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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팬데믹-311화 (311/323)

311화 대통령 (2)

“가까이 오지 마!”

멀찍이 서 있던 대통령은 어떻게 봐도 안전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가던 병사들에게 이렇게 외쳤다.

이유는 분명했다.

이 실험을 주도한 건 아니었지만 그 결과는 다 알고 있었으니까.

이 신종 콜레라…….

아직 콜레라라고 불러 줘야 할는지도 모르겠는 이놈의 세균은 너무 손쉽게 사람을 죽이지 않던가.

물론 충분한 자원을 들여 치료를 하게 된다면 살아날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자신은 노인이지 않나.

앞으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많은데 하나의 변수라도 허용하고 싶지 않았다.

“물러서!”

아무튼, 그런 대통령의 말에 그의 경호를 맡던 병사들이 총구를 들이밀었다.

총리를 비롯한 원래 종로 쪽 인원들은 퍽 당황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총리를 제외한 인원들이라고 해야 했다.

총리야…….

저 세균에 대해 명확히 알고 있으니, 이미 대통령 뒤로 숨은 참이었다.

“아니, 이게 뭔데 그럽니까?”

“일단 물러서!”

“아, 알겠습니다! 총구는 좀.”

그에 반해 종로 측 병사들은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저 좀 찝찝한 물이 튀었네, 이런 느낌이었다.

다만 과민하게 나오는 것을 보자 불안감이 그제야 스멀스멀 올라오는 수준이랄까?

“이 망할 놈이…… 어디로 갔지?”

“오피스텔 폐쇄 회로에 기록이 남아 있을 겁니다. 어차피 차도 없고, 다리도 불편한 놈인데 멀리는 못 갔을 거예요.”

“그래, 그렇겠군. 흐음……. 그래, 가 보도록 하지.”

“혹시 건물 안에 있을 수도 있으니 입구도 막아 놓겠습니다.”

“그래, 그러지.”

대통령 입장에서야 병사들이 불안해하건 말건 알 바가 아니었다.

이종범…….

그 자식이 어디 보통 놈인가?

-각하, 국정원 측에서 미팅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처음부터 대통령이 생각했던 아이디어도 아니었다, 이 사태는.

국정원과 의무사령관이 와서 먼저 말했다.

이러이러한 아이디어가 있으니 검토해 달라고.

물론 그걸 허용하게 된 것은 대통령 본인이지만, 거기서 책임질 생각이 들면 그게 대통령이겠나.

-지구 병원 아이디어도 그 자식이…… 했었지.

아무튼, 이종범은 보통 놈이 아니었다.

그러니 마음에 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다리 불구 만드는 데서 그친 거다.

여전히 그의 말이 제일 잘 통하는 연구원들이 있었으니까.

뭐…….

이제는 다 옛말이긴 했다.

일단 선을 넘었고, 상황이 많이 바뀌지 않았나?

무엇보다 저 콜레라…….

‘다른 나라에도 풀어야겠지.’

기왕 이렇게 된 거 동아시아의 헤게모니라도 쥐고 와야 했다.

그러려면 압도적인 힘이 필요할 텐데, 다행히 중국이 무주공산이 되었으니 공작도 쉬울 터였다.

“여기…….”

“나갔군. 같이 있는 놈은 누구지?”

“모르겠습니다. 마스크를 껴서.”

고민을 이어 나가는 동시에 대통령은 보안실로 이동했다.

그러곤 보관된 자료를 살피는데, 아무래도 화질이 아주 좋진 못했다.

대외적으로 또 내부인들에게 종로의 건재함을 과시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름은 아깝지 않아도 이렇게 보이지 않는 데 쓰이는 기름은 아까워서 그랬다.

최소로 돌리다 보니……. 이 모양이었다.

그나마 이종범은 휠체어를 타고 있다 보니 알아보기 쉬운 것이 다행이었다.

“어디로 간 거지?”

“모르겠습니다. 차 없이 도보로 이동하는 것이니…….”

“멍청한 소리 하지 말게. 종로 끝에서 끝까지 가 봐야 1시간이면 가는데……. 휠체어 타고 이동한다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야. 이미 나간 지 3시간은 된 거 같은데.”

“불을 점등할까요?”

“음.”

점등이라.

‘기름…….’

산유국들도 아마 지금쯤이면 기름이 부족한 지경에 이르지 않았을까?

파내고 이동할 인력이 없을 테니까.

그러할진대 한국?

여기야 뭐 이미 기름 부족에 시달린 지 오래였다.

치적을 내세우느라 밤에 불 켜는 짓만 안 했어도 훨씬 여유로울 수 있을 테지만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않았다.

“켜.”

뭐, 부족해도 어쩌겠나.

당장이 급한데.

이 자식이 어디 가서 입 잘못 놀리거나 한다면 그게 다 위험 요소였다.

‘군……. 군이 제일 문제지.’

지금 곁에 두고 있는 놈들하고 나머지 몇 놈들…….

그 외에 믿을 수 있는 놈이 있던가?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걸 김선태가 보여 주지 않았나.

그 어마어마한 병력에, 차후 혹여나 있을지 모르는 비난까지 감수하고 라드까지 더할 권한을 주었는데 말아먹었다는 게 말이 되나.

수원…….

기껏해야 공군 부대고, 전투기를 제외한 병력이라면 개인 화기가 다일 텐데 밀렸다는 건 이적 행위란 뜻이었다.

이후에 고작 팔 하나 잘라 먹고 덜렁덜렁 살아왔다는 것이 그 증거였다.

또, 뒤로 자기 인맥을 군 요직 여기저기에 죄 꽂아 놨다는 것도 증거였고.

‘망할 놈들…….’

대통령의 불안한 속내와는 별개로 총리의 명에 따라 환한 빛이 한밤중의 종로를 밝히기 시작했다.

외곽을 따라서만 켜져 있던 불빛이 안쪽을 비추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허나 사라진 이종범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손바닥만 한 동네임에도 그랬다.

우선 병력 자체가 줄어서일 터였다.

너무 많이 죽었다.

또 김선태와 나머지 잔당을 찾아내기 위해 밖으로 내돌리고 있는 병력들도 많았다.

감히 이 안에 누가 들어올 거란 생각은 못 했기 때문에 경계 인원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이런 시발……. 밤에 뭐야, 이게.”

“몰라. 까라면 까야지. 근데……. 진짜 괜찮은 건가?”

현 정부를 이루고 있는 집단은 신분제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비단 종로 시민들만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군인들 사이에서도 그랬다.

다리 북단을 지키고 있는 부대와 세브란스나 서대문 경찰서, 지구 병원, 남산에 있는 부대들이 평등하겠나?

우열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다만 그중 가장 윗급은 다 종로에 있다고 보면 되었다.

내부 경비를 맡고 있는 이들은 일종의 특권층으로 라드나 다른 생존자들과 다투는 대신 통제만 해 왔다.

가장 쉬운 일만 하면서 가장 좋은 환경에 둘러싸여 있던 이들이니만큼 동요도 제일 빨랐다.

“뭔 소리야.”

“이번에 세브란스 날아가고 하면서……. 부상병들 들어왔잖아. 그중에 내 친구가 있어서 문안 갔거든?”

“날아갔다고……? 그냥 불 좀 난 거 아냐?”

“너…… 넌 병신이냐? 불 좀 났는데 왜 총에 맞아.”

“난 몰랐어.”

“하긴, 나도 문안하고 있는데 중간에 갑자기 다 나가라고 하더라.”

병사들은 둘둘씩 짝을 지어 종로 거리를 뒤지고 있었다.

불 켜진, 아무도 없는 거리를 걷는 게 뭐 힘들겠나?

거기에 더해 뒤숭숭한 상황이기도 하기에 당연하다는 듯 잡담이 이어지고 있었다.

“나가라고……?”

“뭐……. 사태 이후로 통제가 필요하다는 건 맞지. 근데, 들어 보니까, 이번에 좀 이상해.”

“왜, 뭐가. 시발 나 불안해.”

종로 내에 있는 병사들이 과연 정예라 남았을까?

아니었다.

고위 관료의 자제들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겠답시고 밀어 넣은 결과물이었다.

물론 실제로 시민들의 불만을 없애고 또 외부 병력의 통제를 위해 만든 것이었던 만큼 군기가 좀 빠져 있는 것을 제외하면 제대로 된 군대긴 했다.

안전했을 땐 그랬다.

하지만 가진 게 너무 많은 데다가, 애국심이라는 걸 가질 만큼 뭘 모르는 상황이 아닌 이들은 외부 상황에 의해 보잘것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싹 다 날아갔대. 농장도, 병원도, 서대문 경찰서까지 다 박살 나서……. 내 친구는 거기서 다친 거야.”

“뭐……? 아니, 그럼……. 농장……. 거기서 음식……. 아직 나오잖아?”

“비축분 나오는 거지. 곧 끝날 거고.”

“그럼……. 그럼…….”

군대 생활이 어떠했나.

징집병이 된 신세지만 사실상 직업 군인이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비참했냐면 전혀 아니올시다였다.

비번인 날은 퇴근해 밖에서 사복 입고 놀 수 있었다.

어차피 돈이 아닌 배급으로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별걱정도 없었다.

그렇다고 근무가 위험한가?

그렇지도 않았다.

야간 근무가 귀찮은 편이지만, 애초에 시민들 모두 통제에 잘 따르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도 별문제가 없었다.

“몰라……. 일단 까라니까 찾긴 찾는데. 이종범 그 사람 이미 인수분해 당해서 박살 난 놈 아닌가?”

“그래. 그 아들이 우리랑 있다가 몇 달 전에 전출됐잖아.”

“아……. 기억난다. 그래, 어디로 갔다고?”

“남산인가. 그랬을걸.”

“유배지로 갔구나. 죽었으려나.”

“모르지. 그럼 설마 앙심 품고 그 인간이 불 지른 거 아냐?”

“자비에 박사냐? 막 정신 조종해? 다리도 불편한 사람이 뭘 해.”

“그런가. 그럼 왜……?”

“몰라. 대통령 아들 새끼 어디 갔어.”

“어……. 그러고 보니까, 걔 어제부터 안 보이는데?”

잡담을 나누던 병사들은 어느 순간 이종범이 아닌 대통령의 아들, 특권층의 특권층을 찾기 시작했다.

망할 새끼가…….

없었다.

어디에도.

“우리 설마 침몰선에 아직도 타 있는 건 아니겠지……?”

“아니, 아닐 거야. 아까 대통령도 있었잖아.”

“그건 그런데…….”

대통령 옆을 지키고 서 있던 병사들.

같은 한국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건장한 놈들이었다.

그에 더해 눈빛이나 자세 무엇보다 분위기가 틀렸다.

수는 적지만, 아마…….

안에 있는 병력이 다 덤벼도 안 되지 않을까 싶을 지경이었다.

“시발……. 이 새끼는 어딨어.”

“누구 말하는 거야.”

“이종범이지. 찾아야 잠을 자건 뭘 물어보건 할 거 아냐.”

“아, 진짜 어디 간 거야? 벌써 여기 몇 바퀴째냐?”

“설마 맨홀 뚜껑 열고 들어간 거 아냐?”

“그럼 죽었지. 말이 돼? 멀쩡한 사람도 어려울 텐데, 걷지도 못하는 사람이.”

“그…… 그렇지?”

“당연하지.”

이들 외에 다른 병사들도 쥐 잡듯이 뒤지고 있었지만, 이종범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사실 종로 바닥 수색이 의미 없는 짓이라 그랬다.

이종범은 오피스텔 건물 안에서 나간 적이 없었으니.

휠체어에 탄 건 조영상이었다.

그를 데리고 나간 건 구급대원이었고.

진짜 이종범은 창을 통해 끌어 올려져 의사의 방에 있었다.

그리고 그 방에는 유현, 김태평, 오예리 등을 포함해 종로의 다른 유력 인사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상황이 그렇다면……. 더 좌시할 수는 없겠군요.”

정치인.

“그렇지 않아도 밖에서 벌어지는 일을 얘기해 주지 않아 답답하던 참입니다.”

군인.

“아까 실려 나간 병사들……. 벌써 구토하고 난리가 났던데, 대체 뭡니까?”

경찰.

“정부는 끝났습니다. 적어도 대통령 위주로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이러다간 정말 다 죽게 생겼어요. 지금이라도 다른 분이 선장 노릇을 해 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유현.

그를 모르는 유력자는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설픈 위치에 있는 이는 세뇌가 되었을는지도 모르겠지만, 그 세뇌를 진행했을 만큼 높은 사람이라면 유현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숨은 영웅이라는 걸 모를 수가 없었다.

‘다른 분이라……. 자긴 아니라, 이건데.’

또한 그의 말 사이에 있던 정치적 수사를, 지금 이 자리에 위치한 국회의원 천지평은 놓치지 않았다.

‘태식이가 그렇게 갈 놈이 아니었는데.’

쯧 하고 혀를 차고는 발언권을 자연스레 옮겨 받았다.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어떻게 할지를 정해야겠군요.”

탁상공론은 탁상공론에 그칠 때가 제일 위험한 법이다.

한시라도 빨리 뭐라도 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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