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화 남은 무리는…. (4)
유현 일행이 간신히 사태를 수습하고 있을 무렵, 정부라고 해서 여유가 만만인 것은 결코 아니었다.
특히 대통령이 그랬다.
그가 기대하고 있던 것은…….
다른 무리들은 완전히 파괴되었지만 자신의 세력은 온전히 남아 있는, 그래서 아주 빠르게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을 완전히 수복해 나가는 모양새였다.
“세브란스…… 김조은 박사가 없다고?”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방금 받은 보고는 완전 다른 내용이었다.
기습을 당했다.
“뒤에…… 뒤에 개간하던 곳도 다 날아갔고?”
“네, 그렇습니다.”
한 군데만 당한 것도 아니었다.
크게 보면 두 군데였다.
근데 그 두 군데가 너무 컸다.
중요하기도 했고.
“대체 경비 병력은 뭘 하고 있었던 건가!”
차분히 묻던 대통령은 주먹으로 탁상을 내리쳤다.
대개의 경우에는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뒤에 서 있던 김선태야…….
벌써 여러 차례 저런 모습을 봤지만, 그가 실각하면서 급하게 올라온 이들이 대체 언제 대통령의 날것 그대로의 모습을 보겠나.
‘나를 내려앉히느라 생긴 공백 아닌가.’
김선태는 뒤에서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언제나 빈틈 없다고 생각했던 인물이었다.
아니, 빈틈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언제 그런 것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이나 금세 틀어막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보니…….
라드의 피가 흐르게 되어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뭐라고 집어야 할지 모르겠는 혐오가 들끓었다.
‘남 탓이나 하고 있다니……. 저래서야 맨날 지가 욕하던 무리와 다를 바가 없잖아.’
탓할 생각에 수습할 생각부터 해야 되지 않겠나.
물론…….
수습이 불가능한 상황이긴 할 터였다.
애초에 군인이 너무 많은 집단이지 않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야 사회 인프라가 다 깔려 있었고, 또 휴전 국가라는 정체성 때문에라도 수십만에 달하는 병력을 유지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었지만…….
서유럽 국가들을 보면 원래 국방비 줄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지 않았나.
국방력도 중요하긴 하지만, 군대라는 집단이라는 것이 예로부터 자원을 소모만 하는 집단이어서 그랬다.
모든 것이 부족해지는 순간, 군대의 유지부터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노예 없이 과연 얼마나 더 유지가 가능할까.’
군대를 노예화하면 얼마간은 가능할 터였다.
하지만 나라가 제대로 존재했을 때나 가능한 일 아니었나.
이제 와서 강제로 그런 짓을 시킨다?
총과 칼의 협박도 없이?
심지어 총을 들고 있는 사람에게?
‘반란이나 안 일어나면 다행이야.’
물론 한동안은, 정부라는 정체성을 지니고 있는 집단이니만큼 유지가 되긴 할 터였다.
인간은 생각보다 비합리적인 일에 대해 잘 인내하는 편이니까.
하지만…….
그것도 잠깐 사이에 일이 해결되리란 기대가 있을 때 가능한 일이었다.
노예로 삼을 만한 사람들을 대체 어디 가서 잡아 오겠나.
이미 다 죽었거나 죽어 가고 있을 텐데.
타이밍이 상당히 공교로웠다고 봐야 했다.
이제 정부는, 대통령은 진퇴양난이었다.
“이런 멍청한 놈들! 제일 중요한 두 곳을…… 단 하루아침에 날리다니!”
김선태가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이어 나가고 있는 와중에도 대통령은 여전히 화만 내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했다.
달리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나.
“후우…….”
하지만 역시, 대통령은 대통령이었다.
다른 일반인들과는 명백하게 구분이 되는 면이 있었다.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 같았던 분노의 발화는 어느새 멈춰 있었다.
깊은 한숨을 쉰 대통령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러곤 입을 열었다.
아까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그래서, 도망간 놈들 중에 다시 잡아 온 건 몇명이나 되지?”
“200명 정도 됩니다.”
“200명?”
“네.”
화받이가 되어 가고 있던 장교가 즉시 답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이 정도로 대답이 가능하다는 건 대단한 일이었다.
수습만 해도 어려운 일인데, 그 와중에 보고도 받았다는 얘기 아닌가?
‘저 숫자가 과연 얼마나 정확할까.’
김선태야 당연히 이런 의심이 들었다.
대통령이라 해서 크게 다르진 않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런 게 아니란 생각에서일까? 딱히 숫자 자체에 집중하진 않았다.
“거의 5%도 안 되는군……. 그거론 절대 종로를 유지할 수 없어.”
그래, 저게 핵심이다.
말이 종로지 군대도 유지할 수 없다.
더 이상 서울에는 손쉽게 획득 가능한 식료품이 없으니까.
어떤 집단이건 간에 먹을 것이 가장 중요한 법인데, 군대에 있어서는 특히 더했다.
목숨 걸고 싸워야 하는 입장에서 배까지 곯고 있으면 더 하고 싶겠나?
“일단 숨겨야 하겠지. 반드시…… 이 일은 일단 함구해.”
“그…… 네. 상황 통제하겠습니다.”
“그래.”
우선은 숨겨야 했다.
하루 이틀 배급이 늦어져도 곧 오겠거니 할 수 있도록.
그게 가능할는지는 사실 모를 일이었다.
이미, 알 사람은 다 알고 있을 테니까.
간밤에 연세대 있던 근처에 큰불이 나서 한바탕 난리가 났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가뜩이나 즐길 거리 없는 세상에 그만한 구경거리가 화제가 안 되길 바라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지시하는 사람도 그 지시를 받드는 사람도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것 정도는 다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할 수 있는, 또 해야만 하는 지시를 다 내렸다.
어떻게든 사람을 잡아 오고, 또 배후를 밝히라는 지시.
또 불도 끄고, 정리하라는 지시 등등.
가능한가? 라는 의문을 지우고 듣고 있으면 합당하기만 한 지시들이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지시 사항을 늘어놓던 대통령은 이내 모여들었던 사람들을 물렀다.
몇몇을 제외하고서였다.
“자네는 안에 있게.”
“네, 각하.”
그중에는 김선태도 끼어 있었다.
다만 단둘만 남은 것은 아니었다.
대통령이 천천히 키워 오던 사병들이 몇 명 더 있었다.
딱 봐도 훈련 정도가 만만치는 않았다.
무장도 그랬고.
적어도 김선태 혼자서 뭘 어쩔 수 있는 놈들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김선태는 맨몸이었고 병사들은 무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했다.
“들어서 알겠지만, 위기야.”
“네, 각하.”
김선태는 박기태에게 들었던 명령을 떠올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대통령을 습격하라고 했다.
하지만…….
‘가능할 때 하라고 했지.’
그 말에 따르면 지금은 아니다.
말이 안 된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위기였지. 안 그런가?”
대통령의 말에 김선태뿐 아니라 다른 이들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비단 병사들뿐 아니라 그 병사들의 지휘관으로 보이는 녀석도 있었다.
견장에서 번쩍이고 있는 별이 눈부셨다.
계급은 역시나 중장.
대장까지 주기는 좀 그렇고 그렇다고 소장 주기는 좀생이 같고 뭐 그런 모양이었다.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번 위기는…… 파도가 좀 높기는 할 거야. 일선 병사들에게 갈 수 있는 물은 있나?”
“대비가 되어 있는 상황이긴 합니다. 아마 일, 이 주일은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겁니다.”
“흐음…… 일, 이 주일이면 일단 이 병에 걸릴 위험은 거의 없겠군.”
“부대 내에 감염자만 발생하지 않는다면 그럴 겁니다. 일단 이유에 대해서는, 이번 사태의 원흉들이 그랬다고 말해 놨습니다.”
“그래, 아다리가 맞았군. 그래, 그건 다행이야.”
대통령은 그렇게 말을 하다가 이내 김선태를 바라보았다.
말은 다행이라고 하지만 표정은 여전히 어둡기만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자네 생각은 어떤가.”
그런 상황에서 생각을 묻는다.
제일 먼저 든 생각은 그저 어쩌라고? 였다.
명령에 따르기 위해 최선을 다하다가 실패했다.
그 과정에서 팔도 잃었고, 라드가 되어 가고 있다.
아직 후자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르지만…….
하여간, 그렇게 어렵사리 살아 돌아왔더니 기다리고 있는 건 사실상의 좌천이었다.
“우선 민간인 확보에 가장 주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민간인들은 이미 다 죽었을 거네.”
대통령은 확신하고 있었다.
그럴 만한 세균을 풀었기에 그랬다.
그걸 무방비한 상태에서 마셨다?
죽는다.
그럴 수밖에 없다.
직접 봤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훈련도가 떨어지거나, 충성도가 떨어진다고 판단되는 부대를 근로자들로 써야 할 겁니다.”
“흐으음…….”
아무튼, 김선태는 이 와중에도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었다.
원래도 인간적인 면이 많이 약했지만, 라드가 되고 나서는 더더욱 그렇게 되어 가능한 조언이기도 했다.
말을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전혀 눈치는 채지 못했다.
오히려 대통령은 상당히 좋은 의견이라고 생각했다.
“하긴 그렇군. 어차피 우리에게 대적 가능한 적도 없을 테니.”
“하지만 세균이 정말 그렇게까지 위력이 있을 거란…… 기대가 있으신 겁니까?”
“아, 자네는 잘 모르겠군그래. 기대가 아니라 확신이네. 무방비로 당했다면 다 죽었을 거야. 물론 라드는 더 잘 죽겠지.”
“그렇군요.”
그에 반해 김선태는 좀 다른 것에 꽂혔다.
라드는 더 잘 죽는다.
박기태는 어떻게 됐을까.
이걸 알고 있을까?
세브란스에서 확보한 연구원이 알려 줬을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하니 확실히 덩치 큰 군대를 더 유지할 이유는 없어 보이는군그래.”
김선태가 그런 고민에 빠져 있는 동안 대통령은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천천히 회의실을 겸하기 위해 갖다 놓은 테이블 쪽이 아니라, 자신의 집무실 용으로 가져다 놓은 책상 뒤로 향했다.
손을 그 책상 위에 놓인 위스키 잔으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김선태는 물론이거니와 다른 이들 또한 전혀, 전혀 대통령의 진짜 의중을 파악하지 못했다.
다만 대통령이 책상 뒤로 이동한 후, 의자에 앉고서 무장한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릴 때에 이르러서는 다들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그에 따르면 김선태, 자네 부대도 더 이상 운용할 필요가 없겠어.”
“네? 그게 무슨. 각하!”
기회만 있으면 가서 물으려고 하고 있었다.
그랬는데도 억울했다.
왜?
라드만 아니었다면 배반할 일은 없었을 테니.
정말 그렇지 않나?
최선을 다했다.
헌데 돌아오는 보답이 이래?
“표정이 왜 그러나?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할 셈인가?”
“이, 이!”
“연행해!”
“이, 개새끼가아!”
아마 완전히 인간이었던 시절이었다면, 이렇게까지 흥분하진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김선태는 라드이지 않나?
당장 티가 나지 않는다고 해서 들끓는 호르몬과 그로 인한 충동성은 여느 라드나 다를 바가 없었다.
이성이 끈을 잡고 있는 상황이었다면 모를까, 끈을 놓은 상태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이 미친놈이!”
“힘이…… 무슨 힘이!”
일단 좌우에서 팔짱을 껴 오던 병사 둘이 순식간에 곤죽이 됐다.
총 꺼낼 생각은 추호도 하지 못했던지라, 반격도 하지 못했다.
“무슨…….”
대통령은 거리도 거리고, 총든 병사 둘이 옆에 있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흉흉한 김선태를 어찌하지 못했다.
다른 병사들이나 장교들은 생포해야 한다는 생각에 총을 겨누긴 해도 쏘지 못했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단 뜻인데…….
와장창
김선태는 달랐다.
그는 상황 파악과 동시에 즉시 바깥으로 몸을 던졌다.
목표는 산이 아니라 서대문이었다.
아직 자신을 인간이라 믿는 부하들을 향해서 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