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289화 (289/323)

289화 염탐 (5)

병사들의 경계는 아주 느슨했다.

잘된 일이었다.

그럼에도 바로 들어가진 않았다.

조금 기다렸다.

“움직이는 꼴을 보니, 저 복도에 몰려 있겠군요.”

병사들의 동선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더 기다리거나 하진 않았다.

여기서 조용히 있어 봐야 지하에서 난리가 나면 별 소용이 없지 않겠나.

그렇다고 조용히 처리하기를 기대할 수 있나?

그럴 수는 없었다.

처음부터 시끄러웠으니.

“저기 없으면 일일이 찾거나 물어보도록 하죠.”

“네.”

“들어갑시다. 자.”

김태평은 그렇게 문을 열고는 부리나케 달렸다.

몸을 낮추고 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빨랐다.

병사들은 돌아다니고 있긴 해도 지들끼리 윗놈들 욕하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바로 발견하지 못했다.

덕분에 김태평과 유현 그리고 요원들은 뒤로 돌아서 상당히 가까운 곳에서 병사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어?”

“야, 쏴!”

실탄이 장전된 총을 들고 있었기 때문에 위협적이긴 했지만.

그걸 들고 있는 것과 바로 쏘는 건 좀 다른 얘기였다.

애초에 쏠 준비를 하고 있던 김태평과 요원들의 권총이 먼저 불을 뿜었다.

“읍.”

“으윽.”

둘 다 죽이진 않았다.

다리만 맞히고는 달려가 제압했다.

“뭐야!”

순간, 병실 문 하나가 열렸다.

안에서 누군가 빠져나왔는데 무장은 하지 않은 채였다.

나름 잠옷까지 갖춰 입은 녀석이었는데 아쉽게도 아는 얼굴은 아니었다.

“제압해.”

“어…….”

“잘됐군. 뭔가 더 알 거 같은 놈이 나왔어.”

그는 자신을 향해 겨눠진 총구를 보자마자 딱 얼어 버렸다.

두 손을 들고 두려움에 떨면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아마 지금도 묻는 말에 잘 답할 것 같긴 했다.

하지만 시간이 걸릴 것 같기도 했다.

뭐가 되었건 지금까지 살아남았고, 또 이런 집단에서 위에 앉게 되었다는 건 특출난 구석이 있다는 얘기니까.

“이봐.”

“누, 누구냐. 니놈들. 니들이 이러고도…….”

봐라.

뻣뻣하지 않나.

총 들이대자마자 손부터 쳐든 주제에…….

그리고 총소리가 나자마자 안에서 뛰쳐나올 정도로 부주의한 주제에…….

김태평은 그런 생각과 함께 이미 제압된 채 발발 떨고 있던 병사의 머리통을 날렸다.

“묻는 말에 답해. 넌 누구지?”

“어…….”

“죽고 싶은 모양인데.”

그러곤 여전히 어버버거리는 상대를 보면서 총구를 살짝 옆으로 돌렸다.

거기엔 또 다른 병사가 있었다.

동료의 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미처 닦지도 못한 채 떨고 있었다.

“살려 주세요! 제발!”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었고, 김태평은 딱히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요원들과 유현은 그저 냉막한 얼굴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럴 때 공포심이 배가되는 법이었다.

손을 들고 있던 녀석이 바로 입을 열었다.

“저, 저는 이, 이택동입니다!”

“이름이 궁금한 것이 아니다.”

“구, 군의관입니다.”

“여기서 뭘 했지?”

단순 군의관일까?

그럴 리가 없었다.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다는 건 상당한 위치에 있다는 소리일 터였다.

김태평은 문이 굳게 닫힌 병실 내부에서 달그닥거리는 소리가 나고 있음을 확인하면서, 말을 이었다.

“시, 실험을…….”

“주도했나?”

“그건 아닙니다!”

“너 말고 여기 있는 놈들이 누군지 말해.”

“기, 김조은 박사와 황승제 중장님이 계십니다!”

“어디.”

“1, 1호와 2호!”

이놈이 나온 곳은 3호였다.

아마도 1호와 2호가 더 큰 모양이었다.

“들었지?”

“네.”

“왜, 왜!”

김태평은 다 듣고 나서 나머지 병사를 죽였다.

군의관이 절규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유현도 그랬다.

“김조은이 있군요.”

“네, 잡아갈 수 있으면 제일 좋겠는데…….”

둘이 잠시 대화를 나누는 사이, 요원들이 병실 문을 쐈다.

병실 문이라는 건 개조를 거치지 않는 한 처음부터 잘 열리게 되어 있었다.

안에 환자가 있는데 대응이 늦어지면 안 되지 않나?

애초에 잠금장치가 없는 곳도 많았다.

있다고 해 봐야 느슨하기 마련이었고.

“이, 이런 시발.”

문이 열리자 욕설이 들려왔다.

안은 캄캄했기 때문에 뭐가 있는지 잘 보이진 않았다.

아마 살상을 목표로 했다면 바로 수류탄이라도 깠을 텐데, 그럴 수 없는 상황이지 않나?

해서 요원들은 섣불리 들어가는 대신 밖에서 잠시 대기했다.

“빨리, 빨리 와!”

그사이 안에서 이런 말이 들려왔다.

지금 당장 죽이지 않아서 생긴 일은 아닐 터였다.

아까 총소리가 들렸을 때부터 이미 부르고 있었을 터였다.

‘지금부터 15분…… 그 안에 가야 해.’

몇이나 데리고 갈 수 있을까?

최소한으로 해야 할 텐데, 제일 좋은 건 한 놈일 터였다.

그렇다면 아는 것이 제일 많을 김조은이 될 텐데…….

“어쩔까요?”

“이 안에 있는 새끼는 죽여. 김조은이 아냐.”

“네.”

김태평이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쇳덩이 구르는 소리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쾅 하고 폭탄이 터졌다.

“으, 으악!”

“컥…….”

그리고 곧 요원들이 들어가 반쯤 죽어 있던 이를 쏴 죽였다.

옆방은 그에 비하면 훨씬 수월했다.

“혀, 협조하겠소. 쏘지 마시오!”

“오랜만이로군.”

김조은은 어느 때나 자기 자신을 위해서 움직이는 놈이지 않나.

이번에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협조라는 단어를 꺼냈다.

괜히 뻗대다가 다치느니 그게 서로를 위해서 좋긴 했다.

“아…… 김태평 팀장.”

“이젠 팀장이 아니지.”

“그…….”

“가지.”

“알겠소.”

“좋아. 말귀를 잘 알아들어서 좋군그래.”

김태평은 김조은을 대동한 채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다른 군의관도 마찬가지였다.

그 또한 죽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김태평이 둘의 목숨을 두고 저울질을 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명확하게 보여서 그랬다.

무엇보다 중장이 다른 쪽에 있던 주둔군을 부르지 않았나.

맞서 싸울 거 같진 않았다.

그렇다는 건 도망을 쳐야 한다는 건데…….

도망에서는 늘 소수가 유리한 법이었다.

다다다다다

해서 군의관은 절대로 걸림돌이 되지 않겠다는 일념 하나로 뛰어 내려갔다.

그 와중에 김태평은 바로 아래층에 있던 요원에게 고민하다가 이렇게 외쳤다.

-풀어 보죠. 우리에게 득이 되면 됐지, 해가 되진 않을 겁니다.

유현의 말이 있어서이기도 했다.

그래, 저놈들이 정부에 득이 될까.

이 안에 남겨 두면 그럴 터였다.

김조은만 사이코 과학자일 리는 없으니까.

뒤져 보면 이보다 더한 놈도 얼마든지 더 있을 터였다.

다 죽여도 되겠지만…….

죽이는 것보다는 풀어 두는 게 나을 터였다.

“열쇠 던져 줘!”

“아, 네!”

그렇다고 같이 도망갈 생각은 없었다.

이성이 있는 놈들이긴 하지만 갇혀 지내는 동안 얼마나 많은 분노가 쌓였겠나.

김민수나 구우준처럼 잠깐이라도 참아 줄 것이란 기대는 하지 않는 편이 옳았다.

해서 열쇠 꾸러미만 대강 던져 놓은 채 일행은 그대로 밑으로 향했다.

간신히 닿은 1층은 여전히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조용하진 않았다.

“크, 크아아악!”

“아, 안 돼…… 으아악!”

아래층에서 여전히 비명이 들려오고 있었다.

생각보다 인원이 많았던 걸까?

‘하지만 핵심 인물은 없었을 거야. 그렇다고 1호 같은 실험체가 있었을 거 같진 않은데…….’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튼, 밑에 내려가 확인할 만한 시간은 없었다.

그러다가 군과 맞붙게 되기라도 하면 위험하지 않겠나.

게다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따로 있었다.

“가지.”

“네.”

오예리와 이순규가 뭔가 하고 있긴 할 거다.

하지만 둘로는 부족하다.

일이 아주 잘 풀린다면 또 모르겠지만…….

원래 계획은 항상 최악을 가정하고 세워야 하는 법이었다.

다다다닥

해서 김태평은 거의 마구잡이로 달리고 있었다.

요원들과 유현도 그 뒤를 따랐다.

군의관과 김조은은 당연히 뒤처져야 정상일 텐데 살기 위해 달리고 있었다.

아까 김태평네가 병사들을 가차 없이 죽였기 때문도 있었다.

자신들도 언제든, 그야말로 언제든 죽어 나갈 수 있을 거 같았다.

하필이면 비슷한 직종의 둘이 있어서 더더욱 그랬다.

하나만 남게 된다면, 그러니까 다른 하나가 죽어 나간다면…….

얘기가 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 이들의 목숨은 파리 목숨이라고 해도 좋았다.

부우웅

우우우우웅

그렇게 달리는 동안 차들이 대로변에 속속 도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십에 달하는 병사들이 내렸다.

“또 명령은?”

“없습니다!”

“이런 젠장……. 벌써 뒤진 거 아냐? 아까 뭔 폭발음 같은 게…….”

“그래도 들어가 봐야 합니다. 그냥 이대로 둘 수는 없어요.”

“당연하지……. 근데 대체 뭔 일이지? 이봐! 불 좀 비춰 봐!”

명령에 의해 옆으로 세워뒀던 차량이 정면을 보게끔 섰다.

그러곤 라이트를 켰다.

그러자 안쪽 정경이 고스란히 보이기 시작했다.

딱히 어지러워 보이진 않았다.

적어도, 1층엔 습격의 흔적 따위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

“뭐지?”

“모르겠습니다만……. 밖에 이 시신들 좀 보십쇼. 뭔가 들어갔습니다.”

“그래. 라드는 아닌 거 같지?”

“네. 이렇게 목에 칼 찔러 넣는 라드는 없을 거 같습니다.”

“그래……. 총격전 대비해!”

“네!”

이렇게 은밀하게 움직일 수 있는 놈들이라면…….

인간이다.

수원일까?

아니, 그보다는 반란이거나 혹 김선태일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지금 위에서 김선태의 힘을 찢어 놓고 있다는 건, 어지간히 멍청한 놈 아니고서야 다 알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

‘미친놈이…….’

덕분에 이들은 당연히 군인들과 한바탕할 거란 생각을 하면서 안으로 향했다.

“으, 으으으으!”

아까보다는 덜 소란스러웠지만, 그럼에도 귀를 기울이면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소란이 아래쪽에서부터 올라오고 있었다.

“으, 으으!”

신음?

고통에 찬 비명?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아래서부터 뭔가 들려왔다.

“이상한데. 위에 계시지 않나?”

“그냥 넘어가기는 좀…….”

“그렇지. 그래 보여.”

“일단…… 가죠.”

“라드 놈들이 탈출했을 가능성도 있어. 주의해!”

지휘관은 새롭게 습득한 정보에 따라 지시를 내리며 아래층으로 향하는 계단 쪽으로 걸었다.

걸어가면 걸어갈수록 소음의 양이 늘었다.

거기엔 대화도 끼어 있었다.

“이렇게 많았다니.”

“그러게 말입니다.”

“좋군, 이제 그 팔 잘린 놈만 잡으면 되는데.”

“흐흐.”

대화 내용을 완전히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명확하게 들리진 않았다.

거리가 좀 떨어져 있기도 했는데, 목소리 자체가 동굴 속에 있는 것처럼 울린 채 들려서 더 그랬다.

“역시 군인들인가?”

“라드가 풀리진 않은 거 같습니다.”

“그렇지.”

정황상 라드 놈들이 나와 있을 리는 없어 보였다.

만약 그랬다면 저런 식으로 평온하게 대화를 이어 나갈 수는 없었을 테니.

상식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판단을 내린 지휘관은 근접전은 염두에 두지 않은 채,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아래로 향했다.

달각

발소리는 거의 죽였다.

아마 사람이라면 안 들렸을 거다.

하지만…….

“온다.”

“다들 조용.”

라드는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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