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296화 (296/323)

296화 대변혁 (3)

“가!”

박기태의 허락에 김민수가 명을 내렸다.

애초에 그가 물었거나 그의 부하들이 물어 생산한 라드들이지 않나?

아무래도 이쪽이 더 익숙하기는 했다.

어차피 박기태가 다른 명령을 내린다면 얘기가 좀 달라지겠지만…….

아무튼, 그의 말에 따라 지능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라드들이 우르르 연구원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중엔 당연하게도 현정도 끼어 있었다.

박원상도 마찬가지였다.

“얼씨구.”

가장 선두에서 달려들려던 현정은, 그러니까 연구원이 쏴 대는 균에 가장 먼저 당할 것이 분명해 보였던 현정은 박원상 등과 뒤엉켜 넘어져 버렸다.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뒤따르던 놈들이었다.

“이, 이이!”

연구원은 분사기로 균을 뿌려 댔다.

예상대로 균이 닿는다 해서 당장 뭐가 어떻게 되는 일은 없었다.

그저 눈이나 점막에 직접 분사당한 놈들이 좀 뒤로 물러났을 뿐, 나머지는 그대로 달려들어서 연구원을 물어 버렸다.

“시, 시발…….”

목숨에 위협이 된다고 느꼈다면 마구잡이로 물었을 텐데, 지금은 그런 것도 아니다 보니 그저 팔뚝을 물 뿐이었다.

그렇다 해도 통증은 고스란히 전달되었을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원은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체념한 얼굴이 되어 욕설만 흘릴 뿐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연구원만큼 라드라는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 잘 아는 사람도 드물 테니.

만에 하나 지능이 남을 수도 있겠지만…….

확률은 적었다.

‘난…… 점수가 낮단 말이야…….’

사태 이전엔 사이코패스 성향이 짙다는 게 좋은 일일 수 없었다.

그렇지 않나.

다 같이 살아가야 하는 사회에 공감 능력이 결여된 채 내동댕이쳐진다는 건, 다른 사람들에게도 불운이겠으나 그에게도 불운일 수밖에 없었다.

허나 적어도 이들 연구원들에게는 사이코패스 점수가 높을수록 좋다고 인식되고 있었다.

“이런 제기랄…….”

아마 자신은 고지능체가 되진 못할 거란 생각에, 연구원은 욕설과 함께 눈물도 흘렸다.

한 사람의 개인사로 따지면 비극이라 할 수 있겠지만 이제 와 그따위 것에 관심 있는 이들이 있겠나.

박기태를 위시한 나머지는 미끼로 쓴 것들을 다른 방 하나에 몰아넣고는 벌써 안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안쪽으로도 사람들이 꽤 있었다.

대개는 숨어 있었다.

전투 인원도 그랬다.

타다다당

“크아악.”

그때마다 소모되는 것은 대개 미끼 역할로 데려온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현정은 먼저 달려들다가 넘어지건 밀쳐지건 간에 뒤로 밀려났다.

그 중심엔 박원상이 있었는데, 박기태는 딱히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다 보니 알아차리진 못했다.

그렇게 연구소 안쪽, 가장 내밀한 곳에 닿은 박기태가 마주하게 된 것은 거대한 통들이었다.

“이건……?”

“봐서는 아까 뿌리려고 했던 거 같은데요?”

“그 균이겠군.”

뭔 균일까?

그것까지는 알 수 없었다.

‘폐기해야 하나?’

폐기가 제일 좋을 텐데…….

건드려서 좋을 게 있을까.

일단 폐기라는 게 어떤 절차를 통해서 해야 안전할지도 알 수가 없었다.

‘저 새끼…… 쓸모없는 새끼.’

김조은이라면 백 퍼센트 지능체가 되었을 터였다.

아니, 당연히 자신보다도 더 똑똑한 놈이 되었을 게 뻔했다.

헌데 박원상은 흔하디흔한 저지능 라드가 되었다.

아직 신체적인 능력도 달리다 보니 그나마도 꾸물거리고 있었고.

“일단 두고 가지.”

“네. 근데…… 어디로…….”

미련 없이 돌아서는 게 옳았다.

박기태.

1호.

숱한 실험 대상이 되어 온 그에게 한 가지 남은 것이 있다면, 위험 감수는 되도록 하지 말아야 한다는 태도였다.

해서 연구실을 빠져나오기 위해 문가로 향하려는 찰나 김민수가 물었다.

그 말에 박기태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돌아갈 곳이 있나?

없다.

‘고향…….’

고향 땅은 저 멀리 북녘 넘어 중국에 있다.

돌아가고 싶나?

그렇지도 않았다.

탈북자의 자손으로 낙인찍힌 그에게 중국은 잔인한 땅이었으니.

벗어나고 싶어 자원해서 실험체가 되지 않았나.

그 결과 중국이 가장 큰 피해 국가가 되었다는 것이 위안일까?

그러한 상황을 잘 알지도 못했거니와 안다고 해도 딱히 위안이 될 것 같지도 않았다.

‘어디로 가야 하나.’

그렇다면 어디로 갈까.

한국은 중국이랑 달랐나?

여기서 그는 처음부터 피험체였다.

탈주했던 적도 있긴 했으나, 그때 그가 마주했던 건 제대로 된 한국이 아니라 이미 사태에 휘말려 버린 한국이었다.

도처에서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또 라드 또한 개처럼 죽어 나가는 곳.

“음.”

김민수는 혼란스러워 보이는 박기태를 확인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기다리는 수밖에 다른 수가 없지 않나.

한국의 라드에게 박기태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관습적으로 그렇게 불렀지만, 진정한 1호라는 의미였다.

“일단…… 나가지.”

“네.”

그렇게 기다렸지만 박기태는 여전히 답을 찾지 못했다.

잡혀 온 땅에 갈 곳이 어디 있겠나.

애초에 서울 지리가 익숙하지도 않은 것을.

해서 남산 연구소에서 빠져나온 그는, 또다시 멈춰 섰다.

그런 박기태를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자들이 있었다.

“이미…… 끝났나.”

“저기로 먼저 갔을 줄이야.”

“그렇다 쳐도 저기가 어떻게 뚫린 건지 이해가 안 됩니다.”

“그렇습니까?”

“네. 나름 전투 병력이 있는 데다가, 저기 철문은…… 라드가 부술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에요. 안에서 스스로 연 게 아니라면…….”

김태평과 유현이었다.

더 가까이 가면 냄새로 인해 인간의 접근을 눈치챌 수 있기 때문에, 망원경으로 간신히 얼굴 식별만 가능한 거리에 서 있었다.

뒤로는 김조은과 군의관 등을 위시한 나머지 일행이 있었다.

둘은 아무래도 이순규 쪽을 제일 힐끔거리고 있었다.

저런 사례는 또 처음 보기에 그랬다.

‘연구해 보고 싶은데…….’

잡혀 온 몸이고 언제든 죽임을 당하거나 혹 그보다 더한 꼴에 처해질 수 있는 상황임에도 충동을 느끼고 있었다.

특히 김조은이 그랬다.

허나 어떻게 그러한 생각을 드러낼 수 있겠나.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어쩌죠?”

“일단 떠나면, 그때 안으로 들어가 보죠.”

“그래야…… 겠군요.”

“어?”

대화는 여전히 선두에 있는 김태평과 유현이 나누고 있었다.

그러던 중 유현이 무언가를 발견했다.

쉽사리 놀라지 않는 사람이라는 건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유현의 반응에 김태평도 조금 놀랐다.

“왜 그러십니까?”

“박원상…… 원상이가 저기.”

“네? 그 사람이?”

“네. 아, 현정이…… 제수씨가 저기 있군…….”

“라드가 되었다고요?”

“그런 거 같은데…….”

“흐음…….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대체 어떻게 된 거지.”

김태평은 여전히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남산 연구소가 이렇게 털릴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안에서 열어?

왜?

합리적인 추론을 이어 나가는 이상 절대로 제대로 된 결론에 도달하진 못할 터였다.

그러니 그가 지금 하고 있는 고민은 죄다 쓸데없는 것이라 치부해도 무방했다.

“지능체로 보이진 않는데…….”

그에 비해 유현의 말은 보다 건질 만한 건덕지가 있었다.

“그렇다면 안에 콜레라가 되었건 뭐가 되었건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을 거 같네요.”

“아, 그럴까요?”

“뭐가 되었건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하긴 그렇죠. 으음.”

일단 무너진 이유를 여기서 알아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보다는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정하는 것이 훨씬 중요할 터였다.

당연했다.

일단 정부를 약화시키는 데에는 성공했다.

헌데 이렇게까지 빨리 약화시킬 생각은 없었다.

적이 정부만은 아니지 않나.

오히려 더 큰 적은 라드였다.

저기서 서성거리고 있는.

“아, 간다.”

그러다 이내 박기태가 움직이는 것을 확인했다.

급히 움직이는 건 아니었다.

그냥 여기 말고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 목적인 양 어슬렁거리며 발걸음을 떼고 있었다.

그렇다 해도 죄 라드고 그 수가 적지 않다 보니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것뿐인데도 불구하고 몸이 좀 움츠러들 지경이었다.

“어디로 가는 걸까요?”

“알 수 없죠. 저 방향이면……. 사실 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

그래, 김태평의 말대로였다.

고속터미널도 갈 수 있고, 세브란스로 돌아갈 수도 있고…….

심지어 청와대로도 갈 수 있었다.

그중 가능성이 높은 곳이 있다면 어딜까.

“고터에 남겨 둔 병력이 있으니……. 거기로 가진 않을 겁니다. 근데…… 이상하네요.”

“네, 저도. 박기태가 합류했는데, 아무리 봐도 박기태가 제일 위로 보이지 않습니까?”

모여서 웅성대고 있을 땐 잘 안 보였다.

그냥 고만고만한 것들이 있었으니.

오히려 제일 높아 보이는 건, 주변을 경계하고 있는 초거대 개체들이었다.

허나 움직이는 걸 보아하니 딱 박기태를 중심으로 해서 김민수, 구우준 그리고 이름 모를 지능체들이 모여 있었다.

거대 개체와 초거대 개체는 그 대열을 둘러싸고 있었고.

“흐음……. 한 가지 가능한 시나리오가 있긴 한데.”

유현이 턱을 매만지면서 말을 이었다.

“박기태가 우리나라 사태의 기원이잖아. 아니……. 어떻게 보면 전 세계 사태의 기원이지.”

“그런가요? 아, 그렇겠네요. 1호니까요.”

“라드 놈들 중에 지능이 있는 놈들은 먼저 문 놈을 따르게 되는데……. 그래서 저렇게 된 거 아닌가 싶은데.”

“말 그대로 1호라서 다 따르는 거라고요?”

“강변에서도 박기태가 제일 높았다고 했잖아요. 아무리 봐도 초거대 개체들보다 물리력이 강해 보이지는 않은데…….”

“하긴, 저도 그건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가능한 얘기네요, 확실히. 으음…….”

김태평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역시 유현의 추론 능력은 여전히 의지할 만하단 생각을 했다.

물론 겉으로 굳이 티를 내진 않았다.

그저 움직임 없이 기다릴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일행은 연구실로 향했다.

입구에서부터 피 냄새와 여러 다른 냄새가 뒤섞인 악취가 잔뜩 풍겨 오고 있었다.

그에 비해 전기는 또 잘 들어와서 시야는 좋았다.

엄청나게 밝은 불빛 아래로 엉망이 된 시신들과 핏자국들이 널려 있다 보니, 시야가 좋은 것이 마냥 좋게만 느껴지진 않았지만.

“정말 싹 물어 갔네요.”

“표현이 그렇긴 한데, 확실히…….”

“아, 저게 분사기입니다. 안에…… 균을 뿌렸네요. 그렇다는 건……. 어!

그렇게 안쪽으로 향하던 일행은 버려진 분사기를 확인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엉성하게 닫힌 문이 보였는데 그 안에 라드들이 좀 있었다.

모두 미끼로 쓰였던 것들이니만큼, 그리 강력하진 않았다.

조준 사격으로 모조리 정리할 수 있을 정도였다.

“감염이 되었다고 판단했나.”

“확실히 이게…….”

유현과 이순규가 나서서 그들을 살폈다.

아직 무슨 징후가 있을 만한 시기는 아니어야 했다.

허나 안쪽에서 느껴지는 악취로 미루어 보건대 뭔가 발생한 모양이었다.

“라드에게는 훨씬 전격적으로 증상이 생기는 건가?”

“알 수 없지. 그럼 이거 꽤나 강력한 무기가 되겠는데.”

“무기는 무기지. 눈이 안 달린 게 탈이지. 만약 단순히 독성이 더 강해진 거라면……. 우리에게도 위험해.”

“으음.”

유현의 말에 이순규는 가뜩이나 자신의 신체적 특성이 라드와 가깝단 생각에 불안해하던 터다 보니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유현은 그사이 분사통을 확인했다.

거의 80%도 넘게 남아 있었다.

삽시간에 당한 모양이었다.

‘바로 증상이 나타나는 건 아닌 거 같은데……. 흐음……. 그래도 챙기는 게 좋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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