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7화 염탐 (3)
“이렇게만 가자고?”
“그래야 될 거 같습니다. 어차피 인원 끌고 온다고 해 봐야 100명도 안 될 텐데……. 체계가 완전히 잡히면, 오히려 더 어려울 수 있어요.”
“으음.”
김민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곤 밖을 내다보았다.
그가 보기엔 지금도 삼엄하기 그지없어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 새끼들…… 빠꼼이지.’
그간 벌써 몇 번이나 물 먹었나.
솔직히 말하면 굉장히 쉽게 털어먹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역으로 당한 것은 이쪽이었다.
적어도 두 번째…….
그러니까 재난 본부로 쳐들어갔을 땐 득보다 실이 더 많았다.
그나마 옥상에 남아 있던 놈들이라도 다 흡수했다면 훨씬 나았겠지만, 그것도 헬기로 쏙 빼 갔다.
‘그만큼 능력이 있는 것들이야.’
특히 그중에서도 이 앞에 있는 놈들이 알짜였다.
지금도 그냥 이놈들만 물어서 같은 편으로 만들까 하는 욕망이 스멀스멀 일고 있을 지경이었다.
가까스로 참을 수 있는 건, 적어도 이 앞에 있는 과실이 훨씬 더 커 보여서였다.
무엇보다 이놈들 없이는 저곳을 절대로 칠 수 없다.
방금의 대화만 봐도 그렇지 않나?
자신들은 찾을 수 없는 틈을, 이놈은 훤히 꿰뚫고 있었다.
“어떻게, 뭘 하면 되지?”
해서 물었다.
그러자 김태평은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밖을 가리켰다.
애초에 모두가 그에게 집중하고 있었던 터이다 보니 말이 끊기거나 하는 시점은 없었다.
“벌써 수가 줄었지?”
“수가……. 그렇군, 확실히.”
여기까지 오는 길에도 거점들이 하나둘 더 늘었을 것이 분명했다.
최근 들어 몸집을 불리고 있지 않나.
더욱이 이 뒤로 가면 노예들이 있는 산도 있다 보니 경비 인원의 밀도는 더더욱 옅어질 수밖에 없었다.
낮에도 그런 경향이 있었는데, 밤에는 확실히 더 심했다.
“라드도 생물이다 보니 밤에는 쉬지. 그리고 이 근방에서 감히 여기까지 올 생존자는 없을 것이고……. 잘 봐. 해이하기 이를 데 없어.”
진부한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최강의 집단이지 않나.
정부는 이 근방뿐 아니라 그냥 대한민국에서도 최강이라고 봐야 했다.
일부 기갑사단의 병력이 더 강할 수는 있겠지만 그건 그 부대가 운용이 가능할 때의 이야기일 터였다.
사태 초기라면 모를까 야금야금 비축분 털어먹었을 지금에 이르러서는 여기까지 오지도 못하고 죄 퍼져 버릴 게 뻔했다.
사실 전차라는 게…….
말이 안 되는 물건 아닌가.
그 육중한 몸집을 끌고 다닌다는 건, 그 순간부터 혹사였으니 제대로 된 정비가 없다면 금세 망가질 수밖에 없었다.
“방심하고 있을 겁니다. 그럴 수밖에 없죠. 합리적인 판단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건물 밖에서보다 안에서 훨씬 효율이 좋을 겁니다.”
김태평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면서 동시에 라드들을 돌아보았다.
우월한 신체.
그리고 운동 능력.
그나마 거리가 떨어져 있다면 자동 화기로 무장한 군인들이 어느 정도 대응이 가능하겠지만…….
안에서는 그럴 수도 없었다.
순식간에 들러붙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애초에 냄새로 접근해 갑자기 튀어나오는 적을 어찌 이긴단 말인가.
훈련이 아주 잘 된 일부 병력을 제외하면 아예 대응이 불가능하다고 봐야 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밖에서 뚫죠. 은밀히 움직이는 건 잘하니까. 오예리 형사님하고 이순규 교수님은 여기 계세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위험하다 싶으면 쏘세요.”
“신호 없이도요?”
“네. 오예리 형사님 정도면 그냥 본인이 판단하셔도 무방할 겁니다.”
“흐음. 알겠습니다.”
오예리 형사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사이 어렵게 구한 저배율 저격 소총을 매만지면서였다.
아무것도 없는 k2 소총으로도 300미터 밖의 움직이는 적을 자유자재로 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보니, 이제는 그것보다 배는 더 멀리 있는 적들도 맞힐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 이상으로 멀리 있거나 또는 바람이 세게 불거나 한다면 상황이 달라지겠지만…….
이쪽 건물에서 세브란스까지의 직선거리는 고작해야 3, 400미터밖에 안 되었다.
그만큼 들킬 위험도 크겠지만 적어도 못 맞힐 염려는 없다고 봐야 했다.
“교수님은…… 아무래도 안으로 같이 들어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물론 마음에 걸리시면 안 그러셔도 되고요.”
“들어가야죠. 안에서 대체 뭔 짓을 하고 있는지 봐야겠습니다.”
“네. 그럼 같이 가시죠.”
“근데 저 같은 비전문가가 있으면 들킬 염려가 있지 않겠습니까?”
정유현의 말에 김태평은 잠시 말을 잊었다.
비전문가…….
그래, 맞다.
확실히 훈련받은 적은 없다.
단지 본능적으로 움직일 뿐.
만약 작전이 대규모로 진행된다면, 그때는 정유현을 배제하는 게 맞을 터였다.
아무리 본능과 직관이 발달한 인간이라 해도 톱니바퀴처럼 굴러가야만 하는 상황에서는 도움이 되기는커녕 방해만 되기 일쑤일 테니.
허나, 지금 이 상황에서 유현은 그냥 훈련받은 요원이라 상정해도 좋았다.
움직이는 인원도 적을뿐더러 목표 지점 또한 간단했으니.
“아뇨, 그냥 뒤따라 붙으면 됩니다. 원래 하던 대로 하시죠. 아마 요원들도 불만 없을 겁니다.”
“네, 저희도 좋습니다.”
“교수님 정도라면 뒤를 맡겨도 좋지요.”
발군의 권총 사격 실력 및 달리기를 포함한 순간 대응 능력 그리고 무엇보다 판단력이 너무 좋지 않나.
의사이면서도 인정에 휩쓸리지 않는 점도 좋았다.
내부적으로는 만약 김태평이 사라지는 경우, 정유현의 통제에 따르는 것이 좋을 거라는 의견도 있을 지경이었다.
“그쪽은 아예 이 건물 1층에 있다가, 우리가 신호하면 그때 들어가요.”
김태평은 대강 상황을 정리한 후 김민수를 바라보았다.
김민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확실히 저 밖에 돌아다니는 것들을 조용히 처리하는 건 무리였다.
골목길에 있는 하나둘 정도야 몰라도 저기는 열 명도 넘게 있었다.
“그러지. 들어가고 나면 근데?”
“그때부터는…… 글쎄요. 일단 지하부터 가 보죠.”
“지하? 지하는 왜?”
“아무래도 켕기는 게 있으면 지하에 두지 않겠습니까? 아니면…….”
김태평은 세브란스 꼭대기를 가리켰다.
저기까지 닿을 수 있는 외부인이 있나?
아마 없을 거다.
밤에 불 켜고 다닌다고 해서 이쪽을 습격할 놈도 없을 것이고.
“저 위에 있겠죠.”
“지하부터 가 보는 게 좋겠군그래.”
“그렇죠.”
“알겠어. 여기서 대기하지.”
“좋습니다. 그럼, 우리부터 움직이죠.”
김태평은 이미 서 있던 김에 아예 방에서 빠져나갔다.
한때 회의실로 쓰였던 곳이었을 이곳은 이제 버려진 건물 특유의 을씨년스러운 느낌만을 주고 있었다.
“잠시.”
물론 아예 비어 있지는 않았다.
세브란스의 맞은편에 있는 건물인 만큼 어느 정도 경계 인원이 시간마다 도는 모양이었다.
다만 그리 열의가 있어 보이진 않았다.
“야, 가자.”
“그래도 위에 올라가 봐야 되는 거 아냐?”
“뭐 하러…… 그런다고 뭐 더 주냐? 여기까지 누가 온다고. 윗대가리 새끼들은 다 자고 있는데. 검사할 사람도 없어.”
“하긴…… 그러고 보니까 아까 술 나눠 주는 거 같던데? 오늘 뭐래?”
“몰라. 위스키 같더라. 어디 털었나 봐.”
“이야……. 개꿀이네. 어째 술이랑 이런 건 전보다 더 잘 먹는 거 같아.”
“그런 거라도 있으니까 버티지…….”
1층, 그것도 중앙 현관 근처에만 왔다 갔다 하더니 밖으로 나갔다.
저래서야 현관 근처에 뭐가 있었다고 해도 알아채지 못할 거 같았다.
아예 관심이 없었다.
“가는군.”
“오합지졸이네요.”
“아무래도…… 김선태가 지휘하던 때랑은 다르겠죠.”
같은 병사들일까?
그런데 다르게 움직이는 걸까?
그렇다면 대관절 그 차이를 만드는 건 뭘까?
“일단 김선태는 지휘관들부터 조집니다. 자기도 앞장서서 고생을 하고요. 그러니…… 아직도 그만한 전투 역량을 지니고 있겠죠.”
“아. 솔선수범한다, 이 말이군요.”
“네. 게다가 잔인한 놈이에요. 라드고, 생존자고……. 아니면 말 안 듣는 군인이건 간에 본인이 죽이는 경우가 많아요. 조폭들의 방식인데, 상당히 효과적이긴 하죠.”
“그렇군…….”
정유현은 궁금증이 해소되었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방금 병사들이 나간 중앙 현관 쪽으로 이동해 바깥을 주시했다.
이쪽도 피차 대학교 건물이었던 데다가 지어진 지 아주 오래된 건물도 아니었다 보니 유리문이었다.
상대적으로 바깥쪽은 밝았기 때문에 들킬 염려도 없었다.
무엇보다 아까보다도 사람이 줄어들었다.
“이제 기껏해야…… 대여섯 명이로군.”
“너무 적은데…… 뭐가 없는 거 아닐까요?”
“중장이 아까 안으로 들어간 다음, 밖으로 나온 적이 없습니다. 다른 게 없더라도 중장 정도 되는 놈이 여기 거주하고 있다는 얘기죠. 그렇다면…….”
“뭐가 있긴 하겠군요.”
유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김태평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가 미처 잡아내지 못했던 쪽에 있던 병사들도 있었다.
확실히 전술적으로 그런 곳에 있으면, 들키지 않고 접근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 같았다.
“우선 이 문으로 나가는 건 안 되겠습니다. 뒤로 돌죠. 아, 그쪽은 그대로 여기 있고.”
“그러지.”
김태평은 뒤로 라드들을 두고 옆문으로 빠져나갔다.
그러곤 터널 쪽으로 빙 돌아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유현도 그의 뒤를 따랐다.
주변으로 지키고 선 군인들이 더 있긴 했지만, 딱히 경계가 삼엄하다는 느낌을 주진 못했다.
“근데 노예들은 어쩌죠?”
“여기 난리 나면 몰려오겠죠. 대강 시간 내에 뭔가 확보하지 못하면, 그냥 그쪽으로 가서 불이나 질러 버리면 될 겁니다.”
“시간 내라면…….”
“기껏해야 10분이죠.”
“저놈들에게는?”
“알려 줄 필요가 있을까요? 진짜 동맹도 아닌데.”
그렇게 골목에 숨은 유현은 불현듯 생각난 것이 있어 물었고, 김태평은 대수롭지 않다는 얼굴로 대꾸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과연 맞는 말이지 않나.
정의감이 아예 없는 사람은 아니지만 굳이 라드에게서까지 불태울 수 있는 사람은 또 아니었기 때문에, 유현은 그저 김태평의 뒤를 부지런히 따르기만 했다.
“처리해.”
요원들도 함께였는데, 그들은 명령에 따라 벌써 네 명의 병사들을 처리했다.
영화에서처럼 목을 꺾지는 않았다.
그냥 단도를 목에 찔러 넣었다.
입가를 막으면서였는데, 확실히 저항 비슷한 것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예 없었다.
“좋아. 이제 저 6명이 답니다.”
“서로가 서로를 보고 있는데…….”
“뭐, 좀 기다려야죠. 산개해.”
“네.”
김태평의 말에 따라 요원들이 흩어졌다.
잘게 쪼개져 각기 병사들 뒤에 자리를 잡았을 것이라고, 유현은 예상했다.
그렇게 한 번에 처리를 하나 싶었는데 당장 움직이지는 않았다.
단지 기다릴 뿐이었다.
살짝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것을 눈치챘는지 김태평이 피식 웃었다.
“원래 요원 일이라는 게 이렇습니다. 기다리는 게 일이죠.”
“영화랑은 다르군요.”
“지금도 좀비 영화랑은 다르지 않습니까? 결국, 무서운 것은 사람이죠.”
“그렇긴 하죠.”