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3화 박원상과 아내 (1)
“지금이 좋겠습니다.”
“저 새끼들 뭐 하는 거지?”
“그건…… 저도 잘.”
박기태는 김민수, 구우준 등을 대동한 채, 종로 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려다보고 있다는 말이 아주 적합한 것은 사실 아니었다.
그저 버려진 건물 위에서 지켜보고 있을 따름이었으니.
그나마도 아주 높이 올라가 있던 것도 아니었다.
라드가 되었건, 인간이 되었건.
아니, 모든 동물들에게 험악한 세월이지 않나.
박기태도 힘을 아껴야만 했기에 기껏해야 6층 정도 되는 곳에 자리를 잡은 참이었다.
평소라면 그래도 나았을 텐데, 지금은 우선 먹을 물도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나마 남산에서 털어 온 물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탈수 증세로 몇 놈은 죽었을 터였다.
신진대사가 활발하다는 것은 그만큼 물의 소모가 극심하다는 것을 의미했으니.
“아무튼, 지금이 기회다 이거지.”
“네. 바깥 경계는 완전히 개판입니다.”
“그렇긴 하지. 그래, 확실히 그랬어.”
해서 어중간한 곳에 있었는데, 그런 그들에게조차 지금 종로의 모습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우선 이 정도로 가까운 건물에 자리 잡을 수 있었다는 거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원래 같았으면 주변 경계가 상당히 삼엄했을 테니까.
허나 지금은 경계는커녕 쥐새끼 하나 보이지 않았다.
샅샅이 뒤진 것은 아니다 보니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아무도 지키는 사람이 없는 듯했다.
“안에서 뭔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 같은데…….”
“네, 바깥에서 구원군이 올 일도 없을 거 같습니다.”
“좋아, 그럼 가 보지.”
그래도 어딘가에 모여 있을 거라 생각했다.
총 든 놈들은 모여 있을 때, 특히 높은 곳에 있을 때 무서운 법이니.
헌데 지금 저건 뭔가.
종로 바닥에 병사들이 둘씩 짝지어서 다니고 있었다.
그 수가 절대적으로 적은 건 아니었다.
그래도 몇십은 되었으니.
하지만 모여 있지 않고, 은폐, 엄폐물이 없이 개활지에 있는 인간이라면…….
라드에게 있어서는 그리 두려울 만한 존재는 못 되는 법이었다.
자박자박
해서 박기태는 무리를 이끌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물경 백을 헤아리는 무리였다.
이것도 많지만, 원래 김민수의 부하들은 이것보다 훨씬 많았지만, 나머지 것들은 김민수가 강북에서 작전을 행하는 동안 콜레라에 의해 싹 다 죽어 버렸다.
김민수는 아쉬움에 혀를 찼지만, 박기태로서는 그럴 것도 없었다.
갇혀 있다가 나왔는데 이만한 무리의 장이 된 마당 아닌가.
아마 상대가 일반적인 라드, 그러니까 지능이 낮은 놈이었다면 적대는 하지 않을지언정 지금처럼 무리 전체를 곱게 넘겨받기는 어려웠을 터였다.
“가는 길에 돌 같은 거 있으면 다 들라고 해.”
“네.”
허나 김민수는 병원에서도 보기 드물 정도의 고지능 개체였다.
구우준이라는 놈도 그랬고.
덕분에 그는 온전한 부대는 이끌고 무려 종로로 향하고 있었다.
감개무량이라는 말이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존재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정말 아무도 없군요.”
구우준은 늘 그러했듯 지금도 선두에 서 있었다.
흔적을 찾고, 추적하는 데 능한 놈이니만큼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여간, 놈은 상당히 깊숙이 들어갔다가 돌아와서는 이렇게 보고했다.
“그래?”
“네. 멀리서 보니 저놈들 뭔가 찾고 있는 거 같습니다.”
“뭘 찾는 거지?”
“사람 같은데……. 내부에서 문제가 발생한 모양입니다.”
“반란 같은 건가.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 조용했는데.”
박기태는 반란을 떠올리다가 이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다 못해 라드끼리의 싸움도 상당한 소음을 수반하기 마련이었다.
주먹질만이 아니라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와 고함, 비명 등이 있으니까.
허나 박기태는 일행을 이끌고 이 주변을 떠도는 동안 그야말로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그저 고요하기만 했다.
“음……. 그거까지는 저도 잘.”
“탓하는 건 아냐. 그냥 궁금한 거지. 뭐……. 알아볼 방법이야 많지.”
잡아서 물어보면 된다.
라드 앞에 선 인간은, 그게 평범한 인간이라면 벌벌 떨면서 아는 것을 다 실토하기 마련이니까.
특히 일반적인 라드가 아니라 말하는 라드 앞에 서면 더더욱 그렇게 된다는 걸 박기태나 김민수나 익히 알고 있었다.
본능에 각인된 공포 같은 것이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고지능체들은 그러한 점이 바로 라드가 인간에 비해 더 우월한 존재라는 증거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갖고 있었다.
고양이 앞에 선 쥐 같은 몰골을 보고 있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 것도 이상한 일일 터였다.
“가지.”
“네.”
그렇게 생각을 굳힌 박기태는 안쪽으로 더 들어가기 시작했다.
“으억!”
“뭐, 뭐야!”
병사들은 나름 무장을 한 채 돌아다니고 있었다.
처음에는 긴장도 했더랬다.
제대로 된 작전에 투입되지 않았던 이들이 태반인 부대다 보니, 실탄이 장전된 채 돌아다닌다는 것만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추적 대상이 휠체어가 없으면 움직일 수 없는 이종범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는 데다가, 아무 일 없이 시간이 많이 흘러간 마당이다 보니 잡담하느라 바빴다.
마냥 탓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손바닥만 한 종로를 뒤지는 것이니만큼 빠르게 긴장감이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컥.”
그 와중에 날아든 주먹만 한 돌멩이는 당연하겠지만 생각도 못 하던 것이었다.
바로 옆에 있던 병사의 머리가 터져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즉각적인 대응이 있진 못했다.
결국, 짝지어 다니던 병사마저 돌에 맞아 죽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다행이라는 말을 써야 할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종로 영역이 넓다고 해도 사실상 손바닥만 하지 않은가.
그렇다 보니 다른 병사들이 금세 이 소동을 인지하게 되었다.
“거기 뭐야?”
“누구야!”
비명과 이리저리 날아든 손전등.
총소리는 없었지만, 뭐가 되었건 간에 일이 벌어졌다는 것 정도는 모두가 인지할 수 있었다.
붕
괜찮았다.
어차피 몰래 병사들을 다 처리할 생각은 없었으니까.
그런 건 인간에게나 가능한 일 아닌가?
라드는 가만히 있어도 소음이 발생하는 존재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박기태 본인부터가 그랬다.
그냥 걸으려고 해도 바닥이 울퉁불퉁하거나 하면 꽉 밟고 싶은 충동을 참을 수가 없었다.
잘 보니 김민수나 구우준도 그랬다.
그 외에 같이 갇혀 있던 놈들도 마찬가지였고.
고지능체들도 이러할진대 저지능체들은 어떻겠나.
“달려가 물어!”
놈들이야 움직이는 소음 발생기라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써야 할까?
그냥 소모품으로 쓰는 게 답이었다.
물론 거대 개체까지 성장한 상황이라면 얘기가 달라지기는 했다.
그놈들은 또 그놈들 나름의 희귀체이니까.
하지만 지금 달려가고 있는 놈들.
그러니까 현정이나 박원상 같은 놈들은 전혀 살려 둘 의미가 없는 것들이었다.
두두두두두
지금도 봐라.
총 쏘는 놈들이 뻔히 있는데 달려가라는 말에 우르르 몰려가는 꼴이라니.
물론 저지능체라고 해도 그 안에서 나름 지능 차가 있다 보니 어떤 놈들은 나름 은폐, 엄폐도 하고 있지만…….
애초에 대화가 전혀 불가능하다는 걸 감안하면, 여기서 다 죽어도 무방했다.
“쏴! 쏘라……. 으악!”
그냥 무의미하게 죽어 나가는 것도 아니었다.
라드의 달리기는 빠르니까.
게다가 작은 놈들조차도 덩치가 작은 건 아니다 보니, 거기에 더해 표정이나 이러한 것들이 워낙에 흉악하다 보니 정면에서 마주하게 되면 오금이 지리기 마련이었다.
라드와의 전투에 익숙하고 훈련이 충분히 된 정예라면 또 모르겠지만…….
이 안에 있는 부대는 사실상 쭉정이였다.
‘시발, 시발!’
물론 쭉정이건 뭐건 간에 그들이 쏘는 총이라고 해서 맞아도 괜찮은 건 아니었다.
무슨 총이건 간에 맞으면 죽거나 부상을 입기 마련 아니겠나?
본능만 남은 놈들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안 돼! 현정아!’
박원상과 같은 고지능체에게는 공포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충분히 뒤에 있을 수 있는 고지능체인 그가 뛰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현정.
그의 일생 동안 사랑했던 단 한 명의 사람.
비단 이성적인 감정만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었다.
친구건, 부모건, 형제건 아니, 그 누가 되었건 간에 모든 인간은 박원상에게 있어서만큼은 단 두 가지 부류로 나뉘었다.
쓸모가 있는가, 없는가에 의해.
“컥!”
허나 지금 박원상의 태클에 의해 넘어진 현정만은 예외였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지난 인생에서 객관적으로 아내가 도움이 되었던 적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허나, 그럼에도 버리고 싶은 생각 따위는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래서 좋았다.
존재만으로 그를 채워 주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유일무이한 존재라 단언해도 좋았다.
“끄으으으.”
“안 돼! 안 돼…….”
박원상은 간신히 현정을 넘어뜨리곤, 애써 다시 앞으로 달려가려고 하는 그녀를 붙잡았다.
쉬운 일은 결코 아니었다.
일단 근력부터가 차이가 났다.
박원상이 뭐 언제 그렇게 운동을 해 봤겠나.
그렇다고 변이가 일어난 지 오래된 것도 아니었다.
그에 반해 현정은 거대 개체로 자라나지는 못했을지언정 나름 라드가 된 지 상당히 오래된 개체이지 않나.
“안 돼!”
거기에 더해 이성도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보니 발버둥의 강도가 말 그대로 장난이 아니었다.
그러다 우연히 현정이 내지른 주먹이 박원상의 턱을 쳐 버렸고 비틀거리는 찰나에 박원상의 품을 슥 하고 빠져나갔다.
탕
총이야 뭐 아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계속 쏴 대고 있었다.
그 어디보다 안전하다고 했던 종로 바닥에 라드가 들어온 상황이니만큼 상대도 필사적이 될 수밖에 없지 않겠나?
“크악.”
대부분의 총알은 허공으로 또는 바닥으로 날아들고 있었다.
그저 막 쏴 대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허나 딱 한 발.
한 발이 문제였다.
“안 돼……!”
현정의 복부에 총알이 틀어박혔다.
그와 동시에 달려가던 현정이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박원상의 품에서 벗어난 지 불과 수 초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박원상은 그렇게 쓰러진 아내를 향해 기어갔다.
“안 돼……!”
상처는 깊었다.
권총도 아니고 소총으로 맞았으니…….
게다가 거리도 그리 멀지 않았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안 돼!”
대강 봐도, 살아날 수는 없어 보였다.
차라리 관통했다면 모르겠는데 총알이 박혀서 더 그랬다.
회전하던 총알이 멈추면서 동시에 안에 있는 장기를 한바탕 휘저어 버렸다.
죽는다.
아내는…….
사태가 발발한 이래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내가.
마침내 마주했을 땐 이미 라드가 되어 있던 아내가.
저지능체 행세라도 하면서 곁에 있으려 했던 아내가.
‘안 돼, 안 돼.’
박원상은 사방을 둘러보았다.
간절한 그의 눈에 어떤 건물 하나가 들어왔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쩐지 그곳에 가야 할 거 같았다.
본능.
그래, 그가 그토록 혐오하던 본능이 그를 이끌고 있었다.
해서 박원상은 피를 줄줄 흘리는 현정을 둘러업고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둘은 곧 오예리에게 포착되었다.
“사람인가?”
“왜 그러죠?”
같이 있던 이종범이 물었고, 오예리가 둘을 가리켰다.
피투성이가 된 사람이 다른 사람 하나를 업고 뛰고 있었다.
고지능체들은 인간과 잘 구분이 안 된다고 하지만 저런 모습은 보지 못했더랬다.
“음……. 사람 같은데요?”
이종범도 그랬다.
해서 오예리는 그의 동의하에 총을 쏘는 대신 무전을 때렸다.
-부상병으로 보이는 사람 둘이 접근 중입니다.
유현은 그 무전을 받고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으로서의 정을 많이 벗게 된 그였지만 적어도 다친 사람을 이유 없이 배제하고 싶진 않아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