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5화 대변혁 (2)
“저기…… 좀 이상한데요?”
라드 일행의 선두에 서 있던 건 구우준이었다.
추적술에 능한 데다가 길도 잘 찾는 놈이다 보니 이 집단에서도 그렇게 되었다.
옆에 서 있던, 그러니까 대강의 방향을 알려 주고 있던 박기태 또한 고개를 갸웃거렸다.
“문이 열려 있군. 저기가 맞나?”
남산 밑으로 난 샛길을 따라 드러난 철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사실 박기태도 저 앞에서 제압된 채 헬기나 탔지, 자세히 들여다본 적은 없지 않나.
그렇다 보니 긴가민가했다.
그 말에 세브란스 지하에서 라드가 된 연구원이 나섰다.
“맞습…… 맞습니다.”
아무래도 다른 집단에서보다는 훨씬 지능체가 되는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실험을 했던 놈들이 뭐 정상이겠나?
이미 속은 괴물이었다.
사이코패스라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였다.
“맞아? 근데 왜 열려 있지?”
“모르겠습니다…….”
“일단 가 보지.”
“네.”
그 덕에 상당수의 지능체를 확보한 박기태는 천천히 연구소 쪽으로 이동했다.
그 뒤를 많은 라드들이 따랐다.
김민수가 악을 쓰고 모아 온 거대 개체들이 열 마리가 넘었다.
타다다당
“으, 으아아아악!”
가까워질수록 안에서 들려오는 소음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기이한 일이었다.
습격이 있었나?
대체 누가?
혹 김태평을 비롯한 놈들이……?
김민수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다른 이들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저기…….”
구우준도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손을 들어 가리켰다.
애초에 달리 할 것도 없었기 때문에 다들 그 손가락 끝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인간 하나가 보였다.
그냥 이렇게 봐서는 별로 특별해 보이지 않는 놈이었다.
“뭐지?”
“뭐야.”
다들 의문이 가득한 얼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저놈은 뭔데 무너져 가는 연구소 앞에 서 있는 걸까.
아니, 서 있을 수 있는 걸까.
초조한 얼굴도 아니었다.
냉정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안쪽을 돌아보고 있었다.
그러다 드문드문 앞쪽을 돌아보고 있었는데,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보였다.
“어……. 저놈.”
그러다 박기태가 무언가를 떠올렸다.
누군가라고 하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일 터였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아마도 박기태를 포함한 라드들일 가능성이 컸다.
“박원상……? 저놈이 여기 있었나.”
아무튼, 박기태는 그를 알아보았다.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못 알아본 것이 더 이상한 일이었다.
한때 박기태는 그야말로 매일같이 저 얼굴을 마주했었으니까.
물론 그때와 지금의 박원상은 좀 많이 달라지긴 했다.
한창 실험실에서 일하던 때의 박원상이 자신감이 넘쳐흐르는, 그야말로 엘리트 교수였다면 지금 저 앞에 서 있는 박원상은 많이 깎이고 주눅이 든 상태였다.
“어어, 위험합니다.”
“아니, 총소리가 멀잖아. 게다가 저 새끼, 총도 없어.”
“그, 그래도…….”
“그럼 네가 앞장서.”
“읏……. 네.”
박기태는 박원상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김민수가 그런 박기태를 말리다가 이내 앞장서게 되었다.
거부할 수 없는 본능의 명령이 그를 지배하고 있었다.
“어…….”
박원상은 멍하니 서 있다가,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한 라드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두려움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냉정하게 돌아서서 도망간다거나, 공격을 해 오지도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박원상.”
체념했나?
아니, 그런 것도 아니었다.
무언가 다른, 굉장히 강렬한 감정의 격동을 박기태는 느낄 수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보기 좋게 찢어 죽이고 싶었지만, 그 격동 때문에 박기태는 잠시 참았다.
그러곤 그의 이름을 불렀다.
굵다 못해 바닥에 눌어붙은 듯한 목소리.
라드의 목소리들이란 다 그랬으나, 박원상은 누구 목소리인지 특정할 수 있었다.
“박기태…….”
“알아보는군.”
“날 물어. 물어 줘.”
그때 평정심이 무너졌다.
박기태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자식이 대체 왜 이런단 말인가.
물어 달라고 애원을 하고 있다니?
도망치다가 잡힌 것도 아니고 일부러 앞으로 나와서?
“네가 열었나?”
“그래, 안에 라드도 풀었지.”
“왜?”
“왜…….”
글쎄.
왜일까.
박원상도 사실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다 끝나서?
희망이 없어져서?
아니면, 이미 다 끝났다는 걸 알고 있었다가 이제야 인정하게 되어서?
'뭐……. 뭐지?'
박기태는 그때 박원상의 시선이 자신이 아닌 뒤쪽 어딘가에 박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요즘에 이르러서는 보기 힘든 눈빛을 하고서였다.
그리움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애정이라고 해야 할까.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 아주 복잡한 감정의 홍수가 담겨 있었다.
해서 박기태는 라드가 거의 하지 않을 만한 행위, 즉 물어 죽이고 싶거나 또는 감염시켜야 할 존재인 인간에게서 눈을 떼고 뒤를 돌아보았다.
라드들이 있었다.
지능체나 거대 라드들이 태반이었는데, 다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일부 미끼로 쓸 만한 것들도 데리고 왔다.
그리고 박원상의 시선은 그중 하나에 꽂혀 있었다.
“저거……?”
닳고 닳은 옷을 입은.
그나마도 다리에 총알이라도 한 발 맞았었는지, 아니면 단순히 움직이다가 부딪쳤는지 한쪽을 절었다.
어쩌면 라드가 되기 전에 다쳤을 가능성도 있었다.
지금 당장은 상처가 보이진 않았으니까.
“여보…….”
박원상은 그 볼품 없어 보이는 라드를 향해 애절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박기태는 그만 웃음이 터져 나왔다.
“흐, 흐. 흐하하하하!”
창살 안에 갇혀 있었을 때, 박원상은 그야말로 절대자였다.
놈이 찌르는 대로 찔리고, 피를 뽑아 가면 뽑혔다.
심지어 자극 반응 실험이라는 명목하에 어느 정도 통증을 받기도 했다.
그땐 정말이지 두려웠다.
눈앞에 서 있는 이 작고 초라한 인간이, 고작해야 저렇게 변해 버린 라드에게 여전히 애정을 품고 있는 이 인간이 너무 무서워서 돌아 버릴 것 같았다.
자신의 운명을 쥐고 흔들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흐흐.”
박기태는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박원상에게 다가갔다.
박원상 또한 그걸 모르진 않았을 터였다.
박기태처럼 거대한 몸집이 눈앞에서 움직이는데 모를 수가 있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원상은 그대로 서 있었다.
“잘 어울리는군, 그래. 물어 주지. 네놈은…… 지금 죽이는 것보다 그게 낫겠어.”
박기태는 무방비한 상태로, 숫제 기다리고 있다고까지 느껴지는 박원상을 붙잡고 나서는 팔뚝을 물었다.
피습자에게 있어 가장 안전한 곳이었다.
얼굴 가까운 곳은 염증이 발생할 경우 죽을 수도 있었다.
지능체라고 해서 딱히 이를 닦거나 하진 않으니까.
다리?
다리는 국소 감염이 있는 경우 기동력이 떨어질 수 있었다.
뭐, 전투 중이라면 어쩔 수 없이 아무 데나 물겠지만 지금은 아니지 않나.
“으, 으으.”
그렇게 십여 초가 흐르고 나자 박원상이 식은땀을 흘리며 벽에 기대었다.
현경이었던 라드는 그런 박원상을 향해 달려들고 싶은 것을 애써 참는 듯 보였다.
그저 본능이 시키는 대로 물고자 했다는 얘기였다.
그 외에 다른 이성은 이미 날아가 버린 지 오래였다.
유현이 갖은 노력을 했다고 하긴 뭣하지만, 여하간에 이런저런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별 소용은 없던 모양이었다.
“흐……. 여보.”
그랬던 현경의 눈에 담겨 있던 적대감이 차츰 사그라드는 것이 보였다.
박원상을 알아보아서, 그래서 지능이 날아가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박원상이 라드가 되고 있어서 그랬다.
허나 박원상은 애써 좋게 생각하려 애썼다.
아주 잠시 동안은 그럴 수 있었다.
“큭.”
박기태는 연신 신음을 흘리고 있는 박원상을 내려다보며 잠시 기다렸다.
이런 놈이라면 반드시 지능체가 될 거라 여겨서였다.
다른 연구원들도 그랬는데 이놈이라면…….
김조은이 그러지 않았나?
생전에 이미 사람이 아니었던 놈들은 죄다 지능체가 될 거라고.
그렇게 생각해 보면 자신은 안전하다고.
적어도 자기 자신을 잊어버릴 일은 없을 테니.
“으…… 으어.”
“정신이 드나.”
“으.”
“음…….”
하지만 박원상은 기대를 저버렸다.
초점이 흐렸다.
의미 있는 답을 하지도 않았다.
여느 흔한 라드와 같았다.
“이상하군.”
인간의 면모를 많이 갖추고 있었다는 건가.
아니면…….
-반드시 그렇게 되는 건 아니니 이렇게 버티고 있는 거지.
김조은의 말대로 확률이라는 게 있는데, 단순히 박원상이 운이 없었던 걸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또, 지금 와서는 그게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도, 도망쳐! 입구다!”
탕, 타타타탕
점점 소란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안에 무슨 일이 벌어졌었는지는 몰라도 차츰 생존자들이 입구로 오고 있는 모양이었다.
전기를 아껴야 해서일까?
아니면 이것도 박원상이 의도한 일일까.
복도는 어두컴컴했다.
그 속에서 불길을 뿜는 총과 그 빛에 비치는 병사들 그리고 뒤쫓는 라드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어.”
그렇게 간신히 밖으로 나온 이는, 왜 이 문이 열려 있는지 의문조차 갖지 못했다.
어쩌면 빛을 마주했을 땐 그랬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바로 끌려가 물렸다.
뒤따라온 라드들도 문제가 되진 않았다.
어차피 박기태에게 있어 절대다수의 라드는 적이 아니라 부하였으니.
그대로 일행에 합류한 채, 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박원상에 의해 초토화된 연구소 안은 피와 총알 자국 그리고 시신들로 가득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다 죽은 건 아니었다.
“닫힌 문이 있군.”
잘 들어 보니 안쪽에서 옅은 숨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무엇보다 냄새가 났다.
인간의 냄새가.
쿵
박기태의 손짓에 거대 개체 하나가 어깨로 문에 달려들었다.
처음부터 방어 시설로 지어졌다면 또 모르겠지만, 연구소는 말 그대로 연구소일 뿐이었다.
그렇다 보니 거대 개체의 돌진을 막아 낼 수 있는 힘은 없었다.
우지끈 소리와 함께 바로 무너지고, 안에 숨어 있던 인원의 운명은 간단히 결정되었다.
“으, 으아!”
이런 식으로 하나둘 죽이거나 물어 가면서 일행은 연구소 안으로 이동 중이었다.
그러다 멈춘 것은 악에 받친 연구원 하나를 마주하고서였다.
그는 살포기 하나를 들고 있었다.
“너, 가까이 오면 뿌린다!”
안에 뭐가 들었을까?
아마도 라드를 효과적으로 죽일 수 있는 균이 들었을 터였다.
아니면 바이러스거나.
변이가 이루어진 지 얼마 안 되는 개체라면 또 모를까, 시간이 경과된 라드는 인간이 아닌 다른 무엇이라고 해도 좋지 않겠나?
김조은의 말대로 확실히……
인간에게는 별 위험이 없고, 라드에게는 엄청난 위협이 되는 병원균을 찾아냈을 가능성이 있었다.
“으음…….”
박기태를 비롯한 인원은 우선 기다렸다.
대략 3, 4미터의 거리를 두고서였다.
상당히 가까운 거리다 보니 라드들은 상대의 땀방울 하나하나 다 확인할 수 있었다.
그중 김민수가 의미 있는 추론을 해냈다.
“저거 당장 효과가 있는 건 아닌가 본대요?”
“그래 보이네.”
만약 뿌리자마자 다 죽는 거라면 이미 뿌렸을 텐데, 망설이고 있지 않나.
“미끼들 보내지.”
“네!“
결론을 내린 박기태는 남아 있던 미끼들을 보냈다.
현경과 박원상도 거기에 끼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