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화 분열 (1)
부우웅
대통령은 그대로 청와대로 내뺐다.
‘이종범……. 그 자식이 뭔가 한 거야.’
사라져?
다리 불편한 놈이 그 손바닥만 한 곳에서 대체 어디로 사라진단 말인가.
이건 빼돌린 거라고 봐야 마땅한 일이었다.
‘총리……. 그 자식…….’
아무리 생각해도 총리가 수상했다.
사실 지금…….
어떻게 봐도 위기지 않은가.
김선태를 이용해 수원을 정리하고자 했던 계획이 실패했던 것이 시작이었다.
명성이 깎이는 것까지 다 감수하고서 라드 생산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했다.
내부에서 말이 안 나왔을 턱이 없었다.
아마 다른 쓸 만한 사람들이 있었다면 더더욱 잘라 냈을 테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그때 그랬지. 그렇게 소모할 거였으면 차라리 모아서 다른 곳을 하나 더 개간했어야 했다고.’
총리…….
고작해야 보건복지부 장관이나 했던 놈 아닌가?
말이 장관이지, 역대 보건복지부 장관이랍시고 했던 놈들 중에 기억에 남는 놈이 하나라도 있나?
다 같은 장관이 아니란 얘기다.
그런 놈을 총리로……. 사실상 종로, 그러니까 서울의 시장으로 꽂아 준 것이 자신인데 이렇게 나와?
‘개자식들. 다 개자식들이야.’
팔 잘린 채 도망 온 김선태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냥 죽거나 또는 멀쩡히 왔어야 했다.
죽었으면 김선태 계열로 분류되던 놈들 모두 정리가 되었을 것이고…….
멀쩡히 왔다면 저 새끼 부하 다 죽이고 혼자 도망 온 놈이라고 매도하면 되었을 텐데…….
팔이 잘린 채로 왔다 보니 둘 다 여의치가 않았다.
망할 놈.
정치적인 계산이 되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럴 만한 머리는 있는 놈이니.
대통령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그였다면 실패했을 때 죽었다.
그랬을 거다.
‘변수가 하나 있다면……. 세브란스인데. 설마 김선태가 그것도?’
공교롭다.
김선태가 살아 돌아오고, 울며 겨자 먹기로 서대문 쪽 지휘권을 넘겨주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브란스가 날아가지 않았나.
그분만 아니라 뒤에 개간해 두었던 곳까지 다 날아갔다.
종로에 있는 놈들도 거기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는 놈은 적었다.
김선태…….
‘그놈이 모르는 건 적지.’
신종 콜레라를 제외하면 아마 거의 다 안다고 봐도 무방할 터였다.
죽일 수 있을 때 죽였어야 했다.
그게 실수였다.
그게 대통령의 잘못이라면 잘못일 터였다.
하지만 지나간 일에 마냥 후회만 하고 있는 건 모자란 놈들이나 할 만한 짓 아닌가.
그래선 안 되었다.
해결책은 뒤에 없다.
늘 앞에 있을 뿐.
“이봐.”
“네, 각하.”
“지금 믿을 만한 부대가 어디어디에 있지.”
해서 대통령은 청와대에 돌아오자마자 우선 지휘관부터 불러들였다.
“믿을 만한 부대라고 하시면…….”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믿을 수 없는 군부대가 있다는 건 사실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나라를 망가뜨리기 위해 일부러 정보를 통제하고 실제로 몇몇 부대는 아예 박살 내놓은 대통령이라면 믿을 수 있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었다.
물론 그런 상황임을 기회 삼아 동아줄 잡고 올라온 지금 이 지휘관 같은 놈들도 있긴 했다.
“뭐든 할 수 있는 놈들. 특히 내가 내 바로 곁에 둬도 될 만한 놈들.”
“아. 그렇다면 지금 대부분 다리 경비대……. 정리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부대는 송구스럽지만 우군이긴 하오나 제 입김이 닿진 않습니다.”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놈들이 그럼 몇이나 있지?”
“지금 여기 있는 애들하고……. 급한 대로 불러 모으면 한 50명은 넘을 겁니다.”
“50이라.”
훈련도…….
어느 정도일까.
김선태가 키웠던 부대에 비할 수는 없을 터였다.
놈이 실력은 있지 않았나.
하지만…….
종로?
거기에 있는 놈들은 말이 군대지 그저 총 든 병신들일 뿐이었다.
수가 대등하다고 해도 날려 버릴 수 있단 얘기.
문제가 있다면 라드인데…….
“중화기도 있나?”
“있긴 합니다만, 이번 전투로 너무 많은 소모가 있어서…….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군.”
보급을 받지 못하는 군대는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빨리 약해지는 법이다.
특히 현대화된 군은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유사 이래 끊임없이 소모만 하는 존재가 군인일진대, 21세기 군은 애초에 희귀 자원들까지 다 소모하지 않나.
그중 그나마 기름은 아껴 두고 있긴 했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었다.
이번 기습으로 인해 거의 다 날렸다.
“그래도 할 수 없네. 다 긁어모아서…… 종로를 쳐야 하네.”
“네? 종로를……?”
“그래.”
“거긴…….”
이제 대한민국 시민이라곤 거기뿐이지 않나?
종로 말고는 문명의 세례를 받은 곳이 없다.
물론 전기가 들어오는 곳은 더 있지만 거긴 군대다.
군대는……
글쎄.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문명을 세우는 조직이라기보다는 파괴하는 조직이다.
“반란군이 점거했어. 라드의 습격과 함께……. 놈들이 라드를 이용했네.”
“네? 어찌 그런.”
“권력에 미친 놈들이 뭔들 못하겠나. 시민들이 위험에 빠져 있네. 어서 출동해야 해.”
“아……. 네, 각하.”
이게 정말일까?
정말…….
반란일까?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명분이 생겼다.
어차피 군인은 정치적인 고려를 할 필요가 없지 않나.
지휘관은 경계를 붙인 후, 재빨리 밖으로 향했다.
제 딴에는 최대한 서둘렀지만, 물리적인 시간은 모자랄 수밖에 없었다.
종로에 먼저 진입하게 된 외부 군은 천지평의 부름에 응한 박 대령이었다.
병력은 고작해야 30명 남짓했지만 그럼에도 그 위력은 만만치 않았다.
이 부대는 기습에 동원되지 않았기 때문에 기동하는 장갑차도 한 대 있었고, 또 두돈반 트럭도 꽤나 많이 동원했기에 그랬다.
쾅
심지어 내부에 있던 군인들 중 태반은 이미 라드에 의해 상한 상태.
무주공산이었다.
“물러…… 물러납니다.”
라드가 문제가 되었지만, 건물에 틀어박혀 쏴 대는 유현 일행조차 어찌하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피해를 감수할 수 있었다면 모르겠지만 이미 몸빵용으로 데려온 놈들은 거리에 흩어져 있던 얼치기들 처리하는 데 다 써 버렸다.
무리하면 이까짓 병력 정도야 뭉개 버릴 수 있겠지만…….
그 와중에 거대 개체가 줄거나 하면 오히려 손해였다.
-어차피 병력을 줄이긴 해야 합니다! 우리 먹을 것도 없어요!
뭐…….
이런 조언이 없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러한 점을 고려한다 해도 아직은 아니었다.
‘적이 남아 있지 않거나 여력이 거의 없다면 몰라도……. 이렇게 병력이 있다면 사리는 게 맞아.’
먹을 거 없다고 애들 줄였다가 싸울 일 생기면 어쩐단 말인가.
알아낸 바에 의하면 적어도 한반도 내에는 딱히 살아남은 무리가 없을 터였다.
씨가 말랐을 거다.
대통령에 의해.
콰앙
심지어 놈들은 포도 쏴 대고 있었다.
뭐…….
제대로 떨어지고 있진 않았지만.
초거대 개체나 거대 개체들 중 일부가 저 소리에 동요하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라드도 빠져나가게 되고, 결국, 박 대령이 안에 들어왔을 때 마주하게 된 것은 길바닥에 널린 주검들과 천지평 의원을 포함한 유현 일행 그리고 그 뒤에 엉거주춤 서 있는 총리와 병사 몇이었다.
‘대통령……. 이 개자식이.’
온다고 했을 때 그걸 보내 준 것이 잘못이었다.
‘아니, 아냐. 기왕 이렇게 된 거…….’
뭐가 되었건 대통령은 여기서 나갔다.
다시 돌아올까?
여전히 군 통제권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 스스로 많은 부분을 놓아 버린 감이 있었다.
일단 김선태…….
아직도 그놈을 왜 버렸는지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굳이 그럴 게 있었나?
‘어차피 종로를 통제하기 위해서는 내가 필수야.’
총리는 허리를 편 채, 최대한 멀쩡한 표정을 짓기 위해 노력 중이었다.
그사이 박 대령은 천지평 의원과 마주했다.
“오랜만입니다.”
“그래,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지.”
“그땐…… 그땐, 감사했습니다.”
“그래.”
나라가 망했다.
그것도 한순간에.
어디 외세에 의한 침략 때문도 아니고 환경 오염 때문도 아니고, 기후 변화 때문도 아니고 출산율 때문도 아니고 별 이상한 현상에 의해 망했다.
“저기 정유현 교수가 있네.”
“아……. 아, 교수님.”
우연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폭로가 이어졌다.
정유현 교수라는 사람의 입에서.
지금 청와대에 앉아 있는 작자가 범인이라는 폭로가.
나랏밥 먹는 사람들이다 보니 군인들은 대개 어떻게든 정유현의 말을 헛소리 취급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머리 돌아가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었고, 박 대령은 그중 하나였다.
제일 먼저 떠올린 생각은 쿠데타였지만 그건 또 군인 된 입장에서 안 될 일이었다.
-멀리 보게. 멀리.
그때 천지평의 조언이 있었다.
일단 안으로 숙이고 들어와서, 기다리다가……. 기회를 엿보자고.
군인의 본분은 시민을 지키는 것인데 여기도 시민들이 있으니 그들부터 지키고 있자.
솔직히 속내가 들여다보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같은 당이라 해도, 대통령과 천지평은 뉴스만 봐도 다른 계파라는 걸 알 수 있을 만큼 소원한 사이였으니.
애초에 경선 때도 민 후보가 달랐을뿐더러 지금 대통령의 치부가 될 수 있던 것을 폭로한 것도 천지평이었다.
-어떻게 보일런지는 알고 있어. 하지만 자네에게만큼은 내가 진심일 수밖에 없지 않던가?
친한 군 지휘관이 안에 있으면 아무래도 힘이 생기지 않겠나.
아주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 보니 지금 납작 엎드리는 것만으로는 모자랐을 터였다.
그러한 것이 보이긴 했지만…….
뭐가 되었건 윈윈이 될 수 있는 사이긴 했다.
쿠데타라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도 아니고, 또 자살을 하는 것도 너무 억울한 일이었고.
해서 반쯤 속아 준다는 생각으로 들어왔는데 이런 날이 올 줄이야.
“모르시겠지만, 오랜 팬입니다.”
박 대령은 흐뭇한 미소와 함께 인사를 건넸다.
그걸 보던 김태평은 역시 대통령보다는 이쪽이 나은 줄이었다고 생각했다.
‘옳은 줄이기도 하지…….’
그 줄을 잡는다고 해서 자신도 옳은 사람이 될까.
그럴 수는 없다.
“안녕하십니까, 최동호입니다.”
그때 보건복지부 장관이었던, 총리가 다가왔다.
얼굴만 보면 적이 아니라 무슨 개선군이라도 마주하는 듯했다.
상황 파악을 못 할 만큼 멍청한 인간은 아니지 않겠나.
박 대령이야 헷갈리는 상황이었지만…….
천지평은 이미 그의 속내를 간파한 지 오래였다.
‘대통령을 버리겠다……?’
아니, 거기에 그치지 않고 계산까지 끝마쳤다.
‘저놈이 여기 여론을 붙잡아 주면…….’
바깥에서 움직일 수 있는 군부대야 당연히 대통령이 훨씬 많을 거다.
하지만 군인은 기본적으로 민간인을 상대로 총부리를 겨누기 어려운 존재다.
명령이 있다면 가능하긴 하겠지만…….
상대에게 죄가 없다면, 명분이 있다면 오히려 돌아설 수 있다.
막말로 대통령의 사병이라 할 만한 놈들은 그렇게 많지도 않지 않나.
고대 사회라면 또 모르겠으나, 21세기 민주주의의 세례를 잔뜩 받은 현대인에게 나라를 움직이는 건 결국, 총칼이 아니라 민의다.
“아, 인사하게. 총리. 대통령의 압제에 맞서 온 분이야.”
“아……. 네, 반갑습니다. 박충훈입니다.”
“네, 반갑습니다. 천 의원님을 돕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