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8화 종로 (2)
“밖에도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꽤 많았습니다.”
유현은 상당히 진중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의사는 그런 유현의 말에 집중했다.
일단 메신저가 유현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대학 병원에서 근무했던 바 있는 의사에게 유현이란 존재는 보통 인물일 수가 없었다.
팬데믹의 선봉장이었고, 또 더 나아가 이번 사태의 예언자이기도 했더랬다.
정부에서는 그걸 어떻게든 깎아내리려고 애썼지만 아는 사람의 눈에는 뻔히 보이는 종류의 일이었다.
“고속터미널만 해도 수백 명이 있었고, 잠실이나 분당 쪽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았습니다. 수원 쪽, 그러니까 제가 있던 수원 공군 부대에도 그랬고요.”
“그, 그렇군요. 저는 여기 방송만 보니까…….”
“뭐, 얼마든지 그렇게 보이게끔 할 수 있긴 할 겁니다. 강북이나 강남…… 어디를 가도 카메라만 들이대면 지옥처럼 보이는 곳은 많으니까요. 하지만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신촌에 있던 노동자들, 그거 다 어디서 왔겠습니까.”
“하긴, 그렇죠.”
아니, 사전 정보가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조금만 깊이 생각을 해 봤다면 알 수 있는 사실이 참 많았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일 뿐이었다.
그편이 편하니까.
마음도, 몸도.
어찌 되었건 남의 일이지 않나.
이 안에 있는 이들은 어떻게 봐도 선택받은 사람들이었다.
“바깥도 다 사람 사는 세상입니다. 뭐, 여기처럼 윤택하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습니다만……. 제가 추정하건대 이곳 서울에만 적어도 10만이 넘는 생존자들이 있었을 겁니다.”
“겁니다……?”
유현의 과거형에 의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단지 말만이 아니라 말투나 표정 등이 모두 급작스럽게 바뀌었기 때문에 그랬다.
원래도 꽤 말하는 데 있어서 능한 편이었지만, 지금의 유현은 거의 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워낙 사람을 설득하거나 또는 자기 뜻대로 움직이도록 조종해야 하는 상황이 많다 보니 그렇기도 했다.
이를테면 재능이 있던 사람이 노력까지 하게 된 상황이라고 보면 될 터였다.
“지금은 거의 다 죽었습니다. 그래도 소란스럽던 거리가 모두 조용해졌습니다.”
“그게…….”
“정부에서 세균을 살포했거든요. 그것도 식수를 오염시키는 방식으로. 사람이 살려면 물이 반드시 필요하고……. 그 물은 한강을 비롯한 여러 하천인 경우가 태반이죠. 다른 방식으로 물을 구하는 건…… 지금 세상에서 거의 불가능하니까요.”
물탱크?
물탱크가 있는 건물이야 꽤 있긴 할 터였다.
하지만 적절한 관리가 있지 않은 한 고인 물은 썩기 마련.
심지어 여름이 아니고서는 비가 그렇게 많이 오지 않는 기후이다 보니 그 물탱크를 채우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지금과 같은…… 가뭄이 만연한 계절에서는 더더욱 그러했다.
정부에서도 이 시즌을 노렸을 터였다.
억측일까?
그럴 리는 없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다 죽었어요. 아마 서울 시내에 지금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은 이 안에 있는 사람들이 거의 다일 겁니다.”
“정부가…… 사람들을 죽였다고요? 왜……?”
“통제가 안 되니까요. 고속터미널이나 수원이나…… 다른 생존자들도 정부와 딱히 긴밀한 협조 관계는 아니었거든요.”
“왜요?”
“간단하죠. 사람들을 잡아다가 노예로 삼고 있는 게 뻔히 보이는 놈들을…… 어떻게 믿습니까.”
“노동자분들 말입니까? 그분들은…….”
“정부에서 뭐라고 떠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노예였어요.”
“그렇군…… 그렇군요.”
의사는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저래도 표정은 완전히 납득했다는 얼굴이었다.
멍청한 인간은 아니지 않나.
상식적으로 일만 하고 그 삯의 대부분은 종로로 보내오고 있는데, 그들이 자발적으로 거기 남았다고 생각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게다가 노예로만 쓴 것도 아닙니다. 세브란스나 지구 병원, 남산에서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실험체로 쓰고 있었어요. 그 결과로 지금의 이 세균이 나온 것이고요.”
“하……. 그렇군요.”
“그렇게 해서 이 정부가 성공적으로 뭔가 해내고 있다면 그나마 다행일 겁니다만……. 김선태의 반란으로 인해 이제 그것도 불투명해졌어요.”
“반란…….”
의사는 살짝 뜨끔한 얼굴이 되었다.
말마따나 바깥 놈들이 어떻게 되고 있건 간에 알 바인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의사가 유난히 이기적인 인간이어서는 아니었다.
그럴 만한 세상이었다.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업적이 되곤 하는, 그런 세상.
그 와중에 남 걱정을 하는 건 사치이지 않겠나?
하지만 반란은 눈앞에 있는 문제였다.
“대통령을 실각시켜야 할 겁니다. 그래야 협상이 가능해요.”
“실각……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대통령은…… 말이 대통령이지, 왕입니다. 그의 입지는…….”
“민주주의 사회에 왕처럼 군림하고 있는데 불만 있는 사람이 없을까요?”
“그…….”
불만이야 다들 있긴 했다.
하지만 격렬한 불만일까?
그건 결코 아니었다.
바깥세상에 비하면 자유가 좀 없기는 해도 이 안은 확실히 안전하고 또 풍족하니까.
배고픈 사람보다는 배부른 돼지가 좋지 않겠냐는 생각을, 이 안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다들 해 봤을 터였다.
“반란이 일어난 상황이고……. 실제로 저희가 이렇게 쉽게 들어올 만큼이나 허술해진 상황입니다. 막말로 밖에 만약 살아남은 라드가 있다면 술술 들어오고 있을 겁니다.”
“아…….”
“최대한 빨리 대통령을 몰아내고, 김선태와 힘을 합쳐야 합니다.”
“그, 그렇겠군요.”
라드가 들어온다…….
이 말 한마디에 그렇지 않아도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던 의사의 동공이 사정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밖에 있던 이들은 라드의 무서움을 모를 수가 없었으니.
더군다나 이 안에 있는 이들은 이 안에 있던 기간만큼 라드와 완전히 유리되어 있던 이들이지 않나.
잊고 있던 두려움은 그 배가 되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제가……. 따로 만나는 이들이 있긴 합니다. 아무래도 병원 일을 하다 보니 좀 유리한 면이 있긴 해서요.”
“다행이군요.”
사실 그렇기에 여기로 온 것이었다.
김태평은 그럼에도 금시초문이라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유현을 보며 씨익 웃었다.
김선태의 반란이라니…….
사실이긴 하지만 이미 제압된 것을 보지 않았나?
물론 끔찍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다들 아는 만큼 얼마간 저항이 지속되기는 하겠지만…….
기습에 당한 이들의 파편이 과연 얼마나 힘을 쓸 수 있을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확실히 저 사람은…… 요원을 했어야 해.’
아무리 선의의 거짓말이라지만 거짓말은 거짓말일진대 저토록 뻔뻔한 얼굴이라니.
정말이지 대단한 인간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유현은 거기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
“되도록 빨리 모아 주세요. 사실 적은 반란군만이 아닙니다.”
“네?”
“노동자들이 사라지지 않았습니까? 그럼 그걸 누가 채우겠습니까? 군인들? 총을 든 이들을 어떻게 그 안으로 몰아넣겠어요.”
“아…….”
“이 안에서 선별 작업이 이루어질 겁니다.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사람들부터 다…… 끌려가겠죠.”
“그, 그렇겠군요.”
의사는 유현의 말을 들으며 저도 모르게 창가를 바라보았다.
높다란 철조망부터 보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야가 다 가려지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 뒤로 연기가 보였다.
시커먼 연기가.
‘보통 일은 아니야……. 정부에서 확실히 거짓말을 하고 있긴 해…….’
거짓말이다.
분명히 상황은 완전히 통제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불과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지 않나?
거기에 더해 눈앞에 있는 김태평과 유현 일행 또한 명백한 증거였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침입자가 없었겠나?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나 홀로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종로에 눈독 들인 인간이 왜 없었겠나.
‘공개 처형…….’
그 인간들 모두 붙잡혀서 죽었다.
안에 들어오지도 못했다.
밖에서 얼쩡거리다가 총 맞아 죽으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러지 못하고 붙잡혀 들어오는 경우에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공개 처형이었다.
바깥에는 라드뿐만 아니라 이런 흉악한 인간들까지 도사리고 있다는 말과 함께 목을 매달았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시신은 바깥에 썩기 직전까지 걸려 있다가 치워졌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그 꿈틀대던 모습이 선명하게 보이는 듯했다.
‘근데 이 사람들은 상처 하나 없이 들어왔어. 아무리 국정원 요원이라고 해도…… 나머지는 그냥 일반인이잖아.’
의사는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사실 김태평, 이 사람을 마주했을 땐 고민을 했었더랬다.
이따가 신고를 할까 어쩔까.
혹 이 일을 누군가 수상히 보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었고.
하지만 유현의 말까지 듣고 나니 확실히……
이쪽에 훨씬 더 문제가 많아 보였다.
해서 사람들을 불렀다.
사람들이라고 해 봐야 몇 명 되진 못했다.
확실히 믿을 만한 인간들만 불렀으니, 많으면 더 이상한 일이긴 했다.
“이종범입니다.”
허나 그중에 전 의무사령관이 있다는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한때는 완전한 실세였던 적도 있지만 김조은이 완전히 떠오르면서 밑으로 내려온 인물이었다.
뭐, 내려왔다고 해도 여전히 지구 병원 쪽으로 나름의 네트워크가 있었고 또 이곳에 주둔 중인 군대 지휘관 중에도 안면 정도는 있는 이들이 있었다.
‘이 범죄자 새끼…….’
유현도 아는 이름이었다.
이 사태에 책임이 있는…….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핵심 인물 중 하나이니만큼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더 큰 괴물은 대통령 아닌가.
그놈을 잡기 위해서는 잡지 못할 손이 없었다.
따지고 보면 김태평도 책임이 있는 인물 아닌가.
“정유현입니다.”
“김태평입니다. 오랜만입니다, 사령관님.”
“하하, 그렇군, 그래. 오랜만이네. 살아 있었군그래.”
해서 웃었다.
이종범 의무사령관도 웃었다.
그렇기에 방 안 분위기는 화기애애하기 그지없었다.
물론 진짜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다급한 쪽은 아무래도 유현과 김태평 쪽이다 보니 이쪽에서 먼저 입을 열었다.
아까와는 달리 사태의 초반 얘기부터 시작이었다.
이종범이야 어찌 보면 유현이나 김태평보다 더 잘 알겠지만, 따로 와 있는 이들은 아니지 않나.
‘강한나……. 거물급 연예인이지. 신중섭…… 서대문 경찰서장이었고…….’
김태평은 손가락으로 유현에게 글씨를 써 지금 와 있는 이들의 진짜 면면을 알려 주었다.
애초에 사람들 포섭하고 데려오는 일을 담당했었고, 또 그 전에 정보를 다루는 일을 했기 때문에 김태평이 모르는 얼굴은 적어도 이 안에서는 없었다.
덕분에 대강의 정보를 알아낸 유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을 이었다.
“기미가 보인 건 봄입니다. 늦겨울이라고도 볼 수 있겠죠.”
“허.”
박기태.
그를 처음 본 순간을 떠올리면서, 유현은 오예리 형사를 바라보았다.
“제 동료들…… 형사들이 사고로 죽었습니다. 말이 사고지 살해예요. 처음부터 팀도…… 가족이 없는 사람들로만 꾸려져 있었고요.”
생각해 보니 최우식을 비롯해 김효상, 형사들까지 해서 사태 초반에 함께했던 이들 중 살아남은 사람은 오예리뿐이었다.
새삼 많은 이들이 죽었다는 걸 이야기를 꺼내면서 실감할 수 있었다.
자연히 분위기는 무거워져만 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지루하다는 건 아니었다.
이종범마저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