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7화 대변혁 (4)
유현 일행은 남산 연구소 안쪽 깊숙한 곳에서 톤 단위로 저장된 콜레라균을 찾아낼 수 있었다.
너무 많은 게 아닌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균의 특성을 생각해 보면 딱히 그런 것도 아니라 할 수 있었다.
공기 감염이 아니다 보니, 이를 이용하기 위해선 식수를 오염시켜야만 하지 않나.
그러니 이 정도면 많은 것도 아니었다.
한강을 오염시키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문제가 있다면, 훨씬 더 많은 양이 있었단 흔적이 있단 점이었다.
딱히 주의 깊게 관찰하지 않더라도 한눈에 알 수 있을 만한 흔적이 저장소 군데군데 있었다.
“이건 어찌 된 거지?”
“하……. 대통령……. 그놈은 진짜…….”
해서 내막을 알 만한 놈을 돌아보았다.
김조은이었다.
그는 바로 답을 해 주기는커녕 그저 텅 빈 곳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뭐야. 이제 그만 살고 싶은 건가?”
김태평이 그런 그를 향해 사납게 을러주고 나서야, 제대로 된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아, 죄송합니다. 여기…… 사실 거의 꽉 차 있었습니다.”
“꽉 차?”
“네. 모두 콜레라…… 였습니다. 그걸 콜레라라고 할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지만요.”
“무슨 소리지?”
“자랑은 아닙니다만, 사태 이후로 균 유전자 조작 기술은 역대 최고로 발전했어요.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우리는 이미 준비가 되어 있었으니까요. 설비도 다 있겠다, 인체 실험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보니……. 뭐, 당연한 거죠.”
이런 걸 제대로 된 답이라고 할 수 있다면 그럴 터였다.
김조은은 광기 어린 눈으로 저장소 이곳저곳을 거닐며 말을 이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유현은 물론이거니와 이순규나 김태평조차 그에게 압도되어 있었다.
육체의 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김조은에게 있었다.
“바이러스에 비해 세균은 디자인하기가 훨씬 수월합니다. 이 정도는 아시죠?”
김조은의 말에 유현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긴 할 거다.
애초에…….
둘은 크기 자체가 다르니까.
게다가 바이러스는 이게 정말 자연 발생하는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이상하게 생기지 않았나?
그에 비해 세균은 그 기전 등이 훨씬 잘 알려져 있었다.
“콜레라가 베이스가 되긴 했습니다만……. 그 전염성이나 번식력은 차원이 달라요. 제 계산에 따르면 여기 있는 이것만으로도 한강 식수원 절반은 충분히 오염시키고도 남아요. 근데 사라진 것들을 다 합치면…… 한강 아니라 전국토를 오염시키고도 남을 겁니다.”
“그걸…… 그냥 푼다고?”
“이미 풀었을 수도 있습니다. 대통령을 모르십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대통령이 자기 나라를 상대로 생화학 테러를 한다고!”
발작하듯 소리를 지른 것은 김태평이었다.
아무래도 나라를 위해 일을 해 왔다는 자부심 때문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죄책감 때문인 듯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일을 했는데, 오히려 나라를 망가뜨리지 않았나.
영영 해결되지 못할 죄책감이 김태평을 옭아매고 있었다.
당당히 그 일원이었던, 심지어 단 한 번도 돌이켜 회개하거나 일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한 적도 없는 김조은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는 그저 피식 웃고 있었다.
“이미 한번 하지 않았습니까? 그땐 당신도 있었습니다.”
“이런 미친……! 이, 이건. 이건 사람은 안 죽나?”
“죽죠. 어마어마하게 죽어 나갈 겁니다.”
“아니…….”
“하지만 라드도 죽을 겁니다. 장마가 오기 전까지는 계속 비가 적게 내리는 계절이지 않습니까? 실제 생존자들이고 라드고 죄다 강변에 모이고 있어요. 다 죽을 겁니다.”
“다 죽는다고…….”
“적절한 치료를 한다면 살 수는 있을 겁니다. 하지만 원래 콜레라의 경우에도 수분 보충이 없으면 죽죠. 수원이 다 오염되었는데 어디서 수분을 얻어 오겠습니까.”
“너…… 설마…….”
김태평은 경악한 얼굴이 되어 김조은을 바라보았다.
김조은은 그와 정반대로 그저 웃고 있었다.
그와 함께 말을 이어 나갔다.
어찌나 평온한 말투인지, 그냥 말만 들어 보면 학회에서 발표라도 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지경이었다.
“네, 사태 초반부터 수인성 전염병은 고려하고 있었습니다. 사태가 지날수록 장기 보관된 물은 사라지지 않겠습니까? 마트에 가 보십쇼. 생수가 있나. 물론 규모가 작은 무리에서는 빗물을 받아 쓰겠지만……. 지금 그런 무리가 남아 있기나 합니까?”
처음엔 라드만 적이었다.
하지만 이젠 어떤가.
인간도 적이다.
같은 인간마저 적이 되어 버린 순간, 생존자들은 결집하기 시작했다.
라드들 또한 지능체가 생겨남에 따라 결집하기 시작했고.
그들은 애초에 빗물을 받아 쓸 생각도 못 했던 개체들이 태반이었으니, 사실 고려 대상도 아니긴 했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콜레라균을 당장 생산할 수 있었겠습니까. 뭐…… 인체를 이용하기도 했지만……. 그 전에 이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 말입니다!”
“이…… 미친…… 미친놈들이…….”
“게다가 공기 감염이요? 공기 감염은 컨트롤이 되지 않아요. ARS 사태를 겪고도 모릅니까? 처음부터 고려 대상이 아니었어요. 그에 반해 수인성 질환은 어떠합니까. 번질 때야 무섭게 번지지만, 시간만 지나면 자연히 없어집니다. 게다가 방역도 쉽죠. 깨끗한 식수만 준비되어 있으면 됩니다.”
“이…….”
김태평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그에 비해 김조은은 뻔뻔스레 말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무언가 자랑하는 투로도 느껴질 지경이었다.
어떻게 보면 충분히 그럴 만한 일이기도 했다.
뭐가 되었건,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이긴 하지 않나.
부작용으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가겠지만…….
“게다가 지금 종로에 있는 시민들은 모두 엘리트예요. 대통령은 그들만 있어도 나라를 재건할 수 있다고 여기고 있을 겁니다. 아니, 오히려 그편이 다른 사람들을 모두 끌고 가는 것보다 낫다고 여기고 있을 겁니다.”
대통령이 그런 걸 고려할 만한 사람인가?
절대, 절대 그럴 리가 없었다.
방금 말한 것이 정답일 터였다.
오히려 잘됐다고 여기고 있을 게 분명했다.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일단 고속터미널과 수원에 이 사실을 알려야 할 거 같은데요?”
“네, 근데…… 이거 이미…….”
김태평은 그나마 훈련을 받은 사람이다 보니 그래도 금세 제정신을 차렸다.
그러곤 흔적을 살폈는데, 아무리 봐도 옮겨진 지 며칠은 된 듯해 보였다.
이걸 위해서 군부대를 움직였다면…….
그러니까 전국 규모로 움직였다면, 세브란스나 다른 곳의 방비가 생각보다 허술했던 것도 당연했겠다 싶었다.
만약 이 추론이 사실이라면 이미 늦었다.
아마 죄다 감염이 되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깔겨 둘 수 있나?
그럴 수는 없는 법이었다.
“가죠, 그래도.”
“제길. 이런 시발!”
김태평은 애꿎은 벽을 발로 찼다가 이내 김조은에게 달려들었다.
사람이 악한 것과 물리적으로 강한 것은 별개이지 않나?
게다가 김태평이 물색없이 사람 때려죽일 사람도 아니었다.
거기에 더해 나머지 인원들도 한 대쯤은 때리고 싶은 상황이기도 했고.
“으아…….”
해서 김조은이 몇 대 맞고 나서야 형식적으로 달려 나가 말렸다.
당연한 일이지만, 김태평은 걷지 못할 정도로 패진 않았다.
김조은은 연신 부어오른 얼굴을 매만지면서 일행의 뒤를 따랐다.
그러고 곧 차량에 탑승할 수 있었기 때문에 고생길은 잠깐이었다.
“일부라도 가둘 걸 그랬나요?”
“아뇨. 어차피 이런 상황을 모르고 갔을 거 아닙니까. 그래 봐야 감염자만 늘었겠죠.”
김태평의 말에 유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듣고 보니 과연 그렇긴 했다.
김조은 때문에 급히 차량을 남산으로 틀었었는데, 그게 잘된 일이란 얘기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감사하는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죽일 놈은 여전히 죽일 놈이었다.
그 눈을 본 오예리 형사가 대신해서 김조은의 뒤통수를 때렸다.
벌써 죽도록 아픈 상황이었다 보니 한 대 더 친다고 해서 신음이 더 커지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부우우웅
김조은이 끙끙 앓는 소리를 제외하고는 조용하기만 했다.
심지어 다리를 건너고, 도심이었던 곳을 지나고 있음에도 그랬다.
이따금 눈에 띄었던 라드나 소규모 생존자 무리조차 자취를 감춘 채였다.
우연일까.
김조은의 말을 듣지 않았다면.
또 남산에서 그걸 보지 않았다면 우연이라 여길 수도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죄 죽어 나가고 있나?”
“고터도 그럴까요?”
“거긴 아예…… 강에서 물을 길어다 쓰고 있는 데다가…… 그 물로 농사지을 생각까지 하고 있잖아.”
조용하던 이순규가 고개를 털었다.
“제일 먼저 감염되었을걸……. 그나마 성모 병원 출신 의사들이 있긴 한데……. 그렇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있을까?”
그의 이어지는 말에 유현 또한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는 없지. 약도 없고…… 그렇다고 깨끗한 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이거 그냥 콜레라가 아니잖아.”
김조은이 처맞고 나서도 계속 질문은 했더랬다.
끙끙대며 답해 온 말에 의하면, 아까 했던 말이 과연 과장이 아니었다.
콜레라이되 콜레라가 아니라고 봐야 했다.
증상 자체는 비슷했다.
설사와 발열.
허나 설사에서 분비되는 균의 양이 달랐다.
거기에 더해 치사율도 확 올라갔다고 했다.
아무 치료를 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치사율이 무려 90%가 넘는다고 했다.
-어찌 아냐고요? 해 봤으니까, 알죠.
인체 실험을 했으니…….
그 결과로 알게 된 것이니 이보다 정확하기도 어렵긴 할 터였다.
더군다나 지금 생존자들은 일반적으로 사태 이전의 사람들보다 건강하지 못하다.
걸리는 족족 다 죽을 거라고 봐도 무방했다.
한 가지 위안이 되는 점이 있다면…….
이걸 위안이라고 해도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라드는 100% 사망합니다. 그 어떤 개체도 예외는 없었어.
라드는 정말 걸리는 족족 죽는다고 했다.
이 기이할 정도로 조용한 거리가 그 증거일 터였다.
끼이익
정말이지 아무 방해도 없이, 일행은 고속터미널역에 도달했다.
으레 앞에 서 있던 경비는 보이지 않았다.
“불길하군그래.”
김태평은 요원들과 함께 무장한 채 차에서 내려 천천히 접근했다.
필경 콜레라 때문이겠지만…….
혹 모를 일 아닌가.
습격이 있었을 수도 있다.
제아무리 안정되어 보이던 무리라 해도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는 게 이 세상이니까.
“읍.”
허나 안쪽에 고개를 들이밀자마자, 생각이 바뀌었다.
밀려오는 악취는…….
향기는 발자취를 감춘 지 오래라지만, 그렇다 해서 이 정도 악취가 흔한 것은 아니었다.
어설프게 들어오는 불빛에 따라 보이는 곳 전부에 사람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들어가지 마시죠.”
“네?”
“이미 늦었어요. 제대로 된 방호 장비를 갖추는 게 좋겠습니다. 아, 그리고 수원도 가 봐야 합니다. 거기라고 해서 다를 거 같지 않아요.”
“감염의 위험이 있다 이거죠?”
“네. 저 정도로 폐쇄된 공간이라면 온통 균 덩어리일 겁니다. 자칫 실수라도 하는 날엔 큰일이에요.”
고속터미널역은 이미 폐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