냈다.

대통령은 잠시 그렇게 안에서 기다렸다.

뭐, 안이라고 해 봐야 임시 천막 같은 곳이었다.

비라도 내리면 태반은 안으로 흘러들어 올 터였다.

바람이라도 세게 불면 바로 무너질 것이고.

하지만 적어도 사람의 시야는 가릴 수 있었다.

‘도망가는 게…… 낫겠지.’

지금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남아 있긴 한가?

모르겠다.

그렇다고 혼자 도망가?

사태 이후로 단 한 번도 그런 지경에 빠져 본 적이 없었다.

아니, 사태 이전에도 거의 그랬다.

타고나길 특권 계층으로 태어난 이면서 동시에 승승장구해 왔기에 그랬다.

‘일단……. 같이 온 병사…… 그놈들이면 되겠지.’

여기 부대랑은 소속이 다르다.

게다가 임무 자체가 대통령 경호다 보니 그들은 늘 천막 근처에 있었다.

“자네, 안으로 들어와 보게.”

“네? 아, 네.”

찾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또 몰래 들어오는 것도 너무 수월했다.

상황이 너무 안 좋다 보니 군기가 개판이라 그랬다.

외부 경비도 개판인데 뭐……. 내부는 뻔한 얘기 아니겠나.

“아무래도 이 부대가 반역을 저지를 거 같아서 하는 말인데.”

“네? 여기서요?”

“그래. 너무 소리 지르진 말고.”

“아, 네.”

“내 자네는 믿어도 되겠나?”

“무, 물론입니다!”

“그래, 내 믿지. 우리가 타고 온 차량……. 그 앞에 병사들이 몇이나 있지?”

“아……. 꽤 많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저희 소속 부대들은 다 거기에.”

“그래, 그렇군. 그 병사들한테 내가 곧 연설을 할 텐데 그거 들으라고 모이라고 해 줄 수 있겠나?”

“연설 말씀입니까?”

“그래. 그사이에 우리는 차를 타고 도망쳐야 하네.”

모 아니면 도다.

이미 목숨은 경각에 달렸다.

그래서 속내를 터놓았다.

명백한 도박.

대통령은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진땀을 흘려 가며 상대 병사를 바라보았다.

병사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의 진심에 넘어가고야 말았다.

그리고 얼마 후, 병사가 돌아와 말했다.

“앞이 비었습니다.”

“좋아, 가세.”

“네, 모시겠습니다. 제 동료 하나가 남았는데, 그건 괜찮겠죠? 같이 가면 도움이 될 겁니다.”

“좋지. 자네 친구라면 내 믿을 수 있지 않겠나.”

“그리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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