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화 대통령 (1)
“각하.”
“어떻게 됐지?”
“김선태의 시신은 찾지 못했습니다.”
“이런 멍청한! 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건가!”
대통령은 손 앞에 잡힌 무언가를 쥐었다가, 그대로 내려놓았다.
던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좋을 때도 아닌데, 아랫사람한테 너무 패악질을 부리면 약해 보이지 않겠나?
해서 참았다.
“죄송합니다.”
“나머지 반란군 놈들은?”
“주요 부대는 모조리 격파했습니다. 반포대교 부대장이 도주한 것으로 보이는데……. 잡히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나머지는?”
“사살했습니다.”
“좋군, 그건.”
대통령은 좋다고 한 것과는 별개로 한숨을 내쉬었다.
말만 그럴 뿐, 단 하나도 좋을 게 없는 상황이어서 그랬다.
당장 동원할 수 있는 병사 수만 해도 절반 아래로 떨어졌다.
거기에 더해 노예들은 거의 다 탈주했다.
몇십 명가량 다시 잡기는 했다지만…….
그것 가지고 뭘 하겠나.
그들이 일하던 곳은 다 불타 폐허가 되어 버렸다.
그에 더해 세브란스도 털렸고, 남산은 버려야만 했다.
‘망할…….’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빠른 결단을 내려 전국의 식수원을 오염시킬 수 있었다.
그 결과 라드들이 거의 다 사라졌다는 보고를 받았다.
부수적인 피해로 생존자들도 많이 죽었다곤 하지만…….
애초에 대통령 판단하에 대한민국을 재건하는 데 꼭 필요하다 생각되는 인원들은 거의 다 종로에 있었다.
나머지?
‘무임승차하던 놈들 죽은 건…… 내 알 바 아니지. 하지만…… 노예들이……. 음.’
어쩌겠나.
노예들만 제대로 남아 있었다면 일말의 아쉬움도 없었을 터였다.
학교에서는 다들 평등하다 가르치지만 사회에 나와 보면 바로 알게 되지 않던가?
여러 동물 중 사람처럼 그 안에서 우열이 갈리는 동물이 또 있을까.
그중에서도 대통령은 반드시 누군가의 위에 군림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었다.
살아 보니 그랬다.
생긴 것도 그랬고.
물리적인 힘도 그랬고.
무엇보다…… 머리가 그랬다.
‘제기랄.’
그런 자신과 조금 모자라지만 평균보단 나은 이들에게 복종해야 할 놈들이 죄다 죽어 버렸다.
이렇게 되면…….
“내부 통제는?”
“잠시 흐트러졌지만, 정보 통제는 확실히 되고 있습니다.”
“솎아 내기를 해야 할 텐데…….”
“그것이 가장 어렵습니다. 종로는 현재 필수 인력들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겠지.”
많은 것을 고려해서 뽑은 시민들이었다.
필연적으로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방 거주민들은 배제되었다지만, 기실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거주하는 대한민국의 특성상 놓치게 된 이들은 거의 없었다.
외모.
각 분야에 대한 재능.
그리고 이미 이루어 낸 성취 등을 고려해서 뽑았다.
물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운 좋게 뽑힌 이들에게 중요한 사람이었던 이들.
그러니까 그들의 가족이나, 연인 또는 둘도 없는 친우들.
“하지만 아예 없진 않을 텐데.”
“어떤…….”
“처음엔 필수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게 된 이들도 있지 않나.”
“아.”
사람이 어떻게 평생 동안 쓸모 있을 수 있겠나.
뭐…….
더 멀리 보면 유전자를 물려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인생에 단 한 번이라도 빛나는 순간을 가졌던 이들은 의미가 있겠지만.
사정이 급해지지 않았나.
다 안고 갈 수는 없었다.
“그런 놈들 위주로 정리하게. 정에 이끌릴 필요 없어. 2시간 주지. 그 안에 정리해서 가져와. 내가 검토하고 승인하지.”
“네, 각하.”
대통령의 명에 실각한 김선태와 죽임당한 중장 대신 완전히 군부의 실세로 떠오른 중장이 밖으로 나갔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방 안에 홀로 남게 되는 일은 없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24시간 경호 인력을 붙여 놨다.
지금?
지금은 더더욱 그래야만 했다.
‘김선태……. 그 새끼 좀 이상했지?’
죽였어야 했다.
다름 아닌 대통령이 정에 이끌려 놈을 완전히 끝장내지 못했다는 게 후회되었다.
물론 그때는 나름의 이유가 있긴 했다.
사태 이전부터 김선태를 중용한 탓에 지금 정부군 요직에 있는 놈들 태반이 김선태 라인이지 않았나.
대통령 본인이 용인해 준 것도 있지만 그 외에도 나름 정치력을 발휘했던 모양이었다.
절대 한 번에 내보낼 수 없게끔, 인선을 그렇게 짜 놨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마치 라드 같았어.’
하여간, 마침내 결단을 내렸는데…….
도망갔다.
절대 살아남지 못할 줄 알았는데 도주에 성공했다.
뿐만 아니라 경찰서에서도 도망갔다.
흔적을 보니 라드에게 당했다는 거 같은데…….
어쩐지, 그게 아닌 것 같았다.
일전에 여기서 본 김선태…….
위화감이 느껴져서 그랬다.
사람이 아닌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김조은, 그놈이 했던 말이 있지.’
고지능 개체라면 어느 정도는 사람을 물려 하는 본능을 참아 낼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사이코패스였던 개체일수록 고지능 개체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도 했다.
만약 김선태가 물렸다면 어찌 되었을까?
그놈만큼 고지능 개체가 되기에 적합한 놈이 또 있을까?
‘1호의 시신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지……. 이런 망할 놈들. 사방에서 지랄이군그래.’
나라를 위해 분골쇄신 일하고 있는데 대체 왜 상황이 이럴까.
이게 다 자기만 아는 소인배들 때문이었다.
다 그대로 두었다면 이렇게 되기 전에 수습할 수 있었을 텐데.
한숨을 내쉬며 핑계의 고리를 따라가다 보니 결국, 정유현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그 교수 새끼……. 설마 살아남진 못했겠지?’
그놈을 죽였어야 했다.
후폭풍을 염려해 조심했던 것이 화근이다.
일이 이렇게까지 될 줄 알았다면 병원에서 총이라도 쐈을 것을.
그 미꾸라지 같은 놈 살려 두었다가 이게 대체 무슨 꼴이란 말인가.
나라가…….
자신의 나라가 이 지경이 됐다.
“안 되겠군.”
대통령은 한참 고민하다가 이내 몸을 일으켰다.
경호 인력들의 시선이 그를 따랐으나 함부로 입을 여는 이는 없었다.
그렇게 훈련받았다.
대통령이 위험해지는 순간이 오거나 혹은 그의 명령이 있기 전까지 그들은 인테리어처럼 서 있어야만 했다.
“종로로 가지.”
“네?”
하지만 이번만큼은 예외였다.
밖은 이미 캄캄했다.
물론 종로와 명동 쪽엔 여전히 불이 들어오고 있었다.
많은 것을 잃었지만 비축된 기름까지 어디 간 것은 아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 해도…….
‘경계 개판인데?’
대통령에게 모든 것을 보고하겠나?
그럴 수는 없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 했던 김선태가 실각했다.
그저 자리만 잃은 것이 아니라 반역자로 몰렸다.
그가 정말…… 반역자일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저 수원을 공격했다가 실패했을 뿐이란 얘기도 있었다.
그 외에 인신 공격적인 말도 있긴 했지만…….
애초에 종로 쪽으로 방송되는 내용 중에 사실에 기반한 것들이 있었나?
“뭐 하나? 준비들 하지 않고.”
“네, 각하.”
그렇다 보니 책잡힐 만한 일은 만들지 않아야 된다는 생각을 넘어 그런 일이 생겨도 숨겨야 한다는 풍조가 깊이 자리하게 되었다.
어찌 보면 대통령 자신이 자기 무덤을 파고 있는 것인데…….
부우웅
어찌 되었건 그의 눈앞에서만큼은 모든 것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곧 도착입니다.”
경계는…….
개판이었다.
철통같은 보안을 자랑하던 정부군 영역은 이제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훈련받은 사람뿐 아니라 라드들도 쉽게 드나들 수 있을 터였다.
그럼에도 가는 길에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드나들 만한 사람이 없어서 그랬다.
갑작스러운 식수원의 오염은 이미 한번 망한 세상을 완전히 골로 가게 하기에 충분했다는 반증이었다.
“그래.”
한밤중의 종로는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여기가 망해서 그런 것은 아니고 원래 이랬다.
밤중에 돌아다닐 수 있는 사람은 아예 없다고 보는 것이 옳았다.
“저기로 가지.”
종로의 건물 중 하나를 가리켰다.
종로 내부 정리를 맡긴 이가 있는 곳이었다.
그의 모든 치부를 알고 있는, 그러면서도 동시에 사태가 끝나기 전까지는 입을 다물고 있을 것이 확실한 인물이기도 했다.
“네.”
차량은 곧 종각역 바로 앞에 위치한 그랑 서울 건물 앞에 멈춰 섰다.
외부 경계가 완전히 뚫릴 만큼이나 인력이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해당 건물 앞에는 병사들이 주르륵 서 있었다.
오히려 평소보다 더 많은 느낌마저 들었다.
“각하…….”
미리 연락을 하고 왔기 때문에, 전 보건복지부 장관, 현 총리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그래, 여긴 어떻지?”
“통제 중입니다.”
“뭐, 자세한 소리는 안에 들어가서 하지.”
“네, 각하.”
둘은 그렇게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이야 어마어마하게 거대했지만, 사용 가능한 공간은 반의반도 안 되었다.
전기도 그렇고, 공간에 대한 관리도 무리여서 그랬다.
그런 주제에 불은 일부러 꼭대기 층도 켜 놓은 적도 있긴 하지만…….
그야말로 허세에 불과했다.
이 둘이야 서로의 허와 실을 다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별다른 말 없이 바로 2층에 위치한, 한때 식당으로 쓰였던 곳에 들어가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무도 들이지 않았다.
그 둘 외에는 아무도.
“빈말로 말고, 통제는 제대로 되고 있나?”
“적어도…… 감지된 위협은 없습니다.”
“말이 애매하지 않나?”
“요주의 인물들을 지켜보고 있긴 합니다만…….”
“이종범?”
“네. 별다른 움직임은 없습니다. 병원에 간 것 정도?”
“병원?”
“네. 다리 다친 이후로 꾸준히 병원에 다니고 있습니다.”
“하긴, 뭐…….”
대통령은 이종범을 떠올렸다.
한때는 수족 같은 이였다.
허나 어느 순간에서부터인가 거리를 두기 시작했더랬다.
그 정도면 기실 공범이 아니라 주범이 아닌가.
“그래도 더 살려 두긴 어렵겠는데.”
“네?”
“알다시피 이 안에서도 계층을 나눠야 할 때가 왔네.”
“아……. 이해했습니다. 그렇더라도……”
“이종범, 그 다리 병신을 어디다 쓰려고? 괜히 입 놀리면 골치만 아프지.”
“그거 때문에 직접 오셨습니까? 그런 거라면…….”
“조 중장? 충직스럽긴 한데 사람이 약질 못해. 그런 건 김선태가 나았지. 지금 당장 이종범을 수배해 보게. 집에 없을 수도 있어.”
“설마…… 그러려고요.”
“자네, 내 감을 못 믿는 건가?”
“아뇨, 그건 아닙니다. 다만 말마따나 다리 병신 된 놈이 뭘 할 수 있을지……. 하지만 사태가 사태이니만큼 주의를 하는 게 좋긴 하겠군요.”
“그래. 같이 가세.”
“네, 각하.”
집에 있으면?
바로 죽일 생각이었다.
없으면 찾아서 함께 있는 놈들까지 다 죽일 생각이었고.
그렇게 살심을 품은 채, 대통령은 몇몇 병력과 총리를 대동하고서 이종범의 집으로 향했다.
종로에 위치한 오피스텔을 공동 주거지로 쓰고 있었기 때문에 찾아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똑똑
그러나 이종범을 찾아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답이 없습니다.”
“뭘 망설이나, 부숴.”
“네.”
우지끈 소리와 함께 들어간 곳엔, 이종범 대신 다른 것이 있었다.
펑
“으, 으아아악!”
지구 병원에 보관되어 있어야 할 신종 콜레라균이 풍선에 잔뜩 들어 있다가 문이 열림과 동시에 터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