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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팬데믹-299화 (299/323)

299화 남은 무리는…. (2)

“형…….”

대령이 있던 곳이니만큼 커다란 방들이 여기저기 있었다.

한동안 VIP라 할 수 있는 인원들의 숙소로도 써 왔다 보니 애초에 침대들도 줄지어 늘어서 있었는데, 지금은 그저 조금 시설이 좋은 병실이 되어 있을 뿐이었다.

말이 좋아 시설이 좋다는 것이지 실상은 약을 비롯한 모든 물자와 의사, 간호사 등의 인적 자원 모두가 형편없을 정도로 모자란 상황이었다.

“너…….”

그 안에 최우식이 누워 있었다.

옆에 놓인 테이블에는 종이 뭉치가 있었는데, 빼곡하게 무언가가 적혀 있었다.

컴퓨터로 문서 처리하던 시절이 정말로 끝장나 버렸다는 게 그걸 보고 있자니 조금 실감이 났다.

유현은 잠시 상념에 잠겨 있다가 다시 우식을 바라보았다.

초췌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 그런 말로는 표현이 불가했다.

양재원의 말대로 우식은 죽어 가고 있었다.

“괜찮은 거냐?”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오늘?

내일?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다시 일어날 일은 없을 거라는 점이었다.

“흐…….”

우식 또한 의사이지 않나.

임상 현장에서 일한 시간이야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해도, 의학적인 사고가 불가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결코 모르지 않았다.

사실 이제 와 더 살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어젠 아이를, 그제는 아내를 잃었다.

“형…… 이거 꼭 봐…….”

그렇다고 해서 의미 없이 죽어 줄 생각 또한 없었다.

다 포기하려고 했던 적도 있지만, 이순규 일행이 와서 이 모든 비극이 또다시 정부 탓이라는 걸 듣게 된 이상 그럴 수야 없지 않겠나.

“정리한 거지?”

“역학이지…….”

“어떤 게 중요해?”

이심전심이라 할까.

유현도 후배이자 가장 친한 동생의 말에 집중했다.

마지막 말이 이따위 업무에 관한 말이라는 것에 다른 이들은 좀 놀랄 수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우식의 마지막 말이 헛되지 않게 만드는 것이지 않겠나.

유현이라고 해서 슬프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다만 참을 수 있는 인간일 뿐이었다.

“라드의 집단 형성되는 과정을 보면…… 무리가, 무리가…… 합쳐지는…….”

“이거 다 여기 나와 있는 거지?”

“있어……. 근데 알잖아, 나 악필인 거.”

“나도 악필이야, 대강 알아볼 수 있어.”

“그래, 그래…… 악필이지.”

우식은 피식 웃었다.

웃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웃음으로 보인 것이긴 했다.

탈수가 너무 심하다 보니 얼굴에도 이리저리 주름이 져 있어서 사실 정확히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 드문드문 찾아오는 극심한 통증 때문일 텐데, 대개 인상을 쓰고 있었다.

“아, 아무튼…… 무리는 합쳐져…… 싸우기도 하지만…… 대개는…….”

“대개는. 그렇지, 그런데?”

“거의, 거의…… 서울. 서울의 무리로 합쳐져…… 페, 페이션트 제로…….”

“페이션트 제로? 1호? 박기태?”

“그래. 역시…… 형은…….”

우식은 이제 헐떡이느라 말을 더 잇지도 못하고 있었다.

재원을 돌아보니, 고개를 가로젓고 있었다.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다른 사람보다는 우식과 그 가족을 살리기 위해.

하지만 노력한다고 다 해결이 되던가.

그랬다면 사태가 여기까지 왔을 리가 없었다.

유현은 우식의 팔에 꽂혀 있는 항생제와 수액 등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

“박기태…… 놈이 무리를 통합할 가능성이 있다는 거지. 말하지 말고 그냥 고개만 움직여.”

그러자 최우식이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그래,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그제야 명확해지는 것이 있었다.

박기태와 김민수 일당이 같이 있지 않았나?

세력 구도만 놓고 보면 말도 안 되는 전력 차이였다.

그래서 남겨 놓고 온 것이기도 했더랬다.

지들끼리 싸우다 자중지란이 일어나길 바라면서.

하지만 김민수가 숙이고 들어갔다.

“1호의 말을 듣게 되는 거구나.”

그렇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박기태의 명이 어디까지 통하는 걸까.

어쩌면…….

어쩌면 정부는 처음부터 핵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모르고 있었단 얘기가 될 수도 있었다.

이 모든 사태가 박기태로부터 시작했듯이, 이 모든 사태가 박기태로부터 끝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였다.

아직 무언가 구체화된 생각이 떠오르진 않았지만,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아니, 충분해야만 했다.

“우식아.”

최우식은 유현에게 이 모든 것을 전달하기 위해 버티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의 생명의 등불이 급격하게 꺼져 가기 시작했다.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이런 제기랄.”

유현은 잠시 고민했다.

억지로 생명을 붙잡아 둘 수 있는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만약 제대로 된 설비만 있다면, 그렇게 되살아날 때까지 붙잡아 둘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시발.”

여긴 병원이 아니었다.

군부대였다.

그것도 그간 그 어떤 물자도 보충되지 않고 방치된 군부대였다.

거기에 더해 우식은 빈말로도 건강하다곤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모두가 그렇지만…….

개인차가 있기 마련 아닌가.

날 때부터 건강했고 또 끊임없이 운동까지 해 온 유현이나 김태평 등과 같은 이와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었다.

“우식아. 내가…… 내가 이거 헛되이 쓰지 않을게.”

유현은 서서히 숨이 멎어 가는 우식을 향해 말했다.

처음엔 지금 이 상황에 대해서였다.

허나 나중엔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그때 기억나냐? 우리 땡땡이 치고 피시방 간 날. 별것도 아닌 건데 범생이들끼리 신나 가지고…….”

추억을 얘기해 주었다.

사람이 죽어 갈 때 마지막까지 남는 감각이 청각이라는 것 정도는 여러 연구 결과를 통해 확인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하필 자식도, 아내도 잃고 가는 길인데 딱딱한 얘기만 해 주어야 할까.

좋은 얘기만 해 주어야 했다.

다행한 일은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인지 기능이 떨어진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그럴까.

유현은 어쩐지 마지막 우식의 얼굴이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유현아.”

“어.”

그렇게 위안 삼고 있을 시간도 주어지지 않았다.

“아까 말했잖아. 살릴 사람을 정해야 해.”

“얼마나 가능한데?”

“기껏해야…… 둘셋? 물자가 너무 모자라.”

“어딨어?”

“저기.”

“대령님은?”

“대령님은…….”

“그렇군. 하긴, 나이가 있지.”

유현 일행은 다들 여기서 나름 VIP 대우를 받아 오고 있지 않았나.

그렇다 보니 주검들이 거의 이곳에 몰려 있었다.

유현은 방금 싸늘하게 식은 김 주무관을 지나온 참이었다.

‘이런 망할…….’

둘 사이에 어떤 정이 있었나?

잘 모르겠다.

하지만…….

죽음에 대해 안타까워할 정도는 되었다.

알게 모르게 상당히 도움도 받았지 않나.

비록 이젠 처음보단 훨씬 덜해지긴 했지만…….

쥐들이 없었다면 초반 생존이 불가했거나 더 팍팍했을 터였다.

“여기.”

이순규, 양재원의 안내에 따라 들어간 곳엔 5명의 환자가 누워 있었다.

과연 다들 밖에 있는 이들보다는 훨씬 나아 보였다.

죽었거나 죽어 가거나였으니 당연했다.

문제가 있다면…….

이들도 다 살리기는 무리란 점이었다.

말 그대로 물자가 부족했다.

‘조영상, 김현철…… 나머지는…… 얼굴만 아는 사람들인데.’

유현은 문가 근처에 놓인 시신 한 구를 바라보았다.

저 시신은 이름도 아는 사람이었다.

김순구.

배달 기사.

어찌어찌 엮인 다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데…….

여기서 끝이었다.

“음. 이게 다야?”

“지독해요. 자연 치유된 사람들은 열 명 정도밖에 안 돼요, 교수님.”

“그중에 네가 있어 다행인데…….”

“죽는 줄 알았어요, 저도.”

“평소 하도 설사를 하던 편이라 살았나?”

“노…… 농담이 나옵니까?”

“농담 아냐.”

“아.”

실제로 설사를 먼저 해 버리면 독소도 나와서 조금이나마 증상이 덜해진다는 이론적 근거가 있긴 했다.

물론 중요한 얘기는 아니었기 때문에, 유현은 다시 다섯 명의 사람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조영상은 살려야 할 터였다.

박중도 대령도 죽었는데…….

이 사람마저 죽게 되면 안 될 일이었다.

무엇보다 생존자가 그래도 열은 넘는다지 않나?

그들을 규합하기 위해서는 조영상이 필요했다.

‘면역이 있지 않겠어?’

눈앞에 환자를 두고 있는 주제에 이따위 생각이나 하고 있는 게 좀 그렇긴 하지만…….

‘여기서 살아남은 인원들은 여러모로 활용 방안이 있겠지…….’

유현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동시에 재원에게 지시를 내렸다.

“소령님은 다 주지.”

“어……. 네. 안 그래도 그럴 거 같긴 했어요.”

“그래. 그리고……. 흠.”

나머지 인원은 구급대원이 하나 있었다.

‘물어보긴 좀 그런데.’

유현은 구급대원들을 떠올렸다.

그들이 이런 병에 병사들보다 취약할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좋은 사람이었던 거 같아.’

헌신적이었다.

유현의 기억 속에 눈앞의 이 사람은.

‘이제…… 물러설 길이 없어.’

정부를 더 두고 볼 수 있을까.

안 된다.

라드는?

박기태가 키라는 걸 알게 된 이상 그쪽도 안 된다.

곧 큰 싸움이 있을 텐데, 당연하겠지만 희생이 뒤따를 것이 분명했다.

말이 이상한데, 겪어 보니 어떤 희생은 선행된 작은 희생으로 막을 수 있는 법이었다.

“이분도.”

“어…… 김현철 소위는요?”

“일단 보자.”

“어, 네.”

재원은 유현의 말에 구급대원에게 약을 달았다.

사실 이렇게 한다고 해서 반드시 살리라는 보장도 없긴 했다.

아무튼, 유현은 고심 끝에 다른 병사 하나를 더 살리라고 지정하고는 방에서 빠져나왔다.

말이 살린 것이지, 나머지 둘은 죽인 것이나 마찬가지이지 않나.

아무리…….

유현이 합리적이고 또 때에 따라 냉정해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해서 옥상에 올라와 바람을 쐬고 있으려니 김태평이 따라 올라왔다.

잔뜩 지친 얼굴의 양재원도 함께였다.

“넌 자지, 왜.”

“잠도 안 와요. 아는 사람이…… 다 죽었어요…….”

“아.”

그래, 그럴 수 있지.

유현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내 김태평을 돌아보았다.

아는 사람이 죽은 거로 치면 재원이나 유현이나 이놈이나 다 같을 터였다.

허나 적어도 겉으로 볼 때는 멀쩡해 보였다.

“검토는 했습니까?”

“검토? 아, 이거. 했죠. 아까 해 준 얘기 더 자세하게 써 있는 수준이라…….”

“그럼 박기태…… 1호 놈이 핵심이라는 겁니까?”

“뭐……. 이론적으로는 그렇죠. 이 내용만 봤으면 확신을 못 했겠지만 우리는 봤잖아요.”

“그렇죠. 이상하다 했는데…… 이런 게 있었나.”

말은 이론이라고 했지만 실은 통계적으로 입증된 사실일 뿐이었다.

이걸 이론적으로 풀려면 연구실에서 더 들여다봐야 할 터였다.

하지만 이제 와 그런 것을 하고 싶어 하는 놈은 김조은 정도 되는 놈들뿐일 터였다.

유현은 현상을 이용해 이 사태를 해결할 생각만 하고 있었다.

“결국…… 박기태를 잡아야 해요. 그놈을 이용해서 이 사태를 막아야 합니다.”

“어차피…… 제대로 무리 이루고 있는 라드 놈들이 그놈들뿐일걸요? 다 박살 나지 않았습니까.”

“하긴.”

유현은 김태평의 말에 주변을 돌아보았다.

옥상에서 바라보는 수원 일대는 그저 조용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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