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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팬데믹-304화 (304/323)

304화 분열 (3)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올라오는 동안 오히려 일행의 전체적인 건강 상태가 호전되었다는 점이었다.

특히 조영상은 괜히 직업 군인이 아니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듯, 아주 빠른 회복을 보였다.

벌써 유현과 같이 강북으로 향했던 일행과 보조를 맞출 수 있을 정도였다.

타타타타타타

다리를 건너는 동안에도 점점 더 폭발음과 총성은 커져만 가고 있었다.

양측 모두 아주 격렬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듯했다.

거의 대낮처럼 보일 정도로 눈앞은 무척 밝았다.

이리저리 튀어나가는 파편들도 모조리 확인이 가능할 정도였다.

“전차라도 온 걸까요!”

“아니, 그건 아닐 겁니다! 지금 가동 가능한 전차는 거의 없어요! 있다고 해도…… 자주포 정도일 겁니다!”

“그렇군…….”

유현은 거의 일행의 선두에 있었다.

훈련 정도나 실전 경험과 무관하게 몸을 그만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그랬다.

사실 단거리 사격 실력이나 신체 운영 능력은 어지간한 요원과 견주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다 보니 자연스레 그렇게 되기도 했다.

그 뒤를 김태평과 요원들 그리고 오예리, 이순규 등이 따르고 있었다.

이제 다리를 거의 다 건너고 있었다.

원래 강 이북에서 남쪽에서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설치해 놓은 바리케이드들이 지금은 일행의 음·엄폐 벽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사실 그렇게 숨을 필요도 없었다.

상대는 전력을 다해 다른 곳에서 오고 있는 부대와 전투 중이었으니.

이쪽으로는 아무도 없었다.

“조심. 지뢰가 있을 수 있습니다.”

무인지경이라고 해서 무작정 뛰어드는 건 위험한 일이었다.

현대전에서는 사람이 없어도 얼마든지 적을 살상할 수 있는 방법이 많이 있었으니.

슈우우웅

저곳, 전장도 그러했다.

운용 가능한 개체가 많이 줄었겠지만, 몇몇 드론들이 폭탄을 들고 안으로 날아들고 있었다.

카메라가 달린 채 비행이 가능한 물건이기에 보다 정확한 폭격이 가능할 터였다.

물론 사태가 터진 지 오래다 보니 정비가 잘 안 되었다 보니 영 엉뚱한 곳에서 터지는 경우가 더 많긴 하지만…….

“네.”

“뭐……. 여기 땅바닥 구성이 아스팔트다 보니 눈에 잘 띄기는 할 겁니다.”

“네, 잘 보면서 가야겠군요.”

다들 주의하면서 걷기 시작햇다.

막말로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만 해도 기적이지 않나.

그런데 지뢰 밟고 죽어?

그건 좀 너무 허무할 거 같았다.

“흐음…….”

물론 유현과 같이, 지속적으로 현장에 나와 버릇했던 이들은 지뢰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중압감을 상대적으로 쉽게 이겨 낼 수 있었다.

“재원아. 발을 떼야 움직일 수 있어.”

“그게…… 너무 무서운데.”

“그래도 이리 와야지. 방금 내가 밟은 곳이잖아. 게다가 아무것도 없잖아.”

“머리로는 알겠는데 몸이 안 움직여요…….”

“거참.”

“어……. 때리지는 말고요.”

“그래야 걸을 거 같으면 패야지. 이 앞은 인마, 전쟁터야.”

“으.”

하지만 양재원처럼 상대적으로 부대 안에서 지내던 이들에게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늘 자칫 잘못하면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이야 하고 있었지만, 정말로 그게 눈앞에 놓인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느낌이 많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재원은 의사고, 그렇다 보니 삶과 죽음을 많이 겪기 마련이었다.

아무래도 남들보다는 좀 더 적응이 빠를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좀 침착한 편이기도 했고.

‘우식 선배가…… 그렇게 가 버렸지.’

심지어 최근엔 가까운 사람들을 너무 많이 잃었다.

그러한 감정과 경험이 그의 등을 떠밀듯 용기를 주고 있었다.

그렇게 모든 일행이 드디어 반포대교 이북을 방어하던 부대 철조망에 닿았다.

아니, 그 말도 어폐가 있었다.

이미 김태평 등이 철조망을 끊고 안으로 들어가 있었으니.

드드드드득

그사이에 폭격은 그쳐 있었다.

폭탄이 다 떨어졌을까?

그럴 가능성도 있겠지만…….

기지 상태를 미루어 짐작하건대, 아닐 가능성이 더 커 보였다.

“으아아아.”

이쪽으로 도망쳐 오던 병사를 한 방에 제압한 김태평은, 유심히 앞을 내다보았다.

이쪽 기지는 위치가 완전히 노출된 채, 심지어 주변부가 더 고지대에 위치한 상태인데 반해서 공격자 측은 높은 곳에서 이곳을 완전히 털어 버린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사실 대한민국에는 워낙에 산이 많지 않나?

서울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닌데…….

다리가 놓이는 지점만 평지라는 것이 기지의 패착이었다.

일반 생존자들과의 전투를 상정하고 만들어진 기지라는 것도 그랬고.

아마 이 부대가 온전히 빠져나가서 야전을 벌였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수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기지에 갇힌 채로 전투를 수행할 때는 100전 100패라고 해도 좋을 만큼 불리한 여건이었다.

“박살이 났군……. 차례차례 항복하고 있습니다.”

김태평은 망원경으로 부대 앞쪽으로 보고 있었다.

애초에 저쪽으로는 지뢰도 안 깔려 있었을 것이었다.

윤형 철조망도 제대로 딸려 있지 않았을 것이고.

경계 초소조차 남쪽을 향해서만 지어져 있었다.

“빠져나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휘말릴 거 같아요.”

“그래야겠군요. 근데 어디로……?”

“뭐……. 아무래도 원래 정부군 소속이었던 곳이 좋지 않겠습니까? 다른 곳의 물자는 신뢰할 수 없으니…….”

“그것도 그렇군요. 이런 제기랄.”

김태평의 말에 따라 유현은 옆으로 샜다.

정확히 말하면 서쪽 방향이었다.

이쪽으로 가다 보면 이전에 김태평이 갔던 국립 박물관 등이 나온다.

또 다리 쪽을 지키던 부대도 있고…….

아무튼, 물자를 숨겨 둔 한글 박물관이 있는 만큼 한 번쯤 들르는 것이 좋기는 할 터였다.

“사, 살려 줘!”

“들어가!”

“으. 으!”

어둠을 헤치고 움직이는 건, 비단 일행만이 아니었다.

용케 상대 부대의 손에 붙들리지 않은 병사들 또한 이리저리 도망가고 있었다.

그 뒤로 총성이 있기도 했지만 대개는 이미 붙잡은 놈들을 통제하는 데 힘을 쓰고 있었다.

유현이나 김태평은 아직 파악하지 못했으나, 정부군은 반란군으로 지목된 놈들과 전면전 중이었기에 그랬다.

도망치는 놈들이 갈 수 있는 곳은 이제 없었다.

불시에 시행된 기습에 모든 반란군 부대는 불타올랐으니.

“저기…….”

딱히 비밀스럽게 행해진 작전도 아니지 않나.

아니, 어떻게 보면 오히려 요란하게 벌어진 작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동하다 보니 동작대교 북단에서도 불길이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내전이라도 벌이고 있는 모양인데.”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내막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저희가 행한 사보타지가 영향을 줬을 거 같습니다.”

“하긴, 그것 말고는…… 세균 살포는 이미 예정에 있던 거 같죠?”

“네.”

“미친놈…….”

이미 지옥인데 거기에 또 다른 세균을 풀다니.

라드를 다 죽이거나 제압해야 한다는 건 유현도 동의하는 바였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안 될 일이었다.

구분을 해야 할 거 아닌가.

헌데 이 미친 대통령은 자신이 이끄는 파티 말고는 싹 다 죽여 버리는 초강수를 채택했다.

그것도 식수를 오염시킨다는 아주 극단적인 방법으로.

‘물은 흘러 나가기 마련이고…… 오염도 사라질 거라는 안일한 믿음이 있겠지만…….’

그 물이 고인 곳은 어쩐단 말인가.

게다가 사방에 널린 시신들은 또 어쩐단 말인가.

그 시신을 먹고 자랄 쥐들 또한 또 다른 질환의 매개체가 될 터였다.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어도 죄 죽어 나갈 거다, 이 말이었다.

문제는 그 사람들에 일행도 포함되었다.

끼리릭

아무튼, 일행은 김태평의 인도에 따라 한글 박물관에 당도했다.

비밀 사이트이니만큼 안에는 차량도 구비되어 있었다.

“다행히 여기를 털 생각은 안 했던 거 같군요.”

“좋네요.”

“식량도…… 이 인원이면 몇 주는 버틸 수 있을 겁니다.”

“듣던 중 다행입니다.”

“뭐……. 줄어든 탓이죠.”

“그렇게 말하면 또 할 말이 없고요.”

뿐만 아니라, 나름 잠도 청할 수 있는 설비가 있었다.

그래 봐야 모든 사람이 침대에서 잘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차피 한날한시에 잘 수 있을 만큼 태평한 시절은 다 끝나지 않았나?

반반으로 나뉘어서 경계를 서야 할 터였다.

그런 상황을 감안하고 보면 감히 풍족하다는 말도 가능할 정도였다.

“흐음……. 저기…… 저기는 어디지?”

“한강대교 같은데.”

“총 세 군데가 불타고 있군요.”

“경비 부대 중 거의 절반 이상입니다. 이미 세브란스, 연세대 쪽이 박살 난 걸 감안해 보면…… 정부의 힘은 반 토막보다도 더 났다고 봐야겠죠.”

원래 같으면 환호성이라도 지를 만한 일일 터였다.

하지만…….

“우리는 박살이 났죠.”

“그렇긴 하죠. 하아.”

김태평조차 한숨을 쉬고 있었다.

그외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절망적인 상황이라는 말도 어울리지 않을 지경이지 않나.

정부군이 반토막이 났다고 한들 여전히 군은 군이었다.

그에 비해 이쪽은 이제 뭐라고 해야 할까.

무리?

그룹?

“이렇게 되면.”

김태평은 전력 차이를 극복할 수 있을 만한 방편을 떠올리려 애를 쓰고 있었다.

한편 유현은 좀 달랐다.

그는 애초에 군인이 아니지 않나.

원래 그의 대부분의 선택지에서 총과 칼은 배제되어 있었다.

“여론을 움직이는 편이 좋겠습니다.”

“여론……?”

유현의 말에 김태평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론이랄 게 남아 있는 세상이란 말인가?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생존자들이 일부 남아 있는 시절도 아니지 않나.

이제 거리에는 온통 시신들뿐이었다.

그 시신을 갉아 먹고 사는 벌레와 쥐 떼하고.

“종로. 거기 아마 엄청 흔들리고 있을 거예요. 물론 통제를 하고 있긴 하겠지만……. 지척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어떻게 다 막겠어요. 말이 안 되죠.”

“하지만……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몰래 들어가야죠.”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가능하지 않을까요? 평시라면 몰라도…… 지금은요.”

“흐음.”

마침 유현의 말이 끝날 때쯤 어디선가 폭발음이 들렸다.

아마 세 다리 중 하나일 터였다.

상황은 대체로 정리 중인 듯했지만…….

그렇다고 각지의 경계 수준이 평소와 같을까?

그럴 수는 없을 터였다.

“확실히…… 지금이 제일 좋을 거 같긴 하군요.”

“그렇겠죠? 아무래도…… 시간이 지날수록 안정이 될 테니까요.”

“무조건 그렇지도 않을 겁니다. 물자가 부족해졌으니까요. 인력도 확 줄었고. 하지만 경계만 놓고 본다면 그럴 겁니다. 몰래 들어가기엔……… 지금이 제일 좋을 거 같군요.”

“으음.”

유현은 바로 답을 하는 대신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밑에는 재원을 비롯한 다른 이들이 있을 터였다.

어떻게 해야 할까.

‘박기태를 쫓아? 1호를 잡는다면 상황이 반전되기는 할 거야. 하지만…… 이 일행만으로는 절대 무리야.’

그렇다고 이 사실을 알리고 협조를 구한다?

저 대통령에게……?

죽 쒀서 개 주느니만 못하게 될 터였다.

“역시 여론을 먼저 흔들어야 할 거 같습니다. 박기태를 우리만으로 잡는 건 무리일 테니까요.”

“그렇죠. 그럼, 일단 가 보시죠.”

“다 가야 할까요?”

“아뇨. 걸릴 겁니다. 핵심 인물만 추려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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