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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팬데믹-291화 (291/323)

291화 제2 사태 발발 (2)

갇혀 있던 모든 라드의 몸 상태가 엉망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는 그러했다.

특히 어떤 종류의 감염이 병발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의사가 본다면 절대 모르지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김민수나 구우준 등이 그런 것을 의심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기침 등의 증상이 주가 된다기보다는 종기 등이 주된 증상이라서 그랬다.

“뭐지.”

물론 딱 보기에도 그리 가까이하고 싶진 않은 몰골의 라드들이 많았다.

이리저리 패인 상처와 얽은 상처들 그리고 누렇게 뜬 종기와 거기서 터져 나와 흐르는 피고름 등.

본능적인 위험이 느껴졌기 때문에, 김민수가 바로 풀어 준 이는 아직 없었다.

그러니까 잡혀 있던 라드들은 여전히 팔다리가 침대에 묶인 채였다.

딱히 쇠와 같은 단단한 구조물에 붙잡혀 있는 건 아니었다.

변이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잡혔거나, 혹은 여기서 변이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라드들의 크기는 보통의 인간과 크게 다름이 없었다.

해서 김민수를 비롯한 여러 라드들은 상당히 느긋하게, 종이 다른 라드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 살려 줘. 넌 동족이지 않나…….”

붙잡혀 있던 라드들은 다들 지능이 출중했다.

적어도 일반적인 라드에 비하면 아주 좋은 편이었는데, 그중에서도 독보적인 녀석이 입을 열었다.

김민수는 이름 모를 라드를 내려다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믿기 어려운 일인데, 확실히 가까운 존재라는 게 느껴져서 그랬다.

보통의 야생 라드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던, 오히려 본능적인 혐오와 적개심을 품게 되었던 것을 감안하면 퍽 놀라운 일이었다.

“동족이긴 하지. 근데 무슨 짓을 당했는지……. 네놈 꼴을 네놈이 본다면 그런 얘기 못 할걸.”

“놈들이 주사를 놨어. 주사를…….”

“주사? 어떤?”

“모르…… 모르지. 그걸 맞으니까 온몸이 타들어 가는 듯 아프더군…….”

“흐음……. 확실히 타들어 간 거 같은데.”

라드가 아니었으면 살아남았을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험악한 몰골이었다.

온몸이 걸레짝이 되어 있었는데, 타들어 갔다는 표현이 과한 비유는 아닌 듯 보였다.

“어떻게 할까요?”

“원랜 다 죽여 버리려고 했는데.”

김민수는 본심을 꺼냈다.

구우준도 사실 마찬가지였고, 다른 녀석들도 그랬기 때문에 가만히 있었다.

사실 공격을 하지 않은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김민수나 구우준 혹은 다른 지성체들은 몰라도 일반적인 거대 개체들은 다른 라드에게 인간보다도 더한 공격성을 보이지 않던가.

헌데 다들 그냥 가만히 있었다.

이유는 자명했다.

냄새가…… 숫제 같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비슷했다.

“어쩐다.”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이들은 가족이라고.

같은 편이라고.

아마 김민수의 지능이 조금만 낮았더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구했을 터였다.

허나 남아 있는 일말의 지능이 그를 막아서고 있었다.

이것들, 뭔가 이상하지 않나?

놈들이 뭔 짓을 했다면, 딱히 라드에게 있어 유리한 짓은 아니었을 터였다.

몰골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가만.”

그렇게 고민을 하고 있으려니, 구우준이 입을 열었다.

귀를 쫑긋 세운 채 위를 돌아보면서였다.

아닌 게 아니라 위에서부터 들려오던 총성이 점차 가까워지는가 싶더니, 이제는 멎어 버렸다.

대신 들려오기 시작한 아예 다른 소리가 하나 있었다.

두두두두

쿵쿵쿵쿵

계단이 울리는 소리.

무언가 거대한 것들이 뛰어 내려오는 소리였다.

인간?

인간은 절대 아니었다.

이건 라드가 만들어 내는 소음이었다.

“어쩌죠?”

“일단 올라가 보지. 거기 깜깜하니까, 숨어 있다가…… 공격을 하건 어쩌건 해 보자고. 수가 우리보다 많은 거 같진 않아.”

“네, 그럴 거 같습니다.”

아마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단지 이 소음만으로 무리의 규모를 파악하기 어려웠을 터였다.

허나 라드들은 예민하고 또 본능이라 할 만한 직감이 날카롭게 벼려진 것들이지 않나.

그 대가로 많은 것들을 내놓긴 했으나, 얻은 것도 분명히 있었다.

해서 김민수는 무리의 수가 많아 봐야 열을 넘지 않을 거라는 걸 어렵지 않게 계산해 낼 수 있었다.

이쪽에 있는 거대 개체만도 열은 넘지 않나.

새롭게 획득한 라드도 적지 않았다.

여차하면 이것들을 방패로 삼고 공격하면 될 터였다.

무엇보다 김민수와 구우준 그리고 두엇의 라드들은 어설프게나마 지향 사격도 가능했다.

‘어디…….’

그렇게 1층으로 올라간 김민수는 병원 로비를 따라 널찍하게 뚫린 창을 따라 내리쬐는 달빛에 의지해 계단 쪽을 바라보았다.

쿵쿵거리는 소리가 점점 더 커져 오고 있었다.

그리고 곧 발걸음 소리가 멎었다.

덩치가 커다란, 그러나 마른 체격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쿵쿵

그와 동시에 김민수는 기이한 감정에 휩싸였다.

심장이 뛰고 있었다.

어쩐지 저 사내의 고동에 맞춰서 뛰는 느낌마저 들었다.

“형제들이 있군.”

옆을 돌아보니 구우준 또한 비슷한 얼굴이었다.

압도된 얼굴.

그나마 그놈은 사정이 나았다.

다른 라드들, 그러니까 원래 김민수가 부리던 놈들 중에는 명령도 없었는데 숨어 있던 자리에서 벗어나 사내에게 나가는 놈들도 있었다.

뭐라 할 수 없는 건 지금 당장 움직이고 싶은 건 김민수도 마찬가지란 점이었다.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꽤 많은데…….”

사내, 1호라 불리었던 존재.

박기태는 여유로운 얼굴로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그가 수많은 라드를 눈앞에 두고도 이토록 여유로울 수 있는 건 연구진들, 김조은조차 몰랐던 이유 덕분이었다.

1호지 않나.

그야말로 라드의 원류라는 얘기인데…….

그 때문에 현존하는 모든 라드 바이러스의 원류이기도 했다.

“다 나오지.”

“으윽.”

박기태는 그러한 사실을 경험적으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모를 수가 없었다.

탈출하자마자, 근처에 있던 모든 라드가 그에게 복종했으니.

물론 처음엔 군인들에게 쫓기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좀 더 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러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 어떤 라드도 박기태 앞에서는 적의를 드러내지 못했다.

오히려 복종했다.

“오…….”

박기태는 마지못해 나온, 그러나 가까이 올수록 체념한 얼굴이 되어 가고 있는 김민수와 그보다는 사정이 좀 나아 보이는 구우준을 돌아보았다.

이 정도로 총기가 있는 눈은 연구실 내에서 말고는 처음 보았다.

야생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대단했다.

아마 어지간한 사이코패스들이겠지 싶었다.

‘김조은 박사 덕에 이런 것도 생각할 수 있군그래.’

어떻게 보면 생애 가장 커다란 적이자, 원수였다.

허나 녀석은 연구 때문에라도 박기태에게 정도 이상의 실험을 하진 못했다.

모든 연구를 박기태를 기반으로 진행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지하에 끌려가지도 않았다, 박기태는.

“어디서 왔지?”

박기태의 물음에, 그의 시선이 닿음에 김민수는 즉각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건 저항할 수 있는 종류의 무언가가 아니라는 걸.

바이러스라고 해야 할지 본능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 것이 김민수를 밀어붙이고 있었다.

‘이런 제길.’

더 환장할 것은 마주하는 시간이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닌데, 사소하게나마 품고 있던 불만마저도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구우준은 아예 적이었는데도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복종을 해 오지 않았나.

구우준 개인의 특성 탓도 아주 조금은 있겠지만, 그보다는 역시 라드의 전체적인 특성 탓일 터였다.

저놈에게 물린 기억은 딱히 없는데도 이렇게 되는 건 좀 의아했지만 뭐 어쩌겠나.

이미 복종하고 싶어진 것을.

“고속터미널에서 왔습니다.”

“그전에는?”

“수원입니다. 그전에는 세종에 있었습니다. 거기서 라드가 되었습니다.”

“아, 그렇군. 계속 올라온 이유가 있나?”

“물고 싶은 놈이 있어서…….”

“흐흐.”

박기태는 너무 라드 같은 대답에 저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어찌 보면 비웃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어나 김민수는 이제 기분 나쁜 것도 느낄 수 없었다.

그저 주인이 웃음에 기뻐할 따름이었다.

“그놈은 지금 어디에 있지?”

“모르겠습니다만…… 팔이 하나 없습니다.”

원래 물고 싶었던 건 유현이지만, 지금 물고 싶은 건 김선태이지 않나?

그래서 그렇게 말했고 박기태는 이해한다는 얼굴이 되었다.

그 새끼.

물고 싶지 않겠나.

세종에서 왔다는 놈이 대체 어디서 어떻게 놈을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놈을 물고 싶은 건 박기태 또한 마찬가지였다.

“내가 알지, 그놈이 어디에 있는지는.”

박기태는 자신이 있던 곳을 올려다보았다.

그래 봐야 보이는 것은 로비 천장이었지만 아무튼, 한때 놈은 저 위에 있었다.

이 근방뿐만 아니라 강북 전체를 자신의 관할 아래 두고서.

허나 이제는 밀려났다.

서대문 경찰서 쪽으로 갔다는 걸, 아까 들었다.

이놈들은 대화할 때 라드를 신경 쓰지 않기 때문이었다.

알아듣지 못할 거라 생각하는 거 같진 않았다.

그냥 거기 영원히 갇혀 있을 거라 생각하는 듯했다.

“아, 그렇습니까?”

“그래. 가지.”

“바로…… 바로요?”

“미처 저항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을걸? 게다가…….”

박기태는 전날 만났던 김선태를 떠올렸다.

‘그놈에게서…… 라드의 냄새가 났지.’

유추해 보건대 아마 팔을 물렸을 것이고 그걸 빠르게 잘라 냈을 터였다.

그런다고 라드화를 완전히 막아 낼 수 있나?

궁금했던 참이긴 했다.

‘막을 수 없는 모양인데?’

그래도 소용이 없는 듯했다.

아마 자신이 그곳에 도달하게 되면, 재밌는 일이 벌어지리라.

박기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질문을 이어 나갔다.

이번엔 지하에 관련한 것이었다.

“저긴가?”

“어쩌려고…….”

그사이 유현 일행은 병원 뒤편의 개활지에 도달했다.

가뜩이나 경비 인원이 많지 않은데, 그중 절반 이상이 빠져나간 탓에 이쪽의 경비는 느슨하기 짝이 없었다.

드문드문 초소인지 숙소인지 모를 곳에 불이 들어와 있긴 했지만, 야밤에 나다니는 인원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많이 잡혀 있다고 했죠? 그거 풀어 버리죠. 아마 정부 측의 힘이 많이 줄어들 겁니다.”

“아니! 저기도 군인들이…….”

“넌 조용히 해. 아는 거나 말해.”

“저는…… 저는 군사 시설에 대해서는…….”

김태평의 말에 김조은 박사가 기함했다.

곧 군의관이 입을 열었다.

“저기 학교 건물들이 전부 숙소입니다. 그냥 아무렇게나 지내는 걸로 아는데…… 아마 불 들어오는 곳들이 군인들 숙소일 겁니다.”

“그렇군. 그럼…… 오예리 형사님.”

“네.”

“엄호해 주시죠.”

“너무 깜깜해서…….”

“괜찮습니다. 곧 밝아질 겁니다.”

김태평은 요원들과 함께 폭탄을 꺼냈다.

수제 폭탄인데, 유현은 전에 들었던 설명을 떠올렸다.

일종의 소이탄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들었다.

“불을?”

“네. 원래 혼란 일으키는 데에는 불이 최고죠.”

“어디에…….”

“군인들 숙소요.”

“그렇군. 흐음…….”

모두 얼마나 있을까.

얼마가 있든 간에 불타 죽을 가능성이 컸다.

‘이제 와 죄책감을 느끼는 것도 이상하지.’

유현은 생각을 정리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돕겠습니다.”

“그래 주시면 좋죠. 자,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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