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4화 박원상과 아내 (2)
“씨발, 쏴!”
“뭐 하……. 으악!”
박원상이 아내 현정을 들쳐 메고 뛰는 동안, 뒤쪽으로는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 펼쳐지고 있었다.
욕설과 비명, 총성 그리고 라드가 내질러 대는 고성까지.
이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진 결과, 종로는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얌전히 있던 시민들까지 다 깨서 공포에 떨고 있었다.
“내부 통제가…….”
“어차피 방 안에서 뛰어나올 수 있는 사람도 얼마 없을 겁니다.”
“엉망이로구만…….”
“낯선 상황일 테니까요.”
유현과 김태평은 순식간에 공포에 짓눌려 버린 듯한 오피스텔을 올려다보았다.
딱히 움직이지는 못하면서 연신 바깥만 보고 있는 이들이 태반이었다.
무기도 없었다.
그 자리에서 뭘 만들 생각도 못 하고 있었고.
그 꼴을 보고 있자니 마치 사태 초반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일 지경이었다.
‘확실히…… 이 안에 있던 사람들은 온실 속의 화초로구나.’
바깥에서 온 유현에게 이토록 무력한 모습은 참으로 낯설기만 한 일이었다.
밖에서는 어린아이들조차 라드의 위협이 있을 때 마냥 숨거나 하지 않았다.
뭐라도 꼬나 쥐고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했다.
물론 그 전에 뒷구멍으로 도망가건 뭘 하건 했겠지만.
하여간 오피스텔은 전반적으로 우왕좌왕하고만 있을 뿐, 별다른 액션을 취하지 못하고 있었다.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우르르 몰려나오기라도 했어 봐라.
인파에 휩쓸려 작전이고 나발이고 다 망해 버렸을 터였다.
“아, 이순규 쪽은…… 왔을까요?”
“아마도요. 밖에서 상황 보고 있을 겁니다.”
이종범 행세를 했던 조영상 그리고 그 휠체어를 밀고 나갔던 구급대원이 지금쯤이면 그들에게 닿고도 남았을 시간이지 않나.
총소리 때문에 혹 걸렸나 하는 걱정도 들었었지만 돌아가는 꼴을 보아하니 딱히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 둘은 적어도 이 사태와 무관했다.
그렇다면 별 탈 없이 한글 박물관까지 갔을 것이고, 대기 중이던 인원을 끌고 왔을 터였다.
상황이 급변할 것이 예상되어 무리해서라도 일행을 끌고 오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유현과 김태평 모두 내린 까닭이었다.
“이래서야 도움이 될 수 있을는지 어쩔지 모르겠지만요.”
“그러게요. 대체 라드가 얼마나 온 건지…….”
“수가 아주 많지는 않을 거예요. 고터 주변에 있던 그놈들……. 그거 다 김민수 부하들이었습니다.”
“하긴, 이제 와 충원을 했다고 해도 쭉정이겠죠. 아마 남산에서 봤던 게 전부라고 해야 할 겁니다. 뭐……. 그것도…….”
“그것만 해도 여기 무너뜨리는 건 일도 아닐 거 같긴 한데.”
있지도 않은 이종범 전 의무사령관을 잡겠답시고 불을 죄 켜 놓은 탓에 종로 내부는 대낮처럼은 아니더라도 아주 잘 보였다.
그렇게 보고 있노라니, 종로 내부의 병사들이 참 엉망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총질을 하긴 하는데…….
제대로 쏘는 놈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심지어 수색을 하다가 맞닥뜨린 것이다 보니 지들끼리 쏴 죽이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아, 저게 오 형사가 말한 부상자인 거 같은데요.”
“맞는 거 같군요. 뒤에 업힌 사람은 이미 죽은 거 같은데…….”
그렇게 사방을 둘러보고 있으려니 이내 박원상이 오피스텔 앞에 당도했다.
늘 깔끔한 복색을 갖추고 있었던 그는 이제 몰라볼 만큼이나 추레해져 있었다.
저지능체에게는 식량도 아무거나 주어질뿐더러 입고 있던 옷도 제대로 된 건 빼앗아 가기에 그랬다.
무엇보다 현정을 보호하며 다니느라 이리저리 굴렀던 탓에 더 엉망진창이었다.
심지어 지금은 현정에게서 흘러나온 피와 내장 등에 의해 오염이 되어 있다 보니 알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자, 이쪽으로!”
“으……. 네.”
박원상도 유현을 단번에 알아보진 못했다.
너무 지치기도 했거니와 유현 쪽이 밝다 보니 시야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유현이 이 안에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말이 안 되는 일이지 않나.
“어…….”
오히려 먼저 알아본 것은 김태평이었다.
괜히 요원 노릇 한 게 아니라는 듯, 그는 그 날카로운 안목으로 박원상을 용케도 알아보았다.
“잠깐, 정지!”
해서 총을 겨누었다.
상황을 알지 못하는 천지평 의원과 그의 비서들이 당황한 채 김태평을 바라보았다.
물론 그뿐이었다.
거기서 더 뭘 하진 못했다.
총이야 들고 있지만 주길래 받은 것일 뿐 아니겠나.
심지어 천지평 의원은 군면제이다 보니 단 한 번도 사격을 해 본 적도 없었다.
사태가 벌어진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늘 안전하고 풍족한 곳에만 있어 왔다.
“제발……. 제발.”
박원상은 그제야 김태평부터 알아보았다.
영문은 알 수 없었다.
알 필요도 없었다.
지금 당장은.
그의 아내가 죽어 가고 있었으니까.
비록 더 이상 그를 향해 웃어 주기는커녕 알아보지도 못하게 된 그녀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박원상이 보기엔 여전히 아내는 아내였다.
“뭐야. 뒤에…….”
“너, 박원상이야?”
그렇게 대치가 시작되고 수 초가 흐른 후에야 유현도 박원상을 알아보았다.
거의 동시에 박원상도 유현을 알아보았다.
둘 사이에 흐르는 감정은 참으로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이 개새끼……. 너 때문에…….’
유현에게 박원상은 이제 더 이상 친구라 할 수 없는 존재가 된 지 오래이지 않나.
처음 사태부터 책임이 있는 박원상은 중간에 개과천선하는가 싶더니, 결국 이 망할 콜레라를 만들어 버렸다.
숱하게 많은 사람들이 죽어 버렸다.
눈앞의 이 친구 때문에.
‘너……. 결국, 내 아내를…….’
박원상 또한 유현에 대한 감정이 좋지만은 못했다.
지켜 주겠다고 해 놓고 지켜 주지 않았으니까.
자초지종을 다 아는 건 아니지만.
눈앞에 보이는 결과가 말해 주지 않나.
유현은 멀쩡히 사람이고, 아내인 현정은 라드가 되어 버렸다.
“제발……. 제발 살려 줘. 난 죽여도 되니까. 현정이를 제발.”
박원상의 눈에 불온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잠시뿐이었다.
그는 이내 무릎을 꿇고 빌기 시작했다.
현정을 바닥에 내려놓으면서였다.
“음.”
오피스텔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을 통해 살펴본 현정은 기실 이미 시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낯빛은 벌써 하얗게 질려 있었다.
더군다나 배는 아예 엉망이었다.
피만 흘러나오고 있는 게 아니라 내장과 변까지 나와 말 그대로 진창이었다.
이걸 대체 어떻게 살린단 말인가.
더군다나, 눈앞의 현정은 사람도 아니었다.
라드였다.
“제발! 그렇게 보고만 있지 말고……!”
“안 돼, 이건. 무리야.”
“너…… 네가 버린 거잖아! 너 때문이잖아!”
“흐흐. 그런 말이 용케도 나오는구나, 넌.”
유현은 눈앞에서 울부짖는 박원상을 보면서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미소에 천지평 의원과 비서들이 저도 모르게 팔뚝에 돋아난 소름을 훑었다.
그만큼 박원상의 지금 모습은 처절하기 그지없었다.
허나 유현은 놀랍도록 냉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유현 스스로도 좀 놀랐다.
이제 나는 정말 제대로 된 사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한때…….
박원상은 그의 가장 친한 친구 중 하나이지 않았나?
가는 정만큼 오는 정도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필요에 의해서였건 뭐가 되었건 간에 함께 교류하고 또 공유해 온 시간이 어디 가는 건 아니었다.
“제발……. 이렇게 빌게! 내가 잘못했어.”
“그래도 소용없어.”
유현은 허공 어딘가를 맴돌다, 아무 의미 없는 곳을 향해 멈춰 버린 현정의 시선을 내려다보았다.
죽었나?
글쎄, 모르겠다.
사람 목숨은 생각보다 쉽게 끊어지기도 하지만 또 생각보다 질기기도 한 법이니까.
게다가 이건 라드다 보니 또 다를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의미 없는 생각이었다.
절대 살릴 수 없다.
“너……. 너!”
탕
박원상은 그 냉정한 반응에 유현에게 달려들었고, 유현의 총에 허벅지를 맞아 뒤로 나뒹굴었다.
애초에 총 든 사람들에게 이제 갓 라드가 된 놈이 달려든다는 것부터가 어불성설이었다.
뭐…….
사태 초반의 어설픈 인간들, 그러니까 지금 뒤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천지평 의원 일행들 같은 놈들이라면 또 모를 일이긴 했다.
아마 당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유현은 사태 초반부터 그 선두에 서서 싸워 온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었다.
“으윽……. 윽.”
박원상은 순식간에 박살 나 버린 우측 허벅지 뼈와 무릎 슬개골을 내려다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유현은 불필요하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대신 그저 목소리를 높였다.
어차피 어지간한 소음은 다 묻혀 버리고 있는 상황이지 않나.
여전히 종로 한편에서는 병사들과 라드 간의 싸움이 한창이었다.
아무리 어설픈 놈들이라 해도 총은 쏘고 있으니, 아무래도 고지능체가 뒤섞인 라드라 해도 마냥 쉬운 상대는 아닐 터였다.
“이렇게 될 줄 몰랐던 건 아닐 거 아냐.”
“뭘……. 나는 애국한 거야. 나쁜 건 대통령이지.”
“뭐……. 나도 네가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어어, 잠깐, 잠깐!”
게다가 얘기를 더 길게 이어 나갈 생각도 없었다.
박원상.
별 쓸모도 없게 된 놈 아닌가.
남산에라도 얌전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면 또 모를 일이었다.
아니면 저쪽 라드들 중에 중추에 위치에 있든지.
뭐……. 그렇다 해도 믿을 수 없는 놈이다 보니 쓸모없기로 치면 매한가지였겠지만.
탕
“크악.”
“아, 빗나갔네. 미안하게.”
유현은 망설임 없이 다음 방아쇠를 당겼다.
탕
이번엔 제대로 맞았다.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박원상이었던 라드가 툭 하고 쓰러졌다.
공교롭게 아까 내려놨던 현정의 시신과 꼭 포개져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라드였습니다. 박원상하고 현정이었어요.
-아.
그 소란에 오예리 형사에게서 무전이 왔고, 유현은 답을 해 주었다.
정작 유현은 별 느낌이 없었지만 둘 사이의 관계를 알고 있는 오예리는 뭐라 할 말이 없어 그저 입을 다물게 되었다.
아무튼,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투를 비단 이쪽에서만 바라보고 있는 건 당연히 아니었다.
대통령과 총리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나름의 경호 병력과 함께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안 되겠군.”
둘 다 딱히 전투를 치러 본 경험이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머리 굴러가는 거 하나는 뛰어난 만큼,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청와대로 가야겠어.”
“네? 여길 버리겠다고요?”
“그럼 어쩌겠나. 다 죽어?”
“하지만 여기엔 시민들이…… 사실상 대한민국의 마지막 시민들 아닙니까?”
총리의 항의에 대통령은 어깨를 으쓱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 않나.
마지막 시민들이었다.
나머진 다 죽었으니까.
뭐, 산발적으로 살아남은 이들이야 있긴 하겠지만, 그걸 언제 찾아서 규합하나.
“청와대에서 병력을 이끌고 올 거야. 자네가 버티고 있게.”
“지금 여기 있는 병력 다 가도 될까 말깐데 어떻게…….”
“몰아내라는 말이 아니잖아. 건물을 지키고 있으라고. 내가 그사이에 청와대 병력하고 주변 병력 끌고 올 테니까. 기습이라 그렇지, 시간만 있으면 상대하는 게 어렵지 않아.”
“그…….”
총리는 찜찜함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의 말 또한 틀린 말은 아니긴 했다.
라드의 기습이니만큼, 시간만 주어진다면.
제대로 된 병력만 온다면 막을 수 있을 터였다.
피해야 있겠지만…….
“알겠습니다.”
해서 총리는 고개를 숙였고, 대통령은 끌고 왔던 부대와 함께 서둘러 종로를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