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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팬데믹-294화 (294/323)

294화 대변혁 (1)

위이이잉

비상 경보음이 남산 연구실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한때, 이곳은 완전히 버려지다시피 한 곳이었지만 더 이상은 아니었다.

박원상을 비롯한 연구실 책임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 수는 적지 않았다.

“무슨 일인가?”

“다수의 라드가 접근하고 있다는 경보입니다!”

“라드……?”

경보음이 울리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긴장하고 있진 않았다.

다들 그저 뚱한 얼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남산 연구실은 단단한 방호벽에 막혀 있지 않나.

이걸 뚫을 수 있는 존재는 군대뿐이었다.

라드?

아무리 힘센 놈이라 해도 절대 무리였다.

물론 포위된 채로 오래 지속되면 문제가 생기긴 할 터였다.

식수를 비롯한 식량과 기타 물자들이 넉넉하진 않아서였다.

청와대는 남산에 대해 다시 태도를 바꿔 전폭적인 지원을 해 주기 시작했으나, 여전히 제한은 두고 있었다.

물자의 제한을 통해 통제하고 있다, 이 말이었다.

“그거야……. 다른 곳에서 군대 오면 바로 해결될 문제 아닌가?”

“그렇습니다만, 지금 세브란스, 서대문과 연락이 안 됩니다.”

“연락이 안 돼? 그게 무슨…… 청와대는?”

“그쪽도 해당 지역 주둔군과 연락이 안 된다고 합니다. 일단 알아보겠다고 하는데…….”

“무슨 일이지.”

대화를 주도하고 있는 건 새로 이곳에 온 소장과 그의 작전과장이었다.

박원상은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속도 조용한 것은 아니었다.

‘어쩌지.’

그가 사랑했던 아내는 어쩌면 없을는지도 몰랐다.

강변에서 푸대접을 받고 있다는 얘기는 익히 들었으니까.

그 강변이 무너질 때, 김선태가 구출해 주지도 않았고.

해서 그때 이미 죽은 줄 알았는데 의외로 유현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가 신변을 확보했다고.

하지만…….

‘그쪽도 이상하긴 매한가지야.’

보안과 안전 때문이라고 하지만 직접 대화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게 말이나 될 법한 소리란 말인가?

물론 이 사태의 원인 중 하나가 자신이긴 했다.

그렇지만 온전히 자기 때문이라고만 할 수 있나?

나라가 맡긴 일을 했을 뿐이었다.

운이 안 좋아서 이렇게 된 거다.

‘정유현…….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납치범도 아니고 그게 뭔가.

아니, 어쩌면 이미 죽었을 수도 있었다.

생전에 남긴 소리를…….

“일단 대처를 해야 합니다. 비축 물자라고 해 봐야 고작 3일분입니다.”

“청와대에서 도우러 오지 않겠나?”

“콜레라균 말고는 전략 물자가 없습니다. 게다가 이거…… 이거 세브란스에서도 증식시키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나, 박 소장?”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대화의 방향이 자신에게로 튀었다.

박원상은 이미 처세술의 달인이 된 터이다 보니 별 당황도 하지 않고 즉시 답했다.

“네. 제가 생각하기에……. 청와대 측에서도 증식하고 있을 겁니다. 이게 뭐 기술이 크게 필요한 게 아니라.”

“그렇군……. 하긴 우리와 같은 방법을 쓰고 있다면…… 그 때문에 식량만 축나고, 이게 뭐란 말인가.”

사실 균 배양은 기술력이 어느 정도는 필요한 일이었다.

일단 적당한 배지가 필요했고, 그 배지가 다른 균에게 오염되지 않도록 관리도 해야만 했다.

무엇보다 그 균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추출도 필요했는데, 이를 위해서는 상당한 고급 인력이 필요했다.

지금과 같이 인프라가 전부 다 무너진 상태에서는 거의 구하기가 불가능한 인력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김조은과 박원상은 기가 막힌 발상을 떠올렸다.

‘인간배지…….’

잡아 온 민간인을 콜레라에 감염시켜 놓으면, 그는 자연 회복이 일어날 때까지 계속 콜레라균을 배출하는 보균자가 되지 않겠나?

그 수를 늘리면, 배출되는 균도 늘어나게 된다.

인간이야 차고 넘치는 자원이었다.

제아무리 무능력한 군대라 해도 대한민국 인구 절반이 거주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수도권을 훑으면 사람 끌어모으는 건 일도 아니었다.

“만약 두 군데에 모두 문제가 생긴 것이라면, 최우선 순위로 세브란스를 둘 겁니다. 그 근처에 식량 창고도 있지 않습니까.”

“그렇겠지. 3일이라……. 상대가 얼마나 되지?”

“파악 중입니다만, 일단 라드들인 것은 확실하다고 합니다.”

“위치는?”

“기껏해야 10킬로미터입니다.”

“흐음……. 우연히 지나는 길일 가능성은 없나? 라드가 여길 무슨 수로 알겠나?”

“그건…… 사실 그럴 가능성이 제일 크긴 합니다.”

작전과장의 말에 소장은 잠시 눈을 감았다.

아니겠거니 하고 넘기기엔 현실이 지옥이라 그랬다.

운에 맡길 수 있나?

안 될 일이었다.

“위력 정찰은 해 보는 것이 좋겠군. 하지만 그러다가 오히려 정확한 위치가…….”

말을 이어 가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말이 누군가인 것이지 이럴 때 감히 지휘관을 비롯해 제일 높은 이들이 모여 있는 곳의 문을 두드릴 만한 사람은 하나뿐이었다.

“보고드립니다!”

전령이었다.

무전기도 있긴 하지만 그 신뢰성이 높지 못했다.

게다가 이곳은 지하다 보니 입구 쪽에서만 간신히 수신이 가능했다.

그렇기에 늘상 이런 식으로 소통을 해야만 했다.

물론 지휘관들이 입구 쪽으로 가면 해결될 문제긴 했지만, 언제나 그러하듯 높은 사람들의 엉덩이는 무겁기 마련이었다.

“남은 거리는 8km. 방향은 확실히 남산 연구소 입구 쪽입니다.”

“허…….”

“그리고 이상한 보고가 하나 더 있습니다.”

“뭔가?”

“연구원 복장을 하고 있는 라드들이 있다고 합니다.”

“연구원……?”

“네, 여기.”

전령이 답과 함께 내민 것은 조악한 화질의 사진이었다.

사실 세상이 이리 되었다고 해서 원래 있던 휴대폰의 화질이 나빠지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허나 전송을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열화해야만 했다.

더 이상 막대한 데이터의 전송은 불가했으니.

그나마 제한된 거리에서만이라도 이 정도 전송이 가능하다는 것이 대단한 일이었다.

“아…….”

지휘관은 사진 속에서 분명 가운을 걸치고 있는 이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야생 라드 중에서도 가운을 걸치고 있는 이들이 있기는 했다.

사태 초반에는 상당히 많기도 했다.

정부에서 의도적으로 정보를 숨긴 탓에 대개의 경우에서 병원이 감염원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제일 먼저 희생되는 인원들 중 하나가 의료진이었고, 또 다른 사람을 물어 전파시키기 시작한 것 또한 의료진이었다.

허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보기 드물어진 것이 사실이었다.

일단 가운이 작아지는 바람에 다 찢어지고 해졌다.

그에 비해 지금 이 사진에 보이는 것들은 얼핏 보면 그냥 일반인 같아 보였다.

“세브란스가 당했나.”

지휘관의 넋두리 같은 말에 박원상이 답했다.

“일부 기억이 남을 겁니다. 그렇다면 이곳으로 직행할 텐데……. 어쩌면 식량 사정까지 다 알고 있을 수 있습니다. 더 최악은…….”

“콜레라?”

“네.”

“그럴 수가 있나.”

“세브란스의 지능체들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연구원들 중에 하나라도 그렇게 되었다면…….”

지능체에 대해서라면 지휘관도 들어 봤다.

극비에 해당하는 얘기인 데다가, 딱히 듣고 싶지 않은 정보이기도 하다 보니 캐묻지는 않았다.

허나 인간 수준의 지능을 가진다는 건, 싫어도 알고 있었다.

그런 놈들이 여기로 온다?

상상만 해도 끔찍스러운 일이었다.

“박 소장.”

“네.”

“일단 이 일은 함구하도록 하지. 병사들 사기에 좋지 않아.”

“네, 명심하겠습니다.”

지휘관인 자신도 오금이 저릴 정돈데, 병사들은 어떻겠나.

해서 함구령을 내렸다.

그사이 전령은 받아 온 사진 몇 개를 더 보여 주었는데, 그중 하나가 박원상의 뇌리에 갖다 박혔다.

“잠깐…… 잠깐만.”

“왜, 뭐 짚이는 구석이라도 있나.”

“전령, 뭐 하나. 다시 넘겨.”

“네, 네! 시정하겠습니다!”

다시 넘어온 사진.

그 안에 담긴 여성체.

흐릿하지만, 또 변이된 지 오래지만 박원상은 알아볼 수 있었다.

‘현경이…… 네가 왜……?’

지능체는 아닌 듯했다.

일단 옷부터가 달랐다.

아무렇게나 주워 입은 옷은 함부로 해져 있었다.

드러나서는 안 될 부분도 드러나 있었다.

그럼에도 시선은 그저 앞서 가는 라드의 뒤통수에만 박혀 있었다.

다른 사진에서도 비슷했다.

보다 흐릿하게 찍혀서 그녀인지는 확인이 잘 되지 않았지만, 어찌 걷고 있는지는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자네, 왜 그러나?”

“아니…… 아닙니다.”

벙찐 그의 얼굴을 본 지휘관이 물었다.

박원상은 우선 손사래부터 쳤다.

“연구원 중에 아는 얼굴이 있어서.”

“아, 그럴 수 있지. 하지만 위로할 시간은 없군그래. 당장 이곳으로 오고 있고……. 식량 사정을 알고 있다면, 일단 뭐라도 해야 해.”

“네, 네. 저 잠시 화장실 좀.”

“사람 참……. 심약하기는.”

그러곤 본격적인 작전 회의에 앞서 자리를 피했다.

밖으로 나온 박원상은 우선 화장실로 향했다.

‘이런 시발…….’

의미 있는 생각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그저 욕설만 나올 뿐이었다.

결국, 그의 머릿속을 메운 것은 원망이었다.

세상이 이렇게 되어 버린 것에 대해, 그러니까 아내가 감염된 것에 대해 그의 책임이 상당하다는 사실 따위는 중요치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인간이었다면 애초에 합류도 하지 않았을 터였다.

‘이 개새끼들.’

놀랍게도, 인간성이 결여된 박원상에게 아내의 의미는 각별한 것이었다.

그가 있어 사람이 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아내가 라드가 된 지금, 박원상의 머리는 다른 이들과는 좀 다른 방향으로 돌기 시작했다.

“어, 소장님. 어디로……?”

“연구실로. 라드 놈들 오고 있다며. 이럴 때 쓰려고 준비해 둔 것이 있어.”

“아, 네. 수고가 많으십니다!”

그는 곧장 연구실로 향했다.

고이 모셔 둔 샘플을 꺼내기 위함이었다.

바로 박기태.

그가 여기 있을 때, 지속적으로 뽑아 둔 혈액 샘플들이 냉장고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 안에서 바이러스가 어떤 식으로 변이되었을까.

알 수 없는 일인데, 아마도 초기 라드화를 일으키는 바이러스일 가능성이 제일 높았다.

실제 자연에서 변이를 거듭한 지금의 바이러스와 이놈과는 우열 관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니.

괜찮았다.

“뭐, 뭡니까.”

자기가 맞을 것도 아니었으니까.

박원상은 전자식 개폐문 안쪽에 갇혀 있던 민간인들에게 다가가 주사를 놨다.

저항할 수 있는 방법 따위는 없었다.

그들은 오랫동안 굶주렸고, 박원상은 영양 공급이 충분했다.

무엇보다 의지가 꺾인 이들이다 보니 거의 찔러 넣는 대로 당하고 말았다.

그렇게 십수 명에 달하는 라드가 생성이 되었고, 박원상은 밖으로 빠져나오면서 동시에 스위치를 눌렀다.

끼이익

방금 전까지 갇혀 있던 라드들이 우르르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뭐, 뭐야!”

이미 지나친 지 오래된 복도 끝에서 비명이 울렸다.

타다다다당

다급한 총성도 들렸다.

어찌 될까?

모를 일이었다.

훈련된 병사들이니만큼, 저걸로 어떻게 되진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무슨 일…… 억.”

방호문이 열리면 아예 다른 차원의 일이 벌어질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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