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2화 제2 사태 발발 (3)
노예.
즉 잡혀 온 민간인들의 숙소는 컨테이너 박스 또는 주변에 널려 있던 빈 강당들이었다.
그에 비해 군인들이 사용하고 있는 숙소는 기숙사 건물 또는 원룸 건물들이었는데…….
전기나 수도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저층만 사용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방비에 신경을 아주 많이 써야 했겠지만…….
“엉망인데요?”
유현이 보기에도 경비는 개판이었다.
이미 한차례 병력이 빠져나갔기 때문이기도 할 터였다.
부대의 수가 적었고, 무엇보다 애초에 방비 자체가 인간을 상대로 되어 있질 않았다.
라드를 대상으로 한 방비뿐이라는 건데…….
인간들에게는 아무래도 좀 미흡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겠죠, 아무래도.”
김태평은 그나마 오가고 있던 이들의 목숨을 앗으며 말을 이었다.
저번처럼 그렇게까지 소음에 주의하고 있지는 않았다.
탕
“뭐, 뭐야!”
그렇다 보니 내부 숙소에서 소란이 일었다.
우당탕탕 소리까지 들려오는 것으로 볼 때, 곧 쏟아져 나올 거 같기도 했고.
괜찮았다.
“막아!”
“네!”
어차피 입구만 막으면 아무도 못 나올 테니.
“뭐, 뭐야!”
“총을…….”
물론 건물에 창문도 있고 하다 보니 그쪽으로 빠져나오려고 시도하는 이들도 있었다.
쿠아아앙
아주 잠시뿐이었다.
김태평과 그 부하들이 건물 안쪽으로 폭탄을 때려 넣어서였다.
폭발력보다는 불붙는 데 중점을 둔 폭탄이다 보니 불길이 삽시간에 치솟았다.
군인들이 주요 숙소로 쓰던 두 개의 건물을 화마가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으, 으아아아아!”
“사, 살려 줘!”
하필 바람도 선선한 밤이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애초에 제대로 된 방염 설비가 갖추어져 있지 않아서일까.
혹은 오랫동안 관리가 잘 되지 못해서일 수도 있었다.
아무튼, 1층에서 시작된 불길이 곧 위로 솟구쳤다.
상대적으로 작은 건물이었던 원룸 건물은 이미 옥상까지 번졌고, 기숙사 또한 절반가량이 불길에 휩싸였다.
아무리 빠르게 뛰어 올라간다고 해도 번지는 물길보다 먼저 오르진 못할 거 같았다.
김태평은 불에 탄 채 뚫고 나오는 이들 몇몇을 쏴 죽인 후, 안쪽으로 보이는 것이 그저 불길과 탄 시체뿐임을 확인했다.
“가지.”
“네.”
그사이 유현과 다른 요원 하나는 이미 노예 숙소로 추정되는 곳의 문을 열어 주고 있었다.
밖에서 걸어 잠겨 있었고, 창문도 없었기 때문에 유추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어…….”
“가세요!”
갇혀 있다가 나온 이들의 몰골 또한 엉망이었다.
제대로 씻지 못해 악취가 났고 또 영양 공급이 거의 안 되었는지 비쩍 마른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죽으면 버리고 또 잡아 온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을 테니, 이해가 가는 광경이었다.
실제로 지금 세상에서 가장 값싼 물자는 인간이지 않은가?
물론 그중에서 능력이 있거나 특수 지식이 있는 사람들을 골라내자면야 결코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대개의 경우엔 그렇다고 봐야 했다.
‘데려갈 필요는 없겠지. 오히려 이렇게 풀어 두는 게…….’
사람들은 우선 지옥에서 풀려났다는 생각으로 이리저리 흩어지고 있었다.
컨테이너 박스만 놓고 보면 그렇게까지 많지 않아서, 생각했던 것보다는 사람들이 적은가 했었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안에 워낙에 많은 사람들이 들어차 있었다.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일대가 아예 수천의 사람들도 메워지기 시작했다.
물론 잠시뿐이었다.
워낙에 혹독한 대우를 받아 왔기 때문에, 다들 이 자리를 빨리 벗어날 생각만 하고 있어서였다.
‘저 중에 몇이나…… 살아남으려나.’
사방이 적이다.
단지 라드와 군인만을 얘기하는 게 아니었다.
그저 환경만 쳐도 험악한 상황이었다.
작은 상처로 죽음에 이르는 경우도 너무 많았다.
먹을 것이 없어서 죽는 경우?
그거야 셀 수도 없었다.
차라리 상대가 좀비였다면 훨씬 나았을 테지만, 라드는 살아 있는 놈들이지 않나.
이미 서울에서는 기존에 쌓여 있던 식량이 고갈된 지 오래였다.
고터나 잠실 쪽에 자리한 일부 대형 집단을 제외하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굶주리고 있을 지경이었다.
아마 그래서 더 정부 측에서 사람들을 끌고 가기가 유리할 거라고, 유현을 비롯한 여럿은 판단하고 있었다.
“가죠!”
“네, 이것으로 어마어마한 타격을 줬을 겁니다!”
김태평의 말에 유현이 밝은 얼굴로 외쳤다.
제대로 된 인간이라면 도저히 미소 지을 수 없는 상황이긴 했다.
사람들이 도처에서 죽어 가고 있었다.
특히 군인들은 가장 끔찍한 형태의 사망이라고 할 수 있는, 화상으로 죽어 가고 있었다.
도망치게 된 생존자들 중에서도 벌써 죽음에 이르는 이들이 있었다.
너무 굶주린 데다가, 혹독한 노동에 시달린 탓에 달리다 넘어지는 이들이 많았다.
그리고 뒤이어 도망치는 이들은 마음이 급해서 그대로 그런 이들을 밟고 지나가거나, 더 나쁘게는 같이 발이 걸려 넘어져 버렸다.
“더 있으면 김선태가 올 겁니다. 뭐……. 이 상황에서는 놈이라 해도 별 뾰족한 수가 없겠지만…… 그래도 도망치는 것이 좋겠습니다.”
“네네. 가시죠. 길은…….”
“원래 왔던 길로 가죠.”
“네.”
김태평과 유현 그리고 요원들은 본인들이 만들어 놓은 지옥을 뒤로하고 산 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사실 올 때는 어두울까 봐 걱정했었는데, 대낮처럼 밝았다.
타오르던 불길은 이미 옆 건물로 번지고 있었다.
거기에만 그쳤다면 또 모를 일인데, 노예들을 동원해 키워 놓았던 작물에까지 불이 옮겨붙어 버렸다.
“어마어마하군…….”
“잘됐군요.”
저게 정부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그로 인해 또 얼마가 죽어 나가게 될까.
이를 생각하면 끔찍한 일이었다.
지금 중앙 정부 쪽…….
즉 청와대를 비롯해 광화문 종로 인근에 살고 있는 민간인들만 해도 어마어마할 테니까.
또 군인들까지 생각하면 얼마나 될까.
그야말로 수없이 많은 생명이 사그라질 터였다.
그리고 그걸 만든 것은 지금 이동 중인 이들이었다.
“빨리 튀어!”
“뛰어!”
그들을 추월해서 노예들이었던 이들이 뛰었다.
한 방향으로만 튀는 게 아니라, 숲으로도 튀는 이들이 있다는 얘기였다.
절대다수와는 좀 다른 선택을 했다는 건데, 그렇다고 해서 저들의 미래가 딱히 밝아 보이진 않았다.
숲에는 여전히 소수의 라드가 남아 있으니까.
강북도 그러할 텐데 정부에 대한 두려움이 극에 달한 이들이 과연 강북에만 남아 있겠나.
의정부로 또 더 동쪽으로 도망갈 가능성이 훨씬 더 컸다.
그리고 그쪽에는 서울에서 밀려나 감염 전파보다는 생존에 주력하고 있는 라드들이 상당수 분포하고 있었다.
“불이…….”
한편, 박기태와 김민수 그리고 구우준 등의 라드는 이제야 병원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뒤쪽에서 솟구치고 있는 불길을 확인했다.
누가 저랬을까에 대한 의문은 없었다.
박기태를 포함하는 말이었다.
대강의 정황을 전해 들었고, 전해 들은 정보를 완전히 파악할 수 있을 만큼의 지능이 있어서였다.
“그쪽이군.”
“좋지 않군요. 빨리 도망가는 게 좋겠습니다.”
“그래, 주변에서 군인들이…… 그 자식이 오겠지.”
박기태는 불구대천지의 원수라 할 수 있는 김선태를 떠올렸다.
죽여야 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제아무리 다수의 라드를 확보했다고는 해도, 여기서 당장은 어려웠다.
머리가 좋고 하면 뭐 하나.
정면에서, 라드와의 싸움에 완전히 숙련되어 버린 군대와 싸우는 것은 절대 무리라 할 수 있었다.
특히 그 군대가 김선태가 이끄는 놈들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다다다다
해서 박기태는 벌써 이동 중이었다.
방향은 유현 일행과 같았다.
탕
타다다다다
아스라이 들려오는 총소리와 정반대 편이기도 했다.
아마 생존자들 태반이 그대로 남쪽으로 향하고 있을 테고, 그쪽에 있던 군인들이 발포하고 있는 것일 터였다.
다행한 일이었다.
“많이 올 수는 없을 거 같군그래.”
“네, 그럴 겁니다.”
그쪽에 있는 군인들이 이쪽으로 몰려오지 못할 테니까.
다만 서대문 쪽의 군인들은 얘기가 좀 달랐다.
아마 다른 쪽의 군인들은 도망자들을 무작정 죽이려고 들지 않았을 터였다.
대부분의 사격은 위협용이고, 일단 잡아다가 다시 가두거나 했을 거란 얘기.
허나 김선태는 달랐다.
“어, 어쩌죠? 다 인간입니다.”
“죽여.”
“다…… 말입니까?”
“반역자들이야. 그리고, 지금 중요한 건 이 짓을 저지른 놈들을 붙잡는 거야. 다 죽여!”
“으…….”
“머뭇거리는 놈은 내가 쏜다!”
그는 모조리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병사들과 현장 지휘관들은 잠시 갈등했지만, 사실 살인에 있어서만큼은 이미 익숙해진 지 오래 아니던가.
대상이 민간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많이 죽였다.
특히 김선태의 부하들이라면 더더욱.
탕
탕
타다당
조명탄이 터지고, 숫제 조준 사격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지금 도망치고 있는 생존자들은 총이 아니라 냉병기 또는 군기로도 제압이 가능할 만큼 쇠약해진 상태지 않나.
그런 상황에서 총을 맞고 있으니 뭐 어쩌겠나.
속절없이 죽거나 또는 군대의 행진을 방해하지 않을 곳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탕
탕
그렇게 실시간으로 총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박기태는 뒤편에서 들려오는 총소리를 들으면서, 역시 망설이지 않고 도망치기를 잘했단 생각을 했다.
저기서 뭉그적거리고 있었다면, 어쩌면 뒤를 밟혔을 수도 있었다.
지금?
지금은 아니었다.
아무리 훈련받은 군인이라고 해도, 라드가 압도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는 숲속으로 아무 거리낌 없이 들어갈 수 있는 이들은 극히 드물었다.
게다가…….
“이런 망할…… 이런 미친.”
김선태는 병원 앞에서 망연자실한 채로 서 있었다.
경비를 서고 있던 소수의 인원들은 싹 다 총이 아닌 칼에 찔려 사망해 있었다.
이게 다 죽었다는 것도 절망스러운데, 그보다 더 김선태를 불편하게 하는 건 따로 있었다.
이 중요한 곳의 경비가 엉망이었다는 점?
그것도 한 가지 이유는 되겠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내가 왜…… 내가 왜……?’
흥분.
피를 보자마자 어떤 충동이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그 충동은 안으로 들어서서, 라드에 의해 사망한 이들을 보자 더더욱 극심해졌다.
“중장님 위쪽을 확인해야 합니다! 비상 전력 완전히 여는 데 한 10분 정도가…… 중장님?”
김선태도 동의하는 바였다.
위에 있던 새로운 중장 그리고 김조은을 비롯한 주요 연구인력과 박기태와 같은 초창기 지능체 라드들을 확인해야 한다는 거…….
그보다 중요한 일이 지금 있겠나.
허나 김선태는 아예 다른, 그러면서도 너무 강력한 충동에 휩싸인 지 오래였다.
‘으…….’
물고 싶다.
아니, 싶다라는 표현으로는 한참 모자랐다.
이건…….
이를테면 숙명이었다.
‘물어야 한다…….’
아니, 의무였다.
그에게 주어진 임무라고 할까.
허나 진하게 남아 있는 그의 이성이 본능을 억누르고 있었다.
주변은 군인들로 가득하지 않은가.
그것도 그가 직접 키운 정예군들이었다.
처음에야 그 대상이 김선태이다 보니 당황하겠지만 곧 쏴 죽일 게 뻔했다.
“지원자 넷만 받겠다! 숲으로 간다!”
“네? 중장님이 직접이요? 너무 위험…….”
“내게 위험을 논하나! 라드를 쫓는 데 나보다 능한 놈이 어디 있어!”
해서 남은 한 팔을 세차게 휘두르면서 네 명의 병사와 함께 숲으로 향했다.
앞서간 라드의 흔적을 살필 필요는 없었다.
‘냄새…… 냄새가 난다…….’
그저 코를 벌름거릴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