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316화 (316/323)

316화 분열 (2)

야합은 아주 빠르게 이루어졌다.

모두의 속내가 같아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각양각색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뭐가 되었건 종로의 시민들은 곧 천지평 의원 그리고 최동호 총리, 박충훈 대령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유현도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었다.

“어, 저거…….”

“정유현 교수 아닌가?”

“그……. 나라 이 꼴로 만든 놈 아닌가……?”

“모르는 소리. 조작이지. 그것도 몰랐다고 하진 말자, 우리.”

정부 측에서는 당연히 프로파간다는 아주 열과 성을 다해 해 온 참이었다.

그 때문에 밖에 있는 이들 중엔 정유현을 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이들도 간혹 있었다.

하지만 안쪽은 오히려 그게 쉽지 않았다.

인터넷이 되는 곳도 있고 하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애초에 사회 지도층이었던 이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접근 가능했던 정보도 많지 않았겠나.

“여러분. 천지평입니다. 이렇게 늦은 시간, 갑자기 모두를 불러들여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드려야 할 거 같습니다.”

천지평은 그렇게 웅성거리는 사람들 앞에서 차분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그만큼 위급한 상황이라는 점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마냥 차분하기만 하진 않았다.

억양이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연습이라도 했나 싶을 정도로 참 잘하는 사람이었다.

“대통령, 우리를 지켜 주겠노라 맹세했던 사람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그는 홀로 청와대에 틀어박혀 숨어 있습니다. 이 사태에 책임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모든 책임은 그에게 있습니다. 이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이 바로 대통령입니다!”

모여든 시민의 숫자는 수백에 달했다.

그에 비해 지금 동원 가능한 병사들은 살아남은 총리 측 병사에 박 대령이 데려온 병사들까지 다 해 봐야 육십이나 될까 하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제는 아주 쉬웠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지금 이 종로에 있는 이들의 특성 때문일 터였다.

그간 지속적으로 통제를 받아 온 탓에 익숙하기도 하거니와 애초에 그런 사람들만 남겨 둔 것도 이유일 터였다.

“그가 이 라드 바이러스를 만들고 또 이 라드 사태가 번지도록 방관한 사람입니다.”

거기에 더해 천지평의 폭로 또한 충격적이었다.

라드 사태가 번지게 했다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이란 말인가.

그 조용히 있던 시민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뭐?”

“말이 되나?”

“아니 어떻게…….”

구체적인 방관의 방법도 터져 나왔다.

“라드의 감염성과 호전성 그리고 신체적인 강력함 등 그 어느 것 하나 미리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사태가 일찍 봉합되었을 때, 즉 예정되었던 대로 선거가 이루어졌을 경우 정권이 교체되었을 때 자신의 과오가 드러날 것을 염려하여 군인들을 사지로 내몰았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대다수의 시민들 또한 죽음으로 내몰았죠. 이 자리에서 고백합니다. 실은 저도 이 사실을 인지한 지 몇 개월 되었습니다!”

대부분 사실이었다.

원래 있었던 일을 떠들어 대는 것만큼 쉬운 일이 어디있겠나.

연기할 필요도 없는 데다가 천지평 정도쯤 되면 국정 감사 때문에도 그렇고, 연습이 많이 된 마당이었다.

물론 다 사실만 말하는 건 아니었다.

인지한 지 몇 개월?

천지평 또한 처음부터 알았을 터였다.

하지만 뭐 어쩌겠나.

내막을 알고 있는 이들은 모두 그에게 동조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바로 폭로하지 못한 것은 두려워서였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까지 대통령 측근으로 있던 이들 중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잘못되었습니까? 여기, 이종범 전 의무사령관님을 보십시오. 이분도 사태를 파악하자마자 폭로하려다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나마 운이 좋으셨죠. 대부분은 죽었으니까요! 네, 사태의 전말을 알게 되자마자 그간 있었던 석연찮았던 일들이 명확해졌습니다. 무서웠습니다. 저도 그렇게 될까 봐요.”

천지평은 아는 이들의 침묵 속에서 홀로 떠들 수 있었다.

유현이나 김태평뿐만 아니라 오예리까지도 모두 역겨움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와 그러한 것을 내색해 봐야 무엇하겠나.

더 커다란 적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작은 적과는 얼마든지 손을 잡아야만 했다.

더욱이 지금 한반도는 전에 없는 위기에 처해 있다는 걸, 모르는 바도 아니었다.

너무 많이 죽었다.

재건에 힘을 써야지 정죄함에 힘을 쓸 수는 없다는 얘기였다.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어야만 하는 인간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때 도움을 준 것이 바로 이 두 분입니다.”

천지평이 가리킨 것은 박 대령과 유현이었다.

그중 먼저 지목된 것은 군복을 입은 대령이었고, 자연히 그가 먼저 입을 열게 되었다.

“안녕하십니까, 박충훈 대령입니다. 저는…….”

대령은 말주변이 뛰어난 사람은 아니었다.

아마 거짓말을 시켰더라면 금방 들통이 났거나 적어도 산통을 깼을 터였다.

하지만 천지평은 프로 정치꾼답게 사람 보는 눈도 정확했던지 딱 그가 할 수 있는 일만 시켰다.

즉, 음모를 인지하고 쿠데타를 일으키려다 말고 안으로 숙이고 들어와 기회를 노리고 있었단 말만 하게 되었다.

그리고 천 의원의 신호에 맞추어서 쳐들어왔다는 말까지.

“안녕하십니까, 정유현입니다.”

그에 비해 유현은 어떠한가.

언변으로 말할 것 같으면 천지평도 미처 따르지 못할 터였다.

무엇보다 유현에게는 경험과 명분이 있었다.

“조금은 긴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지루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반드시 필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그러니까 사태를 인지하게 된 날부터의 이야기가 유현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박기태의 탈원, 수락 마을에서의 사고 그리고 형사들의 죽음에 이어 박원상의 합류, 테러 그리고 사태 발발까지.

이것만 해도 안에 있던 이들에게는 충격과 경악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종로가 아닌 바깥의 일, 그러니까 날것 그대로의 사태 이후의 이야기는 더했다.

세종시에서 있었던 일, 쫓기던 일, 무너지던 재난 본부와 수원에서 있었던 김선태와의 전투 그리고 고터, 세브란스와 콜레라까지.

“아니……. 그럼 대통령이 바깥에 있는 사람들까지 다 죽였단 말입니까?”

“그, 그보다 그럼 우리는 어찌 되는 겁니까? 논밭이 다 날아갔다고……?”

“물? 물도 오염이 되었고?”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삽시간에.

“잠시, 잠시만.”

천지평이 당황한 얼굴로 나섰다.

마치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는 것처럼.

하지만 이미 다 예정되어 있었던 일이다.

바깥의 비극?

그것도 충격일 터였다.

하지만 이미 오랜 세월 밖은 밖, 안은 안이라는 생각으로…….

그러니까 꽤 오랫동안 눈 감고 귀 막고 살아온 이들에게 뭐 그리 큰 충격이 되겠나.

하지만 세브란스 근처에 조성되어 있던 식량 생산 기지가 무너지고, 또 주변을 지키던 군부대가 와해되고, 심지어 지들끼리 치고받고 싸우기 시작했다는 건 남의 일이 아니지 않나.

이제 바깥의 사태가 드디어 안으로 밀고 들어오고 있음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안에 있는 이들은 그들의 유능함과는 별개로 지금 당장 그만한 어려움에 대처할 수 있는 이들이 거의 없었다.

“잠시만 제 말을 들어 주십시오!”

당연하게도 천지평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우두머리가 없으면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그랬다.

무작정 이들의 잘못이라고만 할 일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그렇게 지내 왔으니까.

뭐…….

상황이 뒤바뀌고 시간만 주어진다면 이 중 몇몇은 아마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거나 또는 본인도 몰랐던 훌륭한 리더로서의 자질을 꺠닫게 되긴 할 터였다.

하지만 그 시간이라는 게 그리 짧은 세월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조용, 조용.”

“쉿.”

당연하게도 지금 당장 뭘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수동적으로 듣는 수밖에 없다, 이 말이었다.

그렇게 다시 조용해지는 가운데 천지평이 입을 열었다.

“대통령은…… 적입니다. 적이 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적이었습니다! 그를 어떻게든 해야 합니다. 다행히……. 대통령은 김선태와 더불어 세브란스를 담당하고 있던 중장마저 권력욕에 의해 적으로 돌린 나머지 지금 그를 따르는 이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종로의 시민들이 여전히 그를 따르는 줄 안다면, 군인들 또한 민의에 따라 대통령을 따르게 될 겁니다!”

문민통제.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옳다.

쿠데타…….

군인이 정부를 뒤엎는 행위가 옳을 리가 있겠나?

고등 교육을 받지 못한 상황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거기에 더해 지금 서울 근방에 있는 부대들은 대통령의 정치적 모략으로 인해 하나로 모이질 못하고 있었다.

김선태 계파가 그나마 거대했었지만 이미 그것도 와해된 상황이었다.

이건 대통령이 잘했다고 할 수 있었다.

다만 그렇게 만들고 나서 모든 부대를 자기 뜻대로 주무르고 있다는 것은 잘못이었다.

애초에 문민통제가 필요한 까닭이…… 법대로 처리하기 위해서인데, 지금은 독재를 넘어 절대자로 군림하고자 하고 있기에 그랬다.

“절대로…… 대통령이 이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그에 더해 남은 전기를 외건물 밝히는 데 써야 합니다! 불로 글씨를 써야 합니다. 불신임. 이것이 좋겠습니다!”

너무 많은 글자는 쓸 수 없다.

그러기엔 불이 들어오는 높은 건물이 모자라니까.

“수동으로 해야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자동 점등 장치는 글씨가 아닌 그저 대통령의 치적을 내세우기 위한 일환으로만 쓰였으니까요.”

게다가 사람 손으로 일일이 계산해서 켜야 했다.

글씨가 많으면 이게 쉽겠나?

느긋하게 할 수 있는 일도 아닌데?

총력을 기울인다면 되겠지만, 대통령의 진입을 막아야 했다.

청와대에 있는 병력…….

그게 그렇게 많은 병력은 아니겠지만, 종로에 있던 병력을 날려 버리는 데에는 문제없을 정도는 되기 때문에 그랬다.

“여러분들 중 자원자를 받겠습니다!”

무엇보다 믿을 수 있어야 했다.

기껏 글씨를 켜라고 했더니 이상하게 나오면 문제 아닌가?

뭐…….

단지 이 글씨만으로 뭐가 될 거라는 생각은 없긴 했다.

어차피 실질적인 설득은 발로 뛰어야 할 터였다.

다만 해 놔서 나쁠 건 없을 터였다.

보라고, 종로의 민의는 대통령을 저버렸다고 하기 딱 좋은 증거가 될 테니.

“제가 나서겠습니다!”

미리 심어 놨던 배우와 의사를 따라 다른 이들이 덩달아 나서기 시작했다.

꽤 많은 이들이 나서 주었다.

나머지?

나머지라고 해서 할 일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이들은 군대를 막아야 했다.

‘총을 쏠까……?’

민간인을 향해 발포할까?

뭐…….

사실 이게 처음은 아니긴 했다.

사태가 터지고 나서 얼마나 많은 민간인들이 군인들의 손에, 즉 대통령의 명령에 의해 희생되었나.

당장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역 안에는 여전히 많은 시신들이 널브러져 있을 정도니 말 다 한 셈이었다.

하지만……

종로는 정부 측 인사들에게 상당히 특별한 곳이었다.

이곳을 향해 발포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면, 아마 청와대 측 부대도 와해될 가능성이 있었다.

“자, 나머지 분들은 이쪽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 천지평은 시민들을 청와대에서 종로로 향하는 입구 쪽으로 내몰았다.

이들 중 몇 명 정도는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할 정도로 머릿속이 꽃밭인 것은 아니었다.

허나 그는 분명 웃고 있었다.

드디어, 권력이 그에게 넘어오고 있었으니.

비록 만신창이가 다 된 마당이지만…….

남의 것이 아니라 내 것이 되어 준다면 웃지 못할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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