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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팬데믹-318화 (318/323)

318화 분열 (4)

대통령은 대통령 나름의 판단하에 반포대교 북단 부대 안으로 진입했다.

이미 포격전을 동반한 전투를 벌인 후였기 때문에 안으로 진입한다는 표현이 적절한지 의문이 들기는 했다.

어디가 입구였는지조차 알아보기 힘들 만큼이나 철저하게 파괴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아껴 두었던 중화기 무기들을 아낌없이 털어 넣지 않았던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신종 콜레라의 위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확인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각에서 북한을 걱정하기도 했지만…….

거긴 이미 죄 무너진 지 오래였다.

라드도 라드지만 애초에 식량 문제가 심각한 북한에서 제대로 된 식량 생산이 끊긴 이후 라드와의 식량 경쟁까지 하게 되었으니 뭐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오, 오셨습니까.”

현장 지휘관은 대령이었다.

뭐, 말이 대령이지.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위였던 녀석이었다.

말 그대로 새파랗게 어리단 말까지 어울릴 정도의 나이였지만, 그나마 한 차례 전투를 치러서일까.

나름 관록이 붙은 듯 보였다.

“그래. 각하께서 거하실 만한 건물이 있나?”

“아……. 그것이. 지금.”

중장의 말에 대위는 제대로 된 답을 하는 대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사방이 어지러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중장뿐 아니라 대통령과 다른 병사들까지도 모두 그의 시선을 따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엉망진창이었다.

제대로 된 건물이 있기는커녕 전투 시에 난 것으로 보이는 불조차 끄지 못하고 있었다.

매캐한 연기가 끊임없이 하늘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원래 저렇게 되면 라드나 생존자들이 얼쩡거리기 마련인데 사위는 조용하기만 했다.

오히려 소란스러운 것은 이쪽이었다.

“병사들 중 태반이 천장도 없는 곳에서 침낭 하나에 의지해 잠을 청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건물은…….”

“이거야 원. 그럼 차에서 일단 거하시는 게 나을까?”

“아무래도 그래야 할 거 같습니다.”

“이런 제길. 어쩌다 일이…….”

중장은 못마땅하단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의 불안감은 그대로 대령에게로 전해졌다.

병사들?

병사들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가뜩이나 같은 편에게 총질하고 그 안에 들어온 마당 아닌가.

지금 널브러져 있는 군복 입은 이들 중에는 시신도 적지 않게 있었다.

그나마 사태가 벌어진 지도 벌써 오래돼서 망정이지, 초창기의 군대였다면 벌써 무너졌을 터였다.

“아니, 아닐세.”

그러한 지점을 읽어 내지 못하는 놈이 정치를 할 자격이 있을까?

멍청한 놈들이라면 이러한 와중에도 특권 의식을 내려놓지 못하고 이상한 짓을 할 터였다.

뭐……. 실제로 몸은 고단하긴 했다.

다 늙은 몸으로는 이 시각까지 깨어 움직인 것만으로 이미 무리니까.

하지만 대통령은 억지로 몸을 일으켜 대령에게로 다가와 손을 내저었다.

“다 고생하는데 나만 편하다고 차 안에 있을 수는 없지.”

“하지만…….”

“하지만은 무슨 하지만인가. 지금 상황이……. 뭐 제대로 듣진 못했겠지만 꽤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네.”

머릿속으로는 심지어 고도의 계산까지 팽팽하고 있었다.

원래 안 좋은 일은 숨기는 게 옳다.

언제나 확대 재생산되기 마련이니.

하지만…….

때에 따라선 원칙을 어겨야 할 때도 있는 법이었다.

대통령의 생각에는 지금이 딱 그러한 시점이었다.

“반란군 놈들이…… 잔당들이 종로로 쳐들어갔네.”

“아…….”

“물론 종로의 시민들이 저항하고 있겠지만 총칼 들이미는 놈들에게 어디 쉬운 일이겠나.”

“맞습니다. 그럼 빨리 저희가…….”

“아니, 아닐세. 이 부대는 너무 지쳤어. 일단 수습부터 하고 가는 게 좋겠네. 놈들은 무려 라드까지 동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네. 조심하는 게 좋아.”

“허……. 라드를요? 어떻게…….”

“어떻게 하는 건지는 나도 모르네. 다만 정황상 그렇게 보인다는 말이야. 김선태가 주도하는 일일 테지. 내 잘못일세. 사람을 잘못 보고 중히 썼어.”

“아, 아닙니다. 각하!”

“아무튼, 병사들을 좀 돌보도록 하지.”

세 치 혀를 잠시 놀리는 것만으로 대통령은 대령의 불안감을 잠재웠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완전히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뭐 미봉책에 불과하긴 할 터였다.

시간이 좀 지나면 이상하다는 것도 알아차릴 테고.

라드까지 동원해서 적이 종로의 민간인들을 죽이고 있다는데 일단 여기부터 수습하자는 말이 멀쩡한 말은 아니지 않나.

하지만 말에는 분위기가 있는 법이었다.

무엇보다 누가 하는 소리인지에 따라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괜찮나?”

“아……. 설마?”

“그래, 대통령일세. 고생 많았네.”

“아니, 아닙니다. 각하!”

거기에 더해 대통령은 노구의 몸을 이끌고 널브러져 있는 병사들을 보살피고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참된 지도자의 품격 아니겠나.

뭐 멀쩡한 모습도 아니었다.

당연히 옷도 좋은 옷이고 나름 단정하게 입고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친 기색이 어디 가는 건 아니기에 저의가 어디에 있건 간에 최선을 다하고 있단 느낌을 주기엔 충분했다.

“다쳤군.”

“아……. 별거 아닙니다.”

“아니지. 이리 줘 보게. 이거 이대로 두면 덧난다고.”

어디서 배웠는지 나름 응급 처치도 하고 있었다.

병사들 입장에서는 황송할 지경이었다.

평소라면 얼굴도 보기 힘들 정도로 높은 사람 아닌가.

그런 사람이 이렇게 캄캄하고 어두운 밤에 현장까지 찾아와 위로의 말을 전하고 있다.

자세한 내막을, 그러니까 대통령이 청와대에 더 있을 수 없어 내쫓기듯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에게는 그저 감동의 도가니일 뿐이었다.

대통령은 그렇게 순식간에 반포대교 북단의 민심을 획득할 수 있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저길 보십쇼.”

허나 상황은 여전히 대통령에게 유리하게 굴러가고 있지 않았다.

종로 쪽의 인물들 또한 만만치 않아서 그랬다.

천지평 의원은 심지어 직접 발로 뛰었다.

그가 그렇게 나온 이상 유현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종로가 없으면 미래가 없다는 말…….

사람에 따라 다 다른 뜻일 테고 또 매우 여러 가지 뜻을 품고 있기야 하겠지만, 그 누구도 틀렸다고 할 수는 없는 말이지 않나.

“저건…….”

“불신임이라는 글씨가 보이십니까?”

“그렇게 말하니까 또 그렇게 보이기도 하고. 헌데 그게 무슨?”

유현은 사방이 불바다가 된 와중에 종로 쪽을 가리켰다.

눈앞의 젊은 지휘관의 말처럼 억지로 보면 그렇게 보이나 할 정도로 불명확한 글씨가 떠 있었다.

반대로 말하면 아닌가 하면 아니게 보이기도 한다는 뜻이었다.

허나 지휘관은 당장에 유현을 내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이 사태의 범인이 대통령이라는 걸 종로의 시민들이 알게 되었다는 뜻이죠.”

“사태의 범인이라……. 그게 무슨 뜻인지 알고나 하는 말입니까?”

“대통령이 이 모든 일을 저지른 주제에 다른 사람들을 속이고 지금까지 권력을 유지했다는 말이죠.”

“그게…….”

“말이 되는 말입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해도 소용없는 일이지요.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요.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이 라드 사태는 다른 나라보다 몇 개월 더 빨리 벌어졌습니다. 그걸 그저 언론 통제를 통해 숨겼을 뿐이죠.”

“으음.”

정유현.

그의 이름값은 언제나 그러하듯 먹어 주기 마련이었다.

거기에 더해 머리가 달려 있으면 사실 대한민국의 사태 초기 상황을 이상히 여겨보지 않기가 어려운 일이기도 했다.

팬데믹에서 엔데믹을 선언한 지 얼마 안 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국민들이 통제에 따르는 데 익숙하긴 했다.

게다가 무서운 변종이 돈다는데 뭐 어딜 그렇게 함부로 다니겠나.

허나 그런다고 해서 다 막히나?

그럴 수는 없었다.

SNS의 시대에 모든 정보를 먼저 통제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지금도 아마 잘 뒤져 보면 어디엔가 이상한 자료들의 흔적들이 있긴 할 터였다.

“이번 사태도 보십쇼. 여기 있던 사람들이 정말 반란군이었습니까?”

“그건.”

무차별 포격을 진행한 후 쳐들어왔다.

당연하지만 안에는 생존자들이 꽤 있었다.

뭐…….

소탕 작전 중에 그들도 상당수 죽어 버렸지만…….

여전히 포로가 된 이들이 있긴 했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한결같았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고.

왜 우리를 죽이냐고.

정말 억울해 보였다.

아니, 그 전에 영문을 모르는 것이 맞아 보였다.

“만약 이자들이 반란군이라고 칩시다. 그럼 세브란스나 그 뒤에 식량 생산 기지는 왜 무너뜨린단 말입니까. 머리 따고 마는 거지. 제삼의 세력이 있거나 라드가 움직인 것을 이걸 빌미 삼아 권력 유지에 사용한 겁니다.”

“그…….”

“거기에……. 이번 세균 살포 말입니다. 그거 때문에 정말 라드만 죽었습니까? 오히려 생존자들이 더 죽었습니다. 분당 쪽 가 보셨습니까? 거기…… 그냥 지옥입니다.”

사실 유현도 안 가 봤다.

대충 예상만 했을 뿐이지.

허나 대령은 유현의 지금까지 행적 때문에라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가 두 눈 똑똑히 보기도 했다.

지금이야 깜깜해서 그렇지만…….

대낮에는 한강 따라 흘러내려 가는 시신들을 숱하게 볼 수 있었다.

이전에도 그랬었다면 또 모를 일이겠지만, 시기가 일치했다.

작전이 시행된 바로 다음 날부터 저랬다.

‘그래서야…… 오염이 사라진다고 했던 일주일 후라고 해서 한강 물을 떠다 먹을 수 있겠나……?’

대령은 오소소 돋아나는 소름에 진저리를 치다가 이내 유현을 바라보았다.

그도 사람이다 보니 어디가 옳고 그른지는 사실 느낌만으로도 알 수 있었더랬다.

이쪽이 옳다.

대통령이 나쁜 놈이다.

“그럼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이미 종로 시민들도 대통령에게서 등을 돌린 지 한참입니다. 부대도 적게나마 들어와 있고요. 하지만 대통령이 동원 가능한 부대가 있다면 당장에 무너질 겁니다. 안으로 들어와 우릴 도와주십시오. 시민들은 당신을 필요로 합니다.”

게다가…….

이 길이 딱히 고난에 가득 차 보이지도 않았다.

뭐가 되었건 간에 명분이 중요하지 않겠나?

종로…….

시민들이 있는 곳이다.

아마 이젠 시민들이 있는 유일한 곳일 테지.

그곳의 지지를 받는가 아닌가가 결국, 가장 중요해지긴 할 터였다.

무엇보다 민간인 없이 군대만 가지고 떠돌아다니는 건 오래 버티기 어려운 일이었다.

전에는 생각지 못했던 일인데, 생각보다 군대는 너무 많은 것들을 너무 빠르게 소모만 한다.

이번 전투에서도 보라.

쌈짓돈처럼 꽁꽁 싸매고 있던 중화기 폭탄들…….

이제 남은 게 없다.

어디 가서 다시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닌 물건들이니, 이번 한 번으로 끝난다 이 말이었다.

“알겠습니다. 민간인들이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다면 가서 도와야겠죠.”

“네, 감사합니다. 아마 식사와 잠자리를 준비하고 있을 겁니다. 눈에 차실진 모르겠지만…….”

“아뇨, 아뇨. 응당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일 뿐입니다.”

“어서 가시죠. 거듭 감사드립니다.”

이런 식의 설득이 남은 부대 전부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불신임이라는 불씨는 반포대교 북단의 부대로도 스며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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