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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팬데믹-298화 (298/323)

298화 남은 무리는…. (1)

“미친놈…….”

방호복을 챙기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팬데믹 시절 워낙에 많은 양의 방호복을 각각의 병원마다 구비한 덕이었다.

거기에 더해 사태가 발발한 이후론 더 이상 방호복이 필수 품목이 아니게 되었다 보니 폐허가 된 동네 병원 아무 데나 가도 찾기 쉬웠다.

필수는커녕 애물단지가 되었다 보니 더더욱 그랬다.

해서 대강 챙겨 입고 안에 들어선 유현은 이내 수원에서 왔던 병사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이런 망할.”

옆을 지키기 위해 남은 오예리, 김용일 형사 또한 욕설을 내뱉었다.

이미 차게 식은 이들이 태반이었다.

식수가 오염이 되었으니, 아마 발병 시점은 거기서 거기지 않았겠나.

갑자기 구토와 설사 그리고 발열, 오한 등이 일어났을 터였다.

물론 몇몇 인원은 이 거대한 재앙을 잠시 피할 수 있었을는지도 몰랐다.

어디론가 도망갔을 거 같은데…….

그들이 살아남았을까?

모를 일이었다.

모든 것이 적대적인 세상에 물마저 적이 되었으니, 이를 모르는 상태에서 살아남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터였다.

“으…….”

구석 어귀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잘 보니 박중이었다.

단단한 체격을 자랑하던 그는, 엎어져 있었다.

“박중 대위?”

“으…….”

제대로 된 대화가 가능한 상태도 아니었다.

보아하니 너무 심한 구토와 설사로 급하게 전해질 손실이 일어나면서, 그로 인한 다른 전신 증상이 발생한 모양이었다.

약하게는 근력 저하나 저림이겠지만, 심한 상태라면 뇌도 망가질 수 있었다.

생각보다 구토와 설사는 아주 쉽게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

제대로 된 수분, 전해질 보충이 되지 않은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이런.”

유현은 동공 반사를 확인하곤 고개를 저었다.

설령 동공 반사가 제대로 되어 있었다고 해도 별반 차이는 없었을 터였다.

여기서…….

사람을 어떻게 살린단 말인가.

방금 전까지만 해도 고속터미널을 거대한 폐허라 여기고 있었지만, 이젠 좀 생각이 달라졌다.

여긴 거대한 무덤이었다.

“이런 시발.”

유현은 자신도 모르게 쌍욕을 했다.

그로서는 상당히 드문 일이었지만 주변인들은 놀라지 않았다.

그들 또한 눈 앞의 광경에 완전히 압도되어서 그랬다.

이게……

이게 대체 뭐란 말인가.

고속터미널 그리고 이곳을 관장하던 소장에 대한 호오와 별개로 그나마 지금까지 수백에 가까운 인원이 살아 숨 쉬고 있던 터전이 완전히 박살 나 버렸다.

그리고 이렇게 만든 존재는 라드가 아니라 인간이었다.

그것도 국민들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

“이런…… 이런 망할.”

유현으로서도 지금 당장은 욕 말고 떠오르는 게 없을 지경이었다.

이미 너무 많이 죽지 않았나?

그 과정에서 유현 또한 인간성을 많이 잃었다 생각했다.

의식적으로도 그랬고, 비의식적으로 그러했다.

헌데…….

이건…….

이런 건 생각지도 못했다.

“이택동…….”

“아, 네.”

같이 남은 이들 중엔, 세브란스에서 데려온 군의관도 있었다.

그는 별 표정 변화 없이 있다가, 유현의 목소리가 평소보다도 더 서늘하다는 것을 느끼고 나서야 부리나케 다가왔다.

“이걸 언제부터 계획…… 한 거지?”

유현의 말에 군의관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김조은 박사의 말대로 수인성 전염병에 대한 고려는 상당히 오래되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실험에 들어간 건…… 얼마 안 되었습니다. 두세 달? 배양에 들어간 건 몇 주 안 되고요.”

“배양이라면.”

“뭐…… 사람들을 이용했죠. 그래서 빠르게 키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계획에 찬성한 적 없습니다. 라드만 타겟하는 바이러스나 세균을 만들었어야죠. 김조은이 유전자 박사라면…… 그렇지 않습니까? 전 민간인 살상에는 반대했습니다.”

반대라.

방금 사람들을 이용해 균을 배양했다고 하지 않았나?

그 전에 이미 라드 생산이라는 발상도 했을 터였다.

애초에 세브란스 병원이야말로 최초의 라드 공장이라고 할 수 있었고.

유현은 당장 때려죽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른 채, 말을 이었다.

“몇 주. 그럼 김선태가 실종되고 나서인가?”

“네. 그렇습니다.”

“음.”

궁금한 게 있어서 그랬다.

아무리 대통령이라 해도 이런 짓을 그냥 재미로 하진 않았을 거 아닌가.

옳고 그름의 문제 이전에 합리적인 일이 아니었다.

해서 물어보니 과연 뭔가 사건이 있었다.

하필 유현과 연관이 있는 사건이었다.

‘위기를 느꼈나……. 하긴, 그럴 수 있지.’

군이 통제에서 벗어났다는 건, 정치인에게 가장 커다란 두려움이 될 수 있는 요소이지 않겠나.

비록 그 원인을 본인이 제공했다고 해도 그건 마찬가지일 터였다.

심지어 대통령은 상당히 높은 확률로 딱히 자신이 원인을 제공했다고 생각지도 않을 터였다.

이순규가 그러지 않았나.

그런 류의 인간들은 잘못된 것은 다 외부 요인에 의한 것이고, 잘된 것은 다 자신 덕이라고 여긴다고.

그런 놈이 대통령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 불행일 거라고, 그렇게 말했다.

‘거기에 김선태라는 오른팔이 실종되었다는 게…… 충격이었겠지.’

외부로는 강력한 적이 탄생한 셈이고 내부적으로는 믿을 만한 부하를 잃은 셈이었다.

진퇴양난으로 느껴졌을까?

유현으로서는 알 수 없었다.

아무래도 서 있는 위치가 다르지 않나.

입장이 다른데 서로 간에 완전한 이해를 할 수 있다는 믿음은 어불성설이었다.

‘그렇다고…….’

유현은 생각에 잠긴 채, 밖으로 나왔다.

김용일과 오예리 그리고 이택동과 함께였다.

이순규와 다른 요원, 김조은은 이미 수원으로 먼저 출발했다.

혹 그쪽에서 아직 오염된 식수를 취식하지 않았다면 경고를 해 주기 위함이었다.

군부대다 보니 나름 빗물 저장소도 구비되어 있다 보니 해 볼 수 있는 기대긴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현은 회의적이었다.

‘거기도 사람이 너무 늘었어.’

군인은 민간인을 보호해야 한다.

이 원칙이 흔들린 적은 있었을지언정, 버려진 적은 없는 곳이지 않나.

이미 군인보다 민간인이 많은 상황이었다.

사실 군부대 시설이라는 게 제대로 된 것도 잘 없었고.

세상에 그 많은 세금 걷어다가 다 어디다 쓴 건지…….

엉망진창이었다.

“일단 수원으로 가도록 하죠.”

“네.”

이런 생각을 지금 와서 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미 고속 터미널은 절멸했다고 봐야 했다.

뭐…….

설마 싹 다 죽지는 않았겠지만…….

무리에서 벗어나 다른 곳으로 떠돌게 된 일부 사람들이 언제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더군다나, 약화되었다고는 해도 정부군은 여전히 건재한 상황이었다.

만약 강남 일대가 무주공산이 된 이때를 틈타 남하한다면 막을 방도가 없었다.

부우웅

해서 유현은 일단 수원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조용하네요.”

오예리는 가는 길 내내 습관처럼 총구를 창밖으로 내밀고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움직이는 차 안이다 보니 이런다고 뭘 맞히기야 쉽지 않겠지만…….

저격수라 함은 눈도 좋아야 하는 존재이지 않나.

오예리의 경계력은 상당한 수준이다 보니 늘상 무리에서 제일 먼저 적을 발견하곤 했다.

“으음.”

그런 그녀의 말에 김용일은 신음만 흘렸다.

아닌 게 아니라 거리가 너무 조용했다.

거기에 더해 평소와는 다른 악취가 밀려오는 듯한 느낌도 있었다.

말 그대로 느낌이다 보니 확실치는 않았지만, 아까 고속터미널의 참상을 본 일행은 저도 모르게 저 뒤에 널브러진 시신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정말 조용하군……. 이런 걸 바란 건가?”

운전대를 잡고 있던 유현도 고개를 내저었다.

평소엔 그렇게 보기 싫던 라드 놈들이 오늘은 그리워졌다.

동시에 왜 산길을 타서 이동하던 중 라드를 단 하나도 보지 못했는지, 이제야 알겠단 생각도 들었다.

아마 미리 생수를 챙겨 떠나던 그날 혹은 그 전날 대한민국의 주요 강들이 모두 오염되기 시작했을 터였다.

같은 이유로 병사들도 적었을 것이고…….

그나마 다행인 건 정부군에 적잖은 타격을 주긴 했다는 점이었다.

만약 작전이 하루 이틀만 늦어졌다면, 유현도 저 안에서 죽어 가고 있었을 것 아닌가.

설령 횡액을 피했다 해도 온전한 상태의 정부군이 내려온다면 도저히 막을 길이 없었을 터였다.

“그…… 저는 반대…….”

“닥쳐. 증상이 어떤지 너도 다 알고 있었지?”

“그건…… 어쩔 수 없이…… 저는 시키는 대로…….”

“지랄하지 마. 그 위에 있던 놈 아닌가? 너 정도면 책임자지.”

“그…….”

다행이긴 한데…….

그렇다고 해서 화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이미 한번 세상을 망가뜨렸던 놈이 또 이런 짓을 할 줄이야.

“치료 방법, 정말 없어?”

“증상 발현할 때 바로 식염수로 따라가고…… 항생제를 쓰는 거 외에는…….”

“그럴 수 있는 곳이 지금…….”

유현의 말에 군의관은 침묵했다.

그런 곳이 없을 거라 생각하고 이런 짓을 한 것이기에 그랬다.

언제 어디에 퍼뜨려야 가장 많은 사람들을 죽일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상당히 길게 이어졌던 거로 기억했다.

그리고 김조은과 이택동은 적어도 주요 도시…….

즉 서울과 수도권 그리고 지방 광역시의 수원만큼은 동시다발적으로 오염시켜야 한다고 피력했다.

대통령도 거기에 동원해서 군을 보내 버렸고.

“아, 저기 보이는데.”

군의관이 침묵을 지키는 동안, 나머지도 딱히 입을 열거나 하진 않았다.

해 봐야 욕밖에 더 나오겠나.

그렇게 조용히 도착한 수원 군부대는…….

마찬가지로 고요하기만 했다.

경계병들도 없었다.

여느 때 같았으면 건물 위에 한둘이라도 올라와 있어야 할 텐데, 그런 것도 없었다.

“들어가죠.”

해서 일행은 안으로 바로 향했다.

문은 열려 있었다.

아마…….

김태평이 열어 둔 것으로 보였다.

부주의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뭐가 들어오겠나.

적어도 사람이나 라드는 그럴 수 없을 터였다.

그 외에 다른 것들은 열려 있나 닫혀 있나 들락거렸을 테고.

“저기.”

김태평이 타고 갔던 차량은 본부로 쓰이던 건물 앞에 놓여 있었다.

여기도 딱히 경계병이 남아 있거나 하진 않았다.

유현은 그 옆에 세운 채 안으로 들어갔다.

“으…….”

1층은 텅 비어 있었지만 2층부터는 신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해서 발걸음을 빨리해 보니, 생존자들이 있었다.

김태평을 비롯한 다른 요원들과 김조은도 바삐 움직이고 있었고.

“아.”

“그나마 완전 폐쇄된 공간은 아니어서요.”

중심을 지키고 있는 건 이순규와 양재원이었다.

그래, 의사가 있었다.

나름 약도 있었고.

동떨어져 있는 군부대다 보니 생리 식염수 등도 조금은 남아 있던 모양이었다.

“아, 교수님!”

수척해진 양재원은, 그러나 증상이 남들에 비하면 경미한 건지 주춤주춤 걸음을 옮겨 왔다.

유현은 그런 재원을 향해 인사한 후 물었다.

“우식이는?”

“선배님은…….”

“어떻게 됐어?”

“살아는 있는데, 안 좋아요.”

“애는.”

“애는. 사모님도…….”

“음.”

어른도 버티기 어려운 병이다.

그걸 아이가 버티는 게 쉬울까.

어찌 보면 지금까지 살아남은 게 용하다 할 수 있겠지만 침통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허나 그렇게 서 있을 시간도 없었다.

“유현아.”

“어?”

이순규가 불렀다.

마찬가지로 침울한 얼굴을 하고서였다.

“누굴 살릴지 정해야 해.”

그러곤 처참한 말을 이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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